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톈진신(田金鑫)은 두 차례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누적 형기가 8년에 달했다. 그는 경찰에게 여러 차례 구타, 고문 및 모욕을 당해 후유증으로 다리가 저리고 아팠으며, 2026년 8월 하순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51세다. 톈진신은 일찍이 “이해타산적이 되지 말고, 선택했으면 이성적이고 확고하게 걸어가야 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라며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한 적이 있다.

톈진신
대법 수련으로 환골탈태하다
별명이 진룽(金龍)인 톈진신은 1975년에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성격이 극단적이고 반항적이었으며 안하무인이었다. 진룽은 학교 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시장에 가서 작은 장사 하는 것을 좋아했다. 채소 시장 전체가 장사를 아주 잘하는 이런 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룽은 자신이 번 돈이 생기자 친구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고 마시고 놀았으며, 이로 인해 포커 게임기와 마작을 하는 습관에 물들어 종종 한 번에 수천 위안을 잃기도 했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그가 술을 즐겨 마셨다는 것인데, 술을 마신 후에는 사람들과 싸우고 주정을 부리는 등 그야말로 마귀에 씌운 것 같았다.
진룽이 자라자 어머니는 연줄을 찾아 그를 베어링 공장에 출근하게 했다. 이곳은 당시 많은 사람이 선망하던 국영 대공장이었다. 하지만 자유로운 것에 익숙했던 진룽은 남의 관리를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핑계를 대며 출근하지 않기 시작했고 자주 지각하고 조퇴했으며, 출근하더라도 동료들과 포커를 쳤다. 어머니가 입이 닳도록 아들에게 일을 열심히 하라고 타이르자 진룽은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다음 날, 연마공이었던 그가 숫돌을 연마할 때 조작 실수로 숫돌이 날아가 선반에 떨어져 불꽃이 튀면서 공장 전체가 정전돼 하마터면 큰 재앙을 빚을 뻔했다. 공장장은 즉시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1995년 그는 석가모니 전기를 보았는데, 부처님의 경지와 수행의 근본은 그에게 신기했을 뿐만 아니라 큰 감동을 줬다. 같은 해 9월, 그는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빌려 하룻밤 만에 다 읽고 수련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자신을 바로잡아 예전의 오만함과 제멋대로인 성격을 바꾸고 성질이 좋아졌으며, 말투가 온화해졌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를 물을 줄도 알게 됐다. 심각했던 양쪽 신장 결석, 인두염, 코피를 흘리던 병도 그에게서 곧 사라졌다. 그가 민간 무역 시장에서 수입품을 팔 때 장사가 아주 잘돼서 추린(秋林), 하이바이(哈一百) 같은 대형 백화점조차 그에게서 물건을 도매해 갔다.
아들의 천지개벽할 변화를 본 어머니는 감격해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내가 수년 동안 너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는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너를 철저히 변화시킬 수 있다니 네 사부님은 정말 위대하고 대단하시구나.” 동창과 친구들은 “네가 정말 내가 아는 그 진룽이 맞니, 어떻게 그렇게 변했어?”라고 말했다. 그는 자랑스럽고 행복하게 대답했다. “우리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내게 완전히 새로운 생명을 주셨기에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따파에 대한 무리한 탄압을 발동하자, 진룽은 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에 의해 전 시의 중점 인물로 박해 대상이 됐다. 경찰의 미행, 잠복, 전화 괴롭힘으로 인해 그는 밖으로 떠돌며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하고 아내와 함께 거처가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첫 번째로 불법적인 4년형을 선고받고 온몸에 농양과 옴이 생기는 박해를 받다
2000년 1월 13일, 톈진신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며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 3일 후 그는 훙치다제 파출소 순경 런펑라이(任鵬來)와 다른 한 명의 경찰에 의해 베이징에서 하얼빈시로 납치돼 샹팡구 싱푸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샹팡 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장 왕성리(王勝利)가 톈진신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왕성리는 때로는 위선적으로 진룽의 아내가 곧 아이를 낳을 텐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아이를 위해 생각해보라고 했고, 때로는 진룽이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강제노동을 시키겠다고 위협했다. 설날 첫날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감옥에 있던 진룽은 처음 아버지가 된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아이가 한 달 반이 됐을 때 1만 7천5백 위안을 갈취당한 후 톈진신은 마침내 아내와 아이 곁으로 돌아왔다.
2000년 7월 19일 한밤중, 귀청이 터질 듯이 문을 부수는 소리에 진룽과 가족은 깜짝 놀라 깼다. 십여 명의 사복 경찰이 들이닥쳐 헤이룽장성 공안청의 합동 작전이라며 여러 대법제자를 납치했다. 인솔자는 성이 왕 씨인 대대장으로 아무런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았고 수색 영장도 없이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집 안의 대법서적,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를 모두 압수해 갔다. 경찰은 톈진신을 성 공안청으로 납치해 불법 심문을 했고 그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며 그를 매달아 놓고 잔혹하게 구타했다.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를 집으로 풀어줬다.
2000년 8월 11일, 톈진신은 또 하얼빈시 공안국 궈쯔천(郭梓臣)에게 속아 끌려갔고, 결국 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중범죄자들과 함께 갇혔다. 그 기간에 톈진신은 불법 심문을 받았고 죄수들에게 여러 차례 구타당했으며, 시내 대형 호텔에서 사용하는 이쑤시개를 가공하는 노예 노동까지 강요받았다. 11월에 톈진신은 난강 구치소로 이감돼 불법 감금됐다. 오랫동안 어둡고 습한 환경에 있었던 탓에 톈진신은 몸에 옴이 옮았고 피부가 몹시 가려웠으며, 긁어서 피고름이 나면 피고름과 옷이 달라붙어 잠을 잘 수 없었다. 심할 때는 옷을 벗지 못해 온몸에 성한 피부가 한 군데도 없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2001년 9월, 톈진신은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아 불법적으로 유기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담당 판사는 리겅디(李耿迪)였고 서기는 성이 바이(白) 씨인 여자였다. 섣달 스무엿샛날, 톈진신은 우다롄치(五大連池) 융펑 감옥(융펑 농장이라고도 함)에 불법 투옥됐다. 감옥장은 악당의 해독을 깊이 받아 직접 명령을 내려 그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강요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때려죽이라고 했으며 때려죽이면 자살로 치부하겠다고 했다. 매일 그에게 전향서 작성을 강요했고 전담자를 배치해 그를 감시하게 했으며 그들의 요구를 충족하지 못하면 주먹질과 발길질을 가했다.
융펑 감옥에 도착한 지 8일째 되는 날, 즉 2002년 정월 초나흘에 가족이 면회를 갔는데 톈진신은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허약해 보였다. 체중은 원래 90kg에서 약 50kg으로 급격히 줄어 26세의 젊은이가 작은 노인처럼 보였다. 속옷도 입지 않았고 옷은 죄수들에게 모두 빼앗긴 채 겉에 솜옷과 솜바지 한 겹만 걸치고 있었다. 걸을 때도 절뚝거렸는데, 알고 보니 감옥경찰이 그에게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각목으로 톈진신을 악독하게 때려 각목이 다 부러졌던 것이다.
감옥에 불법 감금된 나날 동안 톈진신은 종종 노역을 강요당했다. 감옥 측은 수감자들에게 출역하여 벼를 심으라고 요구했고, 날이 밝기도 전에 논에 내려가 일을 해야 했으며 밤늦게야 일을 마쳤다. 톈진신이 협조하지 않자 인솔 대대장은 곡괭이로 한 대 쳐서 그의 눈가를 멍들게 하고 눈에 피가 고이게 했다.
톈진신이 감옥 안에서 고통받고 있을 때 밖에서 그의 아내와 아이가 지내는 나날도 순탄치 않았다. 어린아이는 다른 아이들 곁에 아빠가 있는 것을 보면 자기도 아빠를 찾았고, 집에 온 남자나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남자만 보면 모두 아빠라고 불렀다. 이 광경을 볼 때마다 아내는 항상 저절로 눈물을 흘리며 온 가족이 하루빨리 단란하게 모일 수 있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이유로 납치되고 고문당해
2014년 5월 17일 오후, 톈진신과 아내는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뒤따라오던 차량에 가로막혔고, 10여 명의 사복 경찰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채 톈진신을 땅에 쓰러뜨려 야만적으로 납치했다. 그들은 또 집에 무단 침입해 가택수색을 벌여 톈진신 집의 대법서적, 컴퓨터, 호구부, 결혼증명서, 자동차 주행증 등 개인 물품을 압수했고, 한 이웃에게 압수 목록에 서명하게 했다. 더 비열한 것은 그들이 주변 주민들에게 잡아간 사람이 마약 흡입 및 마약 밀매범이라고 공공연히 거짓말을 한 것이다.
같은 날,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한징(韓靜)은 혼자 도로를 걷다가 신원 미상의 사람들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됐다. 한징의 가방 안에 있던 휴대폰 2대와 현금을 현장에서 빼앗겼다. 거의 같은 시간 류위한(劉峪含)은 선양(瀋陽) 타오창구의 임대 주택에서 6~7명의 경찰에게 납치됐으며, 경찰은 류위한의 거처에서 노트북 1대, 여러 대의 휴대폰, 현금, 은행 카드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양시 공안국 국보 대대, 형사경찰대, 선양 다둥 분국, 다둥 610, 타오창 파출소 및 하얼빈시 공안국 등 여러 부서가 결탁해 첨단 도청 등 특무 수단을 동원해 이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한 달 넘게 미행하고 감시한 끝에 결국 납치를 감행했다.
톈진신 등은 곧장 선양시 공안국 사무실 건물로 이송됐다. 선양 경찰은 톈진신 등에게 3일 낮 이틀 밤 동안 심문하며 그를 자지 못하게 했고 교대 전술과 피로 심문을 벌였다. 톈진신이 경찰의 모함에 따라 죄를 인정하지 않고 그들이 제시한 사실을 전면 부인하자, 불법 경찰은 폭력적으로 톈진신을 구타했다. 그리고 톈진신의 반바지를 벗겨 톈진신의 입에 쑤셔 넣고 테이프로 붙였다. 톄레이(鐵雷, 발음)라는 이름의 사건 담당 경찰과 성이 위(余) 씨인 경찰은 톈진신의 두 다리를 일자로 찢어 놓고 다리 등 민감한 부위에 맹렬하게 전기충격을 가해 톈진신의 다리 피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이것이 악화되어 말초 신경염이 되어 다리가 저리고 아픈 후유증을 남겼다.
파룬궁수련자 한징, 류위한은 각각 독방에 보내져 3일 낮 이틀 밤 동안 수면을 박탈당했고, 경찰은 또한 멀지 않은 방에서 들려오는 톈진신의 고문 소리와 비명 소리를 이용해 그녀들을 위협하고 협박했으며, “진룽도 더 이상 수련하지 않는다”는 등의 거짓말로 그녀들을 속이고 유도 심문, 강압 등의 비열한 수법을 가리지 않고 썼다. 한징은 신원 미상의 사람들에게 구타와 욕설을 당했고, 류위한은 머리를 부딪쳐 다쳐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뇌에 혈전이 생겼다.
세 사람이 체포된 유일한 이유는 앞서 여러 차례 선양에 가서 납치된 친척과 친구인 푸후이(付輝), 류진샤(劉金霞) 등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도와 인권 변호사를 선임했기 때문이었다. 이 친척과 친구들은 2013년 3월 20일 오후에 선양에 갔다가 역을 나서자마자 선양 사복 경찰에게 납치되어 무려 1년 넘게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간에 선양시 다둥구 공안분국 국보 대대 경찰은 그들이 상상하는 이른바 증거를 얻기 위해 푸후이에게 쇠의자에 묶기, 따귀 때리기, 찬물 끼얹기, 음부와 허벅지에 전기 충격 가하기 등 비열한 고문을 가했다.
불법 심문 기간에 선양의 사건 담당 경찰은 톈진신 등에게 당시 명혜망에 발표된 선양 공안의 죄악을 폭로하는 세 편의 글을 톈진신 등이 인터넷에 올렸다고 인정하도록 강요했으며, 특히 그중 당시 선양 공안국장 쉬원유(許文有)가 어떻게 출세했는지 폭로하는 글인 ‘저우융캉의 선양 공안 앞잡이 쉬원유를 폭로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톈진신에게 비디오 녹화를 특별히 하게 했는데, 비디오 내용은 주로 이 글을 누가 썼고 누가 인터넷에 올렸는지 묻는 것이었다. 아울러 그들에게 2014년 3월 20일 공원 아침 연공 사건의 파룬궁수련자 12명을 위해 어떻게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변호사 비용 상황은 어떤지 등의 문제에 대답하도록 강요했다. 황당한 것은 이것들이 본래 공민의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인 호소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까닭 없이 불법 경찰의 고문과 자백 강요를 받았으며 얽어 짜서 죄명을 뒤집어씌우는 데 이용됐다는 것이다.
다시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고 억울하게 투옥돼
톈진신 등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무고하게 고난을 당한 데 대해 이른바 수사 기록철은 증거 불충분으로 선양 선허구 검찰원에 의해 두 차례나 기각된 바 있다. 하지만 선양 공안이 고집스럽게 세 사람을 모함함에 따라 결국 이 사건은 선허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기소됐다.
2015년 4월 16일 오전 9시, 선양시 선허구 법원은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톈진신, 한징, 류위한에 대해 불법적인 재판을 열었고, 5명의 변호사가 3명의 파룬궁수련자를 위해 변호했다. 판사 등이 거듭 위법하게 재판을 진행하자 결국 정의로운 변호사가 퇴정하며 고소했다.
법정에서 변호사의 질문에 맞춰 톈진신, 한징, 류위한은 자신들이 어떻게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는지, 그리고 왜 다년간 수련을 견지했는지 그 이유를 차례로 설명하며 참석자들에게 파룬따파의 훌륭함을 입증했다. 류위한은 당당하게 직언했다. “저는 예전에 몸이 좋지 않았지만 파룬궁 수련 후 몸이 좋아졌습니다. 파룬궁은 우주의 대법(大法)이고 공산당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사교입니다.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 다 연공을 하고 있는데 오직 중국에서만 연공하지 못하게 합니다.”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는 자신들이 어떻게 납치됐는지, 특히 선양 공안의 고문 박해를 받은 사실을 중점적으로 진술했다. 톈진신은 그 자리에서 판사에게 자신의 외상을 보여주며 박해 상황 자료를 구치소 주재 검찰 인력을 통해 검찰원에 제출했다고 말했지만, 검찰원 공소인 류정(劉正)은 가타부타 말이 없더니 마지막에 스스로 자백하듯 한마디 했다. “열 몇 달이나 지났는데 상처를 아직도 볼 수 있단 말이오?”
변호사들은 검찰원이 제공한 이른바 자백은 전적으로 고문과 자백 강요 상황에서 공안 사건 취급 기관의 의도대로 조작된 증거로 법적 효력이 전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오후 재판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징과 톈진신의 변호인은 법원이 불법 증거 배제 절차를 개시하기를 희망한다며 법원에 즉시 휴정할 것을 요구했다.
7월, 세 사람 모두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톈진신은 4년형, 한징은 1.5년형, 류위한은 3.5년형이었다. 9월에 톈진신의 가족은 선양 중급법원에 증인 진술서, 2심 재판 개정 신청 관련 자료, 변호사 위임 절차 등을 포함한 항소 자료를 제출했다. 선양시 중급법원의 이른바 판사 차오스쥔(曹世軍) 등은 항소인 및 가족, 변호사의 권리를 박탈하고 변호사와 면회해 사건을 논의하고 기록을 열람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결국 변호사에게 통지하지 않은 채 11월 3일경 몰래 톈진신에 대해 2심 원심 유지 결정을 내렸다.
2016년 3월 23일, 톈진신은 선양 핑뤄 감옥으로 이감돼 불법 감금됐으나 가족에게는 아무런 통지도 없었다. 4월 6일 오후, 톈진신의 가족은 선양시 구치소로 톈진신을 면회하러 갔고, 면회 수속을 밟을 때 창구 접수원은 톈진신이 이미 구치소에 없다고 알렸다. 가족이 사람이 어디로 이감됐느냐고 묻자 창구 직원은 핑뤄 감옥에 가서 조회해보라고 했다. 가족은 또 황급히 핑뤄 감옥으로 달려갔고 조회 결과 톈진신이 이미 입소해 핑뤄 감옥 입소대에 불법 감금돼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창구 경찰은 톈진신이 엄격한 관리 기간에 있어 면회할 수 없다고 했다.
톈진신은 출옥한 후에도 자주 괴롭힘과 납치를 당했다. 2021년 4월 19일, 톈진신은 하얼빈시 철로 공안처에 납치됐고 가택수색을 당해 컴퓨터와 휴대폰을 모두 빼앗겼다. 톈진신은 불법 구류 15일 후 석방됐다. 2024년 하반기부터 하얼빈시 샹팡구 통톈제 파출소는 그것이 그들의 일이라며 수차례 전화를 걸어 톈진신을 괴롭혔다. 2026년 8월 하순, 톈진신은 박해 속에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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