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께서 주신 ‘만능열쇠’로 인연 있는 사람을 구하다

글/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6년에 법을 얻었고 올해 75세다. 사부님께서는 “진상을 말하는 것이 만능열쇠이다.”(각지 설법4-2003년 애틀랜타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이 법은 내게 많은 지혜를 더해주었고, 수련의 길에서 많은 번거로움을 피하게 해주었으며 수많은 시련을 줄여주었다. 많은 경우, 바로 이 법이 내 정념(正念)을 강화해 주었고 내 사상 경지를 끊임없이 승화시켜 주었으며, 동시에 대법을 박해하는 일부 부서의 지도자와 관련 직원들의 마음을 열어 진상을 알게 했고, 그들이 맞이할 재난과 도태될 위험을 면하게 해주었다. 아래에 몇 가지 수련 경험과 서로 다른 신분의 중국공산당(중공) 관리들에게 진상을 알린 이야기를 교류하려 한다.

1. 현지 정부의 압력에 직면해 대법 수련을 확고히 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악당 집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기업의 간부였기에 현지 정부는 나를 ‘핵심 인물’로 삼아 압력을 가하며 소위 ‘전향’을 시키려 했다. 당원 간부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 위원회 판공실의 통지를 받고 회의에 참석했는데, 시 위원회 회의실에는 20여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시 위원회 각 부서의 간부들로, 시 위원회 부서기, 조직부장,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정법위원회 서기, 610 주임, 공안국장, 그리고 우리 직속 국 서기 등이 있었다. 내가 보니 회의를 듣는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고, 이 진용은 바로 나 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런 진용을 처음 보았고 정말 꽤 위협적이었다. 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었다. 나에게는 위법 행위가 없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합법적이며 지난 몇 년간 떳떳하게 걸어왔기에 허리를 꼿꼿이 폈다.

먼저 시 위원회 부서기가 내게 물었다. “간부는 파룬궁을 수련할 수 없어. 특히 당원 간부는 더 안 되지. ○○○, 당신은 어떤 태도요?” 나는 대답했다.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다. “왜 받아들일 수 없소?” 나는 ‘4·25’부터 시작해 진상을 충분히 알렸다. 내가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며 사회 도덕을 회복시키는 뚜렷한 효과로 인해 대중적인 기반이 급속히 확대됐습니다. 1999년에 이르러 수련생 수가 7천만에서 1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파룬궁이 중공의 사상과 정치 체제에서 벗어나 있기에, 그 명망과 독립성은 장쩌민에게 엄청난 질투와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터무니없이 탄압받게 된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시 위원회 부서기가 말했다. “더 말하지 마시오, 이건 중앙의 명령이오.” 나는 말했다. “당장(黨章)의 규정에 따르면 평당원이라도 상급에 의견을 반영할 권리와 의견을 보류할 권리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를 위협하며 말했다. “○○○, 당신 가정을 생각해야지. 당신 자녀의 앞날을 책임지고 당신의 직장, 직무, 당적을 책임져야 할 것 아니오.” 마지막으로 나는 말했다. “그럼 순리에 따르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의견도 발표하지 않았고, 이렇게 회의는 언짢게 끝났다. 직장으로 돌아갈 때 나는 마침 직속 국의 차를 타고 돌아갔다. 길에서 직속 국 당 판공실 주임이 내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파룬궁도 장차 명예가 회복될 겁니다.” 이 말은 그녀가 진상을 알아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알았을 수 있다.

2. 노동수용소 정치위원에게 진상을 알리자 재소자들이 나를 정치위원의 친척으로 알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1999년 음력 8월 16일, 관할 구역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우리집과 직장 사무실은 가택수색을 당해 연공 방석과 녹음기를 강제로 빼앗겼다. 나는 구류소로 납치돼 63일간 갇혀 박해당한 뒤에야 직장의 보증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2000년 정월 16일, 나는 구역 담당 경찰에게 또다시 납치돼 구류소로 보내졌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부과장과 경찰 몇 명이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는데, 이유는 첫째로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로 정월 초닷새에 파룬궁수련생 몇 명이 집에 와서 비디오를 보았는데 국보 경찰들이 내게 그들이 누구인지 불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지 않자 그들은 처음에는 달래고 속이고 위협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 같자 자백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뺨을 때리고, 그다음에는 기마자세로 쪼그려 앉기, 비행기 타기(팔을 뒤로 꺾어 올리는 고문), 하얀 플라스틱 파이프로 손등 때리기, 구두 굽으로 발가락 끝 밟기, 1미터 길이의 두꺼운 책상다리로 발등을 내리쳐 구두 가죽이 다 벗겨질 정도였다. 나중에 경찰은 형사경찰대대를 통해 다른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해 그날 모인 사람들에 관한 내용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에 대한 고문을 멈췄다

이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구류소 경찰실에서 낮 12시부터 자정 12시까지 꼬박 12시간 동안 나를 고문하며 괴롭힌 뒤 구치소로 보내 박해했다. 다음 날 구치소의 재소자들은 내 손등,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검붉은 색인 것을 보고는 모두 이 경찰들이 너무 독하다며, 인간성이라고는 없는 그야말로 토비(土匪, 지방 도적떼)라고 말했다. 구치소에 9일간 갇힌 후, 나는 다시 구류소로 보내져 두 달여간 박해받았다.

2000년 4월 30일, 파출소 경찰은 나를 노동수용소로 보냈다. 노동수용소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노동수용소 정치위원이 나를 불러 대화를 나눴는데, 역시 나에게 수련을 포기하라고 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가 수련을 통해 어떻게 심신의 건강을 얻게 되었고 어떻게 좋은 사람, 나아가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지 알렸으며, 내 가족이 어떻게 혜택을 받았는지도 알렸다. 마지막으로 나는 말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만약 전향했다면 제가 노동수용소에 오게 되었겠습니까? 우리 두 사람은 어쩌면 알지도 못했을 겁니다. 제가 올해 50여 세인데 바보도 아니고 미치지도 않았습니다. 집에서 맛있는 거 먹고 좋은 공장장 노릇이나 하면 될 것을, 뭣하러 노동수용소에 보내져 이런 고문을 당하겠습니까?” 나는 또 말했다. “나중에는 당신도 알게 될 겁니다. 중공이 그토록 많은 운동을 벌이면서 얼마나 많은 억울하고 거짓된 사건들을 만들었습니까?! 국가 주석 류사오치는 문화대혁명 기간에 반역자, 간첩, 노동자 계급의 반역자,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실권파로 몰렸지만, 마지막에 복권될 때는 여전히 무산계급 혁명가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그가 한마디 했다. “당신 사고방식이 꽤 열려있군.” 나는 “과찬이십니다!”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파룬궁은 공식 보도에 따르면 1999년 7월까지 7천만에서 1억 명이 수련했고, 병을 없애고 건강하게 하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 국가를 위해 의료비를 얼마나 많이 절약했습니까? 좋은 사람과 좋은 일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사회 기풍이 끊임없이 호전되고 회복되었으니, 국가 지도자에게 있어서 이것은 복 받은 게 아닙니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두 수련하고 있으며, 고위 간부, 고급 지식인, 대학생, 교수, 노동자, 농민, 군인, 상인이 있습니다. 중앙 지도부 7명의 상무위원도 모두 ‘전법륜(轉法輪)’ 이 책을 읽어보았고, 그들의 부인들도 모두 파룬궁을 연공했습니다. 오직 장쩌민 한 사람의 질투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모두 파룬궁 탄압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터무니없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정치위원은 내 말을 듣고 말없이 있더니 마지막에 말했다. “당분간 억울하더라도 좀 참으시오. 하지만 노동수용소의 규율은 여전히 지켜야 하오.” 우리가 이 대화를 나눈 후, 당시 내가 속한 대대는 대대장이든 감방장이든 나에게 꽤 관대하게 대했고, 일반 재소자들은 모두 나를 정치위원의 친척으로 알았다.

3. 감방장에게 진상을 알리자 그가 집에 전화해 아버지에게 파룬궁수련생을 찾아 연공하라고 하다

2000년 7월, ‘전향’의 편의를 위해 나는 다른 노동수용소로 이감됐다. 어느 날 밤 모두가 쉬려고 누웠을 때, 감방장이 나를 자기 침대 앞으로 불러 곁에 앉히더니 내게 물었다. “무슨 어려움은 없소?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고?” 나는 없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꽤 말이 잘 통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파룬궁을 연공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말했다. “처음에 저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들었는데, 파룬궁이 매우 좋고 병을 고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 암에 걸린 많은 사람이 모두 나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비록 큰 병은 없지만 결장염, 고혈압, 부정맥 같은 질환이 끊이지 않아 젊었을 때는 먼 길을 갈 때 비행기도 감히 타지 못했습니다. 파룬궁을 연공하는 데는 돈 한 푼 받지 않고, 여가 시간에 하는 거라 아무런 지장도 없으니 한 번 시도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연공을 시작했는데 대단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제 병이 씻은 듯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제 어린 손자의 병도 나았습니다.”

내 손자가 갓 태어났을 때 온몸이 검푸른 색이었고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었으며, 탯줄 주위의 뱃가죽은 반투명한 상태라서 숨을 쉴 때 내장이 꿈틀거리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간호사가 아기의 엉덩이를 두 번 때렸지만 아기는 전혀 반응이 없었고 울지도 못했다. 저울에 달아보니 겨우 2.6kg밖에 되지 않아 분명한 선천성 발육 부진이었다. 경험 있는 의사가 내 아내에게 말했다. “며느리한테 아이를 하나 더 가지라고 하세요.” 어떤 간호사는 소곤거리며 말했다. “이 아이는 힘들 것 같아요. 틀림없이 살지 못할 거예요.” 원래 기뻐하던 온 가족은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든 보살펴 살려내야만 했다. 아내가 손자를 집으로 안고 온 후 품에 안고 3일 넘게 자신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자, 아이의 얼굴색이 약간 불그스름해졌다. 아이가 젖을 빨지 못하자 엄마가 조바심이 나서 젖몸살이 심하게 났고, 생으로 젖을 말려버려 나중에는 할 수 없이 좁쌀죽과 분유를 먹였다. 한 달 남짓 정성껏 보살핀 끝에 이 작은 생명에게 마침내 생기가 약간 돌게 되었다. 할머니가 아이를 안고 시립병원 소아과에 가서 명의에게 진료를 받고 건강해질 좋은 방법을 물었지만, 방법은 고사하고 고민만 더 생겼다. 의사는 ‘선천성 치매’와 ‘선천성 심장병’으로 진단하고는 “어느 집이든 이런 일을 겪으면 재앙입니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그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이 아이 때문에 근심했다.

나는 외지로 출장 갈 때마다 자주 좋은 처방을 찾아보았고 보양식을 사 오기도 했으며, 할머니는 자주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의사와 약을 찾고 무슨 민간요법이나 무당, 성도(省都)의 큰 병원까지 다 찾아다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온 가족 여섯 식구 중 네 사람이 직장에 다녀 받는 월급에서 필수 생활비를 제외하고 아껴 모은 돈을 모두 손자에게 썼지만, 여전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1996년 초까지 버텼을 때, 아이는 이미 세 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남의 집 아이들이 활기차게 뛰어노는 것을 보다가 우리 아이의 이런 상태를 보면 온 가족은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온 가족이 아이 문제로 시름에 잠겨 있을 때, 1996년 6월 친구의 소개로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보서(寶書) ‘전법륜’과 파룬궁 연공 음악, 그리고 리훙쯔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모셔왔다. 내가 집에서 법공부를 할 때면 어린 손자는 침대에 누워 들었고 때로는 손을 뻗어 ‘전법륜’을 달라고 하기도 했으며, 내가 연공을 할 때면 아이도 손으로 시늉을 했다. 가끔 가족이 아이를 안고 있을 때면 아이는 항상 사부님의 법상과 ‘전법륜’ 쪽으로 가려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손자의 몸은 하루하루 좋아졌고, 반년도 안 돼 아이가 말도 할 줄 알고 걷게도 되었다. 온 가족은 아이의 천지개벽할 변화를 보고 정말 기쁨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온 가족이 차례로 대법을 얻고 수련하게 되었고, 행복하고 상서로운 분위기가 다시 이 가정에 찾아왔다.

손자는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많은 신기한 일들, 즉 특이공능(초능력)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내 아버지와 내 여동생이 우리집에 오기 전에 아이는 미리 알았고, 우리집에 오는 모든 사람이 수련생인지 아닌지, 혹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다 알았다. 아이의 신기한 일들이 너무 많아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우리집에 방문했고, 때로는 불필요한 번거로움과 교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나중에 어른들이 아이에게 더는 말하지 말라고 하자 아이도 말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둘이 이 이야기를 할 때쯤, 감방장은 상자에서 전화기를 꺼내 집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이웃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을 찾아 파룬궁을 가르쳐 달라고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는 이 감방장이 정말 진상을 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나중에 우리 둘은 친구가 되었다. 물론 나를 감시하던 자들도 내가 진상을 알린 후 한 무리 한 무리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나는 법공부를 하고 진상을 알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연공도 할 수 있어서, 정말로 특별대우를 누렸다.

4. 노동수용소 대대장 “당신이 쓴 이런 내용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됐어, 내가 처리해 주지”

노동수용소에서 나를 6대대로 옮긴 후, 어느 날 밤 파룬궁 박해를 전담하는 대대장이 당직을 서다가 나를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대대장은 안색이 온화하고 매우 선량해 보였으며, 우리 둘의 대화도 매우 잘 통했다. 그는 내게 무슨 이유로 파룬궁을 연공하게 되었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파룬궁이 좋다고 소개해 주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원래 몸에 병이 있었는데 효과가 없었다면 틀림없이 내게 소개해 주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특별한 일도 없고 바쁘지도 않아서 그렇게 연공을 시작하게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잔병들이 다 씻은 듯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내 어린 손자의 치매와 선천성 심장병도 모두 나았으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그 아이에게 많은 특이공능까지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 대대장에게 지혜가 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린 손자가 선천성 치매와 선천성 심장병이 나은 후로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낮에 자신의 양말을 들고 끊임없이 리듬감 있게 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수련생이 아이에게 ‘너 뭘 흔들고 있니?’라고 묻자, 아이는 ‘업력을 흔들고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어른들이 양말을 빼앗아 숨기면 아이는 다시 다른 양말을 찾아 계속 흔들어서 통제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손자가 예닐곱 살이 되었을 때는 양말을 흔들지 않고 수건을 흔들었는데, 일부러 깨끗한 수건을 찾아서 흔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너 뭘 흔들고 있니?’라고 물으면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손자를 위해 시를 한 수 지어주었습니다. ‘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 작은 도인 같구나. 수건을 손에 들고 불진(拂塵)으로 삼네. 귀신을 쫓고 사악함을 씻어내며 묵묵히 사부님을 도와 정법을 행하네.’ 이 녀석이 책 한 자 안 읽은 것 같아도 그 시가 무슨 뜻인지 다 알고는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제대로 말씀하셨네요’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대대장이 말했다. “당신 일은 나도 좀 알고 있소.” (어쩌면 그 감방장이 그에게 내 상황을 소개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부터 그가 당직일 때면 나를 찾아 파룬궁의 여러 가지 일들을 토론했고, 평소에도 나를 매우 관심 있게 챙겨주었다.

나의 노동수용소 수감 기간이 만료될 무렵, 현지 정법위원회 610 직원이 나를 데리러 왔다. 대대장이 말했다. “당신 노동수용소 수감 기간에 개조를 받은 성과와 소감을 한 부 쓰시오. 하지만 너무 과격하게는 쓰지 마시오.” 그 말뜻은 대충 넘어갈 수 있게 쓰라는 것이었다. 나는 파룬따파가 얼마나 좋은지, 파룬궁을 연공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인지, 나와 내 가족이 어떻게 혜택을 받았는지를 썼다. 내가 채 다 쓰기도 전에 그가 쓱 보더니 말했다. “당신이 쓴 이런 내용으로 돌아갈 수 있겠어? 됐어, 내가 처리해 주지.”

노동수용소에 있는 동안, 현지 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가 두 번이나 노동수용소로 찾아와 나와 대화를 나누며 ‘전향’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물었다. 나는 항상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비록 말로는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뒤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최소한 병을 없애고 건강해지는 효과는 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2001년 7월 18일, 반년이나 초과 구금된 후에야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기율검사위원회는 직속 국 인사과장을 보내 당적 박탈 통지서를 내게 전달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감개무량했다. 1년 반의 감옥살이 재난에서 벗어났고 또 28년이나 되는 중공 악당의 굴레에서 해탈했으니, 그야말로 겹경사여서 정말로 축하할 만한 일이었다!

5. 성 610 우두머리 “정말 당신은 어쩔 수가 없군, 돌아가”

2012년 10월 30일, 나는 본 시 610 국보 대대와 파출소 경찰들에게 납치돼 모 구역 세뇌반으로 끌려가 박해받았다. 이 반은 19일 동안 운영되었는데, 취한 수단은 강제로 대법 박해 영상과 불교 영상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먼저 610 우두머리 등이 개별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사실이 아닌 말로 대법을 모욕하고 비방하며 대법 수련생의 인격을 모독하여 수련생을 전향시키려는 목적을 달성하려 했다. 세뇌반이 며칠간 진행되어도 효과가 없자, 610 우두머리는 전화를 걸어 외지에서 사오(邪悟, 삿되게 깨달음)한 사악한 자를 불러와 파룬궁수련생들에게 강제로 세뇌를 진행했다. 이 기간에 나와 다른 두 명의 수련생이 사악에 협조하지 않아 ‘전향’시키지 못하자, 11월 12일에 성도(省都)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했다.

성도 세뇌반은 더욱 극히 사악했다. 그곳에는 감옥이나 노동수용소에서 나온 사오한 악인 10여 명이 전문적으로 대법을 박해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짓은 모두 악당이 하고 싶어 하지만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 악인들은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번갈아 가며 떼지어 공격하거나 강제로 대법 박해 영상과 불교 영상을 틀어주어 수련생들에게 정신적인 타격과 고문을 가했다. ‘전향’하지 않으면 위협하고 기만하고 벌을 세우거나 방을 바꾸며(햇빛이 안 드는 가장 추운 방으로 옮김),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등의 짓을 했다.

50일간의 구금 세뇌 박해 동안 그들은 온갖 수단을 다 쓰고 온갖 방법을 다 생각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마지막에 610 우두머리가 직접 나를 찾아와 대화하며 말했다. “○○○, 당신은 머리가 조금만 유연해도 좋을 텐데 그게 안 되는군. 지금 서명을 하고, 말로만 안 연공한다고 하고 집에 가서 다시 연공해. 우리가 당신 집에 가서 당신을 지켜보겠어?!” 나는 안 된다고 했다. “우리 파룬궁의 최고 법리는 ‘진선인(眞·善·忍)’ 이 세 글자입니다. 첫 번째가 바로 ‘진(眞)’을 닦는 것인데, 제가 진실을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면 저는 ‘진’을 해내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당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제가 당신을 속이면 저는 수련자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제가 당신을 속이면 저도 당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고요?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저를 ‘전향’시켰다면 당신도 범죄를 저지른 것이지 않습니까! 제가 자신을 망쳤을 뿐만 아니라 당신도 해친 것이 되는데, 이 이치가 맞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서명을 할 수 없습니다.”

그가 잠시 머뭇거리는 그 찰나의 기회를 잡아 나는 그에게 다시 진상을 알렸다. “제가 왜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나는 말했다. “저는 직장에서 간부이고 이는 당신도 아는 사실입니다. 직장의 다른 간부들 앞에서도 저는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2006년에 우리 공장의 협력업체에서 기념행사를 해서 우리가 두 명 갔습니다. 돌아올 때 그 협력업체에서 선물 세트를 두 개 주었는데 모두 몇백 위안짜리 물건이었습니다. 돌아온 후 저는 제 몫의 물건을 다른 간부에게 주었습니다. 수련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직장에서도 주관 부서에서도 제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압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우리나라의 간부 전체가 모두 이렇다면 부패 척결이라는 것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또 하나,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적적인 효과가 있어서 저는 연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나는 또 말했다. “우리집 손자는 연공도 하지 않고 그저 제가 법공부하는 것을 듣고 연공하는 것을 보기만 했는데도 병이 나았습니다. 제가 서명한다면 그것은 배은망덕한 짓 아닙니까!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이 서명을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정말 당신은 어쩔 수가 없군, 돌아가.”

다음 날, 그는 우리 성 전체에서 ‘전향’하지 않은 세 사람을 한 침실로 불러 모으더니 말했다. “당신들 셋이서 같이 교류나 좀 해보시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이 어색한 교착 상태를 깨기 위해 내가 한마디 했다. “이곳의 무성(無聲)이 유성(有聲)보다 낫군요.”

6. 성 610 소위 ‘전향 고수’, “우리는 당신과 교류하러 온 거요”

2022년 2월 어느 날 오후, 주민센터 직원이 내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집에 있는지 물으며 정법위원회 직원이 우리집에 와서 무슨 ‘관심과 위문’을 한다며 나를 보러 오겠다고 했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게 성 세뇌반에서 전향하지 않았다고 뒷북치러 오는 거 아닌가?!’ 이때 나는 다시 생각했다. ‘기회가 왔구나, 마침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오후부터 나는 정념을 발해 정법위원회 직원들의 배후에서 그들이 진상을 아는 것을 교란하는 좋지 않은 물질과 요소를 제거하여 사부님께서 그들을 구하시게 했다. 평소에는 정념을 30분만 발해도 다리가 아파 견디기 힘들었는데, 그날 오후에는 2시간 반 동안 발했는데도 다리가 아프지 않았고 게다가 온몸은 불을 뿜는 것처럼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했다.

저녁 6시가 넘어 현지 610 과장이 주민센터 직원과 성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소위 ‘전향 고수’ 등 일행 6명을 이끌고 우리집에 과일을 그렇게나 많이 사들고 왔다. 당시 나는 정말 너무나 태연하게, 친구나 친척이 온 것처럼 열정적으로 그들을 대접했다. 먼저 나는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앉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고는 서둘러 아들에게 과일을 내오고 차를 끓이라고 했다. 모두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말했다. “오늘 여러분이 우리집에 오신 것은 모두 인연이고, 오신 분들은 모두 손님이십니다. 이왕 오셨으니 편히 쉬시고, 모두들 허심탄회하게 하실 말씀 다 하십시오. 하지만 오늘은 제가 먼저 주인이 되어 손님들께 먼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바로 제 손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손자가 태어났을 때 산파가 소곤거리며 모두 이 아이는 힘들다고 했고, 병원 전문가도 ‘선천성 심장병’과 ‘선천성 치매’로 진단했으며, 네 살이 다 되도록 말도 못 하고 걷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했다. 이 공법이 대단해서 나 자신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내 손자도 연공을 하지 않고 내가 연공하는 것을 보고 ‘전법륜’ 읽는 것을 들었을 뿐인데 불치병이 다 나았고, 병이 나았을 뿐만 아니라 타심통(他心通), 천목(天目) 열림, 보지 않은 일을 미리 아는 등등 수많은 특이공능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번은 내가 손자를 데리고 여동생 집에 놀러 갔다. 매제가 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을 보고 어린 손자가 말했다. “고모부, 늙은 소 값이 올랐는데 왜 얼른 소를 팔지 않으세요?” 나는 “네가 소 값이 오른 걸 어떻게 아느냐”라고 했다. 이때 매제가 소 값이 정말 올랐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 매제가 1만 위안을 주고 소 두 마리를 샀는데, 집에 온 지 한 달 만에 2만 위안에 팔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일은, 매제 집에서 집을 짓고 있을 때(2층을 올림) 여동생이 안 입는 옷과 천 조각들을 소 먹이 주는 초가집에 두었는데 마침 삼복더위 때였다. 어느 날 손자가 말했다. “고모할머니, 왜 빨리 집에 있는 옷들을 말리지 않으세요, 다 곰팡이가 피었어요. 더 안 말리면 다 버려야 해요.” 고모할머니가 초가집에 가보니 옷에 정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옷을 다 말리고 방으로 돌아와 어린 손자를 안고 막 뽀뽀를 해주며 말했다. “이 꼬마 신선아, 넌 모르는 게 없구나. 오늘 고모할머니가 너한테 톡톡히 한턱내마.”

이 아이는 한 번도 남에게 욕을 한 적이 없었고, 책을 하루도 읽지 않았지만 단어 선택이 아주 적절했다. 하루는 아이의 아빠 엄마가 다퉜는데, 아이가 얼른 뛰어가 아빠 품에 앉더니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아빠! 싸우지 마세요! 속인들도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잖아요!” 아빠 엄마는 그 말을 듣고 그때 바로 다 웃어버렸다.

가족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다 한 후, 다시 국무원, 공안부 39호 문서에서 규정한 14가지 사교(邪敎)에 파룬궁이 없으며 파룬궁은 사교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저 장쩌민이 프랑스 피가로 신문 기자와 인터뷰할 때 한 말일 뿐인데, 그가 한 말이 어떻게 법률 조문으로 쓰일 수 있느냐, 이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냐고 했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전혀 위법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또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 등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 말끝을 이어받아 그 소위 ‘고수’가 말했다. “‘전법륜’을 제가 30번 넘게 읽어보았는데 정말 정치에 관한 말은 한마디도 없더군요.” 이때 내가 이어서 말했다. “제가 건의하건대 오늘 오신 몇 분 친구들도 모두 ‘전법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십시오. 정말 많은 것을 얻게 되실 겁니다.” 나는 또 직장에서 내가 어떻게 탐내거나 차지하지 않고 청렴결백했는지를 말하며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나는 또 말했다. “이러한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여러분 말씀해 보십시오. 설마 저를 또 어떤 사람으로 전향시키려 하십니까? 저를 어디로 전향시키려 하십니까?”

나는 내친김에 뭔가를 더 말하려 했는데, 그 ‘전향 고수’는 내 말을 듣더니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전향시키러 온 줄 아는데, 우리는 당신과 교류하러 온 거요.” 그는 또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돌아가고 나면 당신도 안으로 찾아보시오. 그럼 당신 다리도 나을 거요.” 마지막으로 정법위원회 그 과장이 말했다. “오늘 시간도 늦었으니 당신도 그만 쉬시오. 몸조심하시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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