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6년 대법이 저의 고향에 널리 전해졌고 우리집 식구 3명이 차례로 법을 얻어 수련했습니다. 그때 우리 시(향진 포함)에는 3천여 명이 파룬궁을 수련했고 많은 연공장에 수련생들의 아침 연공 모습이 보였습니다.
1999년 장쩌민 깡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우리집은 여전히 대법을 굳게 믿었습니다. 남편은 현지 보도소장이었기에 공안의 주요 납치 대상이었습니다. 20여 년의 비바람 속에서 남편은 8년간 강제로 떠돌이 생활을 했고 이후 불법적인 8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저는 4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고 2년간 불법적인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아이는 잇달아 두 번 납치돼 약 3~4개월간 강제 구금당했습니다. 우리가 붉은 공포의 피비린내 나는 환경하에서도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이었습니다.
1. 자재 이동
2006년 9월 30일 헤이룽장성 공안청에서 일제히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했습니다. 당일 남편은 성도(省都)에 가서 자재를 샀고 저녁 5시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수련생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밤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열지 말라며 납치 움직임이 있을 수 있고 무단 침입해 강탈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왔을 때 공동주택 입구에 한 차 가득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에는 사복경찰인 줄 몰랐습니다. 집 안에는 ‘9평 공산당’ 2천 권과 대법서적, 소책자, 자재 등이 있었는데 어떡합니까? 우리는 즉시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신속하게 종이상자에 포장했고 남편이 삼륜차로 다른 수련생 집 창고로 옮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도 미행하지 않았으며 총 세 번을 옮겼습니다. 상식적으로 공동주택 입구에 한 차 가득 사람이 있었으니 진작에 발견됐을 텐데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대법 자료를 보호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사부님께서 보시고 덮어주셨기에 그들이 아예 보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남편이 다 옮기고 돌아왔을 때 사복경찰이 차 안에서 남편을 향해 악의적으로 웃었는데 동시에 남편 머릿속에 ‘너 아직도 까불고 있네, 내일 널 붙잡을 거야’라는 그의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2. 절묘하게 위험에서 벗어나다
남편은 돌아와서 저에게 밖에 있는 차 안에 정말 경찰이 있는 것 같으니 서둘러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말했습니다. “내가 먼저 나가서 그들을 따돌릴 테니 당신은 기회를 봐서 빠져나가요. 이렇게 오랜 세월 당신은 한 번도 안 잡혔으니 그들에게 잡히면 안 돼요. 나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괜찮아요, 안심해요.”
당시 노트북 4대가 있어서 우리 둘이 각각 2대씩 메고 저는 오토바이를 가지러 차고로 직행했습니다. 우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원래 잠그지 않던 공용 차고에 이미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때 사복경찰 한 명이 차에서 내려 저를 바짝 뒤따라오며 “여자가 나왔는데 잡을까요?”라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는 다시 돌아가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남편이 이미 떠난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으며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제가 경찰을 따돌린 그 몇 분 사이에 남편은 사부님의 보호하에 경찰의 시선을 피해 주거단지 남문으로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남편이 위험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어떻게 갈 것인지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없었고 단지 사부님께서 계시면 무사할 것이고 틀림없이 된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 남편이 절묘하게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3. 저는 택시를 탄 사람이고 기사님은 운전한 사람입니다
제가 ‘어떻게 빠져나갈까?’라고 생각할 때 머릿속에 앞집에 택시가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앞집 동생에게 볼일이 있어 그 택시를 타고 나가려 한다고 말했더니 그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단지를 나섰고 그는 저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습니다. 당시 저는 목적지 없이 정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고 나중에 오빠 집으로 먼저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를 나설 때 사복경찰에게 발견됐고 그들은 즉시 차를 몰고 뒤를 바짝 쫓아왔습니다. 중간에 택시 기사가 어떤 차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기사가 저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 파룬궁은 부처 수련을 하는 것이고 불가(佛家) 고덕대법(高德大法)이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인데, 그들이 좋은 사람을 잡아가려 하고 수련을 못 하게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사에게 진상을 알리며 남편이 위암으로 3분의 2를 절제했지만 다 나았다고 말해주었고 기사는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때 오빠네 주거단지에 도착했고 이미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뒤차의 전조등이 우리 차 안을 직접 비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5위안을 꺼내어 뒤에 있는 사복경찰이 똑똑히 볼 수 있게 고의로 펼쳐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두려워할까 봐 저는 “저는 택시를 탄 사람이고 기사님은 운전한 사람입니다. 제가 기사님 차를 탔을 뿐 기사님과 아무 상관이 없으니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말을 마치고 저는 바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4. 놀라기는 했으나 위험하지 않아
오빠네 단지 입구에 도착해서 저는 경찰차가 차를 돌리느라 저를 보지 못한 틈을 타 단지 경비실로 들어갔습니다. 경비원은 노부부였는데 예전에 오빠 집에 왔다가 알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에 잠깐 숨어 있겠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어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인데 밖의 차가 저를 잡으러 온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파룬궁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달라고 했고 저는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며 선(善)을 닦는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또 아주머니에게 제 남편이 위암 수술 후 병원에서 2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는데 지금 10년이 지났어도 아주 건강하며 파룬궁이 몸을 건강히 하는 데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아저씨도 돌아와서 제가 다시 이야기해주자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을 잡아서 뭣 한담? 병도 다 낫고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잘못이 없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두 사람에게 호신부(護身符)를 각각 하나씩 주자 그들은 모두 진상을 깨닫고 “괜찮으니 여기 머물러요”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고 그들에게도 신의 도움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마음이 놓이지 않아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동정을 살폈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경찰차가 또 늘어났고 7~80명 정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저녁 7시가 넘어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줄곧 단지 밖을 지켰고 수시로 단지 안에 들어와 수색했으며 경비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발자국 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방 안에서도 또렷하게 들렸지만 끝내 경비실 안으로 들어와 수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장악 속에 있었습니다.
5. 지하실에 숨다
한밤중 1~2시경, 아저씨가 두려워하며 경찰이 갔는지 보러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사람이 또 늘어났고 이제 떠날 수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반드시 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불안해하는 것을 보고 숨을 곳이 있는지 물으니 그는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즉시 책상을 옮기고 책상 아래 장판과 널빤지를 열며 배관을 수리할 때 쓰는 곳이라고 했는데 제가 보니 딱 좋았고 그는 저를 아래로 내려보냈습니다. 이 배관 입구 너비는 1m 정도였고 깊이가 2m가 넘었는데 안에는 배관이 있었고 아주 넓었습니다. 제가 안에서 4~5시간을 머물렀는데 어둡고 추웠습니다. 아저씨는 아주 선량해서 안에 산소가 부족할까 봐 수시로 열고는 “괜찮아요? 소리 좀 내봐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괜찮다고 하자 그는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는 다시 책상을 원위치로 돌려놓았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습니다. 그는 “산소 부족으로 숨이 막힐까 봐 걱정돼서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안의 공간이 넓어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나는 무서워서 여기 못 있겠으니 갈게요. 이러다 범인 은닉죄가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 정념(正念)이 있어서 “아무 일 없을 테니 당신은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는 아침 5~6시쯤 다시 돌아와서 “마음이 안 놓이네요, 저 밖의 거리가 온통 경찰차라 갈 수가 없는데 어떡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더는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싶지 않았고 그들을 배려해야 하며 계속 무서워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오빠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제가 “저를 위로 끌어올려 주세요”라고 하자 아저씨가 저를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6. ‘고모 사부님께서 고모를 구하러 오셨어요’
오빠 집은 4층이었는데 제가 그들에게 복도를 청소하러 가는 척하며 복도에 경찰이 있는지 살펴봐 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감히 가지 못했고 아주머니가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돌아와서 경찰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노트북을 메고 경비실에서 나와 오빠가 있는 공동주택으로 가려면 대문을 지나야 했는데 저는 경찰차를 보았지만 그들은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저는 사부님의 보호하에 순조롭게 오빠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상황을 설명하자 조카는 “제가 나가서 경찰이 얼마나 있는지 볼게요. 제가 나오라고 하면 그때 나오고 나오지 말라고 하면 나오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오빠, 올케, 조카, 조카며느리는 모두 진상을 알고 대법에 공감하며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저의 파룬궁 수련을 아주 지지했습니다. 조카는 돌아와서 “지금 가는 건 아직 안 되니까 일단 여기 계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도 여기에 계속 머물 수는 없어, 우리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실 거고 내가 위험에서 무사히 벗어나도록 보호해주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조카가 갑자기 “고모, 고모 사부님께서 고모를 구하러 오셨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어디 계시냐고 묻자 그는 “보세요, 이거 아닌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손으로 창문 밖의 큰 널빤지를 가리키며 여기에 한 번도 널빤지가 없었는데 오늘 특별히 고모를 위해 놓은 널빤지라며 고모 사부님께서 고모를 구하러 오셨다고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알고 보니 오빠네 건물 2층에는 큰 공용 테라스가 있었고 그 테라스에서 창고 지붕으로 뛰어넘어갈 수 있었는데 그 널빤지는 창고와 옆에 새로 지은 단지 사이에 놓여 있었고 거리가 2m 정도였습니다.
당시 저는 어찌나 흥분되던지 정말 사부님께서 저를 구하러 오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즉시 노트북을 메고 널빤지를 지나 창고 지붕에 도착했습니다. 세 사람이 지붕을 수리하고 있다가 저에게 뭘 하러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이곳 건물을 사서 한번 보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저는 새로 지은 건물 단지로 넘어갔습니다.
농민공들이 모두 쉬고 있다가 저에게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나갈 수 있는 문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들은 저쪽에 대문이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경찰 한 명이 마침 입구에 앉아 구두를 닦고 있어서 저는 다시 물러났습니다. 그때 폐품을 수거하는 사람이 보였고 저는 그에게 “동생, 내가 허리가 불편해서 그런데 나가서 택시 한 대 좀 잡아줄 수 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즉시 승낙했습니다. 10여 분이 지나자 택시가 왔습니다. 제가 기사에게 허리가 불편해 뒤에 누워가야겠다고 말하자 그는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시누이 집으로 갔습니다.
7. 겹겹의 포위와 추격
다음 날은 바로 10월 1일이었고 딸이 방학을 맞아 돌아와 시누이 집으로 왔습니다. 남편은 시누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제가 잡히지 않은 것을 알고는 저와 딸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우리 둘은 감히 터미널에서 차를 타지 못하고 도매 시장에서 아주 가까운 성도로 가는 길에서 차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이미 도시 전체에 계엄령이 내려졌고 그곳도 경찰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때 경찰차 한 대가 다가와 우리 곁을 지나간 후에야 경찰이 우리를 발견했고 우리는 큰 시장 쪽으로 뛰었습니다. 경찰차는 방향을 돌리지 않고 큰 시장의 다른 쪽으로 가서 우리를 막으려 했습니다. 시장 입구에 큰 돌사자 한 쌍이 있어서 우리는 즉시 사자 뒤로 숨었고 경찰차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다시 재빨리 도로로 뛰어 돌아왔습니다. 그때 마침 성도로 가는 차가 왔고 사부님의 보호하에 우리는 순조롭게 차에 탔습니다. 저는 ‘이렇게 절묘한 안배는 오직 신만이 해내실 수 있는 거구나!’라며 감탄했습니다.
성도에 도착한 후 우리는 터미널에서 내리지 않고 중간에 내려서 도로에서 외지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차가 이미 1시간 넘게 연착됐고 저녁 5시가 넘었습니다. 차에 오를 때 차주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터미널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한 명씩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운이 좋았습니까, 사부님의 보호하에 하나 또 하나의 수색을 피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거리가 온통 총을 든 폭동 진압 경찰로 가득 찬 것을 보았고 그때 차에 탄 사람들을 모두 내리게 해 검사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두려워하지 마, 사부님께서 계시니 우리 발정념을 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내리지 않고 그곳에 앉아 정념을 발했습니다. 경찰이 차주에게 다 내렸느냐고 묻자 다 내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3~4명의 경찰이 차에 올라와 살펴보았지만 사부님의 보호하에 우리를 보지 못하고 내려갔습니다. 정말로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홍음2-사도은]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조롭게 다른 성에 도착해 남편을 만났고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았으며 우리는 신속히 현지의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거대한 흐름에 합류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속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해 보니 눈에 선하고 아슬아슬하며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듯했습니다. 만약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정말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경찰력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을 상대했으니 그들이 보기에 제가 그야말로 날개가 있어도 날아가기 어려웠겠지만 저는 그들의 눈앞에서 사부님의 보호하에 겹겹의 고비를 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20여 년 수련의 한 단편이자 하나의 축소판일 뿐이며, 이처럼 사부님께서 거센 물결을 되돌리시고 위기를 평안으로 바꾸시어 귀신을 울린 경험이 정말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어려운 환경하에서도 반드시 사부님을 믿고 법을 믿어야 하며, 어떤 고난 앞에서도 반드시 먼저 남을 생각하고 이타적이고 남을 위하는 선량한 마음을 닦아내야만 비로소 수련인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할 수 있으며, 사부님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와 가족을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광대한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정법시기가 이미 막바지에 다다랐지만 저에게는 아직도 많은 집착심이 있어 법 속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어렵게 걸어온 세월을 소중히 여기고 얼마 남지 않은 수련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저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실현하려 합니다.
자비로우시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3/5114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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