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최근 자신에게 아주 깊게 감춰진 집착 하나와 이 집착에서 파생된 많은 관념을 찾았습니다. 이에 여러분과 심득을 공유하려 합니다.
1. 아주 깊게 감춰진 집착
지난 몇 년간 이미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질투심과 로맨틱한 사랑을 찾아 행복을 얻으려는 마음이었습니다. 최근에야 비로소 제 많은 행동을 좌우하는 아주 깊은 층의 관념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 저는 이 관념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먼저 제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지금 저를 아는 사람들은 아마 어릴 적 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성격은 어릴 때와 완전히 다릅니다. 그때는 아주 예민했고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수줍음을 많이 타고 늘 불안해하며 주눅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랑받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제가 자신감을 갖고 무리에 어울리게 하려고 많은 시간을 쏟았던 기억이 납니다.
기본적으로 두려움은 제 어린 시절 성격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집착이었습니다. 부모님이 자주 말다툼하고 심지어 싸우기까지 했기에 이런 불안정한 가정환경이 두려움을 키웠습니다. 저와 동생들은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두려움을 숨기고 맞서기 위한 여러 가지 방어 기제를 터득했습니다. 그 후 이 기제들에 세인의 많은 관념과 집착이 더해졌는데 예를 들면 공산주의 사상, 특히 페미니즘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들은 저도 모르게 두려움을 덮어버리는 주요 수단이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집착인가? 사람은 세상에서 많은 관념을 양성했으며, 관념에 이끌려 동경하는 것을 추구한다.”(정진요지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요컨대 성장 과정에서 두려움이라는 집착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관념들로 이뤄진 거대한 산이 세워졌습니다. 이제야 성인이 된 후 제 성격이 안전감을 찾고 상처받지 않으려는 집착 속에서 형성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이 거대한 산 윗부분에 있는 관념들을 없애려 애썼는데 거기에는 쟁투심, 질투심 등이 포함됩니다. 불과 1년 전쯤에야 제 안의 두려움을 인식했고 지금은 그것을 없애려 노력 중입니다. 최근에 이 두려움이라는 집착이 참으로 뿌리 깊고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래에 제가 발견한 이 집착의 표현을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2. 강함과 약함을 판정하는 관념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바보가 바보가 아니라는 법리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바보는 속인 중에서 크게 나쁜 일을 하기가 불가능하고,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투고 싸우는 것이 불가능하며, 명예를 구하지 않아, 그는 德(더)를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오히려 그에게 德(더)를 줄 것이다. 그를 때리고 그를 욕하여 모두 그에게 德(더)를 주는데 이런 물질은 극히 진귀하다. 우리 이 우주 중에는 곧 이런 이치가 있다.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며, 얻으면 잃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 바보를 보고 모두 그를 욕할 것이다. “너, 이 바보야.” 입을 열어 욕함에 따라 한 덩이 德(더)를 던져준다. 당신이 이익을 보면 얻는 쪽에 속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곧 잃어야 한다. 다가가서 그를 발로 한 번 찬다. “너 이 바보야.” 자, 한 덩이 德(더)를 또 묵직하게 던져주었다. 그는 누가 그를 괴롭히고, 누가 그를 발로 한번 차도, 그는 허허 웃는다. “당신은 해봐라. 어쨌든 德(더)를 나에게 주었으니 나는 조금도 밖으로 밀어내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제가 이해하기로 제 두려움의 핵심은 상처받기 두렵고 손해 보기 두려운 마음이었습니다. 저는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바보는 늘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저는 항상 자신을 ‘강세(强勢)’에 두고 결코 ‘바보’가 되거나 ‘약세’에 놓이지 않게 하겠다는 아주 강렬한 관념을 형성했습니다.
‘강세’에 대한 추구는 쟁투심과 질투심을 파생시켰습니다. 저는 능력, 지혜, 대인관계 등 모든 면에서 남을 뛰어넘고 싶었습니다. 한때 남들보다 뛰어나고자 하는 집착이 순전히 질투와 쟁투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사실 남을 이기려는 이 관념의 뿌리는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무의식중에 저는 약자란 곧 남보다 못하다는 뜻이고, 나약하고 무능하다는 뜻이며, 괴롭힘을 당할 거라는 뜻이고 나아가 상처를 입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관념은 대법의 법리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9강에서 설법하신 내용을 통해 저는 진정한 강인함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런 정도까지 참는다면 속인도 우리가 너무나 나약하고 너무나 괴롭히기 쉽다고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데 그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속인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 문화 층차(層次)가 높은 사람들도 함양(涵養)을 말하며 남과 견식을 같이하지 않는다. 하물며 우리 연공인(煉功人)임에랴? 그것이 어찌 나약한 것이겠는가? 그것은 대인지심(大忍之心)의 체현이고, 그것은 견강한 의지의 체현으로서, 오로지 연공인만이 이런 대인지심이 있을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전법륜)
이런 집착을 더 빨리 알아차리고 버리려 노력하면서 저는 진정한 강인함이, 특히 여성으로서 남을 부드럽게 대하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드러움은 일종의 선량함이며 그 목적은 남을 돕고 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위함입니다.
3. 안전감
중간 관리자로서 저는 동료들의 분노, 좌절, 불안, 심지어 히스테리 같은 다양한 감정을 마주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예전에는 감정적이거나 아주 부정적인 동료를 대하기가 몹시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늘 저를 좌절하게 만들었는데 마치 그들의 엉망인 기분 속으로 끌려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전에는 이것이 제 어떤 집착을 건드린 것인지 찾지 못했습니다.
두려움이라는 집착을 찾아낸 후 동료들의 부정적인 감정이 제게서 안전감을 앗아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어릴 적 아버지가 보여주셨던 극도로 불안정한 감정 상태 같아서 제게 두려움을 안겨줬습니다.
며칠 전 한 동료가 기사를 급히 수정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아 그 압박감을 제게 떠넘겼습니다. 평소 같으면 남이 압박을 주는 걸 아주 싫어했겠지만 이번에는 그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럴 때 첫 반응은 항상 압박을 되돌려주고 상대를 비판하며 억지로라도 부정적인 감정을 멈추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일종의 방어 기제였고 이런 식으로 내면의 두려움을 감추려 했던 것입니다.
4. 로맨틱함에 대한 집착 타파
저는 늘 마음속 깊이 인생의 ‘반쪽’을 찾아 행복을 얻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수년 동안 저는 이 집착을 한 꺼풀씩 벗겨내려 노력했고, 예를 들면 이것이 현대 관념이 부추기는 로맨틱함, 사랑, 변이된 남녀관계 등임을 꿰뚫어 봤습니다.
예전에는 이 집착의 핵심이 생활 속의 행복과 만족을 바라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라는 이 근본 집착을 찾고 난 뒤 제가 로맨틱함을 추구하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얻는 것을 완벽한 안식처로 여겼고, 그를 찾는다는 건 궁극적인 안전과 보호를 얻는다는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관념을 찾았을 때 머리에 찬물을 맞은 듯 번쩍 정신이 들었습니다. 로맨틱함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 단순한 집착에서 비롯됐다니 말입니다.
5. 맺음말
위의 내용들을 깨닫고 나니 진정한 자아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사부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였고, 끈기 있게 기다려주시며 이토록 험난한 수련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1강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어떤 것들을 주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부님의 법은 이토록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최근 사부님의 이 설법을 외우며 그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았고 마음속에서 사부님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사가 벅차올랐습니다. 인류의 언어로는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자들과 세상 중생들에게 주신 것을 다 표현할 수 없으며 사부님을 향한 우리의 무한한 감사도 다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를 표하며 제 교류를 마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로 거듭나게 해주신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직 남아있는 사람의 관념과 집착을 없애기 위해 더 노력할 것입니다. 제 서약을 더욱 훌륭히 실천하여 선천적인 순수함으로 돌아가겠습니다.
(2026년 미국 워싱턴 D.C.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7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22/51259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22/51259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