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기점을 바로잡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다

글/ 캐나다 서부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9년 초에 다행히 대법서적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법을 얻고 어떻게 수련을 대해야 할지 알게 되기까지 저에게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세 가지 측면에서 제 수련 체험을 이야기해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 근본 집착 찾아내기

근본 집착을 분명히 인식하는 문제에 대해 저는 점진적인 인식 과정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는 것이 제 근본 집착이라고 여겼습니다. 친구가 제게 대법서적을 줬을 때가 마침 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책을 본 지 불과 몇 달 만에 제 몸에는 확실히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좋은 몸을 얻고 싶어서 계속 여기에 남아있는 것인가?’ 대답은 ‘법에서 병의 근원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 후,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던 집착은 이미 내려놓았다’였습니다.

어느 날 명혜망에서 수련생의 깨달음을 보았습니다. 처음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고 공감했던 부분에 근본 집착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즉시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제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던 것이 사부님께서 선사 문명을 말씀하신 부분이었음을 떠올렸습니다. 당시 그 부분을 읽고 몹시 흥분했으며, 이 책이 제게 가장 완벽하고 명쾌한 해답을 줬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선사 문화에 관심이 많았고 생명의 기원과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가 아니겠습니까? 먼저 그 과학 관념에 동의했기에 사부님 말씀을 믿었던 것이니, 과학에 대한 집착이 바로 제 근본 집착이었던 것입니다! 이 집착은 다년간 제 수련의 모든 방면을 관통했습니다. 시력이 떨어지면 과학적인 설명을 떠올리고, 설사를 하면 즉시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회상했습니다. 또한 무신론적 사고로 사부님과 법을 100% 믿지 못하는 것 역시 과학에 대한 집착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이 근본 집착을 인식한 것은 아직 첫걸음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법공부와 수련 속에서 더욱 노력해 이런 관념을 명확히 구분하고 제거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요소와 진정한 나를 분리해 자신을 순수하게 해야만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의 길을 더욱 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제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아주 큰 문제에서는 미래를 무척 낙관하고 자신감 넘쳐 하면서, 정작 새로운 환경 적응이나 언어 장벽 같은 눈앞의 어려움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큰일이라도 만난 것처럼 굴더라. 이런 일들이 부처가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거야?” 남편의 말은 제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아직 수련하지도 않는 남편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 수련의 근본적인 부분을 건드렸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왜 수련하는가? 또 왜 고생을 두려워하는가?’

저는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을까요? 학창 시절 겪은 여러 일로 인해 인생을 위해 분투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고, 사람들 사이의 명리(명예와 이익) 다툼에 몹시 싫증을 느꼈습니다. 수련 전부터 그저 조용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직장에서도 교육 경연 대회에 참가하려 하지 않았고, 직함을 얻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귀찮아했습니다. 수련 후에는 자신이 명리를 담담히 여긴다며 더욱 자신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담담하게 보는 이면에는 제 근본 집착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수련을 이용해 세속의 번뇌를 피하고 제가 원하는 단순함과 자유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사실 사상은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 수련은 자신을 해탈하려는 것이었고, 제 이익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대법 안에서 ‘인생의 갈망’을 찾으려는 집착이 있었기에, 제 수련은 늘 주변 환경이 제게 부합할 때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수련하고, 부합하지 않을 때는 초조해하고 의기소침해지는 식이었습니다. 어려움에 직면하면 고생스럽고 피곤한 것을 두려워했으며, 수련인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여유와 낙관적인 태도도 부족했습니다. 대법 속에서 ‘무릉도원’을 찾으려는 이 집착이야말로 제 가장 크고 근본적인 집착이었습니다! 이 근본 집착을 똑똑히 보고, ‘자아’에 기반한 이 집착심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일깨웠습니다. 대법제자가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은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더 잘 구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제거해야만 진정한 선(善)과 자비를 닦아낼 수 있습니다.

2. 정법수련의 기점에 서서 아이에 대한 정을 수련해 버리다

2011년, 중공 악당 직원들의 끊임없는 교란에 직면한 저는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간 아이와 함께 중국을 떠났습니다. 저와 아들은 13년 동안 난민 생활을 함께했습니다(남편은 중국에 남았습니다). 타국을 떠도는 느낌과 오랜 기간 서로 의지해 온 탓에 아들에 대한 제 정과 의존심은 배로 커졌습니다. 아들은 성품이 온화했고 해외에서의 우리 처지도 잘 이해해 줘 사춘기 특유의 반항도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 아들의 인생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무척 강해져, 수련부터 학업, 직장, 교우 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더 많이 개입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 모든 것을 어머니의 책임이라고만 여겼지, 이런 정과 집착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타지에서 떠도는 처지라 저와 아들의 미래가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 뜻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수련생이 우스갯소리로 “아들이 든든한 지팡이네요”라고 했을 때, 저는 기뻐하기만 했을 뿐 그것이 수련인으로서 아이에 대한 의존심이 너무 강하다는 일깨움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후 우리 난민 정착에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들은 호주로 가고 저는 캐나다로 오게 된 것입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말레이시아에는 유엔에 난민을 신청한 파룬궁수련생이 많았지만, 대부분의 가족은 결국 같은 나라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아들은 서로 다른 나라로 가게 됐는데, 이는 극히 이례적인 데다 거리도 수만 리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한동안 제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고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저는 고통 속에서 온갖 방법으로 저를 출국하게 한 남편을 원망했고, 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한 아들을 원망했습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기 싫은 채 그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자고 싶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감정 속에서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기운을 차렸습니다.

이성은 이 모든 것이 제 수련과 떼어놓을 수 없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겉보기엔 어떤 결정이나 타이밍 때문에 일이 꼬인 것 같았지만, 수련인으로서 마음속으로는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우연은 없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나서야 저는 고통 속에서 깨어난 듯했고, 제 문제를 영화 보듯 되돌아봤습니다. 한 가지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 삶에서 아들의 존재를 너무 무겁게 여겼던 것입니다! 아들이 제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제 ‘지팡이’가 되어주길 바랐습니다! 이 정 때문에 숱한 심성 고비를 겪었고, 사람 구하는 데 써야 할 금쪽같은 시간을 대량으로 낭비했습니다. 몸과 마음이 수없이 지친 끝에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더 이상 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습니다.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자에게 자녀의 정을 제거할 수 있도록 가지(加持)해 주십시오.”

사부님께 간구할 때마다 마음이 조금 담담해지고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반복됐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왜 뿌리 뽑기 어려웠을까요? 집착을 버리려는 출발점이 이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번뇌 속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했고, 모든 것을 개인적 이익을 지키려는 각도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수련생은 교류 중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정법 수련의 기점에 서지 않고 어떤 마음을 없애려고만 하면 무의식중에 개인 수련에 빠지게 됩니다. 기점이 이기적이면 구세력이 우리에게 어려움을 줄 구실이 생깁니다.” 맞습니다! 저는 수년간 아이 문제에 있어 온통 ‘사(私)’라는 글자로 일관해 오지 않았습니까? 내 아들, 내가 그가 어떻게 되길 바라는 것, 내 소원을 그가 이뤄주길 바라는 것, 내가 자녀의 정을 끊어내겠다는 것… 이 모든 것에 ‘나’가 앞장서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진짜 신분은 무엇입니까? 어머니입니까? 아닙니다! 제 첫 번째 신분은 대법제자입니다! 그것도 정법시기 대법제자입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자녀의 정에 얽매여 법공부도 못 하고, 발정념 할 때도 마음이 뒤집히며, 진상을 알리고 싶지도 않을 때, 고심하며 널 제도하시는 사부님 심정은 어떠하시겠는가? 한때 네게 큰 기대를 걸었던 그 생명들은 어찌 되겠는가?’ 이성적으로 깨어 있을 때 수없이 자문하며 마음속으로 거듭 외쳤습니다. “너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야! 너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저는 사부님의 법을 끊임없이 외웠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각지 설법 13-2015년 뉴욕법회 설법)

점차 짙게 깔려 있던 정의 물질이 옅어졌고, 아들을 떠올릴 때 느끼던 씁쓸함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똑똑히 알게 됐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 바로 진정한 자아(眞我)가 정에 휩싸인 가짜 자아(假我)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배척하고 원하지 않는 것이며, 그러면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정의 물질은 한 꺼풀씩 벗겨내지 점차 약해졌습니다. 이제 저는 제 역할을 더욱 명확히 인지하게 됐고, 집착을 버리는 기점이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구도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3.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을 체득하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진상을 알렸고 대법활동에 참여했고 대법항목에 참여했다고 해서 대법을 위해, 사부를 위해 무얼 했다고 여기지 말라. 그것은 사부가 당신들에게 서로 구조(救助)하게 하고, 서로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을 구도하게 한 것인데, 이것은 말후에 중생들이 서로 구하는 것이다.”

아래 몇 가지 작은 이야기를 통해 이 법에 대한 제 작은 깨달음을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이게 말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중국에 있을 때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운전석 창문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호신부(護身符)가 걸려 있었습니다. 박해가 극심하던 2006년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감히 이런 걸 걸어두셨네요?”라고 묻자, 기사는 호탕하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친척이 이걸 배우거든요. 고도 근시였는데 며칠 연마하더니 안경을 벗어버렸어요. 이건 초과학이라 안 믿을 수가 없죠!” 제가 용기 있게 말한다고 칭찬하자 그는 오히려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요, 사실인데 말 못 할 게 뭐 있습니까? 누가 오든 다 말할 수 있어요.”

이 일은 제 마음을 크게 울렸습니다. 기사의 논리는 아주 단순했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을 진실하게 말하는데 두려울 게 뭐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진상을 알릴 때 두려워하며 벌벌 떨던 단계였는데, 사부님께서 한 보통 사람의 두려움 없는 모습을 제게 보여주심으로써 제 두려움과 관념을 없애도록 채찍질해 주신 것입니다.

제 남편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후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제가 남들과 파룬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것입니다. 그 기사의 정기(正氣)가 남편이 중공 악당에 대해 갖던 두려움을 깎아내린 것입니다.

사존께서는 여러 번 인연을 안배하시어 경찰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파룬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말을 저와 남편이 함께 듣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를 고무시켜 수련의 길을 더 당당히 걷도록 격려해줬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조금씩 변했습니다. 진상 듣기를 거부하던 그가 나중에는 아이 담임 선생님께 왜 소선대에 가입하지 않는지 설명하러 가는 길에 저와 동행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대학 시절 반에서 첫 번째로 중공 당원이 되었는데, 자발적으로 악당에 가입했던 그가 나중에 탈당하게 된 것은 위대한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안배 아래 세상 사람들이 릴레이하듯 그에게 진상을 전해준 덕분이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소중한 생명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 여러분의 발자취를 따르겠습니다

해외에서 저는 전화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하루는 한 남성이 전화로 제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제가 “선생님은 선근(善根)이 있으셔서 우리가 선생님을 위해 이렇게 한다는 걸 알아주시네요”라고 하자, 그는 무척 감격해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릴 위한다는 걸 알 뿐만 아니라, 여러분께 배우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모든 걸 하는 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서잖아요. 여러분의 헌신은 많은 사람을 일깨워 여러분을 따르게 할 겁니다.” 제가 그분의 이해에 감사드리자 그분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앞에서 길을 밝혀주는 등대입니다. 저는 여러분 뒤를 따라 그 발자취를 쫓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많은 사람을 일깨웠습니다.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원망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꿋꿋이 해나가면 그들도 깨어날 겁니다.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앞에서 이끌어주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고, 저는 한 평범한 중국인이 깨달은 후 보여준 대의와 이타심에 감동했습니다. 내내 그는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도, 사회를 원망하지도 않았으며, 악당의 기만과 죄악을 이야기할 때조차 분노하지 않고 차분한 어조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오직 이 민족과 아직 깨어나지 못한 동포들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의 말에는 그들에 대한 이해와 아끼는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감탄했습니다. 제가 중생에게 진상을 알린 것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중생의 입을 빌려 제게 일깨움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진상은 입으로 말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선(純善)하고 타인을 위하는 경지로 수련해 낼 때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제 모습에는 종종 조급함과 불만 섞인 감정이 있었는데, 사부님께서 이런 생명을 안배하시어 제가 수련해 버려야 할 것들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중생이 대법제자를 칭찬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제가 사명을 잊지 않도록 격려해주었습니다.

3) 진상을 목격한 옛 수련생

진상 알리는 장소에서 이따금 예전에 대법을 수련했던 옛 수련생들을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은 파룬궁을 보면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습니다. 놀라는 사람, 감격하는 사람,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관광단 일행을 피해 어떻게든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그들은 여러 이유로 수련을 포기했지만,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엔 대법의 뿌리가 내려 있어 진상 게시판을 응시하며 소리 내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무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그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을 보며 저는 ‘해외의 자유로운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더욱 굳게 다짐하게 됩니다.

한 여성은 자신과 어머니가 1999년 이전에 대법을 배웠는데, 박해 이후로는 감히 연마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곳은 워낙 외진 곳이라 수련생을 만나본 적도 없고 파룬궁이 아예 자취를 감춘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제 손에 있는 자료를 보더니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 어떻게 수련생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잠시 후 어떤 남자가 다가와 그녀를 끌고 갔지만, 그녀는 몸은 끌려가면서도 고개는 계속 우리 쪽을 향한 채 오랫동안 애틋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아주 멀리 걸어갔음에도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이 옛 수련생들을 해외로 이끌어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모습을 보게 하신 것은, 어쩌면 그들이 수련의 길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신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대법 진상을 보며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가길 갈망하던 그들의 눈빛 역시 제가 진상 알리는 장소를 꿋꿋이 지키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감동적인 장면은 이 밖에도 수없이 많습니다. 제게 억지로 음료수를 쥐여주던 관광버스 기사, 제 손을 잡고 울먹이던 중국 수련생의 가족, 어머니는 저를 내쫓았지만 아들은 몰래 저를 찾아와 탈당하던 중국인 관광객 등……. 그 생생한 표정 하나하나가 제 기억 속에 저장되고 가슴에 새겨져 수련의 길을 나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나태해질 때, 심성 고비를 넘지 못해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저는 똑똑히 압니다. 제가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으면 사부님의 안배를 저버릴 수도 있고, 제 기억 속에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얼굴 하나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수없이 나갈까 말까 마음속으로 실랑이를 벌이다가도, 어쩌면 단 한 번뿐일 그 만남을 떠올리며 저는 억지로라도 집을 나섰습니다.

아주 신기하게도 이런 상태로 진상 알리는 곳에 가거나 심지어 가는 길에서도 특별히 인연 있는 중생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대법 진상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거나, 아니면 진상을 너무나 알고 싶어 합니다. 심지어 “오늘은 그 얘기 들으려고 일부러 왔어요”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우연한 만남’은 마치 제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습니다. ‘만약 그날 내가 집을 나서지 않았다면 그들과 만날 인연을 놓쳤을 것이다.’ 이런 경험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무척이나 경이롭습니다!

저는 우연이 없음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사존께서 제가 사람의 마음에 얽매여 자아의 득실을 따지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중요한 순간마다 이런 생명을 안배하시어 저를 일깨우고 깨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바로 이런 한 장면 한 장면이 제게 책임감을 되찾아주었고, 말레이시아의 뙤약볕 아래서 진상 알리는 곳을 8년이나 지키게 해 주었습니다. 이 8년은 대법의 인도가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을 것이며, 생명이 구원받은 기쁨을 직접 느끼지 못했다면 고생을 꽤나 두려워하는 저로서는 하루하루, 해마다 이어가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존의 ‘험악(險惡)을 멀리하라’ 경문을 받들어 읽으며, 사존께서 말씀하신 ‘중생이 서로 구한다’는 것에 대해 제 층차에서의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는 동시에 중생 역시 우리를 아주 많이 도와주었고,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우리를 성취시켜 주고 있습니다. 수련 중에 얻은 것은 우리가 치른 대가를 훨씬 뛰어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용해 제자에게 위덕을 세워주시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수련할 기회를 제공하도록 안배하셨습니다. 대법제자와 중생은 서로 돕고 구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자신이 해온 모든 일에 대해 조금의 자만심도 가질 이유가 없으며, 그 어떤 생명도 결코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제자로서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자를 위해 수련의 길을 닦아주신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길에서 대법제자를 성취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준 중생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2026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9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3/51384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3/513847.html

© 1999-2026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