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법회는 우리가 최근 수련 심득을 돌아볼 기회로 서로 격려하며 더욱 확고하게 ‘진선인(眞·善·忍)’에 동화하고 동시에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중에서 이성과 지혜를 유지하게 해줍니다.
사부님께서는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 “대법제자의 칭호는 가장 신성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26년은 제가 정식으로 수련한 지 6년째 되는 해입니다. 2020년 저는 법을 얻은 후 바로 미국으로 이민 왔습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는 제 인생이 이토록 다채롭고 아름다울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미국으로 이민 온 직후 저는 매체에 합류했습니다. 이 일은 저를 진정한 수련인으로 성장하게 했고 동시에 전문가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제 수련 제고는 크게 가속화됐습니다.
에포크타임스와 NTD TV의 매주 월요일 법공부 교류에 처음 참석했던 때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차를 몰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갔으며 밤 9시 반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체득은 말로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저는 매우 강렬하게 느꼈는데 아침에 차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러 갈 때부터 밤에 자동차로 돌아와 차를 몰고 집에 갈 때까지 마치 수백만 년이 지난 것 같았습니다.
오직 대법을 통해서만 저는 현재 매체에서 습득한 각종 기술을 배울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고객 서비스 중에 전화를 받아 까다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 기사를 쓰는 것, 기초부터 사진을 배우는 것, 워싱턴 D.C. 매체 수련생 전체에 융합되는 것 등이 포함됩니다.
여기서 저는 지난 몇 달 동안 사람들과 교제하는 과정에서 심성을 제고한 과정을 나누려 합니다.
박해 진상을 알릴 것인가 아니면 매체를 변호할 것인가
국회 백악관 및 기타 장소에서 사진을 찍을 때 다른 매체의 일반인 사진기자들과 함께 있으면 항상 긴장됐고 그들이 우리 매체를 공격하는 내용을 물어볼까 봐 걱정했습니다.
최근 한 사진기자가 저에게 에포크타임스는 우파 매체이고 일부 기괴한 중국인들이 창립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말에 자극받았습니다. 저는 우리 매체가 다양한 관점을 두루 수용하며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하려 노력한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는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이 일 이후 저는 그에게 대법이 중국에서 박해받는 진상과 매체가 창립된 배경을 알려주지 않은 것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당시 우리가 우파 매체가 아니라는 점을 너무 설명하고 싶어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저는 대화 중에 부정적인 생각도 가졌는데 이를테면 상대방을 얕보면서 그가 어떻게 인터넷에서 본 그런 내용을 바보같이 믿을 수 있는지, 왜 내 말을 듣지 않는지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다”(정진요지-경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찾은 후 저는 이후로 반드시 진상 알리기를 첫 번째 자리에 놓고 먼저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몇 주 후 여러 내각 인사가 국회 청문회에 참석하자 대규모 매체가 떼 지어 몰려들었고 저에게는 한 촬영기자에게 진상을 알릴 기회가 생겼습니다.
당시 수십 명의 기자, 사진기자, 촬영기자가 모여 관리가 나와서 발언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인파 속에서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때 등 뒤에 있던 한 촬영기자가 저에게 말을 걸더니 그가 에어포스원 탑승 시 백악관에서 받은 특별판 민트맛 틱택 사탕 두 알을 주었습니다.
그가 이 특별판 사탕을 나눠준 것은 아주 너그러운 행동이었습니다. 대화 중에 그는 저에게 어느 매체 소속인지 물었고 에포크타임스라는 것을 알게 되자 급여를 받는지, 매체의 모든 사람이 다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이전 경험을 떠올리며 자신에게 선해야 하고 그에게 박해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질문에 답한 후 저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을 폭로하기 위해 매체를 창립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무엇인지 박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그는 아주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이어서 그는 저에게 션윈 공연에 관한 몇 가지를 물었습니다. 저는 션윈을 대표할 수는 없지만 제 이해로는 파룬궁수련자들이 예술, 퍼레이드, 평화적인 시위, 매체 창립 등 각종 평화적인 방식으로 중공의 인권 유린을 폭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관점을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는 매우 놀랐습니다. 저는 그에게 수련이 저를 끊임없이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제고하게 했고 이것이 저를 더욱 훌륭하고 평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깊이 감동하며 자신도 예전에 수련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국회나 다른 장소에서 이 촬영기자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는 평소에는 국회에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넸습니다. 우리 사이의 분위기는 긍정적이고 고무적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은 온화했고 눈동자가 반짝였는데 이는 저에게 어쩌면 어떤 사람은 진상을 들을 기회가 단 한 번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그날은 매우 바빴고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저는 마침 그 사람 옆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그는 제가 하는 말에 온전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이 배치에 무한히 감사했고 아울러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그의 모든 질문에 대답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가 제게 준 민트 사탕까지도 저를 감동하게 했습니다. 만물에는 모두 영이 있으니 이 사탕 이면의 생명도 저와 이 촬영기자 사이에 진상을 알리는 다리를 놓아주었기에 커다란 공덕을 쌓았을 것이라 믿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미술창작연구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각종각양의 물건이 모두 법기로 될 수 있다.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은 나는 법을 실증하는 글을 쓴다고 말하는데, 당신이 날마다 들고 있는 펜은 모두 공덕(功德)이 있는 것으로, 아마 당신의 펜은 장래에 모두 법기로 될 것이다. 수련인이 이용했던 물건은 일단 공덕이 있게 되면 모두 법기로 될 수 있는바, 여러분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사용했던 화필(畫筆)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저는 사무실에서 동료와 갈등을 겪은 수련 과정을 나누려 합니다.
인생을 즐기다
몇 주 전 저는 팀 단합 행사를 조직하는 것을 도왔는데 참가자에는 매체 D.C. 사무실의 수련생과 일반인 동료가 포함됐습니다. 우리는 보통 1년에 한 번 이런 행사를 여는데 이번에는 미국 국립역사박물관에서 보물찾기 게임을 하고 이후에 넓은 잔디밭에서 소풍을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촬영기자 수련생이 수련생 단체 채팅방에 한 중국인 수련생이 같은 날 중공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열어 중국에서 중공에 또다시 납치된 자신의 어머니를 성원한다는 소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행사일 며칠 전에야 이 시위 소식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촬영기자에게 단합 행사 일정이 이미 몇 번이나 미뤄졌고 회사와 박물관 예약 때문에 시간을 더 변경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게다가 당일에는 대부분 동료가 참석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중공 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행사는 이틀이었습니다.
D.C. 사무실의 수련생과 동료 대부분이 중공 대사관 앞 행사에 참석할 계획이 없었기에 이 촬영기자는 채팅방에 다들 ‘지구에서 인생을 즐기세요’라고 비꼬는 메시지를 올렸습니다.
메시지를 보고 저는 몹시 화가 나서 그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여기에는 각자가 단합 행사에 참석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대법과 관련된 모든 행사에 다 참석할 수는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도 저는 여전히 화가 났고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다음 날 저는 만나는 수련생마다 이 일을 불평하며 제 불만을 털어놓았고 다들 제 말에 동의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제가 불평한 부분은 촬영기자 수련생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런 식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며, 그 말은 중공 대사관 앞 시위에 참석하지 않는 모든 수련생이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사무실의 다른 수련생들은 제 생각에 동의했지만 저는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다음 날 제가 촬영기자 수련생을 만났을 때 그가 제게 말을 걸자 저는 “저한테 말 걸지 마세요. 전 아직도 당신한테 화가 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일을 계속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제 이런 상태가 옳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한 수련생과 교류했는데 그녀는 제가 촬영기자 수련생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사실 그가 메시지를 보낸 후 저를 포함해 더 많은 동료와 수련생이 중공 대사관 앞 시위에 참석했습니다.
화가 난 와중에 사부님께서 매번 법회에서 질문에 답해주실 때마다 수련생들이 질문하면서 협조인 수련생이나 다른 수련생을 탓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양쪽의 관점에서 답변해주셨고 동시에 갈등 속에 있는 수련생과 옆에서 지켜보는 수련생 모두 자신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저는 제 생각만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며 제가 안으로 찾으며 자신을 제고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수련생이 사무실의 단체 법공부와 교류에 자주 참석하지 않으면 그 수련생의 수련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관념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이 촬영기자가 단체 법공부와 교류에 거의 참석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갑자기 나서서 우리에게 어느 행사에 참석하라고 지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관념이 옳지 않음을 깨달았고 얕은 생각으로 그들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모든 좋은 건의에 귀를 기울여야 했습니다. 저 역시 사무실 법공부 교류에 자주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신의 생활 일정이 있으니 다른 사람을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격려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번 갈등이 제 집착심을 겨냥해 온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를테면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할 때 갖는 우월감,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한다고 여기고, 특히 일반인보다 낫다고 여기는 마음, 자신이 수련에서 그리고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중에서 잘하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 등이었습니다.
저는 또 설령 겉보기에 제가 옳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선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은 모두 대법의 일부분이고 모두 사부님의 제자이므로 저는 최대한의 선함과 존중, 인내심으로 각 수련생을 대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련을 겪고 있고 모두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 이 촬영기자는 아주 선량한 수련생이며 항상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전문 촬영기자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의심할 때 저에게 할 수 있다고 격려해준 사람이 바로 그였습니다.
이 일을 만회하기 위해 저는 그에게 수박 한 조각을 가져다주며 메모를 남겼습니다. 그도 아주 기뻐했고 저도 아주 기뻤습니다. 저는 그가 오랫동안 사무실의 젊은 동료들을 포용해준 것에 감사하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일하는 것은 아주 멋집니다.’
사부님께서는 《션윈(神韻)은 왜 사람을 구할 수 있는가》에서 “그러나 현대인은 오히려 전통을 잊었고, 전통 문화 속에서 사람의 선량함,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존경, 상호 사랑, 상호 도움 등 아름다운 일체와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잊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끝으로 저는 이렇게 많은 선량한 수련생과 함께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은 것에 몹시 감사합니다. 저는 계속 심성을 수련해 사부님을 도와 더 많은 중생을 구하려 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제 교류를 경청해주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2026년 미국 워싱턴 D.C.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7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22/51260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22/51260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