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룽장성 팡정현 수련자 우시, 또 부당한 징역형 받아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팡정현 파룬궁수련자 우시(吳樨)는 2025년 12월 4일 팡정현 공안국 가오렁 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돼 먼저 하얼빈시에 부당하게 감금됐다가 잇따라 치타이허시 보리현으로 납치돼 감금 및 박해를 받았다. 2026년 10월 상순 소식에 따르면, 우시는 보리현 법원으로부터 2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현재 하얼빈시 쑹빈 감옥에 부당하게 감금돼 있다.

우시는 1971년 2월에 태어나 창춘 광학정밀기계학원을 졸업하고 지린 공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지린 대학 조학센터에서 가르친 적이 있으며,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진선인(眞·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2025년 12월 4일 오전, 우시와 파룬궁수련자 위쑤어(于素娥)가 자전거를 타고 시장에 가던 중, 우시가 길 가던 행인에게 진상 달력을 건넸다. 갑자기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멈춰 서더니 팡정현 공안국 가오렁 분국 국보 사복 경찰 몇 명이 차에서 뛰어내려 두 사람을 납치했다. 당일 밤, 국보 경찰은 위쑤어의 집에 침입해 부당하게 가택수색을 하고 대법서적 등 개인 재산을 강탈했다. 이어서 우시가 돌보던 한 장애 노인의 집에 침입해 부당하게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국보 경찰은 우시의 몸에서 또 다른 파룬궁수련자 관위친(管玉芹)의 집 열쇠를 찾아내 즉시 관위친의 집에 침입해 부당하게 가택수색을 하고 그녀를 납치했다.

경찰은 우시, 위쑤어, 관위친을 병원으로 보내 건강검진을 받게 했고, 위쑤어와 관위친은 검진 결과 수감 기준 미달 판정을 받아 풀려났다. 이후 위쑤어는 경찰에게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하고 부당한 소환과 서명 강요 등을 겪었다. 관위친은 납치돼 자신이 운영하던 전병가게 영업을 할 수 없게 됐다. 우시는 먼저 하얼빈시에 부당하게 감금됐고, 이후 치타이허시 보리현으로 납치돼 감금 및 박해를 받았다.

2026년 10월 상순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시는 보리현 법원으로부터 부당하게 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하얼빈시 쑹빈 감옥에 부당하게 감금돼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당일 우시 납치를 실행한 자는 가오렁 공안국 형사수사과 과장 가오창(高强)이었다. 그는 사람을 납치하는 팀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소위 ‘증거 자료’를 정리해 모함하는 역할도 맡았다. 국보 과장 리샹(李翔) 등도 관련 행동에 가담했다.

그전에 우시는 파룬따파를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중공)에게 여러 차례 납치됐고, 한 번의 부당한 강제노동과 두 번의 부당한 징역형을 받았다. 부당하게 감금된 기간에 그녀는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구타, 쇠의자에 앉히기, 담배꽁초로 지지기 등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1. 팡정 임업국 구치소서 받은 박해

2000년 7월 1일, 우시는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팡정 임업국 구치소로 납치돼 부당하게 감금됐다. 우시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소위 ‘보증서’ 작성을 거부해 구치소 소장 부춘허(卜春和) 등 경찰에게 발길질과 주먹질을 당하고 매달기, 장시간 달리기 등 고문을 당했다.

한번은 소장 부춘허가 핑계를 대고 우시를 구타했는데, 경찰 진(金) 씨가 그녀의 뺨을 때렸고, 경찰 쑹라오우(宋老五)가 등 뒤에서 발로 차서 그녀를 돌사자 위로 넘어뜨렸다. 우시의 머리가 부딪혀 찢어지자 다른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구타 고문 재연

우시가 소위 ‘보증서’ 쓰기를 거부하자 소장 부춘허는 우시의 언니를 부추겨 구치소 안에서 그녀를 때리게 했다. 기관에서는 우시를 부당하게 해고했고,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거액을 갈취했다. 우시 아버지의 퇴직금은 압류됐고, 남자친구는 강제로 그녀와 헤어져야 했다.

2. 베이징 시청 구치소에서 받은 박해

2001년 겨울, 우시는 다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다 경찰에게 베이징 시청 구치소로 납치됐다. 그녀는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않았고, 단식하며 박해에 항의했다. 경찰은 그녀의 손발에 수갑을 채워 대(大)자 모양으로 침대에 고정하고, 강제로 관을 삽입해 음식물을 주입했다.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으며, 억지로 소변줄을 꽂고 여러 날 동안 빼지 않았다. 우시가 70~80일 동안 단식 항의를 하는 동안 두 차례 공안 병원으로 보내졌다. 우시는 1년 6개월의 부당한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경찰에 의해 퇀허 노동수용소로 보내졌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노동수용소에서 수감을 거부했다.

우시는 93일 동안 단식 항의를 했고, 풀려나던 날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업혀 나갔다.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 시연

2001년, 임업국은 우시와 그녀 아버지의 호구를 강제로 이전시켰다. 부녀는 구체적으로 정착할 곳이 없었고 호구와 신분증이 없어 외출 및 생활에 큰 불편을 겪었으며 생존조차 문제가 됐다.

3. 창춘 공안의 전용 고문 암실에서 받은 고문

2002년 1월 7일, 우시는 창춘 공안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그녀를 전용 고문 암실로 끌고 가 쇠의자에 자물쇠로 채운 뒤,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우고 단단히 묶었다. 그녀가 질식해 의식을 잃을 것 같으면 벗겨내고 1분 뒤에 다시 씌우기를 반복했다. 경찰은 그녀를 구타하고 담배꽁초로 지졌으며 총알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고문했다. 이후 경찰은 그녀를 제3구치소로 끌고 갔지만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하자, 경찰은 다시 그녀를 데리고 와 계속 고문했다. 그녀의 상태가 위태로워지자 중일우의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 당시 우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었다.

이후 경찰은 우시의 여동생 거처를 찾아내 그녀의 여동생에게 차로 그녀를 데려가게 했다.

쇠의자에 묶는 고문 시연

우시는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통해 건강을 빠르게 회복했다. 2007년 봄, 그녀는 팡정 임업국으로 돌아왔다.

4.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받은 박해

2017년 1월 18일, 우시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제작했다는 이유로 하얼빈시 쑹베이구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3월 10일 하얼빈시 쑹베이구 검찰원에 의해 부당하게 체포가 승인됐고, 12월 하얼빈시 쑹베이구 법원으로부터 부당하게 3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보내져 감금 및 박해를 받았다.

2021년 5월 20일, 우시는 하얼빈 중양다제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던 중 한 무장경찰의 악의적인 신고를 받고 하얼빈시 다오리구 공안분국 상즈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하얼빈 구류소에 15일간 부당하게 감금된 후, 다시 하얼빈 제2구치소로 보내져 감금 및 박해를 받았다.

우시는 3년 6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은 후 또다시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감금 및 박해를 받았다. 우시가 전향을 거부하자 감옥경찰은 연좌제 박해를 벌여 같은 감방의 모든 수감자가 함께 벌을 받게 했고, 이를 통해 수감자들의 그녀에 대한 증오를 선동했다. 우시는 두 달 넘게 구타당해 요추가 거의 불구가 될 지경에 이르렀다. 2024년 11월 19일, 우시는 3년 6개월의 부당한 징역을 마쳤다.

현재 2026년 10월, 우시는 보리현 법원으로부터 다시 2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고 하얼빈시 쑹빈 감옥에 부당하게 감금돼 있다. 각계 정의로운 인사들의 관심과 구출을 바란다.

하얼빈시 쑹빈 감옥
주소: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다오와이구 쥐위안진 신펑촌
전화: 0451-58797224, 0451-58797260

 

원문발표: 2026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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