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 수련의 길에서 제 제고를 도와준 사람들은 마치 배구팀의 연습 파트너와 같았습니다. 팀의 연습 파트너는 매일, 매년 단련을 거쳐 세계 챔피언을 길러냅니다. 우리 수련의 길에 있는 ‘수련 파트너’도 매일, 매년 우리가 원만(圓滿)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를 성취시키고 집착을 닦아 없애도록 도와줍니다.
처음에 저는 대부분 시간에 ‘수련 파트너’에게 원망심, 쟁투심, 불만, 반항, 심지어 분노하거나 멀리하는 것으로 반응했습니다. 법리를 깨달은 이후, 비록 원망스럽긴 했지만 행동으로는 ‘공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즉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속으로는 원망했고 얼굴은 굳어 있었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저는 원망도 증오도 없이 행하는 단계로 승화됐고, 원망이 없이 오직 감사함만 남게 됐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를 시시각각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어떤 행동이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 각종 사람 마음을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로서 법공부를 잘해야만 매번 수련의 기회를 깨달을 수 있고, 법공부를 잘해야만 아주 작아 보이는 매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자신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제23회 명혜망 중국법회를 맞아, 저는 일상생활의 작은 일들 속에서 제 슈퍼 ‘수련 파트너’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모두 어머니 잘못입니다
어머니는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에 속하며, 본분이 바르고 선량하십니다. 일할 때 성실하게 임하셨고 돈과 명예를 다투지 않으셨습니다. 마음속에는 오직 가정뿐이었고, 소박하고 따지지 않으셨으며 털털하셨습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어머니와 아주 화목하게 지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저와 어머니는 모두 판단 기준의 차이가 없었기에 화목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상황이 변해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저희 사이에 큰 간극이 생겼고 게다가 넘어설 수 없어 보였습니다. 1999년 ‘4·25’ 이후, 수련생이 찾아오기만 하면 어머니는 반드시 눈살을 찌푸리고 차갑게 대하셨습니다. ‘7·20’ 이후, ‘대법(大法)’이라는 두 글자는 가정의 금기어가 됐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저를 경계하고 비우호적이라는 것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고, 어머니는 단순하고 난폭한 행동을 극심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를 보실 때는 항상 차가운 시선이었고, 입을 여시면 모두 명령과 질책이셨습니다. 두 번이나 중공의 박해를 당하면서 저희 사이의 관계는 더욱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습니다. 어머니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으셨습니다. 줄곧 훌륭하던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갑자기 ‘경찰’, ‘구류소’ 등등 ‘나쁜 사람’과 관련될 법한 단어와 연결된단 말인가? 어떻게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대대적으로 비판하고 성토하는 대상과 한패란 말인가? 게다가 ‘죽어도 뉘우치지 않는’ 모습이라니.
어려서부터 줄곧 어머니의 말씀을 고분고분 잘 들었던 저의 그 당시 모습은 어머니로 하여금 제가 ‘마에 씌었다’고 느끼시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마가 씌운’ 아이에게 어머니가 어떤 태도를 보이실 수 있었겠습니까? 인생 경험이 오직 ‘당’을 따라가는 것뿐이고, 게다가 ‘당 어머니’의 ‘관심’ 아래 수많은 특별한 영예를 얻으셨던 어머니로서는 기본적으로 저를 ‘계급의 적’ 위치에 올려놓으셨습니다.
그때 제 심성은 ‘누구든 파룬따파가 안 좋다고 말하면 곧 적’이란 마음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적에게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투고 싸우는 것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었습니다. 저에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기만당한 후의 허튼소리를 이해하라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대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어 처한 위험을 고려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어머니에 대한 자비와 사랑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적에게는 도무지 사랑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이, 저 스스로 자신이 확고한 대법제자라고 여기는 모습이었습니다.
점차 어머니와의 말다툼은 냉전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해야 할 말은 다 했고, 게다가 반복해서 말씀드렸는데 어머니는 왜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시는 것일까? 왜 자신의 자녀를 믿지 않고 도리어 중공 텔레비전과 신문의 거짓말을 믿으신단 말인가? 모성애, 혈육의 정이 정치적 태도 앞에서는 모두 일고의 가치도 없게 변해버렸단 말인가?’ 점차 제 분노는 언어와 겉모습에서 마음속으로 옮겨갔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무시하면 그만 아닌가?’ 어머니가 계신 곳이면 저는 피했고, 제가 다가가는 것을 보시면 어머니는 즉시 돌아서셨습니다. 가정의 분위기는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찼고, 냉담한 적막 아래에는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두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적인 대립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어머니와 이렇게 많은 갈등이 생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특히 제 은퇴 생활이 시작되고 어머니와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내는 ‘룸메이트’가 된 후, 저는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어머니를 이전에는 잘 알지 못했다는 것을 비로소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의 일상적인 언행 중에 어쩌면 그렇게 제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많을 수 있단 말입니까? 생활 속의 마찰은 본래 낯설고 차가운 관계에 증오와 원망이라는 첨가제를 더했습니다.
이런 ‘원망’은 저희의 서로 다른 가치관, 사물을 인식하는 논리, 지식수준, 삶의 질에 대한 요구에서 비롯됐습니다. 한마디로 제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든 행동은 수시로 제 원망의 수문을 폭발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런 폭발점들은 너무 많아서 기본적으로 어떤 일을 처리할 때마다 모두 갈등이었습니다.
수련을 한 덕분에 제 두뇌는 매우 논리적으로 변했고, 일 처리가 아주 깔끔하고 시원스러워졌으며, 집안을 티끌 하나 없이 치웠고, 지식의 폭도 매우 넓어졌습니다. 예전에 공부에 문제가 많았던 제가 갑자기 무엇을 배우든 빠르고, 무엇을 배우든 복잡하지 않게 느끼게 됐습니다. 저는 대법의 지혜를 얻은 후 다시 보니 모든 것이 그렇게 간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때의 어머니는 이미 고령의 노인으로서, 보통 노인들처럼 까다롭지 않고 대충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계셨으며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출근하실 때도 업무와 관련된 지식 외에는 다른 것을 접해본 적이 없으셨기에 노년이 되신 후 지식의 폭이 매우 좁아졌습니다. 본래 급하셨던 성격이 연세가 드시고 청력이 떨어지시면서 더더욱 제가 적응하기 힘들게 하셨고, 대립면에 있는 이 어머니가 늙고 무능하고 완고하고 단순하며 난폭해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이 모든 것에 넘쳐나는 시대에 어머니도 아주 자연스럽게 인터넷의 포로가 되셨고, 모든 언행이 인터넷의 지시를 출발점으로 삼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인터넷 선생님’의 명령에 복종하셨습니다. 이는 제게 ‘소귀에 경 읽기’와 같은 고뇌를 안겨줬습니다.
어머니는 때때로 제게 황당하게 느껴지는 각종 지시를 내리시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생수통 물은 쓰면 안 된다. 세균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반박하며 어머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생활용수가 얼마나 더러운데요, 모든 생수통에 세균이 있는 건 아니에요, 좋은 브랜드로 사면 되잖아요.” 어머니는 저를 흘겨보시고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틀이 지나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생수통 물은 깨끗하지 않아, 인터넷에서 보니까 많은 사람이 마시고 병이 났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말씀하셨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랬어, 랩은 쓰면 안 된대, 플라스틱 제품은 다 독이 있대.” “아, 맞다, 인터넷에서 그랬는데, 여주를 먹는 건 비소를 먹는 거나 마찬가지래.” “그리고, 온수기가 누전되니 쓰면 안 돼.” “아, 멀티탭 구멍이 4개지만 가전제품 2개만 꽂아야 돼, 아니면 불나!” “휴대폰은 밤에 충전하면 안 돼” 등등 이와 같은 무수한 비슷한 지시들을 거의 매일 제게 던지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막 라면 한 봉지를 집어 끓이려 하는 것을 보시고 즉각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먹지 마, 건강에 안 좋아!”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가끔 한 번 먹는 건데 어때서요(사실 저는 라면에 집착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버지가 맥도날드를 시키려 할 때 어머니는 당장 말씀하셨습니다. “패스트푸드는 먹으면 안 돼, 건강에 안 좋아!” 제가 식탁에서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반찬을 두고 자리를 뜨려 할 때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냉장고에 넣고 하룻밤 넘기면 안 되니 다 먹어야 돼.” 저는 하는 수 없이 몽땅 제 배 속으로 집어넣었고, 급기야 아버지는 저를 ‘음식물 쓰레기통’이라며 농담까지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구두가 낡은 것을 보고 저는 좀 비싼 새 구두를 사 왔습니다. 어머니는 보시자마자 즉각 눈살을 찌푸리며 말씀하셨습니다. “안 신어, 환불해라, 내 구두 아직 멀쩡해.” 저는 얼른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구두는 다 낡았잖아요!”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낡으면 어때서? 아무도 안 봐.” 저는 하는 수 없이 분을 삭이며 환불하러 갔습니다.
비슷한 일들이 수두룩했고, 어쨌든 제가 무엇을 하든 다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제가 마치 억울한 며느리가 돼 못된 시어머니의 괴롭힘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정말 너무너무 화가 났습니다. ‘집안의 입고 먹고 쓰는 모든 것을 내가 돈을 내고, 모든 일도 내가 다 하고, 매일 이렇게 곁에서 모시며 돌봐드리는데도, 이렇게 막무가내고 이치에 맞지 않게 구시다니!’ 이 때문에 저는 몰래 여러 번 울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비친 어머니는 외양을 전혀 꾸미지 않는 꾀죄죄한 노인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양옆만 염색해 정수리와 뒷머리는 모두 하얬습니다. 머리 양옆은 가지런한데 뒤쪽은 들쭉날쭉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 스스로 염색하고 머리를 자르시다 보니 정수리와 뒷머리는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도와드리려 하면 어머니는 딱딱하게 쏘아붙이셨습니다. “네가 해줘서 뭐 하게?”
어머니가 식기세척기를 못 쓰게 하시고 주방세제도 못 쓰게 하셨기에, 어머니가 씻은 그릇은 제가 다시 다 씻어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비록 열심히 일을 하셨지만, 이런 하느니만 못한 일들은 저를 더 피곤하게 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는 자신이 씻은 그릇을 제가 다시 씻는 것을 보시면 몹시 화를 내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씻지 않으면 그 그릇들은 만지기만 해도 미끈거려서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가 더럽다고 싫어할수록 어머니는 더 더러운 모습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처음에 소변 본 후 물을 내리지 않으시더니, 나중에는 심지어 대변을 보시고도 물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거실에 앉아계신 어머니를 향해 분노하며 돌진했습니다. “대변 보시고 왜 물을 안 내리세요?!” 어머니는 무심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아, 그러냐?” 남겨진 저는 한참 동안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쉬었습니다.
‘휴, 어머니는 도대체 왜 이러실까?’ 머리카락은 희고 검은 것이 섞여 길고 짧았고, 바지도 제대로 입지 않으셨으며, 얼굴의 검버섯은 유난히 눈에 띄었고, 입에서는 제 관념과 어긋나는 각종 인터넷 지시가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그때의 저는 눈앞의 이분을 대체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2. 모두 어머니의 잘못일까?
대법 수련자로서 저는 자신이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자! 말대꾸하지 말고, 말하지 말고, 따지지 말고, 참고 참고 참자! 그때 제 수련은 왜 참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참는 것만 남아 있어서 수련이 매우 힘들었고, 게다가 실질적인 변화와 제고는 전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여주를 먹지 말라 하시면 먹지 않고, 생수통 쓰지 말라 하시면 쓰지 않고, 라면을 먹지 말라 하시면 먹지 않고, 무엇을 하지 말라 하시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제가 얼마나 말 잘 듣고 얌전해 보였겠습니까. 하지만 마음속에 쌓인 원망은 어머니에 대한 느낌을 또 적대적인 것에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이 일찍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장모님과 안 친해 보여.” 무심코 한 이 말은 저를 깊숙이 찔렀습니다. ‘맞아,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남들에게 주는 느낌이 친근함이 아니라 냉담함과 어쩔 수 없음, 심지어 원한이라니, 나는 도대체 어떻게 수련한 거지?’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원래 생활 속 작은 일도 두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대립하게 하고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깨알같이 작은 생활 속 일 같아 보이지만, 마음속의 갖가지 답답함은 큰 갈등이 만든 장벽 못지않았습니다. 이렇게 원칙적인 문제에서, 심지어 비원칙적인 문제에서 저와 어머니는 늘 같은 궤도에 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원망과 불만, 심지어 꺼리는 것이 그 단계에서 제 주요 마음 상태였습니다. 제가 비록 진상 알리는 일을 하고, 법을 배우고, 표면적으로는 수련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때의 자신을 보면 실질적으로는 전혀 수련하지 않았고,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으며 생활 속 모든 것이 제 사람 마음을 겨냥해 온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정법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발표하시는 경문, 각종 진상 자료, ‘9평 공산당’ 출간은 저에게 제 집착과 극단적 면을 보게 했고, 이 국면을 반드시 타파해야 한다는 절박함을 인식하게 했으며, 동시에 어머니의 혼란을 풀어드릴 수 있는 수많은 소재를 얻게 했습니다. 저는 저희 사이 모든 불화와 불쾌함이 모두 제가 어머니에 대해 마음속에서 발하는 장(場) 때문에 조성된 것임을 점점 더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원망과 증오였습니다. 진상을 모르는 것을 원망하고, 생떼를 쓰시는 것을 원망하고, 이것이 밉고 저것이 원망스러운 등등이었습니다. 이 모든 원망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어머니의 대법에 대한 태도가 바뀌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서 어머니에게 진상을 알려 중공의 거짓말에서 빠져나와, 짙은 안개에서 벗어나 햇빛 속으로 들어가게 해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됐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어머니를 변화시키려면 우선 자신을 변화시켜 제 진실하지 못함과 선하지 못함을 제거해야 하고, 더욱이 사악한 것에 그토록 쉽게 이끌리고 교란받는 이 마음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공간장(空間場)은 제가 주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바르게 행하고 바르게 처사한다면, 어머니의 명백한 일면은 바른 모든 것에 무조건적으로 동화될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고령인 노인에게는 방법이 필요하고 난폭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인내심이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를 칭찬해 드린 지 얼마나 됐지?’ 이 질문이 나오자마자 저 자신도 깜짝 놀랐습니다. ‘칭찬을 해? 칭찬할 만한 게 뭐가 있지?’ 그러나 제가 원망의 안경을 벗고 순진하고 선량한 눈빛으로 어머니를 다시 바라보았을 때, 어머니에게 정말 많은 장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게다가 많은 부분은 제가 배워야 할 장점이었습니다.
대화하는 분위기가 저로 인하여 파괴됐기에 저는 각종 기회를 찾아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 생일, 어버이날 등 축복을 전할 수 있는 기회는 하나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편지에서 저를 보살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파룬따파 진상, 중공 악당의 거짓말을 알려드렸으며, 누가 법을 어기고 있고 심지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알려드렸습니다. 여러 정치 운동을 겪으신 어머니는 중공 악당 통치하에서 정치의 추악함과 더러움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셨고, 어머니의 친척 중 문화대혁명 때 박해받아 목숨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공감대를 찾으니 진상을 꿰뚫을 수 있는 지렛대도 찾게 됐습니다.
저는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제 신앙을 포함한 제 모든 것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을요. 다시 말해 이전에 각종 갈등이 발생한 중요 원인 중 하나는 어머니가 저로부터 제 신앙인 ‘진선인(眞·善·忍)’이 구현되는 모습을 전혀 보실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상생활의 모든 세부적인 면에서 저는 어머니의 요구와 관념을 만족시켜 드리려고 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속의 그 내키지 않고 불쾌한 감정들이 모두 철저하게 제 집착하는 사람 마음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 발견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살찔까 봐 저녁을 많이 먹고 싶지 않으면, 어머니는 남은 반찬과 밥을 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음식의 색과 향, 맛이 모두 갖춰진 것을 좋아하면, 어머니는 남은 반찬을 색깔이 전혀 없게 데우셔서 푹 퍼지게 만드셨습니다. 제가 반숙 계란을 좋아하면 어머니는 무조건 노른자가 뻣뻣해지도록 삶으셨습니다.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모든 일들은 다 제 집착을 겨냥해 온 것이었습니다. 색(色)에 대한 집착, 명(名)에 대한 집착, 음식에 대한 집착 등등. 여하튼 제가 무엇에 집착하면 어머니는 그것을 엉망으로 만드셨습니다. 제가 깨닫지 못하면? 제가 깨달을 때까지 계속 엉망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모든 갈등 이면에 있는 진짜 원인을 똑똑히 보게 되자 실소가 터져 나왔습니다. 어머니라는 이 ‘수련 파트너’가 너무 고생하신 거였습니다! 제 집착도 너무 많지 않습니까? 아프게 맞았으면 집착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았으면 다시 주워 담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원만으로 향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하나의 이치를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제 자아의 모든 관념과 집착이 없다면 제가 어떻게 어머니와 갈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이 곧 제가 원하는 것이고,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것이 곧 제가 바라는 것이라면, 가정생활의 조화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머니가 낡은 구두가 편해서 바꾸고 싶지 않으시다면, 제가 구두를 가져가서 잘 수선해오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글의 참뜻을 왜곡하고 떠도는 말을 믿으실 때, 만약 제가 선의로 천천히 소통할 수 있다면 말씀드리고, 소통할 수 없다면 웃어넘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제 생활에 약간의 불편을 가져다줄 뿐, 자아를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대법 수련자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플라스틱은 다 독이 있다고 여기신다면, 어머니가 드시는 요구르트를 포함해 생활과 관련된 모든 것을 플라스틱이 아닌 것으로 바꾸면 됐습니다. 이렇게 한 결과 오히려 어머니 스스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셨고, 지금은 플라스틱병에 든 요구르트를 계속 드십니다. 어머니는 비록 예전 관념대로 생활하고 계시지만, 인터넷에 대한 자신의 집착이 좀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발견하셨습니다. 인터넷 쇼핑에서 몇 번 속으신 후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이 다 맞는 건 아니라는 걸 아신 것입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오늘은 소금을 적게 먹어야 한다고 하더니 내일은 적게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등, 서로 엇갈리는 각종 정보에 어머니도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게 되셨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어머니의 모든 생활 지침에 대해 제가 이의 없이 실행하는 것을 발견하셨을 때, 어머니가 변하기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제게 향했던 적대감이 바뀌었고, 제 신앙 선택에 대한 이의가 바뀌었으며, 저를 보며 자주 웃기 시작하셨습니다.
수년간의 꾸준한 노력과 소통을 거쳐 대법 진상과 악당의 대법 모함 거짓말에 대해 어머니는 마침내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되셨습니다. 동시에 사실 앞에서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인정하셨고, 제가 계속 수련하는 것을 지지해주셨습니다. 때때로 제게 일깨워 주시기도 합니다. “가서 네 일 봐라”, “가서 책 봐라”, “일찍 방에 들어가서 쉬어라.” 혹은 “안전 주의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저희 둘은 이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 가장 풀기 어려운 매듭을 푼 이후, 저도 제 선하지 못함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표면적으로 저는 대법에 매우 확고해서 대법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진 사람은 모두 제 ‘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상대방을 대법의 반대편으로 밀어낸 것은 바로 제 불선(不善), 불인(不忍)이었는데도, 저는 늘 자신이 시종 위대하고 광명정대하며 정확하다고만 여겼습니다.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저는 진정으로 마음을 써서 법을 배울 수 있게 됐고, 자아의 시각이 아닌 법의 입장에 서서 문제를 보기 시작했으며,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출발점으로 문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생의 모든 행위가 사부님의 가장 자비로우신 안배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가졌던 갖가지 불만과 원망, 심지어 모든 잘못을 어머니 탓으로 돌렸던 생각이 정말 불합격한 수련생의 모습이었음을 깊이 자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다시 어머니의 이른바 잘못을 보니, 더 이상 모두 어머니의 잘못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3. 모두 나의 잘못
법공부하고 법공부하며, 마음을 써서 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저는 아래의 법 내용을 비로소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반드시 수련인의 방식과 수련인의 사상을 이용하여 문제를 사고해야 하며 절대로 속인의 사상으로 문제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부딪힌 어떠한 문제도 모두 간단하고도 간단한 것이 아니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속인 중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수련과 관계있고 당신의 제고와 관계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당신 생명의 길은 개변된 것이고 당신 수련의 길은 새로 배치한 것이기 때문에 이 한 갈래의 길에서는 곧 우연한 일이 없다. 그러나 표현됨은 오히려 반드시 우연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이 미혹 중에, 속인과 똑같은 상태 하에서만, 비로소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지 아닌지, 당신이 수련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당신이 이 하나의 고비 또 하나의 고비를 걸어 지나갈 수 있는지 없는지를 표현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며 이것이 바로 정오(正悟)이다!”(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제가 오래 지속된 이전 상태에서 돌파해 나온 것은 끊임없는 법공부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리고 정말 대법, 우주 대법만이 제 고집스러운 마음을 바꾸어 원망이 사랑과 선의로 대체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다시 배우면서, 제가 수련의 길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문제를 사부님께서 진작 일깨워 주셨음을 발견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옛이야기를 하나 하자. 『봉신연의(封神演義)』 중의 신공표(申公豹)가 강자아(姜子牙)를 보니, 늙고 또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원시천존(元始天尊)은 강자아에게 봉신(封神)하게 했다. 신공표의 마음속은 곧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어째서 그에게 봉신하게 하는가? 당신은 나 신공표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라. 내 머리는 베어도 다시 돌아와 붙는데, 어찌하여 나에게 봉신하게 하지 않는가?’ 그는 몹시 질투하여 늘 강자아를 교란했다.”(전법륜)
‘늙고 능력도 없었다’는 이 몇 글자가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바로 어머니가 늙고 능력이 없으시다고 여기지 않았습니까? 신공표와 똑같은 질투심에, 신공표보다도 못해서 어머니가 추하다고 싫어하기까지 했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늙고 능력이 없으심과 추함으로 제 몸의 질투심과 색욕심을 비춰주신 것이었습니다. 제가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어머니는 계속 늙고 추하고 능력이 없으실 텐데, 이게 진정으로 남을 해치고 저를 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어머니가 추하고 우아하지 못하시며 깨끗하지 않으시다고 싫어한 것에는 깊은 색욕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것은 좋아하고 추한 것은 싫어하니, 이것이야말로 철두철미한 호색(好色)이 아니겠습니까? 우아함은 과시심으로 지탱되고, 다른 사람이 칭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탱됩니다. 과시에다 명(名)을 구하는 것이 더해진 이토록 무서운 집착이었습니다.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요? 깨끗하다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똥구덩이에서 깨끗함을 말할 게 무엇이 있고, 우아함을 말할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토록 무서운 사람 마음을 품고 있다면, 제아무리 우아하게 자신을 치장한다 해도 극도로 추악한 것입니다.
또한 어머니의 성급하심과 단순하고 난폭하심은 모두 아주 정확하게 제 모습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일을 급하게 처리하고 속도만 따질 뿐 질은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중생구도를 포함한 많은 일을 할 때 몹시 조급했고, 일을 하기 전 생각과 계획이 부족했으며, 무모함으로 인해 박해를 초래했습니다.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고, 구한 사람 수와 일의 크기로 공로를 가늠했으며, 마음이 이미 더할 나위 없이 들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제 집착도 라면과 맥도날드를 통해 매우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어머니가 음식을 낭비하지 말라고 요구하시는 것은 미덕입니다. 비소로 변한 여주와 세균이 있는 생수병의 등장은 도덕이 무너진 현시대에 악덕 상인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며, 불량 멀티탭이나 온수기 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인터넷에서 보신 사례들은 모두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객관적이고 전면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실 것을 요구하면서, 저 자신은 왜 여러 의견을 듣고 밝게 판단하지 못했을까요? 스스로 일을 할 때 왜 몇 번 더 이유를 묻지 않을까요? 제가 진선인의 잣대로 영원히 남만 재려 한다면 어찌 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가 제 호의의 선물을 거절하신 것은, 제가 저와 어머니 사이에 원망을 가득 채워 놓아 어머니가 어떤 선의나 사랑도 느끼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이 주는 물건에 대해서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져 받기를 거부하시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다 제 잘못이었고, 대법 수련인으로서 수련에 빈틈이 생겼기에 속인이 각종 방식으로 제게 고치라고 일깨워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온몸에 빈틈이 많은데도 스스로 알지 못했고, 오히려 화를 내며 제 빈틈을 지적해 주시는 분과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부끄럽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대면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어떤 분명한 단점이나 잘못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제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니 즉시 자신을 잘 찾아봐야 하고, 분명 같은 문제가 자신에게 나타나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수련 파트너’가 저에게 던진 공이 결코 아무렇게나 던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제 어느 한 측면의 부족함을 부수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즉 거울 속 제 얼굴이 더러운 것을 보았을 때 거울을 닦아봐야 소용이 없고,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얼굴을 깨끗이 씻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제자들에게 주셨고, 저희에게 안으로 찾으라고 간곡히 가르쳐주셨습니다. 수련 초기 저는 이것이 갈등을 푸는 방법인 줄만 알았습니다. 자신을 찾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고, 그러면 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도 분명 잘못된 점이 있을 테니 먼저 자신을 고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써서 법공부를 하고 수련이 깊어짐에 따라, 저는 다른 층차의 법리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찾는다는 것은, 제가 본 진선인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표현을 누가 한 것이든 확실하고 온전하게 주어를 바꾸는 것입니다. 즉 ‘그녀’ 또는 ‘그’를 ‘저’로 바꾸면 상대방이 연기한 모든 ‘저’가 바로 제가 수련해 버려야 할 집착이며, 제 눈에 보이는 상대방이 바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저라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제게 계속해서 연기해 보여주었지만, 제 심성이 도달하지 못하고 마음을 바르게 놓지 못했으며 그 안에 각종 사람 마음과 집착이 가득 찼기에 수년간이나 보고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입니다.
수년간 제가 어머니를 대했던 것은 완전히 선함이 없는 상태에서의 어울림이었음을 저는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더라도 냉담과 불만, 무시와 원망으로 저와 어머니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어머니는 진선인을 전혀 느끼실 수 없었으니, 이런 어울림 속에서 어머니가 대법제자의 좋음을 인정하실 가능성은 매우 낮았습니다.
게다가 저와 중생 사이에 갈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은, 저 자신의 자아에 대한 강렬한 집착, 강렬한 통제욕, 제 의견을 표현하려는 의향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일에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당신들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제가 돈과 힘을 들이고 당신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누리시기만 하면 되는데 그것도 틀렸습니까?’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중생이 의견을 발표할 권리를 박탈했고, 제 강렬한 자아표현으로 상대방의 자아표현을 억압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私)는 참으로 너무나 뿌리 깊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튀어나와 연기를 하려 합니다. 자신을 잘 수련하려면 자아에 대한 모든 보호, 모든 보류를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제가 우호, 이해, 포용으로 어머니를 다시 보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가 사실 아주 사랑스러우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제가 배워야 할 많은 장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토록 연세가 많으신데도 그토록 부지런하시어 젊은 사람들과 일을 다투어 하시고, 자신에게는 몹시 검소하시면서 가족에게는 씀씀이가 크시며, 새로운 지식에 대한 탐구심이 매우 강해 무슨 신조어든 한 번씩 배워보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독선적이고, 얕은 학식과 사람의 관념으로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막아내며, 그 시시각각 자아가 도전받지 않고 부정당하지 않으며 질의받지 않도록 수호하는 생명, 그 겸손하지 않고 입만 열면 결론을 내리는 저는, 오직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만을 지표로 삼아 따르는 어머니와 아무런 차이도 없었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단정하지 않으시고, 우아하지 않으시며, 꾀죄죄하게 일하시고,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신다고 싫어했지만, 독벌레와도 같은 제 사람의 욕망과 집착에 비하면 제 집착이 더 더러웠습니다. 제 집착의 걸레로 남의 불결함을 닦아내려 시도할 때, 진정 제 손에 있는 그 걸레가 더 더럽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저의 ‘수련 파트너’에게 감사하게 됐습니다. 어머니는 고령의 연세에, 청력이 좋지 않은 상태로, 현대 인터넷 관념의 충격을 받는 등등의 도구로 자신을 무장하시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으시며 날이면 날마다 제 각종 집착을 연기해 보여주셨습니다. 비록 수동적이긴 하지만 이것은 분명 어머니가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의 가장 용감한 선택이셨을 것입니다. 이 험난한 세상에 내려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이는 각종 표현으로 저를 일깨워 저를 성취시켜 주시는 동시에, 이 역할은 또 늙고 추하고 꾀죄죄하게 변해야 합니다. 만약 세상에 내려오시기 전 대법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었고, 저와의 지극히 깊은 인연과 믿음이 없었다면 누가 감히, 누가 또 기꺼이 이 역할을 맡으려 했겠습니까?
제가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자애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한 명의 늙은 아이처럼 대하고, 어머니의 부족함을 포용하며 묵묵히 어머니의 부당함을 바로잡아 드리고, 어머니의 매번의 진보를 칭찬해 드렸을 때 어머니는 정말 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머리를 다듬게 하셨고, 주방세제를 사용해 설거지하셨으며, 플라스틱병 생수를 사 주셨고, 어머니는 심지어 모습까지 사랑스럽게 변하셨습니다. 아! 원래 이전의 어머니는 모두 연기를 하신 거였고 가짜 어머니셨지만, 바로 진짜 저였던 것입니다! 제가 진실함으로 회귀하고 진정으로 진선인으로 제 진아(眞我)를 요구했을 때, 그 사랑스러운 진짜 어머니도 나타나셨습니다.
제가 자아에 빠졌을 때, 구세력의 대본대로 제 고집대로 행동할 때, 제가 어찌 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겠으며 또 어찌 진상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이전의 제 소행을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안으로 찾는 아름다움은, 가시 돋친 장미 덤불 속의 그 가시들이 모두 자신의 사람 마음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제가 저를 보호하고 저를 지키는 모든 사람 마음을 버렸을 때 주위에는 장미만 있고 가시가 없으며, 이때 주위 중생들도 비로소 저와 함께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 무엇이 진정한 자비인지 제자들에게 줄곧 알려주셨고, 모든 중생을 선의와 사랑으로 대하셨으며,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제자로서 저는 자비심을 잘 닦아내야 합니다.
1999년 ‘7·20’ 이후, 저는 수많은 시간을 들여 진상을 알리는 항목을 했고, 법도 매일 배웠으며 정념을 발하는 것도 잊지 않고 해서 자신이 정진하는 제자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완전히 소홀히 했습니다. 수련을 잘하고 못하고는 일상생활의 일언일행, 일사일념 속에 완전히 진실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일을 아무리 번지르르하게 해도 마음속에 자아가 가득하다면 곧 가짜 수련이고 사부님을 기만하는 것이며 서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제 수련이 늘 외적인 힘에 의존해 ‘수련 파트너’가 저 자신을 잘 닦아주기를 바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에서부터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그 순간부터 수련 상태에 들어가, 시시각각 언행을 삼가고 내면의 그 이타의 씨앗을 잘 보살피며, 안에서부터 밖으로 자신을 철저히 진선인 대법에 동화시켜야 합니다.
저는 제 ‘수련 파트너’가 사부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수련 파트너’의 연기를 잘 살펴보고, 그들의 연기에서 제 부족함을 잘 찾아, 언젠가 천국에서 그들과 맺었던 약속을 잘 실현해야 합니다. 그들의 연기가 모두 끝나는 날이 있고, 그날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두가 크게 기뻐할지 아니면 전부 잃게 될지는 정말 제 오성 안에, 제 수련 안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저 반드시 대법을 잘 수련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9/51557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19/51557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