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트남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베트남의 수련 환경에서 한 가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과거 진상 알리기 항목과 진상 알리기 활동에서 비교적 적극적이었고, 표현력과 조직력이 강해 많은 수련자의 인정을 받았으며, 인터넷 교류를 조직해 많은 수련자의 참여를 이끌었던 한 수련자가 있었습니다. 그 후 그의 개인 상태와 대법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고, 공개적으로 대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고 저를 포함한 많은 수련자가 충격과 심각함을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제게 표면적인 적극성, 능력, 영향력은 진수(眞修)·실수(實修)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수련은 사람을 보아서는 안 되며, 한 사람의 능력, 말솜씨, 혹은 활동 규모로 수련 상태를 가늠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시종일관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以法爲師)’는 것을 근본적인 위치에 두어야 합니다.
1. ‘안으로 찾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
충격 역시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면 자신에게 닦아야 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저는 먼저 한 가지 인식을 명확히 했습니다. 수련자 간의 교류는 서로 교류하고 함께 제고하는 하나의 형식입니다. 수련자 간에 비학비수(比學比修)하며 각자가 이야기한 개인적인 체득은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대법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수련자가 생동감 있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한다고 해서 무의식중에 그의 체득을 너무 중시하거나 심지어 그의 인식을 문제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무엇이 ‘안으로 찾기’이고 무엇이 ‘정진(精進)’입니까? 사부님께서는 설법 중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청중의 상황에 맞춰, 다양한 각도나 다양한 표면적인 현상을 통해 많은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해야만 비로소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고, 갈등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떠올릴 수 있으며, 법으로 자신을 대조해 잘 수련하겠다는 신념을 확고히 할 수 있습니다.
2. 안으로 찾기: ‘사람을 배우고 법을 배우지 않는가?’
이 사건과 대조해보며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갈등 앞에서 자신을 찾고, 왜 자신이 갈등에 말려들었는지, 왜 자신이 이 갈등을 보게 됐는지, 왜 자신이 갈등 앞에서 마음이 움직였는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갈등을 보았을 때 저의 생각은 이러했습니다. ‘일부 수련자들은 왜 말을 잘하고, 일을 잘하며, 조직을 잘하는 사람에게 쉽게 끌리는가? 그들은 말솜씨가 좋은 것을 수련을 잘하는 것으로, 능력이 강한 것을 심성이 높은 것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가? 그들은 참여 인원이 많은 것을 일을 잘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을 수련이 정진하는 것으로 오해한 것은 아닌가? 이 역시 사람의 기준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거울에 대조해 제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나에게도 편리함을 추구하고, 편안함을 구하며, 이미 나와 있는 답을 찾는 마음이 있지는 않은가?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하며 안으로 찾지 않고, 습관적으로 능력이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을 찾아 그에게서 답을 얻기를 바란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므로, 즉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해 법으로 자신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3. 단체 수련 환경 중의 갈등 현상에 대한 인식
이 일은 제게 사부님의 단체 법공부, 단체 연공에 관한 가르침을 다시 새기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단체 환경에서 제 자신이 어떻게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원칙의 지도하에 수련자들과 서로 원융하고 함께 정진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7-미국수도법회 설법’에서 지적하셨습니다. “정진이란, 그것은 바로 그가 시시각각 자신의 언행에 주의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반응에 주의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고, 늘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인데, 이렇게 하고 있다면 곧 개인수련 중에서 비교적 정진하는 것이다.”
“대법제자에게는 수련을 위해 비로소 나타난 모순이며, 법을 실증하기 위해 비로소 나타난 모순이다. 비록 이 속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고, 과시심이 들어 있으며, 개인의 집착이 들어 있고, 사람이 자신을 실증하려는 그런 요소가 들어 있지만, 그들이 알고 일단 발견하기만 하면 그들은 곧 고칠 것이다. 이는 속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들 중에는 모순이 있을 수 있으며, 이런 모순은 또 그 밖의 한 가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데, 바로 이 모순이 일단 표현되어 나오기만 하면 곧 다른 사람을 건드리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게 되면 이 모순은 곧 돌출될 것이므로, 수련자는 스스로 주의하게 될 것이다. 이 모순 중에서 오직 안을 향해 찾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부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순이 폭로되어 나오지 않고 이 모순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의 집착을 발견하지 못하며 당신의 집착을 보아내지 못한다. 일체가 모두 평화롭다면 수련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제게 수련 환경이 마냥 평화롭고, 서로 좋기만 하며 갈등(모순)이 없을 수는 없다는 점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갈등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에게 수련하라는 것이며, 갈등이 마음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갈등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움직일 때, 표면으로 떠오른 그 집착, 사람마음, 관념이 가장 쉽게 보이며, 그것이 바로 닦아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어떻게 닦아버려야 할까요? 먼저 그것을 직시해야 하고(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에 배척하며(그것을 원치 않음), 그것을 제거해야[내려놓거나, 심지어 직접 정념(正念)을 발해 제거함] 합니다.
우리는 공산당 국가에 살고 있어 해외의 다른 국가들처럼 보도소나 불학회가 없으므로,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것을 터득하는 것이 더욱 지극히 중요합니다.
이상은 현재 개인적인 약간의 인식입니다. 베트남에 계신 수련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서의 인식일 뿐이니, 선의로 교류하며 다 함께 제고하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2/5141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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