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플로리다주 대법제자
[명혜망]
1. 발정념
평범한 사람에게 졸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인 듯하고, 졸리면 자는 것도 당연하며, 잘 자야만 기운을 내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에게 졸음은 생사관과 같습니다. 이는 사람의 의지를 약하게 만들고 종종 피동적인 악순환에 빠지게 합니다. 일찍 일어나 연공해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지 못하거나 심지어 알람 소리조차 듣지 못합니다. 때로는 알람을 끄고 계속 자버리기도 하고, 깨어나서도 여전히 정신이 흐릿합니다. 더 나쁜 것은 많은 경우 ‘어째서 또 알람 소리를 못 들었을까?’ 하는 후회가 마음속에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매일 이 같은 후회와 자신에 대한 실망을 반복하면서도, 정작 졸음이 몰려올 때는 ‘우선 잠깐 눈 좀 붙이자, 안 그러면 법공부할 때 졸릴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이런 시달림 속에 빠져 있었기에 저는 이것을 극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졸음이라는 것은 약간의 결심이 섰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찾아올 뿐만 아니라, 밤에 법공부하거나 아침에 일어나 연공할 때만 교란하는 것이 아니라 낮에도 어김없이 교란합니다. 때로는 잠깐 눈을 붙여도 이상하게 여전히 졸립니다. 잠이 부족해도 졸리고, 많이 자도 졸립니다. 많은 수련생이 교류 글에서 곤마(睏魔)를 제거한 과정을 언급했는데, 저는 정말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곤마를 향해 발정념을 시작했고, 정시마다 강도를 높여 곤마를 제거하는 것 외에도 가부좌 전이나 졸릴 때 발정념을 한 번씩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매우 완고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렇게 오랫동안 돌파하지 못했으니 이미 사람 형상을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조금씩 깨끗이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내가 자지 않기만 하면 그것은 죽을 것이고, 매일 꾸준히 한다면 매일 조금씩 그것을 소멸하게 되는 것이다! 점차 그것이 다 죽어 없어지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저는 신심이 배가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동공을 연마할 때 정신이 그리 맑지 않았습니다. 가부좌를 하기 전 발정념을 하려는데 머릿속에 갑자기 ‘지금 한 10분 정도 자면 맑아질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보통 10분만 눕겠다고 하면 대개 눈을 떠서 시계를 볼 때 한 시간이 지나 있고, 그러고 나면 또 자책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이성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시는 자책하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졸렸기에 저는 온 힘을 다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너무 힘을 썼는지, 아니면 곤마를 향해 독하게 마음을 먹어서인지 한바탕 허탈한 느낌이 들었고, 게다가 머리도 맑지 않아 당장이라도 누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이를 악물었는데, 이때 사부님 법이 곧바로 떠올랐습니다. “대각자는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나니 의지는 금강으로 만들었구나 생사에 집착이 없나니 정법의 길은 탄탄하여라”(홍음2-정념정행). 저는 즉시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심을 붙잡았고,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눕지 않고 참아낼 수 있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곤마와 싸울 때 그 느낌은 정말 괴로웠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외우며 이를 악물고 한 번 또 한 번 외웠는데, 갑자기 말로 설명하기 힘든 느낌과 함께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아파서 울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졸려서 울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졸리지 않게 됐습니다! 이렇게 저는 계속해서 가부좌를 했지만 감히 눈을 감지 못했습니다. 간신히 졸음이 가셨는데 눈을 감으면 또 졸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10분 정도 걸렸는데,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통과 몸부림, 놀라움이 뒤섞여 참으로 신묘했습니다!
2. 휴대폰 중독 제거
하지만 수련 과정은 늘 이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며 반복됩니다. 때로는 곤마가 덮쳐올 때면 정말 푹 자고 싶어지면서 마음속에서 두 가지 목소리가 번갈아 맞섰습니다. ‘요즘 연공할 때 다시 졸리기 시작하는데 조금 더 자면 나아지지 않을까?’ 다른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안 돼, 그러면 여태껏 공들인 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지 않겠어? 자면 안 돼, 곤마에게 타협해선 안 돼.’ 이런 악순환이 몇 번 반복됐지만 늘 지속적으로 맑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찾으며 최근의 심성 상태를 짚어보았는데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 ‘다시 게을러진 건가?’ 비록 몸부림치긴 했지만 확실히 졸음에 휩쓸려 자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수련에는 작은 일이 없으며, 종종 문제는 무시하기 쉬운 곳에 숨어 있습니다. 바로 자투리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자주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동영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휴대폰을 보는 시간은 예전에 비하면 이미 아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일이나 학습 측면에서 봐야 하는 긴 영상 외에 나머지 긴 영상은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짧은 영상(숏폼)에 있었습니다. 늘 아주 짧다고 생각해서 한두 개쯤 보는 건 별일 아니라고 여겼지만, 매번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여러 개를 본 뒤였습니다. 이는 저를 경각하게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무형 중에 정념과 에너지를 소모시켰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방법은 손을 단속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휴대폰을 볼 필요가 없을 때는 시야 밖에 두고 필요할 때만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며, 주의식(主意識)을 맑게 유지해 짧은 영상의 화려한 세상에 끌려가지 않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결국 사회와 소통해야 하고, 때로는 수련생들의 단체 대화방에도 정보나 공지가 있어서 확인하고 알아봐야 하므로 소셜 미디어를 완전히 삭제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수련이 사람 마음을 직접 겨냥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화려한 세상에 대한 이 호기심을 분명하게 제거하고 제가 왜 이렇게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지 진정으로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함에 따라 때로는 느슨해질 때도 있었지만 곧바로 바로잡았습니다. 이러면서 저 역시 더욱 명확하게 보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내가 졸았던 이유 중 일부는 정말로 동영상을 보았기 때문이었구나!’ 이렇게 졸음의 원인을 명확히 한 후, 곤마의 교란을 겪을 때 저는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제하는 것 외에도 최근 휴대폰을 자주 봐서 느슨해지지 않았는지 자신을 점검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선순환이 뒤따라 형성됐고, 교란받을 때 느꼈던 무력함이나 의아함이 사라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휴대폰이라는 물건이 매우 교활해 빈틈만 있으면 파고든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발견했습니다. 때때로 한가해지면, 특히 연공을 마치고 법공부를 끝낸 후에는 늘 조금 쉬고 싶어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구독 중인 ‘션윈쭤핀(神韻作品)’을 봤습니다. 그것의 교활함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가장 바른 것을 보고 있으니 아무 거리낄 것이 없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휴대폰을 붙잡고 내려놓기 싫어하게 만들며 하나씩 연달아 보게 했습니다. 사실 절제하지 않으면 일반 영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중독되고 안일심을 키우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제 주의식을 마비시키는 동시에 ‘바른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을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빈틈을 잡아내 적절한 휴식 시간을 합리적으로 안배하되, 항상 주의식을 맑게 유지하려 애썼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습니다. 가능한 한 일사일념(一思一念)과 1분 1초라도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대조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3. 심성 수련
휴대폰 중독을 끊고 발정념으로 곤마의 교란을 제거하는 것 외에도, 저는 심성 수련이 곤마를 없애는 핵심 요소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제가 휴대폰 중독만 끊으면 곤마가 교란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 여긴 직후, 심성 시련이 잇달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방심하지 않고 곧바로 안으로 찾았지만, 완전히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갈등이 일어난 원인이 양측 사이의 오해 때문이라고 여기며 밖으로 보는 것에 익숙했습니다. 수련생의 부족함만 노골적으로 쳐다본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자신은 잘못이 없고 갈등이 발생한 것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표면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입을 수련[修口]하지 않고 상대의 심리를 분석했습니다. 어디가 내 문제이고 어디가 수련생의 문제인지 따위를 말입니다. 결과는 즉각 나타났습니다. 낮에 안으로 찾지 않고 마음 수련이 부족하면 밤에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몸이 텅 빈 것처럼 영혼은 이미 잠들었고 몸뚱이만 억지로 버티고 있는 듯했습니다. 간신히 버티다 잠자리에 누우면 침대에 달라붙은 것처럼 온몸이 침대와 하나로 융합된 듯 아래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며 몹시 피곤했습니다. 다음 날에도 호전되지 않아 연공할 때 졸려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발정념을 해 곤마를 제거하려 했지만 별다른 작용을 하지 못했고, 간신히 포륜(抱輪)을 버텨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真(쩐)·善(싼)·忍(런) 이런 특성 이외, 파생된 물질에 피로가 발생하면 아주 위험한 문제 ― 물체의 풍화와 부식, 즉 물체의 해체에 직면하게 된다. 물체의 해체를 넓은 의미에서 말하면 그것은 바로 낮은 층 우주의 부패로서 법(法)이 서지 않음이다. 사람이 만약 마음속에 법(法)이 서지 않으면 사람은 곧 나쁘게 변하며, 도덕적 구속력이 없게 된다.”[전법륜(제2권)-대서산(大嶼山) 설법]
저의 인식은 이러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신우주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는 생명입니다. 만약 법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 우주 특성에 동화하지 않으며 ‘남을 위하는’ 생명이 되지 않는다면, 구우주 이치의 제약을 받아 성주괴멸(成住壞滅)과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번에 저는 교훈을 얻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았으며, 어쩔 수 없다는 마음과 의혹을 모두 내려놓고 마음을 끝까지 다 내려놓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 다툴 게 뭐 있느냐”(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가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저는 “심성이 얼마나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다”(전법륜)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만약 실질적인 수련[實修]을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을 들여 발정념을 해도 별다른 작용이 없습니다.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은 채 사람이 생각을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정념이 아니며 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질적인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설령 휴대폰을 내다 버린다고 해도 안으로 수련하지 않고 밖으로 찾기에, 교란을 초래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심성이 제고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수련하지 않은 것이므로 공(功)이 없고, 공력의 가지(加持)가 없으면 정념의 작용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이러면 겉보기에 올바른 어떤 방법을 쓴다 해도 본질적인 작용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수련은 정말이지 고리마다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곤마와 맞서 싸우면서 저는 안일심을 어느 정도 돌파했고 발정념에 대한 신심을 키웠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마음 수련이 근본임을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만약 법의 표준에 따라 실질적인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이 완고한 관념의 껍질을 돌파할 수 없으며, 법의 위력과 깊은 함의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수련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곧 퇴보합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남은 소중한 시간을 꽉 붙잡고 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사람과 결렬하고 신(神)을 향해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스
(2026년 미국 플로리다주 파룬따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28/51281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28/51281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