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농민: 세계 공장의 대가, 중공의 무료 자산

글/ 소가(蕭歌)

[명혜망] 1인 미디어에서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주장 중 하나는 지금 중국이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이며,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향상됐고, 산업이 발달했으며, 고속철도가 편리하고, 과학 기술이 도약했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말해 확실히 그렇다. 중국 도시에는 차가 붐비고 고층 건물이 숲을 이루며 서구 국가와 거의 차이가 없다. 심지어 서구는 중국의 저렴하고 다양한 공산품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화려함과 현대화가 하층민 중국인들의 생활 상태와 같은 것은 아니며, 이 둘 사이에는 오랫동안 무시돼 온 거대한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중국인에게 ‘농민공’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린다. 수십 년간의 대규모 산업화 과정에서 수억 명의 농민이 도시로 진출해 일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왜 다른 현대 국가에는 ‘농민공’이라는 신분이 없는지, 왜 같은 산업 노동자이자 건설자인데 중국의 ‘농민공’만 오랫동안 도시의 사회보장과 정규 퇴직 복지에서 배제돼 왔는지 거의 반성하지 않는다.

서구의 식자들은 중국의 지난 30년 경제 기적이 본질적으로 “(중공) 체제가 국민에 대한 속박을 줄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유재산권을 허용하고 시장 메커니즘(WTO 가입)을 도입하며 수억 명의 저렴하고 근면한 ‘농민공’이라는 노동력 보너스를 방출했기에 생산력이 폭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중공)은 선전 속에서 중국 인민이 땀 흘려 이룩한 부의 축적을 오직 ‘당의 영도하’에서만 실현될 수 있는 ‘태평성대’로 포장한다. 중공은 스스로를 중국 인민의 위대한 구원자이자 대표라고 자처한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식자들은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점을 갈수록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다.

‘세계 공장’은 누가 유지하고 있는가

중공국은 ‘세계 공장’으로 불리며, 그 주인공은 중국 농민이다. 중국 농민은 당에 의해 ‘농민공’으로 불리는데, ‘농민공’은 중공이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 전역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진정한 의미의 ‘노동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노동자는 정상적인 복지와 퇴직 보장을 받지만, 중국에서 정상적인 복지와 퇴직 보장을 받는 ‘노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생산 라인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노동자는 누구인가? 바로 중국 농민이다. 그들은 ‘하청 노동자’, ‘임시직’으로 불리며 정상적인 복지와 퇴직 보장을 받지 못한다. 중공 공식 통계에 따르면 전국 농민공 총수는 3억 115만 명에 달하며, 그중 60세 이상 노인이 1억 6,800만 명에 이른다. 이는 잔인한 수치다. 왜 그럴까? 자금 사용의 우선순위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농민과 도시 주민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단지 직종이 다를 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예를 들어 대만 농민은 도시 주민과 마찬가지로 은퇴 후 매월 8,110대만달러(약 35만 원)의 연금을 받지만, 중국의 은퇴 농민은 어떤가? 매월 163위안(약 3만 5천원)으로 대만의 9.6%에 불과해 기본 생활조차 유지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개인이 큰 질병이나 재난에 부딪혔을 때, 가장 기본적인 인도주의에서 출발해 평안한 사회라면 마땅히 사회적 약자에게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명과 생존을 보장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노인의 경우,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가라도 노인이 암 치료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지 않도록 하는 공공 대응책이 마련돼 있다.

대만의 경우를 예로 들면, 농민이 암 등 30가지 ‘중증 상병’에 걸리면 의료비를 전액 면제받는다. 일반인도 입원 시 ‘개인 부담 상한선’이 있어 개인의 연간 누적 입원 자부담금이 약 6.5만~7만 대만달러(약 300만 원)를 초과하면 정부가 전액 부담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환자가 중병으로 인해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중공이 자칭하는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에서 중국 농민이 암에 걸리면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것은 ‘의료보험 목록 내’ 일부일 뿐이며, ‘의료보험 목록’ 외의 ‘비급여 약’은 상한선이 없어 쓴 만큼 돈을 내야 하고 환급도 불가능하다.

즉, 대만의 건강보험은 중병에 대해 중증 상병 면제와 연간 자부담 상한선을 두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비급여 약이라는 심연이 무수한 일반 가정을 질병으로 인한 빈곤과 거액의 빚더미로 몰아넣는다. 많은 중국 농민은 천문학적인 청구서 앞에서 결국 어쩔 수 없이 치료를 포기하는 길을 선택한다.

눈뜨고 볼 수 없는 참상: ‘가장 믿을 수 있는 세 아들’

중국의 인구가 많아서 돈이 부족한 것인가?

중공국은 이미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연간 경제 수입이 20조 위안에 달한다. 하지만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에서 체제 유지비, 국방 예산, 해외 ‘일대일로’ 및 각종 대외 원조에 투입되는 자금은 걸핏하면 수조 위안이나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 만약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배려에 기초해 중앙 재정이 전액 부담하여 핵심 농촌 인구의 중병 입원 자부담 부분을 면제해 준다면, 1인당 연간 1천 위안의 ‘중병 비급여 특별 지원금’을 추가한다고 계산해도 2억 명의 핵심 농업 인구를 위해 연간 2천 억 위안만 있으면 된다. 이는 총수입 20조 위안의 1%에 불과하다.

거대한 프로젝트 중 어느 하나에서 조금만 ‘짜내도’ 이 돈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1%의 제도적 온정은 지금도 중국에서 여전히 당연하다는 듯이 결여돼 있다.

우한대학 사회학과 강사 류옌우(劉燕舞)가 6년에 걸쳐 후베이, 산둥, 장쑤 등 11개 성을 심층 답사한 후 발표한 ‘농촌 노인 자살에 대한 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중국 농촌 노인의 자살 현상은 “이미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일부 농촌 지역의 자살률은 엄청나게 높아 “최소 30%라는 것도 보수적인 추정”이라고 한다. 이 엄혹한 사회학 현장 조사 데이터는 의도적으로 미화한 시골의 전원적인 상상을 깨뜨리고, 고령화 물결 속에서 중국 농촌의 제도적 부양 상실이라는 극단적인 곤경을 직시하게 한다.

조사 과정에서 어느 농촌 지역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떠도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 지역 노인들에게는 모두 세 아들이 있다. 약 아들(농약 마시기), 밧줄 아들(목매기), 물 아들(물에 뛰어들기)이다. 그들의 눈에는 이 세 아들이 가장 믿음직스럽다.”

후베이의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 마을의 대부분 노인은 농약을 마시고 떠났다.” “우리 할머니, 사촌 동생의 할아버지, 앞집 할머니, 대각선 앞집 할머니, 이웃집 할아버지… 많은 분이 그렇게 가셨다.” 살길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중국 농민들이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차분하게 자살로 향하는 것을 학계에서는 ‘참혹하다’고 묘사한다.

왜 정부 수중에 돈이 많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수억 명에 달하는 중국 농민의 기본 생존과 의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가? 1949년 중공이 정권을 찬탈한 이래, 중국 농민은 1950년대부터 줄곧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지금껏 그래왔다. ‘지주를 타도하고 땅을 나누자’라는 구호는 농민을 이용해 정권을 탈취하기 위한 수단이자 선전에 불과했다.

공산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동물이자 노동 도구이며 목숨은 개미와 같다. 어떤 이들은 지금 ‘빈곤 퇴치’가 있지 않냐고 묻는다. 있긴 하지만, 그것은 노(老)·소(少)·변(邊)·궁(窮) 지역(‘혁명 근거지’ 등을 지칭)에 국한되며 엄격히 구분된다. 그러나 정작 빈곤선 밖에 있다고 규정된 정상적인 농촌(후베이, 허난, 산둥 등)은 홀로 남은 노인들의 생존 조건 부재, 전통적인 효도의 붕괴, 중병에 대한 공공 안전망 부재 등에 직면해 있다. 이런 문제들은 매우 일상화돼 종종 ‘가벼운’ 사회 문제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농촌 노인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고질적인’ 요인이다. 그럼에도 중공은 역사적으로 남겨진 문제, 도농 이원 체제 등의 핑계를 대며 오랫동안 농촌 노인들의 생명을 외면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 정권조차 통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자국 농민을 ‘피와 흙’의 정권 기반으로 여기고 그들에게 자본의 착취를 피할 수 있는 토지 보장과 기본 사회 복지 마지노선을 제공했다. 그러나 공산당에게 인도주의는 철저히 버림받았다.

그들의 살길은 왜 박탈당했는가

억대에 달하는 하층민들이 ‘병이 들어도 치료받지 못하고, 늙어서도 부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심지어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만약 국가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으면서도 실생활에서 많은 이들에게 몸과 마음의 건강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전통 수련법이 나타났다면, 어째서 관용과 격려를 받기는커녕 수십 년에 걸친 가혹한 탄압을 불러왔을까?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단순한 의료나 경제의 논리를 벗어나 사회 통제, 정치 체제, 이데올로기라는 심층 구조에서 바라봐야 한다.

고도로 집중화된 체제하에서 당국은 정치, 경제, 여론 자원을 장악할 뿐만 아니라 민중의 정신세계와 조직 형태에 대한 절대적인 통제력을 구축하려 한다.

중국에서 일부 농촌 노인들은 국가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자발적으로 연공하여 건강을 되찾았지만, 오히려 중공의 잔혹한 탄압을 받았다. 예를 들어, 지린성의 왕야친(王亞芹)은 2004년에 좌측 폐에 3.3×3.5cm 크기의 종양이 생겨 5차례 화학요법을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고 암세포가 이미 전이됐다. 농촌의 언니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우연히 이웃에게서 파룬궁 수련에 대해 듣게 됐고,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그녀의 몸은 기적적으로 호전됐다. 땅을 딛고 걸을 수 있게 됐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달 후,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 마을 사람 모두가 그녀의 회복을 직접 목격했다. 하지만 한 달 후, 중공 경찰은 왕야친을 납치하고 수련을 금지했다. 왕야친은 신앙을 견지하며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2020년 그녀는 또다시 중공에 납치돼 부당하게 5년 반형을 선고받았다.

중공 통치하에서 ‘진선인(眞·善·忍)’을 따르며 자신을 이롭게 하고 가정과 사회에 유익한 파룬궁수련자들은 오히려 27년간 잔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박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에 파악된 바에 의하면, 중공에 의해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은 중국 파룬궁수련자는 최소 279명이며 그중 142명이 60세 이상의 노년 파룬궁수련자로 51%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는 60~69세가 77명, 70~79세가 50명, 80~89세가 14명, 90세 이상이 1명이었다.

명혜망 보도에서는 매일 수많은 수련자가 연공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얻은 사례를 볼 수 있다. 1999년 1월 1일부터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일 이렇다. 명혜망 검색창에 ‘파룬궁수련자 병 호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73,989’건이 검색되며, 중복된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유효한 실제 사례가 매우 많다. 중공이 부양하기 꺼리는 노인들, 중병을 감당해 줄 의료 제도도 없고 양로금도 없는 상황에서 벼랑 끝에 몰려 살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 아닌가? 왜 굳이 박해해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하층민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 생존 보장에 대한 공공 재정의 장기적 부재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존의 곤경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민간의 자발적인 구제 수단에 대한 가혹한 차단이 있다. 이 두 가지가 겹쳐지면서 결국 벼랑 끝에 몰린 많은 하층민, 특히 중국 농민을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자기 집의 기초를 파먹는 국가는 비록 ‘태평성대’라 불린다 할지라도, 그것은 공산 특권층과 기회주의자들의 태평성대일 뿐, 결코 중국 인민(특히 중국 수억 명의 농민)의 태평성대는 아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1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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