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 2년간 불법 구금된 경험
글/ 허난성 대법제자 낙연(樂緣)
[명혜망] 몇 년 전 어느 날 나는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나는 끊임없이 경찰에게 진상을 전하며 나를 풀어달라고 했고, 좋은 사람을 잡으면 좋지 않은 응보를 받는다고 알려줬다. 그들은 “풀어줄 수 없어요.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가 한 일이라 우리에게 잡으라고 했거든요”라고 했다. 나는 경찰에 의해 구치소로 보내져 불법 구금됐다. 구치소 대문으로 들어서는 그 순간 나는 한순간에 바깥세상과 단절됐다. 내 수갑이 풀렸을 때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 곁에 계심을 알고 매우 감동했다.
구치소의 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이불은 낡을 대로 낡았고 밥을 먹는 작은 그릇은 조잡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종이로 닦기만 해도 색이 벗겨졌다. 당시는 한창 무더운 계절이었는데 규율이 매우 엄격해 반드시 이불 위에서 자야 했고 베개를 베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자다 일어나면 이불 위에 마치 지도를 찍어놓은 것처럼 사람 형태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었고 약 20여 제곱미터 크기였는데 많을 때는 30명 정도를 수용했다. 약 7.5미터 길이의 긴 침상에서 잠을 자는데 마치 솥에 붙여 굽는 떡처럼 나란히 붙어서 몸을 뒤집는 것조차 어려웠다.
이곳에서는 집에서 연줄을 댄 사람 외에는 모두 당번을 서야 했다. 낮 당번은 오전 6시부터 낮 12시까지, 오후 당번은 오후 2시부터 8시까지로 모두 30분씩 교대로 섰고 밤 8시부터 아침 6시까지는 2인 1조로 2시간씩 당번을 섰다. 이곳은 규율이 매우 엄격해 말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질러서도 안 됐으며 잘못하면 당번을 서는 벌을 받았다.
생활은 더욱 괴롭기 짝이 없었다. 아침과 저녁은 바닥이 훤히 보이는 묽은 밀가루 국물과 찐빵뿐이었고 반찬은 없었다. 점심은 누렇게 변한 딱딱한 배춧대를 조금 넣어 반쯤 익힌 짠맛도 없는 국수였다. 많은 사람이 “이 밥은 돼지도 안 먹겠다”라고 했다. 나는 이 어두운 소굴에서 2년을 보냈다.
내가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오전에 경찰이 감방을 점검하러 와서 “새로 온 사람이 누구예요?”라고 물었다. 내가 일어서자 경찰이 “왜 왔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입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누구나 자신의 신앙이 있을 수 있죠. 괜찮아요”라며 나를 앉게 했다.
바람을 쐬는 시간에 협관(協管)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전에 저와 함께 갇혀 있던 파룬궁수련생이 있었는데 정말 훌륭했어요. 담당 직원이 가져온 문서에 절대 서명하지 않았고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는 서류에도 서명하지 않아 5년형을 받았어요. 감옥으로 이송될 때 그녀는 각 감방 문 앞으로 가서 안에 갇힌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했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이 수련생의 정념정행에 깊이 탄복했다.
일주일 후 집에서 나에게 변호사를 선임해 줬다. 경찰이 감방에 와서 나를 데려가려 할 때 아무리 해도 나에게 수갑을 채울 수가 없자 그녀는 “그냥 당신 손목에 걸쳐놓겠어요”라고 했다. 한 사무실에 이르러 나를 서게 한 뒤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수갑을 가져왔는데, 이것저것 바꿔가며 시도해도 역시 채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상하네. 왜 이 아가씨한테는 채워지지 않는 거지?”라고 했다. 나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억울하게 잡혀 온 거예요”라고 했다. 그녀는 “말하지 마세요. 감시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녀는 억지로 눌러 수갑을 채웠다.
변호사를 만났을 때 변호사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수십 년 동안 사건을 맡아왔는데 당신은 제가 만난 첫 번째로 이렇게 평온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보면 모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얼굴에 초조함과 초췌함이 가득한데요.” 나는 변호사에게 “저는 억울하게 잡혀 왔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변호사에게 진상을 전하자 변호사는 “조심하세요. 당신이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들으라고 하세요”라고 했다. 나는 변호사에게 “가족들이 여기저기 사람을 찾고 돈을 쓰는 일이 없도록 전해주세요”라고 당부했다.
며칠 후 감방에 40대의 말이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자신이 10년 전에 이곳에 갇혔다가 나중에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나갔다고 알려줬다. 그때 처음 왔을 때는 온종일 자살하고만 싶었다고 했다. 구치소에서는 수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해야 했는데 일이 없을 때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 이후 그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한 노인이 일이 없을 때면 자주 가부좌를 트는 것을 보았는데 한 번 앉으면 8시간씩이었고 그녀는 이 모습에 완전히 탄복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고 나가면 반드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을 찾아 자신도 이 공법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
이후 그녀는 나갔지만 파룬궁수련생을 찾지 못하고 기독교인을 만나 어쩔 수 없이 따라서 믿게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우 독실했지만 웬일인지 배우고 배워도 지금까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자신에게 별다른 변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그러다 또 들어왔다고 했다. 그녀는 매일 “빨리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나는 아이가 보고 싶어요. 당신이 나가거든 내 딸을 좀 보러 가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이후 알고 보니 그녀의 판결이 무겁지 않아 일찍 나갔다고 한다.
거의 한 달이 됐을 때 우리는 각 당번 조로 흩어져 배정받게 됐다. 다들 사이좋게 지내왔기에 헤어지기 싫어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녀들은 나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을 보니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겠어요”라고 했다. 경찰이 명단을 읽을 때 나는 구치소에서 매우 엄격하다고 알려진 1반으로 배정됐고 방 안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위해 조마조마해했다. 방장[號長]이 나에게 “자신을 잘 돌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 감방 문 앞에 이르자 경찰과 방장이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장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봤고 경찰은 “이 사람도 순해 보이네요”라고 했다. 감방에 들어서자 협관 직원이 나에게 “여기도 당신과 같은 이유로 온 노인이 있어요”라며 가리켜 줬다.
저녁 감방 회의 시간에 방장이 “당신은 내 곁에 앉으세요. 이 방에 온 것은 편하게 지내러 온 겁니다”라고 했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함께 지내는 동안 방장은 나에게 잘 대해줬고 나에게 청소를 시키지 않았다. 내가 먼저 하려고 하면 협관이 팔을 뻗어 나를 막곤 했다. 나와 함께 있게 된 수련생도 수련을 정말 잘했고 나는 그녀에게서 수시로 나와의 차이를 발견했다. 열흘 남짓 후 그녀는 다른 곳으로 이송됐다. 같은 이유로 들어온 사람은 한 감방에 가두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떠난 후 방장도 이따금 나에게 자신의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겠다고 했다. 방장은 나에게 처음 왔을 때는 매일 울었는데 이후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왔고 정말 훌륭했다고 했다. 그 수련생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많이 이야기해 줬다고 했다. 밤에 잠을 못 자고 낮에 졸리면 그녀는 그 파룬궁수련생의 어깨에 기대어 졸았다고 했다. 그 파룬궁수련생은 정말 굳건해서 서명하지 않고 당당했다며 “당신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에요”라고 전했다.
이후 이곳에 사람들이 왔다 가는 과정에서 나는 그녀들이 나에게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자신들의 고모나 이웃 등도 파룬궁을 수련해 모두 잡힌 적이 있지만, 잡혀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히 수련한다는 이야기들이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은 모두 정의로움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나에게 정념을 주시고 일반인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주시며 내가 수련의 길을 잘 걷고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되도록 시시각각 격려해 주고 계심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의 깊은 뜻에 깊이 감사드린다.
담당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나를 심문할 때 나는 조리 있고 근거 있게 그들에게 진상을 전했다. 파룬궁이 무엇인지 말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이야기했으며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는 것과 법률 지식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들에게 “무슨 근거로 사람을 붙잡습니까?”라고 물었다. 한 우두머리가 “300조에 근거해서요”라고 했다. 나는 “300조 안에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왜 이렇게 큰 사안이 그 많은 세월이 지나도록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겠어요? 법률은 인민대표대회에서 제정하고 통과시키는 것인데, 위법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람을 잡는 것은 바로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돌아가시면 법률을 좀 보시길 바랍니다.” 그는 “알겠어요. 한번 볼게요”라고 했다.
한 달 후 검찰원이 불법으로 나를 심문할 때 나는 만면에 봄바람 같은 미소를 띠고 경찰을 따라갔다. 그들은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오래 갇혀 있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이렇습니까?”라고 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저는 범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도 좋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떠날 때 나는 그들에게 “가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 죄를 인정하고 처벌을 받아들이라는 서류가 내려왔다. 협관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당신 죄를 인정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이건 범죄 인정 서류인데 서명해야 해요”라고 했다. 나는 “저는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서명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사부님의 이끄심 아래 제자는 정법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마다 중생에게 가져다준 것은 모두 자비로운 선한 마음이었다. 자신의 언행과 몸가짐을 통해 그들에게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능력을 주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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