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박해로 인한 중국 파룬궁수련자 사망 및 부당한 형선고 통계

[명혜망](종합보도) 명혜망 보도 통계에 따르면 2026년 3분기(7, 8, 9월)에 중국 파룬궁수련자 최소 35명이 박해로 사망하고, 최소 162명이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감금된 것으로 확인됐다.

2026년 7~9월 명혜망에 보도된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 35명

2026년 7~9월 명혜망에 보도된 부당한 형선고를 받은 파룬궁수련자 162명

2026년 7~9월 알려진 중공의 부당한 형선고를 받은 파룬궁수련자 162명의 형기별 분포

1. 박해로 인한 사망 사례

1) 윈난 훙허주 양진후이, 납치 감금 20일 만에 사망

명혜망 2026년 7월 27일 소식에 따르면 윈난성 훙허주 거주시의 65세 파룬궁수련자 양진후이(楊錦輝)는 2026년 4월 10일경 고속열차를 타고 멍쯔시로 돌아가던 중 카이위안시 철도경찰에게 납치돼 훙허주 구치소에 감금됐다. 불과 20일 후인 5월 3일, 가족은 양진후이가 구치소에서 사망했다는 비보를 접했다. 가족이 급히 구치소로 달려가자 구치소 측은 양진후이가 “심근경색으로 응급처치를 했으나 소용없었다”라고 통보했다. 가족은 비통해하며 CCTV 녹화 영상 열람을 요구했으나 양진후이가 구치소 안에서 빨래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지는 장면만 볼 수 있었다. 가족은 부검을 요구했으나 현재 자세한 경위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양진후이는 원래 주민센터 공무원이었으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생활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그녀는 수차례 납치돼 세뇌반으로 끌려가 강제 세뇌를 당했다. 2012년 7월 그녀는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윈난성 제2여자감옥에 감금됐으며, 2015년 1월 23일 출옥 후 부당하게 공무원직에서 파면당하고 모든 급여와 퇴직금 혜택을 박탈당해 생계 수단이 완전히 끊겼다.

2024년 7월 27일, 양진후이는 거주시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정법위 등 직원들에게 다시 납치돼 거주시 구치소에 13일간 감금됐다가 8월 8일 풀려났다. 그 기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국보 직원은 그녀에게 “앞으로 다시는 청원 고소장을 쓰지 마라. 또 쓰면 구치소에 다시 가둘 것이다”라고 노골적으로 협박했다.

2026년 4월 다시 체포됐을 때 경찰은 “상부의 통보가 있어 줄곧 그녀를 감시·통제해왔다”라고 밝혔다. 양진후이는 납치 감금된 지 20일 만에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2) 20년간 감시, 강제노동, 유랑: 푸순 겅샹우, 부당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13일 소식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순시 둥저우구 파룬궁수련자 겅샹우(耿向武)는 ‘진선인’ 신념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20여 년간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2019년 9월 12일, 그는 장기간의 고압적인 감시와 괴롭힘, 심신 파괴 끝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75세였다.

겅샹우

1999년 7월 20일 이후 겅샹우는 우자바오(吳家堡) 교양원(노동수용소)에 갇혀 3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이른바 ‘민감한 날’마다 파출소, 주민센터, 가도(街道) 직원들이 찾아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지 마라. 또 알리면 교양원에 다시 보내겠다”라고 협박했다.

2001년 5월 현지 파출소는 “길거리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했다”라는 구실로 겅샹우를 다시 우자바오 교양원으로 끌고 갔다. 교양원의 고문으로 겅샹우는 심장박동 이상, 담석 급증, 신장결석 악화, 극심한 통증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교양원은 그가 사망할까 두려워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후 현지 공안은 빈번하게 찾아와 괴롭혔고 기초생활수급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위협해 기초생활수급자들을 동원해 겅샹우의 출입 시간과 소지품을 감시하게 했다. 경찰은 또 그의 집 맞은편에 고화질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그의 집 모든 방을 직접 겨냥했다. 겅샹우는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4월 22일, 겅샹우는 다시 납치돼 푸순 구치소로 이송됐으나 건강검진 불합격으로 입소가 거부됐다. 경찰은 그의 자녀들을 협박했다. “너희 아버지를 잘 감시해라. 다시는 나와서 진상을 알리지 못하게 해라. 정부는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하게 한다.”

장기간의 감시, 괴롭힘, 체포, 고문, 유랑생활과 정신적 고압으로 인해 겅샹우의 심신은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2019년 9월 12일, 그는 억울하게 사망했다.

3) 윈난 여자감옥 약물 박해 의혹, 푸바오위 출옥 이틀 앞두고 돌연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16일 소식에 따르면 윈난성 쿤밍시 파룬궁수련자 푸바오위(普寶玉)는 향년 65세로 2025년 9월 9일 윈난성 제2여자감옥에서 돌연 숨졌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기 불과 이틀 전이었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감옥 안에서 강제로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사당했다.

푸바오위는 ‘진선인’ 신념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으로부터 수차례 박해를 받았다. 남편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그녀와 이혼했고, 그녀는 딸 하나를 데리고 매달 1000여 위안의 퇴직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며 한동안 거처도 일정치 않았다. 그녀는 세 차례나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아 억울한 형기가 누적 12년 4개월에 달했다.

2005년 8월 2일, 푸바오위는 관두 공안분국 국보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2007년 8월 13일, 쿤밍시 중급법원은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하고 윈난성 제2여자감옥 제4감구로 보내 박해했다.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독방에 42일 동안 갇혔다. 그 기간 머리 빗기, 세수, 샤워, 옷 갈아입기가 금지됐고, 매일 화장실은 네 번만 허용됐으며 물 사용도 금지됐다. 하루 종일 형구인 작은 의자에 강제로 앉혀져 엉덩이가 헐고 고름이 흘렀다. 푸바오위는 2008년 2월 1일 출옥해 집으로 돌아왔다.

2012년 5월 4일 심야 12시, 관두구 국보대대는 푸바오위를 납치했고 쿤밍시 중급법원은 다시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했다.

2019년 5월 12일, 푸바오위는 관두구 국보대대(이후 정치안전보위대대로 개칭)에 비밀리에 납치됐고, 뒤이어 비밀리에 6년 4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가족은 전혀 알지 못했다. 푸바오위는 윈난성 제2여자감옥으로 이송된 후 감옥경찰에게 장기간 엄격관리 박해를 받았다. 원래 2025년 9월 11일 부당한 형기가 만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9월 9일 아침 기상 시 같은 감방의 수감자가 돌연 그녀의 호흡과 심장박동이 멈춘 것을 발견했다.

4) 톈진 지현 쑨수화, 두 차례 부당한 형선고받아 출옥 반년 만에 부당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6일 소식에 따르면 톈진 지현 파룬궁수련자 쑨수화(孫淑華)는 두 번이나 부당하게 감옥형을 선고받아 심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2026년 1월 출옥 후 혈압이 200 넘게 지속되다가 7월 6일 뇌출혈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61세였다. 그녀의 언니 쑨수전(孫淑貞)도 마찬가지로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두 차례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고 2023년 5월 28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62세였다.

쑨수화는 1998년 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후 ‘진선인’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심성을 닦고 무슨 일이든 먼저 남을 배려했다. 오랫동안 낫지 않던 안과 질환, 가슴 답답함, 부인과 질환, 경추 증식, 요통 등 고질병이 전부 사라졌고 마음이 즐거워졌으며 가정은 더욱 화목해졌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녀는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괴롭힘, 납치, 불법 구류, 강제노동을 당했고 노동수용소에서 잔혹한 정신적·육체적 고문을 겪었다. 그녀의 연로한 부모도 공포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9년 4월 13일, 쑨수화는 쌍쯔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여러 차례 그녀에게 자백을 강요하고 지장을 찍도록 강요했으며 “변호사를 선임해도 헛수고다, 소용없다”라고 협박했다.

톈진 여자노동수용소로 보내진 후 노동수용소는 마약 복용범 양원화(楊文花)와 조력자 2명을 배치해 그녀를 강제 세뇌하고, 대법 사부님을 모독하는 내용을 방송하며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 작성, 수용소 규칙 암기, 사상 보고와 월말 결산서 작성을 강요했다. 4개월여 동안 그녀는 3서 작성을 끝내 거부했다. 대장은 감시 수감자에게 박해를 강화하라고 사주했다. “잘해라, 잘하면 감형될 수 있다.” 그녀는 매일 아침 5시경부터 벽 모서리를 마주 보고 서 있는 벌을 서야 했고, 아침식사는 3분 만에 마친 뒤 다시 점심식사 때까지 서 있었으며, 점심도 3분 만에 먹고 저녁식사 때까지 섰다. 저녁도 3분 만에 먹은 뒤 모든 감방 인원이 샤워를 마칠 때까지 섰고, 그녀에게 샤워 시간 20분이 주어졌다. 그 후 계속해서 자정 12시까지 벌을 서고 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러한 벌서기는 한 달 넘게 지속됐다. 그 후에는 이마를 벽에 대기, 코끝을 벽에 대기, 배를 벽에 대기, 발끝을 벽 모서리에 밀착하기 등 온갖 고통스러운 자세로 매일 17~18시간씩 서 있게 했다.

얼마 후에는 ‘오래 앉기(坐夠)’를 강요했다. 삼각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리를 곧게 펴며 양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해야 했다. 고개를 숙여서도 안 되고, 눈을 감아서도 안 되며, 말을 해서도 안 되고, 사람을 쳐다봐서도 안 됐다. 그렇지 않으면 머리를 구타당했다. 매일 17~18시간씩 앉아 있어야 했으며 때로는 물도 주지 않았고 밥과 반찬도 극히 적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대장은 가족의 정을 이용해 압박하기도 했다. 가족이 면회할 때마다 남편에게 어린 자녀들을 데려오게 강요해 아이들이 눈물범벅이 되고 멀미로 구토를 하게 만들어, 남편이 그녀에게 불만을 쏟아내게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남편은 여러 차례 이혼을 요구했다. 그녀의 언니도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4년형을 선고받았다. 부모는 두 딸이 박해당하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아버지는 2012년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신 이상을 겪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쑨수화가 귀가한 지 1년쯤 됐을 때 톈진 610, 쌍쯔 파출소, 허우자잉 파출소 경찰 7~8명이 그녀의 집에 들이닥쳤다. 한 여성 경찰은 그녀가 명혜망에 원고를 보냈는지 캐물었다. 경찰은 방 두 개를 샅샅이 뒤져 ‘컴퓨터’를 찾으며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강요했고, 그렇지 않으면 끌고 가겠다고 협박했다. 시아버지는 놀라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고, 시어머니는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여경은 “명혜망에서 당신 이름을 또 보면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협박했다. 다음 날 허우자잉 파출소에서 또다시 경찰 2명이 찾아와 괴롭혔다. 그 후 허우자잉 향정부의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다시 찾아왔다.

2024년 7월 19일, 쑨수화는 다시 납치돼 불법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벌금 1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장기간의 박해로 그녀의 심신은 심각하게 훼손됐다. 2026년 1월 출옥 후 그녀는 혈압이 줄곧 200 이상으로 높았으며, 7월 6일 고혈압성 뇌출혈로 억울하게 사망했다.

5) 약물 박해로 식물인간 되고도 삼엄하게 통제받아, 랴오닝 가오위민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신시 파룬궁수련자 가오위민(高雨民)은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2014년 중공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선양 제1감옥에 수감된 동안 그는 고문, 전기충격, 강제 음식물 주입,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독침 주사 등의 고문을 당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건강했으나 출옥할 때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선양 의대 제1병원에서 가오위민에 대해 독물 검사를 실시한 결과 바르비투르 양성 반응과 함께 중독성 대사성 뇌병증 진단을 내렸다. 그 후 수년간 그는 유동식을 주입받으며 겨우 생명을 유지했다.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59세였다.

○ 속아서 박해에 참여했다가 진상을 알고 대법을 수련하기까지

가오위민은 원래 푸신시 공안국 형사대 경찰로, 살인범을 체포해 2등공을 세운 적도 있었다. 일찍이 그는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비방 선전을 믿고 박해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관방 선전과는 완전히 다른 그들의 선량함과 굳건함을 보며 반성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가 집 문앞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을 주워 파룬따파가 진정한 불법(佛法)이며, 박해는 장쩌민(江澤民)이 질투심 때문에 일으킨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파룬궁수련자들의 용기에 감복해 결국 자신도 수련에 들어섰다. 수련 후 그는 ‘진선인’을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음주, 도박 등 나쁜 습관을 끊었고, 10여 년간 정신병을 앓아온 아내를 원망 없이 돌보며 남 돕기를 좋아해 이웃들로부터 진정한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돼 구치소에서 고문당해

2013년 11월 6일, 가오위민은 장우현 장구타이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국보대장 추이하이펑(崔海峰) 등에게 납치돼 장우현 헤이퉈쯔 구치소에 감금됐다. 그는 온종일 수갑과 족쇄를 차고 매일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며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구치소 경찰은 그를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야만적인 콧줄 음식물 주입, 소금물 주입 등으로 고문했다. 그는 여전히 권선(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쓰며 동료 경찰들에게 악행을 돕지 말라고 당부했다.

두 달 후 그는 극도로 쇠약해져 가족에게 업혀 구치소에서 병보석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해 한 달 만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가족들은 놀라워하면서도 걱정하며 박해를 피해 피신하라고 권했으나, 그는 80대 노모를 걱정했고 정신 이상을 겪는 아내를 돌봐야 했으며 자신을 보증해 준 형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 불법 징역 3년 반 선고받고 식물인간 돼

2014년 2월 21일, 장우현 법원 경찰들이 그의 집 아래에서 잠복해 있다가 그를 다시 납치했다. 3월 14일 장우현 법원은 그에게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했다. 가오위민이 항소하자 푸신시 중급법원은 형기를 3년 반으로 감형했다. 같은 해 11월 7일 그는 선양 제1감옥으로 보내졌다. 당시 그는 이미 20여 일 동안 단식해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았으며 몸이 극도로 쇠약했다. 감옥 병원 검사 보고서에 따르면 15개 항목이 불합격이었고 신부전, 간·신장 손상에 심장까지 손상됐으며, 시력 저하, 의식 불명, 잦은 혼수상태로 이미 위독 통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러나 푸신시 정법위의 지시하에 선양 제1감옥은 여전히 강제 수감했다.

선양 제1감옥 엄격관리대는 그에게 전향을 강요하며 야만적인 구타를 가했고, 죄수에게 뺨을 때리며 숫자를 세라고 시켜 32대까지 센 뒤 신발 밑창으로 얼굴이 변형될 때까지 때렸다. 가오위민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공을 견지했고, 경찰은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전기봉으로 하체를 가격했다. 그는 박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다른 수련자들을 위해서도 목소리를 내며 여러 차례 단식으로 연대했고, 강제 튜브 삽입으로 위출혈을 겪었다. 한번은 제9감구에서 그가 서 있을 수 없어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죄수들은 감옥 측이 그를 선양 739병원으로 보냈는데 검사 결과 위와 장이 심각하게 유착됐다고 전했다.

가장 기이한 것은 그의 형기 만료를 두 달 앞두고 푸신 공검법 시스템 내부에서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시기에 감옥 측은 그에게 독수를 뻗치고 있었다.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바르비투르를 다량 주사한 뒤 독방에 가두고 폭행해 독성이 발작하게 만든 것이다. 7일째가 되어 그가 숨이 끊어질 지경이 되어서야 감옥 측은 가족에게 통보했다. 가족들이 달려왔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빛은 멍하고 몸은 굳어 있어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 감옥 측은 단식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가족이 소변을 검사 의뢰하자 랴오닝성 약물감독검측센터는 약물 주사 9일 후임에도 가오위민의 체내에서 강양성 반응이 나타났으며 심각한 중독에 해당한다고 감정했다.

감옥 측은 당황해 사적으로 합의하려 하며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거부했다. “그가 걸어서 들어왔으니 오늘은 그를 데려가지 않겠습니다.” 당시 가오위민은 여러 부위의 혈관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대변은 검붉었으며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한 채 사지가 굽어 있었다. 감옥 측은 병원에 입원시켜 환혈 치료를 하는 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가족은 곁을 떠나지 못했다.

○ 엄밀한 감시를 받다 억울하게 숨져

가족이 약물 박해의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자 감옥 측은 한때 배상에 동의했으나 랴오닝성 정법위와 610이 승인을 거부했다. 푸신 정법위 책임자 위양(于洋)과 왕추보(王秋博)는 “배상해 줄 수 없다. 배상한다고 하면 우리가 잘못한 게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감옥 측과 푸신 정법위는 차량 6대를 동원해 가오위민을 푸신시 중심병원으로 이송하고 경찰을 삼엄하게 배치해 엄밀히 통제하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보름 후에야 가오위민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가오위민은 감옥 병원에서 1년 넘게 응급치료 상태에 놓여 있어 생명이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는 전혀 스스로 생활하지 못했고, 가족들은 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부으며 병원 근처에 방을 얻어 교대로 돌보았다.

가오위민은 집에 돌아온 지 반년이 넘도록 여전히 혼자 생활할 수 없었다. 그는 때때로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이 불분명했으며 지능은 3~4세 아이와 같았다. 그럼에도 푸신 정법위와 610은 소식이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와 가족을 엄밀히 감시하고 위협과 회유를 일삼았다.

수년간의 치료 과정에서 그는 매일 유동식을 주입하며 생명을 유지했다. 불법 파면된 후 아무런 생계 수단이 없었고 가족들은 사비를 들여 24시간 간병인을 고용해야 했기에 생활비, 의료비, 간병비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장기간의 고문과 중독 끝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59세였다.

6) 거듭 박해당해, 랴오닝 신빈현 경찰 왕샤오밍, 부당하게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24일 소식에 따르면 랴오닝성 푸순시 신빈현 공안분국 경찰 왕샤오밍(王曉明)은 30년간 공안 업무에 종사했다.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해 악당의 거듭된 박해를 받다가 2026년 6월 15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58세였다.

왕샤오밍

왕샤오밍은 건강상의 이유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도량이 넓어지고 낙관적이며 선해졌다. 그는 아첨하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으며 그릇된 풍조를 따르지 않고 묵묵히 일하며 진솔하게 사람을 대했다. 융링 파출소에서 근무할 때 한 민원인은 “그가 근무할 때 찾아와 일 처리하는 게 좋습니다. 태도도 좋고 항상 웃는 얼굴입니다”라고 말했다. 왕샤오밍은 공정하고 투명하게 사건을 처리해 민원인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한 민원인은 사건 처리가 불공정하다며 소장을 찾아가 따지며 “당신들이 모두 왕샤오밍처럼 진선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일한다면 내가 따지러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1999년 봄, 그는 신빈현 공안국 대표로 시 공안국 경연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푸순시 공안국 소양 시험에서 전체 1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덕과 재능을 겸비한 이 훌륭한 경찰관은 신빈현 공안분국 간부들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져 ‘부적격 공무원’이라는 명목으로 파면 처분을 받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2001년 9월 왕샤오밍은 불법 구류된 뒤 푸순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 단식 9일째 되던 날 오후, 왕샤오밍은 음식물 강제 주입을 당한 뒤 침대에 누워 온몸을 심하게 떨었다. 우웨이(吳偉)는 침대 곁에 앉아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뺨을 때리며 “내가 바로 지옥의 저승사자다, 내가 널 다스려주마!”라고 날뛰었다. 그는 끊임없이 욕을 퍼부으며 구두를 벗어 왕샤오밍의 얼굴을 때리고 찻물을 그의 머리에 쏟아부었다. 그날 밤 왕샤오밍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2002년 5월 13일, 푸순시 공안국 경찰들이 돌연 융링 파출소로 찾아와 왕샤오밍을 보자마자 마구 폭행해 2층에서 1층까지 때렸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도록 때린 후 그를 납치해 우자바오쯔 교양원에 2년간 강제노동을 시켰다. 그는 독방에 갇혀 잔혹한 박해와 고통스러운 고문을 당했다.

2009년부터 신빈현 공안국 기찰은 여러 차례 왕샤오밍을 파면시키려 시도했고 전자책을 빼앗고 서류를 인사국으로 보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2021년 7월 31일, 왕샤오밍은 신빈현 공안국에서 불법 해고당했다. 그는 파룬궁 수련이 합법적임을 밝히며 각급 부서에 실명으로 진정서와 고소장을 제출하기 시작했는데, 청원 대상 부서에는 현, 시, 성 및 중앙의 여러 기관이 포함됐다. 2026년 6월 15일 왕샤오밍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7) 뤼잉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당해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29일 소식에 따르면 뤼잉화(呂迎華)는 1963년생 여성으로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탕위안현 타이핑촨공사 타이허대대 사람이다. 살인죄로 사형유예를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며, 2001년 1월 탕위안 구치소에 감금돼 있던 중 파룬궁을 수련해 진심으로 착한 사람이 되려 했다. 그러나 ‘진선인’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서 온갖 고문을 겪다가 2026년 5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뤼잉화는 2002년 8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신념을 굳건히 지키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아 감옥에서 온갖 학대를 당했다. 2003년 초, 파룬궁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뤼잉화가 출역을 거부하자 감옥경찰 정제(鄭傑)와 장춘화(張春華)는 그녀를 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했고, 수갑을 채운 뒤 솜바지를 입지 못하게 한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한 달 동안 앉혀 놓았다. 2004년 3월 8일에는 또다시 뤼잉화의 양손을 등 뒤로 묶는 ‘대배조(大背吊)’ 자세로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매달아 놓았다. 불과 한 시간 만에 뤼잉화의 침이 실처럼 끊임없이 흘러내렸고 온몸은 땀범벅이 됐으며 온몸에 경련이 일어났고 손목은 수갑에 짓눌려 힘줄이 끊어져 손이 석 달 넘게 부어 있었다.

다음은 뤼잉화가 생전에 구술한 감옥 내 박해 경험이다.

“2003년 원래의 제8감구에서 나와 파룬궁수련자 9명이 모두 감방 철창에 매달렸는데,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채 발끝만 땅에 닿은 상태로 한 시간 동안 매달려 있었다. 손목이 거의 끊어질 것 같았고 콩알만 한 땀방울이 물 흐르듯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은 나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2003년 8월 11일, 나는 다시 독방에 갇혔다. 대대장 장춘화는 내 머리를 발로 차고 매달았으며 입을 막고 ‘오련보’에게 감시시키며 강제노동을 시켰다. 독방에서 감옥경찰 왕야리(王雅莉)는 내게 족쇄를 채우고 난간에 팽팽하게 묶으라고 명령했다. 나는 진흙 바닥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었으나 솜바지도 입지 못하게 했다. 10월 말인데 난방도 틀지 않고 창문을 열어두어 내 발은 동상에 걸렸다…

2004년 초, 감구 대대장 정제와 장춘화는 나와 장옌팡을 끌고 출역을 시켰는데 목에 붉은 자국이 남아 며칠 동안 가시지 않았다. 나는 수갑이 채워진 채 시멘트 바닥에 한 달 넘게 앉아 있었다. 3월 8일 나는 대배조를 당해 등 뒤로 수갑이 채워져 철창에 매달렸고 발끝이 땅에 닿지 않았다. 콩알만 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온몸이 물에 젖은 듯했으며 침이 실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손은 수갑에 파고들어 혈관과 힘줄이 끊어졌고 손도 부어올라 경련이 일어났다. 내려놓았을 때 대대장 정제와 부대대장 장춘화는 여전히 나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했다. 3~4개월이 지나서야 내 손은 서서히 조금 나아졌다.

2004년 3월 25일, 정제와 장춘화는 통계실에서 나를 등 뒤로 묶어 두 손을 밧줄로 매달아 놓았다. 손이 검게 질리고 나서야 담당 감옥경찰 량수란(梁淑蘭)이 내려주었다. 밤이 되자 나를 독방에 가두었는데 독방에는 난방이 들어오지 않아 몹시 추웠다. 독방에서 심장병이 발작해 움직일 수 없었지만 감옥경찰 왕야리는 솜바지를 빼앗아 가며 얼어붙게 했다. 음산하고 차가운 독방 창문을 열어둔 채 하루 24시간 동안 나를 침대 고리에 묶어 놓았다. 때로는 밥도 배불리 주지 않았다.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독방에 무려 5개월 동안 가두었다. 나는 이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두 달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혼자서 생활을 돌볼 수 없었고 심각한 영양실조에 시달렸으며, 차가운 침대에 누워 수갑이 채워진 채 밤새 대소변을 침대 위에서 내 세숫대야로 받아냈다. 신체는 극도로 쇠약해져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꼈고 걸을 수도 없었다. 꼬박 5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겨우 독방에서 풀려났다.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스펀지 매트리스도 주지 않고 맨 침대 널판에서 자게 했다. 수감자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솜이불을 깔아주었다. 피골이 상접한 나는 보온병조차 들 수 없었다. 감방에서 겨우 두 달간 회복하고 있을 때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감옥경찰은 나를 또다시 독방에 가두었다.

2004년 6월 하순부터 7월까지 (감옥경찰) 정제는 나와 가오자보에게 쪼그려 앉기, 매달기, 뺨 때리기, 구두로 머리 차기 등을 가했고 통계실에 매달아 테이프로 입을 막은 채 11일 동안 고문한 뒤 다시 독방에 80일간 가두었다.

2005년 3월, 통계실에서 나는 다시 매달려 두 시간 넘게 손이 자주색으로 검게 변했다. 저녁 4시가 되어서야 나를 독방으로 보내 바닥 고리에 묶어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 16시간 동안 차가운 널판에 앉아 있게 했다. 나는 박해에 반대해 단식을 했고 몸은 또다시 한계에 달해 다리와 뼈가 아팠으며 13일 동안 밤낮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링거 30대를 맞고 꼬박 5개월이 지나서야 나를 등에 업고 독방에서 나왔다. 체중이 70kg에서 나올 때는 45kg가량으로 줄어 뼈만 앙상하게 변해 있었다.

2006년 1월 말, 감옥경찰은 나에게 강제노동을 강요했다. (감옥경찰) 정제, 장춘화, 인핑(殷萍)은 수감자들을 시켜 작업장 라디에이터에 나를 묶어 서지도 앉지도 못하게 했다. 수감자 샤징화가 감시하며 반나절 동안 묶어 놓았는데, 옛 상처가 낫기도 전에 새 상처가 더해져 4개월이 지난 지금도 팔이 계속 부어 있다.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더니 자오 원장은 수갑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촬영을 거부하며 몇 달 요양하면 낫는다고 했다.

2006년, 나를 북향 방에 배치하고 감시 수감자가 24시간 감시하며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 꼬박 6년 동안 갇혀 있었다.

2011년 2월 14일과 15일,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은 감옥장 바오루이(包銳)를 필두로 쩌우치, 리훙메이, 타오수핑, 쉬보 등을 이끌고 전 감옥에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해 기습 수색을 실시했다. 일부 감구 수련자들을 수색해 알람시계(발정념용)와 파룬궁 사부님의 경문을 빼앗아 갔다. 며칠 후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박해 강도를 높이며 감옥 측은 3월을 파룬궁 박해의 달로 지정했다.

2월 24일 오전 9시, 제2감구 대대장 왕야리(王亞麗)는 부대대장 둥옌(董岩)에게 천둥웨(陳東月), 후위난(胡裕男), 황징(黃靜), 한쉐자오(韓雪嬌), 장시펑(張喜鳳), 허신(何欣), 장쉬안(張璇), 장난(張楠), 류슈샤(劉秀霞) 등 20여 명의 감옥경찰을 이끌고 파룬궁수련자들의 몸수색을 하도록 지시했다. 수련자들을 강제로 바닥에 짓누르고 온몸을 뒤졌다. 감옥경찰 천둥웨는 주먹으로 파룬궁수련자 펑수룽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고, 파룬궁수련자 류샤오펀, 펑수룽, 뤼잉화, 둥린구이, 장더샹의 옷을 모두 빼앗아 간 뒤 몇 벌만 돌려주며 죄수 글자를 인쇄했다. 파룬궁수련자들은 죄수 글자가 적힌 옷을 입지 않았다. 날씨가 매우 추웠으나 입을 옷이 없자 대대장은 ‘입지 않으면 알몸으로 있어라!’라고 말했다.

왕야리는 또 파룬궁수련자들끼리 서로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말도 하지 못하게 명령했다. 원래 왕야리가 오기 전에는 이른바 감시 수감자(감옥경찰이 파룬궁수련자를 감시·관리하기 위해 쓰는 형사범)와 파룬궁수련자 사이가 비교적 원만했으나, 그녀가 오자 감시 수감자들은 다시 악행을 저지르며 파룬궁수련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했고 화장실에 갈 때조차 감시해 수련자들을 심신으로 지치게 만들었다…”

뤼잉화가 복역 중에 감옥에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고 대법을 통해 많은 혜택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왕야리는 고의로 극히 악랄한 감시 수감자 가오옌핑(高艷萍)으로 교체해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이로 인해 뤼잉화는 짧은 기간에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말랐고 심장병이 자주 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뤼잉화는 심장병이 급작스럽게 발작해 생명이 위태로워졌다. 그럼에도 가오옌핑과 감옥경찰은 뤼잉화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녀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이 죄수복을 입고 병원에 가도록 강요했다.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장병 환자가 위독할 때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가오옌핑과 다른 감시 수감자들은 감옥경찰 천둥웨의 사주를 받아 이불로 뤼잉화를 아래층으로 들고 내려갔다. 천둥웨와 수감자 가오옌핑 등은 고의로 바람이 부는 길목 바닥에 뤼잉화를 오랫동안 방치해 얼어붙게 했다. 그런 뒤 부대대장 둥옌이 감시 수감자들과 함께 뤼잉화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둥옌은 감옥경찰 의사에게 뤼잉화에게 아무 병도 없다고 넌지시 암시하며 서둘러 뤼잉화를 다시 감방으로 데려왔다. 가오옌핑은 뤼잉화의 심장병이 극히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온 후 온갖 방식으로 그녀를 괴롭히고 말로 자극해 뤼잉화를 극심한 고통에 빠뜨렸다.

2013년 1월 6일 저녁 8시 20분, 기동대 여경 리한(李寒, 20대)과 남경찰 취자량(曲佳良, 20대, 비정규직 노동자)이 제2감구로 들어왔다. 두 경찰은 술에 잔뜩 취해 기고만장한 모습이었다. 리한이 “여기가 2감구야, 오늘 이쪽은 너한테 맡길게”라고 하자 취자량은 신이 나서 “내가 2감구 점호를 다시 하겠어”라고 말했다. 취자량은 서쪽 9조로 들어가 점호를 시작했다. 당시 뤼잉화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오랫동안 두통과 고혈압을 앓아 점호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취자량이 “얜 왜 이래?”라고 묻자 감시 수감자는 “아파서 고혈압이 도졌습니다”라고 답했다. 취자량은 악랄하게 “혈압이 300이라도 점호는 받아야 해!”라고 소리쳤다. 감시 수감자와 한 형사범이 급히 뤼잉화에게 옷을 입히고 부축해 내려놓았다. 취자량은 큰 소리로 호통쳤다. “라디에이터 옆으로 가 서 있어!” 라디에이터가 창틀 옆에 있어 CCTV에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시 수감자와 형사범이 서둘러 뤼잉화를 라디에이터 앞으로 부축했다. 뤼잉화가 서 있지 못하고 라디에이터 옆에 주저앉자 취자량은 손을 뻗어 뤼잉화의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뤼잉화가 “사람을 때리지 마세요”라고 하자 취자량은 더욱 악랄하게 뺨을 후려쳤다. 뤼잉화가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취자량은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리한이 신이 난 듯 9조로 들어왔다가 취자량이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는 돌아서서 나가며 “쟤는 파룬궁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다루네”라며 웃었다.

이에 감시 수감자가 사람이 죽을까 겁이 나 급히 앞으로 나서서 뤼잉화를 감싸 안았다. 취자량은 쇠코 구두를 신고 왼발, 오른발로 뤼잉화를 사정없이 걷어찼고 감시 수감자와 형사범도 감히 제대로 막아서지 못했다. 이때 당직 감옥경찰 왕융후이(王永慧)는 팔짱을 끼고 복도에서 싱글벙글 구경만 하더니, 9조 수감자에게 문을 닫으라고 지시했고 9조의 한 형사범이 문을 닫았다. 9조 맞은편 13조의 전체 복역자(12명)는 취자량의 악행을 보고 몹시 분노했는데, 당직 경찰이 제지하기는커녕 문을 닫으라고 하자 일제히 소리쳤다. “문 열어!” 문을 닫은 형사범은 “감옥경찰이 닫으라고 했다”라고 다급히 말했다. 취자량은 뤼잉화가 기절할 때까지 때리고 나서야 손을 멈췄다.

취자량은 또 11조로 가서 파룬궁수련자 장더샹을 보고 라디에이터 옆에 서게 한 뒤 손을 뻗어 뺨을 때렸다. 장더샹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취자량은 욕을 하며 좌우로 맹렬하게 장더샹의 뺨을 후려쳤다. 한 형사범이 취자량의 폭행에 겁에 질려 급성 심장 발작으로 경련을 일으키며 기절했고 그제야 취자량은 11조를 떠났다.

뤼잉화는 구타당한 후 심장병이 도져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고 3시간 동안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끝에 겨우 생명의 위기를 넘겼다. 다음 날 모든 파룬궁수련자들과 정의감이 있는 수감자 약 300명이 단식 파업을 벌였다.

뤼잉화는 2004년 3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이후 그녀가 파룬따파를 굳건히 수련한다는 이유로 감옥 측은 줄곧 감형을 해주지 않았다. 2026년 5월 뤼잉화는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8) 헤이룽장 파룬궁수련자 야오싱치,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26년 8월 20일 소식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푸라얼지구의 79세 파룬궁수련자 야오싱치(姚興啓)는 2026년 5월 11일 베이싱 파출소에 납치돼 5월 29일까지 감금당한 뒤 6월 24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야오싱치는 원래 치치하얼시 푸라얼지구 중국 제1중형기계그룹회사에서 근무했다. 1999년 7월 이후 수차례 불법 체포, 괴롭힘, 갈취를 당했다. 2010년 4월 2일 오후, 야오싱치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신고로 훙안 파출소에 끌려가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튿날 훙안 파출소장 롼스장(欒士江)은 야오싱치에게서 5000위안을 갈취한 후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2011년 2월 28일, 야오싱치는 베이싱 파출소에 납치돼 푸구 구치소와 치치하얼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베이싱 파출소 부소장 마밍후이(馬明輝)는 야오싱치는 이미 판결이 확정됐다며 큰소리치고 모함 자료를 수집했다. 결국 야오싱치는 불법적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타이라이 감옥에 수감됐다.

2020년 4월 이후 베이싱 파출소 구역 담당 경찰 루청(陸成)은 세 차례나 찾아와 야오싱치에게 3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으나 모두 거부당했다.

2025년 5월 10일 오전, 야오싱치는 수련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베이싱 파출소에 다시 납치됐다. 그날 밤 10시,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비용으로 2000위안을 갈취당한 뒤에야 두 사람은 풀려났다.

2026년 5월 11일, 야오싱치는 베이싱 파출소를 찾아가 빼앗긴 대법서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파출소는 돌려주기는커녕 그를 다시 치치하얼시 제1구치소로 납치 감금했다. 5월 21일, 야오싱치는 구치소에서 박해를 받아 혼절했고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가망이 없자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5월 29일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6월 24일, 야오싱치는 억울하게 사망했다.

2. 부당한 형선고 사례

1) 간쑤성 톈수이시 파룬궁수련자 5명, 부당하게 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7월 19일 간쑤 소식에 따르면 간쑤성 톈수이시 친저우구 파룬궁수련자 류치예(劉齊葉), 마샤오쥐안(馬曉娟), 왕스리에(王世烈), 양탄궈(楊談國), 그리고 류치예의 남편(파룬궁 비수련자)이 납치 감금된 지 1년 반 만인 2026년 7월 톈수이시 친저우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았다. 5명 모두 벌금을 갈취당했다.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류치예: 3년 2개월

· 마샤오쥐안: 1년 8개월

· 왕스리에: 2년

· 양탄궈: 2년

· 류치예 남편: 1년 6개월(파룬궁 비수련자)

2024년 12월 23일 오후, 톈수이시 공안국 친저우 분국 국보대대 여러 명이 류치예의 집에 난입해 가택수색을 벌이고 개인 재산을 강탈했다. 이어 경찰은 류치예와 남편을 납치했다. 같은 달 하순, 친저우구 파룬궁수련자 마샤오쥐안, 왕스리에, 양탄궈도 친저우구 국보에 납치됐다. 경찰은 왕스리에의 집에서 컴퓨터, 휴대폰, 대법 경서 등을 압수했고, 양탄궈의 집에서도 컴퓨터, 대법 경서 등을 압수했다.

류치예 부부, 마샤오쥐안, 왕스리에, 양탄궈 5명은 이후 친저우구 구치소에 불법 형사구류됐으며 가족의 면회는 일절 금지됐다. 이른바 증거 부족으로 친저우구 검찰원은 두 차례 사건을 반려했으나 친저우구 국보는 자료를 거듭 보충하며 모함했다.

2) 다롄 공검법 야합, 위춘샹, 부당하게 4년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7월 26일 보도에 따르면 다롄시 65세 파룬궁수련자 위춘샹(于春香)은 2026년 정월대보름 다음 날(3월 4일), 시강 분국 국보대대와 베이징제 파출소 경찰들에게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고 간징쯔 검찰원에 불법 기소돼 7월 23일 간징쯔 법원에서 불법 4년형을 선고받았다.

위춘샹은 온화하고 현숙한 아내이자 효성스럽고 착한 딸이자 며느리였으며 책임감 있는 어머니이자 너그럽고 자상한 좋은 이웃이었다. 그녀는 과거 심각한 산후풍을 앓아 여름에도 문을 닫아걸고 털옷과 털바지를 입어야 했으며 바람을 쐬지 못해 통증으로 자주 눈물을 흘렸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여러 해 동안 괴롭히던 이 고질병이 완전히 완치됐다. 그러나 신념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1999년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납치와 불법 징역형 감금을 당했고, 이번이 벌써 두 번째 형선고 박해다.

시강 검찰원 검사 후퉁쥔(胡同軍)은 가족 변호인의 기록 열람을 거부했다. 시강 분국은 구치소에서 위춘샹을 ‘기밀 관련’으로 등록하고 변호인 접견을 지속해서 제한했다. 가족들이 시강 국보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발뺌만 하더니 이후에는 전화를 아예 받지 않았다.

2026년 5월 12일, 위춘샹은 간징쯔 검찰원에 의해 간징쯔 법원에 불법 기소됐으며 담당 판사는 돤리(段麗)였다. 5월 22일, 가족 변호인(위춘샹의 아들)은 법원에 변호 위임장을 제출하러 갔다. 법원의 한 직원(판사 돤리가 아님)은 그에게 출생지 정무서비스센터와 파출소에서 ‘무범죄 증명’과 ‘신체의 자유 무제한 증명’ 두 가지 증명서를 발급받아 5월 27일까지 간징쯔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5월 22일은 이미 금요일이어서 주말을 제외하면 가족 변호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밖에 없었다.

가족 변호인은 다음 근무일에 폭우를 뚫고 출생지로 가서 증명서들을 발급받으려 했다. 먼저 정무서비스센터에 도착했으나 그곳 직원들은 ‘무범죄 증명’은 들어봤어도 ‘신체의 자유 무제한 증명’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파출소로 가서 ‘무범죄 증명’을 발급받으라고 안내했다.

위춘샹의 아들이 출생지 파출소에 가자 담당 경찰은 ‘무범죄 증명’을 발급해 주었으나 “신체 자유 무제한이라는 게 대체 뭡니까?”라며 난처해했다. 주변 경찰들도 아무도 알지 못해 간징쯔 법원에 전화해 보라고 권했다. 가족 변호인이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자 돤리는 “알면 떼오고 모르면 관둬라!”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가족 변호인은 판사의 업무 스트레스를 이해하려 애쓰며 차분하게 돤리에게 네 번 전화를 걸었으나 돤리는 네 번 모두 전화를 끊었다. 돤리는 감정이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계속 고함을 질렀다. 옆에 있던 파출소 경찰들도 어안이 벙벙해져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아는 사람이면 판사인 줄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은 조폭인 줄 알겠다!”라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 변호인은 돤리의 실무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것은 단지 무범죄 증명서 위에 발급한 파출소 경찰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6월 4일, 위춘샹의 가족 변호인은 출석통지서를 받았는데 6월 10일 오전 10시 제3법정에서 위춘샹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가족 변호인은 판사 돤리에게 합법적인 기록 열람 신청서를 수차례 제출했으나 돤리는 번번이 거부하거나 접수를 거부했다. 그녀는 변호인의 기록 열람 목적이 불순하다고 주장하며 변호인의 합법적이고 유효한 변호를 공공연히 방해했다.

재판 당일 위춘샹의 친척과 지인들이 방청을 요구했으나 법원 경찰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법원 경찰은 방청하려면 담당 판사(돤리)에게 미리 신청해야 하며, 이 사건은 방청이 허용되지 않아 신청해도 소용없다고 주장했다. 가족이 이유를 묻자 법원 경찰은 구두로 “이런 사건에 공개 재판이 어디 있느냐?”라고 답했다.

법정에서 위춘샹의 가족 변호인은 어머니를 위해 법에 따라 조리 있고 근거 있는 무죄 변호를 펼치며 공안과 검찰원이 덮어씌운 혐의를 폭로했다. 후퉁쥔은 위춘샹의 귀가 때때로 잘 들리지 않는 점을 악용해 법정과 무관한 개인 정보를 수차례 캐물으려 하며 중국 법률을 심각하게 위반했다. 그 과정에서 위춘샹도 법에 따라 스스로 무죄를 변호했다.

재판 내내 어떠한 서증, 물증, 증인 진술서 등도 제시되지 않았고, 소위 증거의 출처, 진실성, 관련성, 적법성에 대해 법정에서 거증이나 입증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의 핵심 사실관계가 명확히 인정되지 않았고 합법적인 사실과 법적 근거도 없었다. 현장의 담당 판사 돤리와 후퉁쥔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았다.

변호인은 증인과 증언이 모두 주관적인 추측에 불과하며 객관적인 증거의 뒷받침이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증인 4명의 지목 내용은 본 사건의 기소 죄명 핵심 구성요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 행위를 실행했음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증거로서의 유효성이 없다고 짚었다. 법원이 이러한 주관적인 증언에 근거해 판결하는 것은 증거 채택 오류이자 사실 인정 오류에 해당한다.

변호인은 또 공소기관이 증거 불충분, 사실관계 의문, 증거 배타성 검토 미완료, 합리적 의심 배제 미달의 전제하에 규정을 위반해 체포를 승인하고 공소를 제기한 것은 직무 유기이자 절차 위법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불법 증거 배제 원칙에 따라 수사 절차 위법과 출처 의문으로 취득된 이른바 증거는 법에 따라 전부 배제되어야 하며 유죄 판결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이 증거를 반박하는 도중 돤리가 제지하며 재판을 일방적으로 종결했다.

7월 23일, 간징쯔 법원 판사 돤리는 위춘샹에게 부당하게 징역 4년형을 선고하고 벌금 3만 위안을 갈취했다.

3) 칭다오 64세 파룬궁수련자 멍후이링, 부당하게 4년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8월 18일 소식에 따르면 칭다오시 황다오구 64세 파룬궁수련자 멍후이링(孟慧玲)은 2026년 1월 12일 저녁 쉐자다오 파출소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한 뒤 칭다오시 제2구치소(지모시 푸둥촌 소재)에 감금됐다가 8월 14일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멍후이링은 우직하고 왜소한 체격으로 구치소에서 범죄 피의자들에게 자주 괴롭힘을 당했다. 멍후이링의 남편 역시 파룬궁수련자였으나 수년 전 박해로 사망했다.

2026년 1월 12일 저녁 5시 30분, 멍후이링이 거주 아파트 단지 아래에서 배추를 챙기고 있을 때 칭다오시 쉐자다오 파출소 경찰 6~7명(국보 직원 1명 포함)에게 포위당했고, 이어 위층으로 올라가 불법 가택수색을 벌였으며 곧이어 부소장 왕청룽(王成龍)이 현장에 도착했다. 불법 경찰들은 사부님 법상, 대법서적, 몇 장의 새해 그림을 강탈하고 멍후이링을 칭다오시 황다오구 쉐자다오 파출소로 압송했다.

파출소에서 몇몇 경찰이 멍후이링을 붙잡고 지문 날인, 사진 촬영, 서명 등 온갖 정보 수집을 강요했다. 멍후이링이 협조를 거부하자 경찰 2~3명이 멍후이링을 바닥에 짓누르고 강제로 손을 꺾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경찰은 멍후이링에게 수갑을 채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하룻밤을 자게 했다.

멍후이링은 1월 15일 구치소로 이송됐으나 건강검진 결과 불합격으로 구치소에서 입소를 거부당해 파출소로 되돌아왔다. 이튿날 경찰은 다른 병원으로 바꾸고 의사와 결탁해 가짜 검사서를 위조하며 멍후이링의 건강 상태는 안중에도 없이 그녀를 구치소에 감금했다(한 검사에서는 폐 P형 파형이 나타났고 다른 검사에서는 부정맥이 나타남).

2월 10일, 멍후이링은 경찰에 의해 검찰원으로 송치돼 모함을 받았다. 가족은 멍후이링을 위해 총 5명의 변호사를 선임했으나 그 과정에서 현지 법률사무소 두 곳이 칭다오시 스베이구 사법국으로부터 파룬궁 사건을 수임하지 말라는 협박과 경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사임했다. 6월 10일, 칭다오시 황다오구 법원은 칭다오시 제2구치소에서 멍후이링에 대해 1차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재판 도중 검찰 기관은 멍후이링의 집을 수색하고 납치할 당시의 녹화 영상을 상영했는데, 영상 속에서 경찰들이 문을 밀치고 들이닥치자 아무것도 모르던 멍후이링의 딸이 엄마를 놓아달라고 소리쳤고, 재판 판사는 딸까지 잡아들이겠다고 두 차례나 소리쳤다.

7월 22일 수요일 오전 10시, 칭다오시 황다오구 법원은 멍후이링에 대해 2차 불법 재판을 열었다. 8월 14일 오전 10시, 멍후이링은 칭다오 제2구치소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4) 4년간 두 차례 부당한 형선고, 76세 류즈메이 노인에게 관심을

명혜망 2026년 8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톈진시 76세 파룬궁수련자 류즈메이(劉志梅)는 2026년 8월 12일 톈진시 허둥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류즈메이와 남편 왕룬샹(王潤祥), 아들 왕하이펑(王海峰), 며느리 뤼차이윈(呂彩雲), 딸 왕하이옌(王海燕)은 모두 파룬궁을 수련했다. 1999년 7월 이후 그들은 모두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받아 온 가족이 옥살이를 하거나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특히 류즈메이는 수십 차례 납치당하고 두 차례 불법 형을 선고받았으며, 아들 왕하이펑은 강제노동 박해를 당하고 공직에서 불법 파면당했다. 딸 왕하이옌은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약물 박해를 당해 정신 이상이 됐다.

류즈메이는 40대 초반에 이미 편두통, 관상동맥경화증, 협심증, 신장결석, 류머티즘성 오십견 등 온갖 고질병을 앓았다. 질병의 고통으로 그녀의 성격도 나날이 사나워졌다. 류즈메이는 파룬궁이 좋다는 말을 듣고 연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뜻밖에도 불과 2~3일 만에 몸의 병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2021년 6월 11일, 왕룬샹·류즈메이 부부는 톈진 허시구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2022년 7월 22일, 류즈메이는 인허 광장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광장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류즈메이는 귀가 후 경찰에게 수차례 소환당했고 12월 5일경 허시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기소됐다.

2023년 2월 6일, 허시구 법원은 류즈메이를 불법 재판했는데 왕룬샹이 출석해 그녀를 변호했다. 그러나 판사는 공소인의 발언만 허용하고 왕룬샹의 발언을 제한했다. 4월 26일, 허시구 법원은 류즈메이에게 불법 1년형을 선고하고 벌금 8000위안을 갈취했다. 류즈메이가 항소했으나 톈진시 제2중급법원은 불법적으로 원심을 유지했다.

2025년 6월 12일, 왕룬샹은 허시구 국보 경찰과 유이루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과 강제 건강검진을 당했다. 경찰은 왕룬샹이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모습이 CCTV에 찍혔다고 주장했다. 왕룬샹은 당일 귀가했다.

2025년 6월, 류즈메이는 악의적인 신고를 당해 톈진시 허둥구 둥신 파출소 경찰에 의해 허둥구 검찰원과 법원에 연이어 모함을 당했다. 2026년 6월 18일, 류즈메이는 허둥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8월 12일 불법 4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녀의 현재 상황은 조사가 필요하다.

5) 지린 70대 위안수팡, 또다시 부당하게 형 선고받고 수감돼

명혜망 2026년 8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지린성 바이산시 푸쑹현 루수이허진 파룬궁수련자 위안수팡(袁淑芳)은 2025년에 납치됐으나 외부에는 줄곧 그녀의 후속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최근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창춘시 여자감옥에 감금되어 있다. 그녀가 중공 사법 시스템에 모함당한 구체적인 과정과 감옥 내 상황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위안수팡은 1997년 7월 29일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관상동맥경화증, 요추 디스크, 류머티즘성 관절염, 좌골신경통, 위경련 등 온갖 질병을 앓았다. 특히 관상동맥경화증으로 심장이 멎는 듯하고 머리가 흔들리며 손이 떨렸고, 위통이 발작할 때는 어떤 약도 소용이 없어 지사·진통 약초제를 마셔야 겨우 완화됐다. 대법을 수련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그녀의 모든 질병이 전부 사라져 병 없이 몸이 가벼운 상태에 이르렀고 활력이 넘쳤다. 60대였을 때 많은 사람이 그녀를 보고 40대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수련 20여 년 동안 그녀는 약 한 알 먹지 않아 국가를 위해 수만 위안의 의료비를 절약했다. 수련 후 위안수팡의 도덕성도 향상되어 진정으로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았으며 가정도 화목해졌다. 그녀는 ‘진선인’ 기준에 따라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며 친척, 이웃과 원만하게 지냈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 속에서 위안수팡은 두 차례 불법 구류를 당하며 구류소와 공안분국 경찰들의 비인간적인 고문을 겪었다. 2000년 2월 17일, 그녀는 신념을 지켰다는 이유로 루수이허 임업국에 15일간 불법 구류됐다. 그녀가 베이징으로 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전하자 15일 동안 감금당하고 5000위안의 벌금을 갈취당했다(나중에 4000위안 환불됨). 1999년 섣달그믐날, 그녀는 다시 베이징으로 가 천안문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하이뎬구 공안분국에 갇혔다. 그날 밤 경찰은 형사범을 시켜 그녀에게 찬물을 끼얹고 주먹과 발로 폭행해 얼굴이 멍들고 코피가 터지도록 때렸다.

2000년 정월 초이틀 아침, 경찰은 그녀에게 ‘진선인’ 신념을 포기하고 집 주소를 대라고 강요했다. 그녀가 거부하자 경찰은 솜옷을 벗기고 내복 바지와 민소매 조끼만 입힌 채 맨발로 눈밭에 서서 얼어붙게 했다. 이어 경찰은 대형 음료수병에 찬물을 가득 채워 정수리부터 쏟아부어 온몸을 흠뻑 적셨다. 경찰은 또 눈을 뭉쳐 손으로 발등, 목, 가슴, 양팔에 눈을 쌓아 올리며 위안수팡을 얼어붙게 했다. 눈이 녹으면 다시 쌓기를 세 차례 반복하고서야 그만두었다. 방 안으로 들어온 뒤 경찰은 전기봉 배터리가 다 닳을 때까지 전기충격을 가했다.

2004년 10월 15일, 위안수팡은 루수이허진 분국의 루훙옌이 이끄는 경찰들에게 납치됐다. 경찰 4명이 집에서 그녀를 들어 올려 경찰차 좌석 밑으로 처박고 발로 얼굴을 밟은 채 루수이허 공안국으로 압송한 뒤 푸쑹 구치소에 감금했다.

45일간 감금된 후 그녀는 바이산시 노동교양관리위원회에 의해 불법 1년 6개월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창춘시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 제4대대 2대로 이송돼 계속 감금과 박해를 받았다. 제4대대 대대장 장구이메이, 관웨이, 담당 경찰 왕주펑, 웨이 모 의사 등은 그녀에게 진선인을 포기하는 5서(五書, 다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 작성을 강요하며 주먹과 발로 폭행하고 독방 감금, 강제 음식물 주입, 전기봉, 전기충격기, 사형침대 등의 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그녀의 손발을 수갑으로 대(大) 자 모양으로 사형침대에 고정해 사지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석 달 동안 옷 입기, 식사, 걷기를 전혀 하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또 전기충격기와 여러 개의 은침을 그녀의 여러 혈자리에 꽂고 전류를 높여 온몸을 심하게 떨며 입에 거품을 물게 했다. 그녀는 그 고통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라고 묘사했다. 고문 후 그녀는 온몸을 떨었고 오른손 손목은 수갑에 갈려 뼈가 드러나 피가 멈추지 않았으며 발바닥은 시퍼렇게 멍이 드는 등 심신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강제노동 기간이 끝난 후에도 제4대대 2소대 경찰 왕주펑은 그녀가 전향을 거부하고 노동수용소 규율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 초과 구금했다. 위안수팡이 노예 노동을 거부하고 노동수용소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독방에 가두었다. 왕주펑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씩 기간을 연장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녀는 45일간 형기가 연장된 후 노동수용소 안에서 공개적으로 연공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이를 발견하고 수감자들을 시켜 가로막자 위안수팡은 복도로 나가 공개적으로 연공했다. 경찰은 이를 빌미로 다시 6일을 추가 연장했다. 위안수팡이 식사 시간에 공개적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2소대장 관웨이가 뒤에서 멱살을 잡고 15차례 발길질을 했고, 왕주펑은 21차례 걷어차 그녀의 팔이 멍투성이가 됐다. 경찰은 또 뺨을 때리고 외진 방으로 끌고 가 침대 다리에 수갑을 채워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다. 밤에 관웨이는 그녀가 가부좌를 틀고 연공하는 것을 보고 머리채를 잡아 가부좌를 풀게 한 뒤 발로 양다리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대대장 장 모는 “전향하지 않으면 영원히 가둘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위안수팡은 “어디에 있든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위안수팡의 남편은 두 차례나 노동수용소를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으나 헤이쭈이쯔 노동수용소는 그녀가 안에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쳤다며 석방을 완강히 거부했다. 남편은 창춘까지 왕복 1000여 리 길을 이틀 동안 오가며 애를 태웠으나 문전박대를 당했다. 위안수팡이 불법 강제노동을 당하는 동안 남편은 병에 걸려 한 달 넘게 입원했고 십 대였던 아이는 돌봐줄 사람이 없었다. 남편은 오랜 걱정과 두려움 속에 병을 얻어 2013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6) 허난 허비시 두 유아의 어머니, 납치돼 부당한 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9월 11일 소식에 따르면 허난 허비시 32세 파룬궁수련자 쑤리(蘇麗)는 두 유아의 어머니로, 2026년 5월 11일 아침 경찰에게 납치돼 허비시 구치소에 감금돼 모함을 받았다. 8월 25일 그녀는 허비시 산청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고 1년 3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으며 벌금 2000위안을 갈취당했다. 쑤리는 이미 항소했다.

2025년 5월 15일, 쑤리는 허비시에서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전하다가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경찰은 쑤리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을 벌여 프린터, 대법서적, 진상 자료 등을 강탈했다. 쑤리는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우한으로 갔다.

허비시 정법위는 쑤리의 휴대폰을 위치 추적해 2025년 5월 22일 우한까지 추적해 쑤리를 납치한 뒤 우한에서 허비시로 압송해 세뇌반에 가두고 전향 박해를 시작했다. 허비시 장 모 부시장은 세뇌반에서 쑤리의 어머니를 보고 쑤리 어머니에게 쑤리의 신념 포기를 설득하게 하려 했다. 그는 쑤리 어머니에게 대법 수련이 죄가 되는지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쑤리 어머니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 부시장은 쑤리를 협박하며 쑤리의 어머니도 납치하겠다고 위협했고, 쑤리의 남편에게 쑤리를 감시해 어머니와 말도 섞지 못하게 하라고 시켰다. 장 부시장은 눈을 부릅뜨고 쑤리의 어머니에게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만 하면 쑤리에게 고통을 줄 것이고 어머니 역시 잡아넣을 것이라며, 이 일이 폭로되면 전부 어머니 탓이라고 협박했다.

쑤리에게는 네 살배기 아들과 세 살배기 딸 두 아이가 있었다. 경찰은 쑤리의 남편에게 두 아이를 데리고 자주 세뇌반으로 오게 해 가족의 정을 이용한 온갖 수단으로 쑤리에게 신념 포기를 강요했다. 이후 구청 파출소는 쑤리에게 불법적으로 취보후심 조치를 내렸다.

쑤리가 집으로 돌아온 뒤 경찰은 거의 매일 찾아와 괴롭히고 사진을 찍었으며, 그녀는 어디를 가든 보고해야 했고 문을 나서기만 하면 미행과 감시가 붙었다. 경찰은 쑤리의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압박을 가해 그녀를 감시하고 연공하지 못하게 했다. 쑤리가 이웃과 말만 나눠도 사건 담당 기관에 알려졌고, 경찰은 시어머니에게 쑤리가 또 파룬궁을 선전했다고 따졌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쑤리에게 압박을 가하자 쑤리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말 한마디 건네기조차 두려워했다.

2025년 10월, 경찰은 인터넷에 자신들의 악행이 폭로된 것을 발견하고 쑤리를 찾아와 누가 인터넷에 올렸느냐고 추궁하며 쑤리의 어머니를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이때 쑤리는 어머니와 통화할 수도 없었고 누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남편은 타지로 일하러 떠났고 시어머니는 반신불수인 친정어머니(쑤리 남편의 외할머니)를 모셔와 우리집은 세 노인과 두 아이로 가득 찼다. 쑤리는 심신이 탈진해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녀는 매일 아이들을 데리고 밖을 배회하며 집에도 들어가기 싫어했고 정신은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경찰은 계속해서 쑤리를 위협하고 겁을 주며 체포하겠다, 가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러한 고압 속에서 쑤리는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됐다. 2025년 11월 10일경 남편이 돌아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쑤리가 치료를 받고 퇴원할 무렵 경찰은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가 파룬궁을 수련하며 취보후심 상태인데 인터넷에 자신들의 악행을 폭로했으니 죄에 죄를 더한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 1월 13일 쑤리가 퇴원하자 사건 담당 기관은 시어머니에게 낮에는 쑤리를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장 부시장은 누가 폭로했는지를 여전히 추적하며 매우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쑤리 본인과 가족은 납치될까 봐 매일 전전긍긍했다. 2026년 4월, 경찰은 또다시 괴롭힘을 시작해 쑤리에게 회개서를 써서 죄를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진술서를 쓰라며 취보후심 기간이 만료되면 가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2026년 5월 11일 아침, 쑤리는 경찰에게 다시 납치돼 허비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허비시 공안국 경제기술개발구 분국은 쑤리를 허비시 산청구 검찰원에 모함했고 검찰원은 [2026] Z1호 기소장으로 쑤리를 기소했다. 8월 25일 허비시 법원은 쑤리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재판에서 쑤리는 파룬궁을 수련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죄가 아니며 파룬궁 서적 소지는 합법적이라고 스스로 변호했다. 변호인 역시 쑤리를 위해 무죄 변호를 펼쳤다. 8월 31일, 허비시 산청구 법원은 (2026) 예603 형초68호 판결문을 내려 쑤리에게 부당하게 1년 3개월형을 선고하고 벌금 2000위안을 갈취했다.

7) 9년 넘는 부당한 옥살이 겪은 후난 여성 옌훙, 또다시 부당하게 3년여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9월 9일 보도에 따르면 후난성 창사현 랑리진 파룬궁수련자 옌훙(言虹)은 2026년 6월 5일 오전에 불법 재판을 받았는데, 변호인은 그녀를 위해 조리 있고 근거 있는 변호를 펼쳤고 그녀 스스로도 무죄를 변호했다. 후난성 류양시 법원은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했으며 가족은 이미 항소했다.

법정에서 옌훙의 변호인은 법률적 차원과 윤리·도덕 등의 방면에서 옌훙이 굳건히 지켜온 파룬따파 신념에 대해 조리 있고 근거 있게 변호했다. 아울러 본인의 실명으로 구매한 고속열차 표 예매 내역 캡처본 등 사실을 제시함으로써 기소장에 적힌 특정 시간대에 다른 장소에 있었다는 이른바 범죄 증거가 완전히 날조된 모함임을 낱낱이 밝혔다. 옌훙 역시 스스로 무죄를 변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옌훙에게 불법적으로 징역 3년 2개월을 선고했다. 현재 옌훙은 창사시 제4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옌훙은 이미 박해로 인해 고혈당과 고혈압 증세를 겪고 있다. 가족들은 이미 그녀의 부당한 판결에 대해 창사시 중급법원에 항소했다.

옌훙은 현재 63세다. 그녀는 일찍이 창사현 랑리 주민센터 주임으로 근무하며 업무에서나 일상생활에서나 ‘진선인’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대중의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으면 그녀를 찾아와 해결했고 이웃 간 갈등이 생기면 그녀를 찾아와 중재를 요청했다. 그녀는 정부로부터 표창과 포상을 받기도 한 공인된 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사람이 파룬따파 신념을 굳건히 지켰다는 이유로 2001년 중공에 의해 불법 6년형을 선고받았다. 2015년에는 또다시 불법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박해를 당해 시력이 심각하게 손상됐다. 그러나 아무리 잔혹한 박해를 겪었어도 옌훙은 처음부터 끝까지 파룬따파에 대한 굳은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8) 장시 주장시 순박한 농촌 여성 쉬둥위, 부당하게 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9월 9일 소식에 따르면 장시성 주장시 차이쌍구 62세 파룬궁수련자 쉬둥위(徐冬玉)는 2025년 11월 전후 차이쌍구 공안국 국보 경찰에게 납치됐다. 호텔에 감금돼 열흘 넘게 불법 심문을 받은 뒤 주장시 구치소로 압송돼 감금됐다. 최근 전해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이미 부당하게 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으며 장시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쉬둥위는 주장시 차이쌍구 강커우제진에 거주하며 1997년에 파룬따파를 접해 수련을 시작하고 마음을 닦아 착한 사람이 되자 오랫동안 낫지 않던 지병이 완치됐다. 그녀는 성품이 온화하고 착하며 평소 집에서 어린 손녀 네 명과 어린 손자 한 명을 돌보았다. 아들과 남편은 페인트칠 일로 생계를 꾸려 집안일의 대부분은 그녀의 몫이었다.

2025년 10월 말(또는 11월 초) 어느 날 아침 6시가 넘은 시각, 차이쌍구 공안국 국보 경찰은 출근길에 있던 그녀의 남편을 납치했고 동행하던 페인트공 동료까지 함께 끌고 갔는데 두 사람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 그들의 휴대폰은 압수됐다. 경찰은 이어 쉬둥위와 며느리를 납치하고 불법 가택수색을 벌여 프린터, 대법서적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으나 압수 목록은 전혀 교부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심문을 받기 위해 끌려갔고 막내 손자도 어쩔 수 없이 함께 끌려간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손녀 네 명은 등교 중이었다. 당시 쉬둥위의 아들은 집에 없었는데 경찰은 즉시 공안국으로 와 사정을 설명하지 않으면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전화로 협박했다.

쉬둥위는 호텔에 갇혀 불법 심문을 받았고 열흘여 후 주장시 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감금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법 구속영장이 발부됐고 나중에 부당하게 징역 1년 3개월형을 선고받았다.

1999년 7월 전 중공 당두목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쉬둥위 일가는 장기간 탄압을 받아왔다. 2002년 현지 파출소와 610 직원 리젠화(李建華) 등 10여 명은 쉬둥위를 파출소로 속여 불러들인 뒤 무자비하게 구타해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고 설 수조차 없게 만들었으며, 이어 주장현 구치소에 4개월간 불법 감금하고 3000위안을 갈취했다.

2008년 9월 28일, 쉬둥위는 싱쯔현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현지 공안국에 납치돼 7일간 감금된 뒤 주장시 구치소로 이송돼 45일간 감금됐고, 다시 난창 노동수용소로 비밀리에 보내져 2년간 감금됐다. 그동안 그들은 그녀를 때리고 욕했으며 침대에서 끌어내려 침대에 앉지 못하게 했다. 쉬둥위는 극단적인 심신 고문으로 거의 무너질 지경에 이르러 목숨을 잃을 뻔했고 걷기조차 힘들었으나 그들을 위해 노역과 일을 해야 했다. 당시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어린아이들은 큰 공포에 떨었으며 남편은 온종일 노심초사해 정신이 멍하고 심신이 지쳐 피폐해졌다.

9) 헤이룽장 치타이허시 양수광 등 파룬궁수련자 5명, 부당하게 형 선고받아

명혜망 2026년 9월 23일 소식에 따르면 헤이룽장성 치타이허시 파룬궁수련자 양수광(楊樹廣)과 왕칭룽(王慶榮) 부부, 런수링(任淑玲), 우청화(吳成華), 우스양(吳詩洋)이 2026년 1월에 납치돼 모함을 받았는데, 최근 확인된 소식에 따르면 5명 모두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양수광·왕칭룽 부부는 각각 10개월형과 벌금 5000위안, 런수링은 1년 6개월형과 벌금 1만 위안, 우청화와 우스양도 각각 10개월형과 벌금 5000위안을 불법 선고받았다.

치타이허시 국보 비수칭(畢樹慶), 린타오(林濤), 창페이(常飛)가 타오산구 공검법과 신싱구 공검법을 지휘해 이 5명의 선량한 사람들에게 형을 선고한 구실은 매우 단순했다. 런수링이 파룬궁 홍보물을 제작하고, 양수광·왕칭룽 부부가 운반을 담당했으며, 우청화가 배포하고, 우스양이 런수링의 컴퓨터를 수리해 주었다는 이유로 이 5명의 착한 이들이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양수광은 72세로 1954년 7월생이며 치타이허시 타오산 탄광 노동자였다. 장기간 탄광 갱내 작업으로 인해 위장병, 요추 골증식, 경추 골증식 및 뇌혈관 질환 등 여러 질병을 앓았다. 1995년 10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어 거의 자립이 불가능했다. 그동안 치타이허의 여러 병원에서 치료했으나 소용이 없었고 산둥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저축을 모두 탕진했다. 갈 길이 막막하던 차에 누군가 그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는 집에서 책을 읽고 책에 담긴 ‘진선인’ 기준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연공을 하자 한 달도 안 되어 전신의 질병이 기적처럼 사라졌다. 그는 직장으로 복귀해 성실히 근무하며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회사 전체와 사회로부터 높은 칭송을 받았다.

왕칭룽은 69세로 1957년 6월생이다. 수련 전에는 부인과 질환과 신장염을 앓아 오랫동안 약에 의존했다. 1996년 12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한 후 한 달도 안 되어 몸이 완전히 회복되어 온몸이 가볍고 건강해졌다. 그녀는 ‘진선인’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일에 부닥치면 안으로 찾으며 도덕적 소양을 높였다.

우스양이라는 이 젊은이는 오늘날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처신을 깨끗이 했고, 우청화와 런수링은 ‘진선인’ 처세 원칙을 지키며 사람됨을 다했으니 이들은 모두 오늘날 사회에서 보기 드문 좋은 사람들이었다.

치타이허시 신싱구 공안분국은 이른바 ‘파룬궁 전담팀’을 꾸렸고 신싱구 공안분국 정보(정치안전보위국,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들은 현지 파출소와 결탁해 2026년 1월 31일 양수광, 왕칭룽, 우스양, 런수링, 우청화 등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해 동시에 가택수색과 납치를 자행했다. 양수광, 왕칭룽, 런수링, 우청화, 우스양 5명은 치타이허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모함을 받았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수련자들이 복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자 중공의 거짓말에 속은 주민의 신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경찰은 그들에 대해 장기간 감시, 미행, 잠복근무 등을 실시하며 이른바 증거를 수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치타이허시 공안국은 심지어 드론을 띄워 수련자들을 감시하고 미행했다고 한다. 납치된 수련자들은 드론에 사진이 찍혔고 경찰은 이를 이른바 증거로 삼아 모함했다.

왕칭룽, 우스양 등 5명의 수련자는 치타이허시 타오산구 검찰원에 모함 송치됐다. 6월 중순, 우스양의 변호인은 타오산구 검찰원 공소과 우충(吳瓊)으로부터 우스양 사건이 타오산구 법원으로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8월 13일 목요일, 왕칭룽 등 5명의 수련자는 치타이허 구치소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착한 사람을 재판하는 것은 요식행위에 불과했고 법원 판사와 검찰원 공소인은 한통속이 되어 신속히 밀어붙였으며 변호인의 의견은 전혀 듣지 않고 서둘러 재판을 끝마쳤다. 5명 모두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체포당하고 구타당하며 부당한 형을 선고받고 학살당해도 진정한 파룬궁수련자들의 바른 믿음에 대한 굳건한 수호는 흔들리지 않는다. 악인들이 중공 악당의 조종하에 온갖 흉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역설적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수련자들이 선량하고 인내한다고 해서 함부로 괴롭혀도 되는 것이 아니며 세상 사람들에 대한 자비이자 생명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한 거듭된 노력이다! 사악한 박해 속에서 파룬궁수련자들의 거대한 헌신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믿음의 위대함을 보게 한다. 아울러 중공 악마가 파멸하기 직전의 광기 또한 보게 해준다.

하늘은 모든 생명에게 미래를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휩쓸려 선량한 이들을 탄압하다 결국 응보 속에 파멸할 것인가, 아니면 박해 참여를 거부하고 악당을 버려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기회를 얻을 것인가? 시간이 많지 않으니 부디 이 모든 것을 직시하고 현명하게 선택하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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