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수련한 지 27년이 됐습니다. 20여 년 비바람과 눈보라를 뚫고 오늘에 이르렀으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시련을 마주할 때 대법제자의 정념과 자비는 흔들릴 수 없으며 대법 안에서 이타적인 자비로운 생명으로 수련 성취됩니다.
1. 자비로 폭력을 해소하다
1999년 7월 20일 파룬불법(法輪佛法)이 장쩌민 집단에 의해 박해당할 때 저는 현지 담당 경찰의 경고를 듣지 않고 감시를 뚫고 베이징에 가 청원했습니다. 우리 10여 명의 대법제자는 경찰에게 납치돼 현지로 돌아와 구치소에 갇혀 박해받았습니다. 평소 저를 감시하던 담당 경찰이 저를 한 방으로 데려가더니 한 손으로 제 턱을 움켜쥐고 서슬 퍼렇게 말했습니다. “안 간다고 해놓고 또 가다니, 너 때문에 나까지 처분을 받았잖아!” 금방이라도 제 뺨을 때릴 기세였지만 저는 두려워하지 않고 자비롭고 미소 띤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평온하고 온화하게 말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건 그저 국가 지도자에게 진심 어린 말을 한마디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니 너무 안타까워서 그랬습니다. 당신에게 이렇게 큰 번거로움을 드릴 줄은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화가 풀리지 않으시면 때리십시오.” 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들었던 손을 내리고 가버렸습니다. 자비의 힘이 저에게 닥친 한 차례 폭력을 해소한 것입니다.
2. 정념으로 교란을 제거하다
베이징 청원에서 돌아와 한 달간 불법 구금된 후 저는 불법 감시를 받았습니다. 특히 ‘민감한 날’에는 더욱 인심이 흉흉해져 세뇌반을 열거나 경찰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로 인해 제 가게는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없게 됐고 아이의 어린 마음은 상처를 받았으며 친척과 이웃들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제 부모님도 수련생이신데 연세가 많아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돌보려 이사를 했고 환경도 바꾸고 싶었습니다. 뜻밖에도 이 악질 경찰들은 서로 연락하며 추적해 박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와 제 생각과 우려를 나눴는데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좋은 사람인데 어떻게 그들의 통제를 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 생각에 매우 찬성하시며 자진해서 파출소장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셨고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내 딸은 나를 돌보러 온 것이오. 만약 당신들이 또 우리집에 와서 내 딸을 쫓아낸다면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이오!” 이 경찰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습니다.
이후 우리는 다른 아파트 새집으로 이사했는데 그들은 또 새 아파트 담당 경찰, 주민센터 직원과 연합해 우리집에 오려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즉시 파출소와 주민센터로 가 그들 책임자에게 진상을 알리셨습니다. “우리 늙은 부부는 딸 집으로 노후를 보내러 왔소. 당신들이 집에 와서 소란을 피우면 사위가 화를 내며 부부싸움을 해 우리의 정상적인 생활에 영향을 주오. 당신들이 정 안심이 안 된다면 내일 우리 부부가 아예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이사해 살 테니 당신들이 우리집에 오가는 수고를 덜어주겠소!” 그들은 모두 가지 않을 테니 거기서 안심하고 노후를 보내시라고 말했습니다.
정념정행으로 박해에 반대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보호 아래 또 한 번 사악의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20여 년간 저와 아버지는 공동으로 행동하며 수련생을 구출하고 평온하게 세 가지 일을 해왔습니다.
3. 자아를 내려놓고 대법을 수호하니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2015년 큰언니가 납치돼 구치소에 갇혀 박해를 받았습니다. 저와 아버지는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파출소와 구치소 사이를 바삐 오가며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큰언니를 풀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은 협조해 24시간 발정념을 했고 저는 호소문을 수십 부 인쇄해 공검법(공안·검찰·법원) 각 부서에 모두 보냈습니다. 파출소에 갔을 때 저는 벽에 걸린 경찰 사진과 경찰 번호를 휴대폰으로 모두 찍었습니다. 구치소에 사람을 요구하러 갔을 때도 저는 그들을 찍어 명혜망에 보내 사악을 폭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찍는 도중에 발각됐고 당시 접견실의 큰 철문이 닫히며 저는 10여 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였습니다. 그 책임자는 제 휴대폰을 요구하며 자신들을 찍은 목적을 추궁했습니다. 저는 당시 두려운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고 어차피 들켰으니 진상이나 알리자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언니는 ‘진선인(眞·善·忍)’을 믿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당신들에게 박해를 받아 이곳에 갇혀 이미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서로 미루며 사람을 풀어주지 않아 제가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을 찍은 겁니다. 이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려서 전 세계 사람이 당신들을 규탄하게 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저는 대법이 10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파된 것부터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 중공 악당이 집권한 수십 년간 숱한 운동으로 무수한 사람을 죽인 것, 전염병은 하늘이 나쁜 사람을 도태시키는 것이며 응보가 따르는 것은 천리라는 등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그들에게 모두 들려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쓴 호소문을 그 책임자에게 건네며 읽어보고 소장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를 구해주십사 청했습니다.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말을 시원하게 다 쏟아내고 나자 뜻밖에도 그 책임자가 정말 저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4. 진상을 명백히 알려 중생을 구하다
저는 토박이 동북인으로 60세가 되도록 남쪽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몇 달간 보험 일을 했는데 실적이 좋아 두 사람 몫의 보너스를 받아 몇 년 전 쓰촨(四川)의 각 명승지로 여행을 가게 됐습니다. 저는 처음 비행기를 타봤고 처음으로 남쪽 여행을 갔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우리를 맞이한 관광버스 가이드는 20대 청년이었는데 자기가 원촨(汶川) 지진 때 무너진 학교 건물에서 살아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스 안에서 원촨 지진의 참혹함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생활이 쉽지 않다는 주제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우리 일행 몇 명은 일부러 택시를 타고 원촨 지진 피해가 심했던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해설사는 눈물을 흘리며 관광객들에게 지진의 참혹함을 설명했고, 지금까지도 19명 학생과 2명 교사가 땅속에 잠들어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택시 기사와 대화하며 물었습니다. “원촨 지진 후에 우리가 돈과 옷을 기부했고 국가에서도 보조금을 지원했는데 당신들은 왜 아직도 그렇게 힘들게 삽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든 물품이든 우리 서민들 손에 들어오는 건 너무 적어서 도무지 쓸 곳이 없습니다.” 말하다 보니 그들은 탐관오리들의 부패를 욕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또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부실 공사 학교 건물이 꽤 많이 무너졌는데 홍콩에서 온 시공팀이 지은 두 동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건 다 정부 관리들과 악덕 건축업자가 짜고 자재를 빼돌리고 날림으로 공사한 탓입니다!” 저는 놀랍게도 학교 주변 건물들은 정말 무너지지 않고 멀쩡한데 아이들이 수업하던 건물만 무너진 채 그곳에 조용히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관광지가 되어 지진 당시의 원형을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경고하고 일깨워주는 듯했습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각 우리가 호텔에 도착해 오늘 하루의 감상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방문을 열자 한 무리의 경찰들이 벌떼처럼 밀려 들어와 제 이름을 부르며 휴대폰을 빼앗고는 짐을 챙겨 그들과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26년의 경험으로 저는 이것이 제 신앙을 노리고 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어메이산(峨眉山) 산림 경찰이라면서 조사에 협조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짐을 챙기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그들과 맞서자니 소용도 없고 결국엔 끌려갈 텐데 체면도 안 서고 대법제자의 풍모도 잃게 되며 대법을 널리 알리는 목적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맞서지 않자니 분했고 보험회사에 폐를 끼칠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저를 구해주시고 지혜를 달라고 청했습니다. 27년간 수련하며 비바람 속을 걸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이 낯선 타향의 차갑고 을씨년스런 밤에 또 이런 경찰들을 마주해야 할 줄은 몰랐기에 저도 모르게 두려운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연거푸 외쳤습니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십시오. 제자에게 지혜를 주십시오!’
이 경찰들이 저를 납치해 차에 태웠을 때 제 머릿속에는 예전에 언니를 구출하려 악질 경찰들 사진을 찍다가 들켰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하라고 일깨워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자비가 가득 차올랐으며 평온한 말투로 미소를 지으며 지혜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메이산은 산세가 빼어나고 인물이 나는 인간 선경입니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어메이산에 오를 때 가이드가 수련인이었는데 그가 말하길 원촨 지진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어메이산에서는 관광객이 한 사람도 안 죽었다고 합니다. 벽이 무너져 한 사람이 깔려 죽긴 했는데 출신지를 알아보니 토박이 원촨 사람이었다는군요. 사람은 죽을 운명이면 어디로 달아나도 피할 수 없는 법이니 이는 하늘의 뜻이며 덕을 중히 여기고 선을 행해야만 재난을 피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가 또 차에서 내릴 때 짐을 잘 챙겨서 산속 원숭이들에게 띄지 않게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예전엔 산에 신령한 원숭이들이 살았는데 지금은 강도 원숭이가 돼서 손에 뭘 든 걸 보고도 안 주면 때린다고 하네요.” 저는 이 화제를 빌려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렇죠. 이 붉은 마귀가 춤추고 흑백이 뒤바뀐 작금의 사회라는 큰 염색 항아리 속에선 원숭이마저 변질됐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낙마한 탐관오리들을 보세요. 대다수가 정법(정치법률) 계통이나 공안, 검찰, 법원 출신인데 신앙이 있는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다가 응보를 받은 겁니다. 중국은 관리치고 부패하지 않은 자가 없지만 농업이나 수자원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낙마한 자가 많지 않지요. 장쩌민은 이미 죽었는데 당신들은 아직도 그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양이 되다니 참으로 가련하네요. 나이를 보니 내 아들 또래쯤 되겠는데 이렇게 젊고 잘생긴 데다 직장도 좋으니 이건 당신들 복입니다! 부디 소중히 여겨야 해요!” 저는 또 어메이산에 대불(大佛)을 모시면서 동시에 코끼리를 모시는 이유부터 현재 말법(末法) 시기의 천재지변 속 위기 상황에 오직 대법만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까지 들려줬습니다.
고속도로를 2시간가량 달리는 동안 저는 줄곧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이 짜증을 내면 입을 다물고 속으로 발정념을 하다가 잠시 후 다시 얘기했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그들은 불법적으로 제 물건을 뒤지며 사진을 찍고 조서를 썼습니다. 옷가지 하나하나와 가방을 샅샅이 뒤지기에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엔 온몸이 병덩어리였는데 수련한 지 28년 동안 약 한 번 먹은 적 없고 주사 한 번 맞은 적 없어요. 몸에 탈이 나도 약이나 주사를 찾기 전에 심성이 올라가면 나아버리니 무슨 약을 또 먹겠어요?” 그들은 저에게 집에서 ‘사고 친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없다고 했습니다. “나는 밖에 잘 안 나가요. 우리 동네 경찰들은 처음에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엄청 적극적이었는데 그 이유를 아나요?” 그가 왜냐고 묻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에요. 대법제자는 맞아도 맞서 싸우지 않고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으며 보복도 안 해요. 그래서 그들이 양심을 속이고 일을 저질러도 뒤탈이 없고 돈까지 챙길 수 있었죠. 하지만 하늘에는 눈이 있고 신의 눈은 번개와 같아 응보가 따르는 건 천리입니다. 지금의 재난은 다 그런 나쁜 놈들을 도태시키는 거예요. 진짜 대법제자들은 박해를 겪고 돌아와도 손해 본 게 없지만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가담한 악인들은 크고 작은 응보를 다 받았어요. 그래서 우리 동네 경찰들은 이제 아무도 대법제자를 박해하려고 안 해요. 누가 신고를 해도 이쪽에서 잡았다가 저쪽 모퉁이 돌아서면 풀어주지요. 610은 ‘죽음의 자리’라 아무도 안 하려 들어요. 저우융캉(周永康), 리둥성(李東生), 보시라이(薄熙來), 왕리쥔(王立軍) 등 그자들의 말로를 봐요. 당신들이 나보다 잘 알 거예요. 반드시 자신과 가족을 위해 생각해 봐야 해요! 지금은 다 공무원 종신 책임제인데 나중에 누가 당신들 대신 책임을 져주겠어요! 상부의 잘못된 명령을 집행할 때 총구를 조금 위로 겨누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 응보를 받는 법이니 이것이 바로 천리입니다!”
그들은 어메이산에서 뭘 했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메이산 풍경이 참 아름답긴 한데 나는 고산병이 와서 사흘이나 밥을 굶고 설사를 하는 통에 산에 오를 기력이 없었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금빛으로 반짝이는 글귀가 눈에 띄더군요. 바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였어요. 나는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지요. 전국 어디에나 이 보물이 있으니 이 지역 중생들은 참 복도 많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금빛 찬란한 글귀를 따라 나도 모르게 산 정상까지 걸어갔어요.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중생을 구제하심에 깊이 감사드렸지요! 이 글귀는 누가 붙였든 간에 착한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고 평안하고 건강하길 축원하는 거랍니다. 그건 폭탄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며 더더구나 생명을 해치지도 않아요. 당신들이 굳이 날 해치려 든다면 나도 더 할 말이 없군요.” 그들은 제 전자책, 휴대폰 등을 불법적으로 몰수하고 서명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안 하겠다고 하자 그들은 협조를 안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하룻밤 내내 이렇게 큰 고통을 참으며 당신들에게 협조했는데 당신들은 그저 서류나 짜맞춰서 나를 박해하려는 거 아닌가요? 이건 본래 내 물건인데 서명까지 하라니. 내가 서명 안 하는 건 당신들을 위해서예요.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나도 이런 말은 감히 못 꺼냈겠지만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요. 정말 너무나 무서운 일이고 이건 다 피의 교훈입니다! 믿든 안 믿든 난 다 당신들을 위해 하는 말이에요. 이 서명은 절대 할 수 없어요. 내가 서명하면 당신들은 백 퍼센트 응보를 받을 거고 이름은 지옥에 올라갈 거예요. 그래서 당신들을 위해 서명 못 해요. 나는 바른 에너지를 전하러 온 건데 당신들을 구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해치게 된다면 그건 안 되죠! 지금부터 난 그 어떤 요구에도 다신 협조하지 않을 거예요.”
그 후 제 몸에 심각한 허탈 증세가 나타나고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마지막에 그들은 제 상태를 보고 언니와 형부에게 전화를 걸어 데려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마침내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됐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저 역시 그들이 마지막에 선량함을 선택해 자신과 가족, 그리고 그곳 중생들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남겨준 것에 대해 참으로 기쁩니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7/12/50703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7/12/50703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