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명월(明月)
[명혜망]

조자룡이 아두를 구출하다. 1990년 기념 우표(iStock)
굽이치는 장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물보라에 뭇 영웅들 모두 사라졌네
시비와 성패는 고개 돌리면 그만인 것을
청산은 예나 다름없건만 붉은 석양은 몇 번이나 지고 떴던가
강가 모래톱의 백발 어부와 나무꾼, 가을 달과 봄바람 보는 것에 익숙하네
막걸리 한 병에 기쁘게 마주 앉아
고금의 크고 작은 일들, 모두 웃음소리 속에 실어 보내네
많은 사람이 알다시피 이것은 명(明)나라 문학가이자 명나라 제일의 재자(才子)로 불리는 양신(楊愼: 자는 용수, 호는 승암, 1488~1559)이 쓴 ‘임강선(臨江仙)·굽이치는 장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라는 사(詞)다. 훗날 청(淸)나라 초기의 문학 비평가 모종강(毛宗崗: 천곡노인)이 평하고 고쳐 현대 통용판(모종강판이라고도 함) ‘삼국연의(三國演義)’의 서두에 쓰이면서 매우 높은 오성과 인생의 경지를 보여줬다. 많은 사람이 이 사가 보여주는 풍경의 아름다움, 즉 호방함 속의 함축미, 고조됨 속의 깊이, 천지의 색채, 계절의 변화, 술기운에 실어내는 담박하고 평온한 정취를 흠모하며, 반복해서 읽다 보면 늘 입가에 향기가 맴돌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초범탈속(超凡脫俗)한 고대 작품이 ‘로맨스 소설’에 의해 왜곡 해석돼 한 세대의 소년 소녀와 그 자자손손까지 오도하고 있다. 아래에 간략히 분석하고 논의해 보겠다.
1. 원문의 탈속과 초탈의 경지
이 사의 정수는 거시적인 우주의 시각으로 짧은 인간 세상의 집착을 녹여내 지극한 활달함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서두의 ‘굽이치는 장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 물보라에 뭇 영웅들 모두 사라졌네’는 드넓은 강물과 짧은 생명을 교차시켰다. 우주의 기나긴 강물 앞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호걸이든 세상을 놀라게 한 크나큰 업적이든 결국 물보라처럼 사라지고 만다. 이것은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대비다.
‘시비와 성패는 고개 돌리면 그만인 것을’이라는 구절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신경 쓰는 평생과 한때의 성패와 득실을 철저히 간파한 것이다. 이기면 어떻고 지면 또 어떠한가? 역사의 수레바퀴는 구르고 굴러 앞으로 나아가고, 모든 권력과 투쟁은 결국 허무로 돌아간다. 이것은 가치관 차원에서의 철저한 해탈이자 세속을 초월한 것이다.
‘청산은 예나 다름없건만, 붉은 석양은 몇 번이나 지고 떴던가’는 냉정하고 영원한 자연경관으로 인류 운명의 무상함을 반어적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어부와 나무꾼, 은사는 ‘가을 달과 봄바람 보는 것에 익숙하네’라며, 세월의 흐름을 낯설지 않게 여기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담담함으로 내면화했다. 이것은 자연으로 돌아가고 천인합일(天人合一)하는 평온함이다.
결말의 ‘막걸리 한 병에 기쁘게 마주 앉아, 고금의 크고 작은 일들 모두 웃음소리 속에 실어 보내네’는 무수히 무거운 역사의 은원(恩怨)과 정치의 흥망성쇠를 몇몇 오랜 친구들의 맑은 차와 묽은 술 사이에서 웃음에 부치며, 집착하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가볍고 담담하게 넘겨버린다.
2. 로맨스 소설의 흔한 오도와 반차
이에 비해 일반적인 통속 로맨스 소설은 흔히 미시적이고 이성을 잃은, 심지어 변태적이고 패륜적인 감정의 얽힘에 초점을 맞춘다. 만약 그것을 이 사의 본래 경지와 비교한다면, 종종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인식상의 오도를 낳게 된다.
1) ‘집착’을 ‘깊은 애정’으로 오도
로맨스 소설은 종종 ‘사랑하지만 얻지 못함’,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음’ 또는 ‘뼈에 사무치는 애증’을 비할 데 없이 위대하게 과장하며, 이것이 생명의 모든 의미라고 여긴다.
원문을 되새겨 장강과 석양의 시각에서 보면 개인의 정애(情愛)의 얽힘은 역사의 탁류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것없다. 사람의 일생에서 한때의 감정적 곤경을 무한히 확대하고 심지어 평생을 바치는 것은, 바로 시사(詩詞)에서 비웃는 융통성 없음과 완고한 집착이다.
장강은 양쯔강(揚子江)이라고도 불리며 애초에는 양저우에서 전강(鎭江)에 이르는 강줄기를 의미했다. 장강의 총길이는 6300km로 본류는 칭짱고원 동부 탕구라산맥 겔라단둥봉에서 발원해 중국 서남부(칭하이, 티베트, 윈난, 쓰촨, 충칭) 5개 성과 중부(후베이, 후난, 장시) 3개 성, 동부(안후이, 장쑤) 2개 성을 가로지른다. 이 10개 성을 지나 상하이에서 동해로 흘러든다.
장강과 황하는 중화 문화의 어머니 강으로 병칭되며 장강 문명과 황하 문명을 잉태했다. 이런 체급과 스케일은 개인의 한때 정애와 결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인생 백 년, 아무리 깊은 정이라도 짧은 것이며, 하물며 극단적인 사랑은 쉽게 원망과 증오로 격화되기 마련이다.
‘낭만’이란 무엇인가? 송(宋)나라 사람 소식(蘇軾)은 ‘맹진(孟震)과 함께 상주(常州) 승사(僧舍)에 노닐며’라는 시에서 “최근 들어 더욱 이생이 뜬구름 같음을 깨달아, 삼오(三吳) 지방을 이리저리 낭만스레 떠도네”라고 썼다. 이 문호의 마음속에 낭만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제멋대로 구는 자유분방함이다. 후인들은 이 두 글자를 시적이고 환상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과장했고, 나아가 사생활을 햇빛에 드러내기 부끄러운 문인들은 이 단어를 남녀 관계의 풍류와 행동의 방탕함을 묘사하는 데 사용하며 크게 선전하고 추앙했다. 오늘날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이혼, 한부모 가정, 불륜 등의 씨앗은 오늘에야 뿌려진 것이 아니다. 단지 오늘날 더 많은 사람이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일상으로 치부하게 됐을 뿐이다.
2) ‘성패 득실’을 세상의 중심으로 간주
로맨스 소설은 종종 주인공의 가학적 사랑과 원한, 신분 지위의 변화(예를 들어 내연녀의 득세, 재벌가 은원 속의 승패)를 극의 절대적 핵심으로 삼아 ‘사랑 혹은 지위를 잃으면 세상 전부를 잃는 것과 같다’는 불안감을 조성한다.
원문을 되새겨 보면 드높은 청산 아래와 눈부신 석양 아래에서 이른바 애증과 원한, 권력 투쟁은 그저 바다의 좁쌀 한 알일 뿐이요, 고개를 돌리면 헛것이 되는 물속의 달이자 거울 속의 꽃이니, 얻은들 어떠하고 잃은들 또 어떠한가? 청산은 예나 다름없고 해는 여전히 뜬다. 그러나 정상적인 남녀 관계가 아닌 가학적 사랑과 계략에 빠지면 생명의 진실함, 선량함, 관대함을 잃게 되고, 결국 자신(자신의 본심과 진정한 천성)을 버리는 것이다.
3) 천지와 시간에 대한 경외심 부족
로맨스 소설은 대부분 당장의 떠들썩함과 애증의 교차를 묘사하는 데 열중할 뿐 거시적인 시간의 깊이가 없다. 원문의 정취를 되새겨 보면 양신의 사는 제3자의 눈으로 인생의 부침을 바라보며,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질구레한 감상에 빠져 내면을 소모하느니, 강가의 어부와 나무꾼처럼 비바람 치는 세월을 막걸리 한 잔의 담소로 바꾸어 바람에 날려 보내고, 감정의 짐이나 삶의 무게, 인생의 집착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는 편이 낫다.
3. 우주관
요약하자면 ‘굽이치는 장강물은 동쪽으로 흘러가고’라는 이 사가 그려낸 것은 인생을 굽어보는 역사의 큰 지혜로, 무상함 속에서 내면의 평온과 탈속의 우주관을 유지하도록 깨달음을 준다. 반면 로맨스 소설은 불가피하게 이에 빠져든 독자, 특히 세상 물정에 어둡고 아직 삶의 시련을 겪지 않은 소년 소녀들을 작은 소라 껍데기 속에 가두고, ‘옹고집을 부리는 것이 일편단심이다’, ‘사랑이나 이별은 전적으로 개인의 감정에 달렸다’는 잘못된 관념을 기르게 한다. 또한 짧은 욕망과 집착을 규범으로 삼아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마땅히 있어야 할 인연의 기초와 도덕적 지침을 잃게 한다.
감히 말하건대 많은 로맨스 소설이 사람의 심신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은 마치 정신적 마약과 같아서, 무방비 상태에서 중독되게 해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한다. 설령 인연이 닿은 사람을 만났다 해도 그와 어울릴 때 편견과 고집을 부리기 쉬워 자신의 복덕과 선연을 해치게 된다.
어떤 마약이든 거기에 빠져든 사람, 특히 이런 정신적 마약으로 타인을 오도하는 작가들은 생전과 사후의 금전 및 명예 등 이익이 아무리 한때 성황을 이뤘다 해도 결국 제명에 죽지 못하고 가문에 무궁한 후환을 남긴 사례가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탄식을 자아내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며, 타산지석이자 역사의 교훈이다.
굽이치는 장강물은 영웅을 씻어내고 진흙과 모래를 씻어내며 동해, 즉 저 해외의 선산(仙山)과 불로장생의 피안으로 도도히 흘러든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우주는 넓고 끝이 없건만, 과연 몇 사람이나 세상 밖의 선산을 찾았던가? 몇 사람이나 속세의 인연을 끊고 피안에 올랐던가?
원문발표: 2026년 8월 26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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