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후베이성 통신원) 후베이성 징먼(荊門)시 파룬궁수련자 류더위(柳德玉)가 판자타이(范家台)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지 2년이 지났다. 류더위는 2022년 7월에 납치, 감금돼 모함을 당했고, 같은 해 10월 28일 징먼시 둥바오(東寶)구 법원에서 부당한 재판을 받은 후 4년형을 선고받았다. 2023년 5월 10일 후베이성 사양(沙洋) 판자타이 감옥으로 이송됐으며, 수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4년 설 전후로 박해를 받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징먼 구치소를 떠나기 전 류더위는 같은 감방 수감자에게 “이번 4년형을 포함해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누적 16년간 감금돼 박해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반드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확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대를 졸업한 류더위는 과거 징먼시 위생방역소 간부를 지냈다. 1996년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이후 몸과 마음의 혜택을 받아 수십 년간 그를 괴롭혔던 편두통, 내열 등의 질병이 완치됐고 생명의 의미를 깨달았다. 직장에서 그는 진선인(眞·善·忍)을 원칙으로 삼아 접대를 받지 않았고 선물도 받지 않았다. 부서 책임자를 맡았을 때는 편의를 동료들에게 양보하고 어려움은 자신이 떠맡아 큰 호평을 받았다.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지속적인 박해를 가하는 동안, 류더위는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감금돼 누적 10년 이상 감금 박해를 받았으며, 여러 번 집을 떠나 유랑하며 다리 밑, 배수관, 길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1. 후베이성 사양 노동수용소에서 불법으로 3년간 강제노동을 받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같은 해 7~8월경 류더위는 베이징에 평화적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징먼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에게 납치됐다. 다시 납치돼 돌아오는 도중 박해를 피하려고 고속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렸다가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병원의 조잡한 치료로 뼈가 제대로 붙지 않아 그는 이후 장애를 입게 됐고,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 절뚝거리며 걷게 됐다.
2000년 1월, 그는 3년의 강제노동을 불법으로 선고받고 후베이성 사양 노동수용소로 납치돼 입교팀, 8대대, 엄관팀, 3대대에 차례로 감금됐다.
2000년 7월 22일, 그가 8대대 마당에서 진상을 알리자 경찰 둥궈창(董國强), 선옌밍(沈雁鳴)은 죄수 6명에게 24시간 동안 감시하게 했고, “그를 처리하면 감형받을 수 있다”라며 감시자들을 부추겼다. 류더위는 매일 16시간 이상 강제노동을 강요받았고, 밤에는 서 있거나 쪼그려 앉는 체벌을 받았으며 바닥에서 자야 했고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했으며 밥도 배불리 먹지 못했다. 어느 날 밤, 마약사범 탕타오쳰(唐陶阡)이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강하게 내리쳐 그는 1미터 이상 뒤로 넘어져 벽에 부딪혔다. 불과 두 달 만에 그의 체중은 10kg 이상 줄어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1년 3월, 노동수용소는 전향을 거부하는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해 새로운 박해를 가하며 ‘엄관팀’을 신설했다. 서기, 정치위원, 경찰, 특경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수련자들에게 “너는 어떤 사람이냐?”라고 묻자, 류더위는 “저는 파룬궁수련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여러 명의 경찰이 즉시 세 개의 전기충격기로 그의 얼굴, 허리, 발뒤꿈치 등을 동시에 감전시켰다. 그는 “나는 박해받는 대법제자다!”라고 외쳤다. 전기 충격이 멈춘 후 그의 몸은 30분 가까이 경련을 일으켰다.
2. 후베이성 탕쉰후 세뇌반에 한 달 반 동안 감금돼 박해받다
3년의 강제노동 기간이 만료돼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징먼 610은 계속해서 괴롭힘을 가했다.
2006년 11월, 그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징먼 610 직원에게 납치돼 후베이성 탕쉰후(湯遜湖) 세뇌반으로 끌려가 한 달 반 동안 감금돼 박해받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직장은 610의 압력하에 그를 출근하지 못하게 하고 급여를 정지했다. 호소할 곳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자필 호소문을 부서의 각 사무실 벽에 붙였다. 진상을 알게 된 동료들의 성원에 힘입어 직장은 비로소 그의 복직을 허락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로 인해 직장은 연말 문명 기관 칭호를 취소당했고 직원들의 상여금도 취소됐다.
2009년 6월 23일, 그가 진샤(金蝦)루 북쪽 끝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의 신고를 받아, 경찰 2명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해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다. 이어서 둥바오구 610, 국가안전보위대, 공안 직원 6명이 그의 집에 들이닥쳐 가택수색을 벌여 컴퓨터 본체, 프린터, 대법서적, 션윈(神韻) DVD, ‘9평 공산당’ 등 자료를 압수해 갔다.
당시 그를 납치하지는 않았지만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류더위는 어쩔 수 없이 후베이성 즈장(枝江)시로 떠돌며 양말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3. 첫 번째로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판자타이 감옥에서 박해받다
2009년 7월 20일경, 류더위는 즈장시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현지 파출소와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직원에게 납치됐다.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자 현지 공안은 그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고, 징먼시 둥바오 공안분국이 그를 데려와 징먼 후야관(虎牙關) 구치소에 불법 감금했다. 구류장 담당자는 쉬웨(徐躍), 체포영장 서명자는 자전쥔(賈眞均)이었다.
2010년 2월 2일, 둥바오구 법원은 그에게 비밀리에 4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했고, 다른 세 명의 파룬궁수련자에 대해서도 비밀 재판을 진행했다.
2010년 5월 25일경, 그는 판자타이 감옥으로 납치됐다. 신앙을 견지하고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감옥 측은 매일 한 끼의 식사만 제공하며 이를 수개월 동안 지속했다. 2010년 9월 30일, 수천 명이 모인 감옥 대회에서 그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할 것이니 탈당해 목숨을 지키자!”라고 외쳤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구타당하고 끌려가 독방에 갇혔으며 두 달 반 동안 수갑과 족쇄를 찼다.
그는 오랫동안 독방에 감금돼 4명의 죄수에게 감시당했고, 여러 명의 ‘사오자(邪悟者: 삿되게 깨달은 자)’로부터 전향을 강요받았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경찰은 그를 독방에 가두고 널빤지 족쇄를 채운 뒤 헤드폰을 씌워 파룬따파를 공격하는 녹음을 강제로 듣게 했고, 효과가 없자 다시 그를 매달아 수갑을 채웠다.
4. 두 번째로 부당하게 5년형을 선고받고 다시 판자타이 감옥에서 박해받다
2016년 12월, 그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납치돼 다시 후야관 구치소에 감금됐다. 2017년 5월 2일 불법 재판을 받고 부당하게 5년형을 선고받았다.
2018년 10월 29일, 그는 다시 판자타이 감옥으로 납치됐다. 신앙을 굳게 지킨다는 이유로 그는 오랫동안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체벌, 수면 박탈, 독방 감금, 족쇄 착용, 전기 충격, 추위와 굶주림,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 구타 등 박해를 받았고, 치아가 모두 흔들리며 빠졌다.
몸과 마음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에서 그는 폐결핵에 걸려 1년 넘게 감옥 병원에 갇혔다. 2021년 12월 2일 5년간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쳤을 때, 그는 이미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했고 양로금(연금)도 지급 정지돼 아무런 수입원이 없었으며 심지어 거주할 곳조차 없었다.
5. 세 번째로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판자타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하다
2022년 4월, 그는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취안커우(泉口) 파출소에 납치됐다가 당일 밤 풀려났다.
2022년 7월 8일, 그는 다시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납치됐고, 거주지는 엉망으로 뒤집혔으며 대법서적 등을 약탈당했다.
그는 징먼 구치소에 감금됐다. 취안커우 파출소, 둥바오구 검찰원과 법원이 모두 모함에 가담했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답변과 서명을 거부했다.
2022년 10월 28일, 둥바오구 법원은 불법 재판을 열었으나 그의 출석을 허락하지 않아 구치소에서 영상 변호만 가능했고, 가족의 방청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현지 변호사의 변호를 거부하고 스스로 변호할 것을 고집했다. 이른바 ‘재판’은 불과 30분 만에 끝났고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는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2023년 5월 10일 판자타이 감옥으로 이송됐다. 수감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2024년 설 전후로 박해를 받아 사망했고, 시신은 신속하게 화장돼 골회는 가족이 셴타오(仙桃) 고향으로 가져갔다.
구치소에 있는 동안 그는 번호 부르기와 점명 대답을 거부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으며, 마당에서 구이저우(貴州)성 핑탕(平塘)현의 ‘장자석(藏字石: 중국공산당이 멸망한다고 기록된 고대의 예언석)’, 파룬궁 진상,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등을 큰 소리로 알렸다. 구치소에서 세뇌 프로그램을 틀 때면 그는 물건으로 귀를 막고 시청을 거부했다. 2022년 11월 장쩌민(江澤民)이 사망한 후, 그는 자신이 산 간식을 같은 방 수감자들에게 나눠주며 축하하다가 후(胡) 씨 성을 가진 감옥경찰과 소장에 의해 며칠 동안 강제로 족쇄와 수갑을 찼고, 밥 먹거나 화장실 갈 때 모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판자타이 감옥으로 이송된 후 그는 수련 포기를 거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 병원으로 보내져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그가 생명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판자타이 감옥 직원들은 일부러 남부 도시에 있는 류더위의 딸 집까지 찾아가, 류 씨가 위독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설득하라고 요구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일이 복잡해진다”라며 위협했다. 류더위는 영상 통화에서 나가서 딸을 도와 아이를 돌봐주고 싶다고 밝혔다.
류더위는 판자타이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한 두 번째 징먼 출신 파룬궁수련자다. 이에 앞서 천치지(陳啓季)는 불법으로 10년형을 선고받고 판자타이 감옥에서 사경을 헤맬 때까지 박해를 받았으며, 병보석으로 집에 돌아온 지 한 달여 만인 2007년 4월 3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나이는 불과 46세였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8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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