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85허우(八五後, 1985년 이후 출생) 대법제자입니다. 어머니께서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셨는데, 저는 곁에서 보고 들으며 한 사람이 수련하면 온 가족이 혜택을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혜택’을 단순히 ‘건강’으로만 이해했기에 건강은 저의 근본적인 집착이 됐고, 지금까지의 수련 과정 전반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이 교류 글을 쓰게 된 것은 최근 병업 가상을 겪으며 수련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스로 경종을 울리고, 수련생들과도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마음을 다해 법공부해야 비로소 법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 어머니(수련생)께서는 간곡하게 권하고 끊임없이 견지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억지로 끌다시피 하시며 저에게 대법서적을 읽게 하셨기에 저는 대법을 떠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태였지만 줄곧 《전법륜(轉法輪)》을 읽었고, 사부님의 신경문을 배우는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법공부 심득을 저와 나누셨고, 수련생들의 교류 글도 보여주셨습니다.
‘병’을 업을 없애는 소업으로 여기던 데서 수련자에게는 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그리고 수동적으로 업이 다 없어지기를 기다리던 데서 능동적으로 안으로 찾아 사악을 해체하기까지, 이러한 사상적 승화는 수년간의 법공부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많은 병업 고비를 겪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끊임없는 정성 덕분에 법공부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안으로 찾는 법을 알게 됐고,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빠르게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수년간 저는 줄곧 법공부를 했지만 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고, 잡념이 많아 엄숙하지 못했습니다. 늘 ‘병’ 상태가 나타난 뒤에야 제가 수련인임을 의식했고, 그제야 한동안 법공부를 진지하게 했습니다. 이는 사부님과 법을 공경하지 않는 것이며, 추구하는 마음으로 수련하는 것이라 매우 위험했습니다.
심각한 병업 가상 속에 있을 때 육체적인 고통이 오래 지속될수록 의지가 쉽게 소침해지고 법리가 명확하지 못하며 정념도 부족해졌습니다. 고비가 커지면 잠시 정진한다고 해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평소 정말 마음을 다해 능동적으로 법공부해야만 법리를 깨달을 수 있으며, 법의 요구에 따라 일사일념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고난에 쫓기듯 자신을 수련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2. 법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거나 마음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지난해 4월 하순, 저는 갑자기 목과 입이 쓰고 건조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열이 오른 것’으로 여겨 물을 많이 마시고 과일을 먹었지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5월 초 연휴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는데, 입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해 매우 괴로웠습니다. 직원과 가까이서 대화할 때 상대가 뒤로 물러나며 전단지로 코를 가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몹시 우울했습니다. 이후 증상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아침에 가볍고 오후에 심했으나, 나중에는 하루 종일 목이 아프고 입이 건조하며 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쓰고 악취가 났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긴 저는 의학 지식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상태는 ‘구강작열감증후군’에 부합했습니다. 또 그 원인을 찾아보니 갱년기, 당뇨병, 우울증 등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원래 이런 ‘병’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이전의 경험에 따라 저는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벗어나 목적을 가지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병’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한 것임을 곧 깨달았고, 사부님과 법을 믿는 면에서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정념을 발해 두려움을 제거하고 사상업(思想業)을 청리했지만 증상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법공부를 계속하며 다시 안으로 찾아 원망, 질투, 쟁투심, 정, 이익, 허영, 이기심 등 많은 사람 마음을 발견했지만 호전은 미미했습니다. 핵심 문제를 찾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며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일깨워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머릿속에 한 구절의 법이 또렷이 떠올랐습니다. “경서를 함부로 해석한 일부 사람은 부처의 경지와 거리가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그 진정한 함의를 전혀 모른다.” 《전법륜》을 평소 통독할 때는 스쳐 지나가듯 읽었을 뿐 한 번도 자신을 대조해 본 적이 없는 구절이었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하며 이 법에 따라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심각하게 ‘법을 해석하는’ 죄를 범하고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연은 이랬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수련생)에 대해 10여 년 가까이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분노와 원망이 가득해 가족 앞에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후에는 시어머니가 제 심성을 높이도록 돕는 존재라고 생각해 겉으로는 평온하고 예의 있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단지 저를 향상시켜 주는 존재로만 여기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생각에 법리적으로 시어머니와 교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제 심성이 진정으로 제고됐다고 여겨 사부님의 설법을 자주 인용하며 시어머니의 사상과 행동을 ‘교정’하려 했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법리에 밝고 스스로 ‘참 잘 깨달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일깨움을 받고서야 제가 법을 해석하는 것은 물론 ‘법을 이용하는’ 중죄를 범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부님의 설법을 단편적으로 인용했으며, 그 속에는 법을 빌려 자신의 관점을 증명하고 상대를 설득하거나 억누르려는 목적이 숨어 있었습니다. 정말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법공부는 자신의 언행을 대조하고 자신을 닦기 위한 것입니다. 법으로 남을 대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수련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온종일 다른 사람이 마도(魔道)를 걷는다고 말했지만, 정작 자신이 마도에 들어설 뻔했다는 사실은 몰랐던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인식한 바로 그날부터 ‘구강작열감증후군’이 호전되기 시작했습니다. 법을 읽을 때 두 달 넘게 괴롭히던 느낌이 바늘 끝만한 크기로 모이더니, 마치 전류처럼 목에서 위턱을 지나 잇몸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그 자극이 지나가는 곳마다 저릿저릿했습니다. 마지막에 그 느낌이 혀끝으로 이동하더니 병업 가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단 이틀 만에 증상이 깨끗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이른바 ‘병’이라는 것이 바로 영체(靈體)임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그것이 나타나면 자신의 일사일념과 일언일행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제가 진심으로 제고하려 노력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는 법리를 펼쳐 보여주십니다.
3. 관념을 바꾸자 이명이 멈추다
부지불식간에 저는 너무나 많은 관념을 형성해 놓았습니다. 예전에 한 고비를 넘기면 꽤 오랫동안 고난이 없었기에, 저는 ‘방금 고비를 넘겼으니 바로 다른 고비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념을 갖게 됐습니다. 하지만 ‘구작증’이 낫자마자 어느 날 오후 법공부를 할 때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무엇인가로 막은 듯 답답한 소리였습니다.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오니 다시 괜찮아졌습니다. 저는 ‘어째서 이런 병업 가상이 끝나자마자 또 이어질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안으로 찾아본 결과, 체중 감량에 집착해 진한 차를 너무 많이 마신 게 원인이라 생각했습니다. 증상이 2~3시간만 지속됐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으나, 이후 오후만 되면 이런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생각이 바르지 못했던 저는 인터넷을 검색해 차를 잘못 마신 게 원인이라 단정하고 차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증상은 점점 심해져 수면과 청력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결국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이명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쉬지 않고 안으로 찾았지만 증상은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의기소침해졌고 짜증까지 났습니다. 남편(수련생)은 웃으며 “이건 공능이 나오려는 거야”라고 했고, 어머니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어떤 수련생이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공능이 나오는 거라는 말을 듣고도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결국 병업 고비를 넘기지 못했어. 너는 관념을 바꿔야 해.”
저는 줄곧 ‘수련 중에 누락이나 집착이 있으면 다른 공간의 영체가 틈을 타 신체를 박해하는 것이니, 반드시 안으로 찾아 바로잡아야 좋아진다’는 관념을 갖고 있었습니다.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단순히 ‘인정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모두 좋은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그것은 정념의 한 표현일 뿐 반드시 안으로 찾아 바로잡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로 만나지도 않은 두 가족이 똑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사부님께서 그들의 입을 빌려 관념을 바꾸라고 일깨워 주시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매번 고비를 넘길 때마다 저는 이전 방식을 모방하려 했고, 마치 공식처럼 ‘병업 고비에서는 이렇게 안으로 찾아야 넘길 수 있다’는 관념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마음이 탁 트였습니다. 저의 이명은 바로 경종이었습니다. 조금 제고됐다고 만족해 발걸음을 멈추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마음속에 씁쓸함이 밀려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진하며 착실히 수련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생들이 있지 않을까? 나는 항상 어머니께 의지해 왔고 어릴 때부터 자신을 어머니 세계의 중생으로 여겼다. 수년 동안 이 관념을 직시한 적이 없었다.’ 제 세계가 시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중생들을 절망 속에 살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저를 위해 경종을 울리며 정진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할수록 사명감이 느껴져 아침 연공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오랫동안 연공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중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법공부를 하며 한 생각이 스쳤습니다. ‘만약 이명이 갑자기 좋아진다면 내 깨달음이 옳다는 뜻일 거야. 나는 교류 글을 써야겠다.’(나중에 이것이 일부분만 깨달은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신기하게도 귀가 잠시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다음 날부터 알람을 맞춰놓고 이틀 동안 연공을 하자 두 달 넘게 괴롭히던 이명이 씻은 듯 사라졌습니다.
4. 무엇을 위해 수련하는지와 근본 집착에 대한 깊은 사색
하지만 교류 글을 쓰는 일에서 다시 물러서고 말았습니다. 구상을 해보니 수년 동안의 수련 체득이 대부분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 수준이라 너무 얕고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명이 좋아진 지 일주일쯤 지났을 때, 머릿속인지 귓속인지 모를 곳에서 옛날 TV의 신호 없는 소음 같은 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번처럼 소리가 크지는 않았고 생활에 큰 지장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저는 교류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을 안으로 찾았지만 여전히 펜을 들지 못했습니다. 소음이 커지자 더는 지체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글을 절반도 못 썼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몹시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누우면 깊이 잠들어 깨기 어려웠고, 깨어나도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정념을 발하거나 연공, 법공부를 할 때도 졸음이 쏟아져 무엇을 읽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의 잠만 잤습니다. 다른 공간의 교란임을 깨닫고 반드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교란할수록 두려워한다는 뜻이니 더욱 써야 했습니다.
저는 교류 글을 다 쓰면 이명이 좋아질 거라는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전의 경험에 비추어 글을 쓰면서도 증상이 나아지는지,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폈습니다. 어느새 저는 수련을 병 치료 방법으로 여기고 있었고, 증상의 변화로 자신의 법리 깨달음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안으로 찾는 것이 사부님의 요구라고 생각했고, 정진하고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몸의 불편함을 영체가 틈을 탄 것으로 여겼으니 병으로 보지 않은 것이라 자위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분명 병을 치료하려 하고 있었고, 단지 수단을 바꾼 것뿐이었습니다.
이런 어리석고 더러운 추구하는 마음 때문에 이명은 오히려 심해졌고, 의심과 짜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문득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의심하는가? 누구에게 짜증을 내는가? 대법을 의심하는가? 사부님께 짜증을 내는가? 내가 지금 제정신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제 수련 상태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저는 수련을 대충 해왔고, 몸에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안으로 찾으며 관을 넘기 위해 한동안 반짝 정진했습니다.
당시에는 층차가 낮고 법리도 밝지 못했기에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제 감당 능력에 맞춰 고비를 안배해 주셨고, 서서히 깨달음을 높이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20여 년이 지나도록 저는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인식이 다소 높아졌다고는 하나, 결국 몸에 이상이 생긴 뒤에야 시작하는 정진이었습니다.
도대체 제가 어떤 상태에 머물러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문득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왜 수련하는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인식하지 못했고 건강에 대한 집착도 버리지 못했다. 조건 없이 습관적으로 안으로 찾지 못했고, 집착을 제거하면 몸이 곧 좋아질 거라는 생각을 20여 년간 줄곧 인정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저는 여전히 사부님과 대법을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와 교류하며 제 문제를 직시하고 숨겨진 마음을 깊이 파헤치자, 병에 대한 집착이 또렷이 보였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진정한 수련 제자에게는 병이 없다고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만, 저는 그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병이 생길 거라는 잠재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이나 자신에게 병이 생길까 늘 두려워했습니다. 그 이면에는 병이 가져올 고통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이를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정은 이기적인 것이기에 결국 제가 고통받는 게 싫었던 것입니다. 정이 무거울수록 이기심도 커졌고 병에 대한 공포도 심해졌습니다.
두려움은 곧 추구하는 것입니다. 제가 스스로 병을 구해 온 셈입니다. 안으로 찾는 행위조차 결국 병 치료 방법을 찾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수련을 보호막으로 여기며 건강을 위해 수련하는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평안하고 고난 없는 삶을 위해 수련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구세력에게 휘둘리면서도 저를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감당해 주신 사부님의 가르침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명이 처음 사라진 것은 관념을 바꾸는 게 옳다는 사부님의 일깨움이셨고, 다시 나타난 것은 집착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왜 수련하는지 깨닫게 하시려는 사부님의 고심어린 안배였습니다. 사부님의 노고에 더는 실망을 드려서는 안 되며, 제 세계의 중생들을 절망 속에 방치해서도 안 된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포륜을 하며 냉장고 소음을 듣다 생각했습니다. ‘이 이명은 냉장고 소리와 비슷하고 나를 아프게 하지도 않는다. 내가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내게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지 않을까?’ 이틀 동안 저는 이명을 잊었을 때 증상이 잠시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의심하는 마음으로 소음이 정말 사라졌는지 확인하려 했고, 그 순간 소음은 다시 나타났습니다.
다행히 법공부와 교류를 통해 어머니가 늘 하시던 “느끼려 하지 말고 인정하지도 마라. 모두 가상이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 역시 사부님의 설법에서 깨달으신 것이었는데 제 부족함으로 이제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저는 이명이 어떻게 사라질지 고민하지 않고 오직 수련에만 전념할 것입니다.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것이 제가 세상에 온 목적이며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잠시 글쓰기를 멈춘 사이 가슴을 누르던 큰 돌이 내려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추구하는 마음 없이 법공부를 하자 법리가 끊임없이 펼쳐졌고 심성도 제고됐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관념을 반성하며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감정도 안정됐습니다. 이제는 환경 소음인지 이명인지 구분조차 못 할 정도가 됐습니다.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는 단계에서, 법리가 분명해져 마음에서 정념이 우러나오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며칠 전 포륜을 할 때 냉장고가 작동하는 소리를 듣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 몸에서 나는 소리도 본체(本體)를 변화시키는 과정이 아닐까? 심성이 높아지면 몸도 고에너지 물질로 변하는데 어찌 느낌이 없겠는가?’ 오늘 아침 연공 중에 다시 소리가 들렸지만, 즉시 바르지 못한 생각을 제거하자 어느새 소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최근 얼굴에 알레르기가 일어나 아프고 가렵고 부었지만, 예전처럼 원인을 찾으려 애쓰지 않았습니다. 이것 역시 본체가 변화하는 과정임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화장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던 문제도 함께 바로잡았습니다.
맺음말
부족한 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과 수련생들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반드시 자신을 바로잡고 착실하게 수련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3/10/50512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3/10/505125.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