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기적을 목격하다

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1. 시어머니를 모시며 목격한 대법의 위력

어느 해, 시어머니께서 다리가 부러져 입원 치료를 받게 되셨습니다.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형님(큰동서)과 함께 병원에서 시어머니를 간병했습니다. 당시 저는 매일 법공부를 거르지 않았고, 저 자신을 엄격히 수련인으로 여기며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몸을 뒤집어 드리고 매일 몸을 닦아드렸으며, 식사도 직접 챙겨드렸습니다. 마음속에 법이 있었기에 시어머니를 싫어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비록 시어머니께서 정신 질환이 있어 온전치 못하셨지만, 제가 진심으로 모시는 것을 느끼셨는지 어떤 일을 해도 잘 협조해주셨습니다. 반면 수련하지 않는 일반인인 형님은 시어머니를 몹시 싫어하고 인내심이 없어서, 형님이 하는 일에는 시어머니가 전혀 협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옆 침대 환자는 제가 시어머니의 딸인 줄 알았다가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고는 무척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진상을 알렸고, 그분은 크게 공감하며 대법을 믿었습니다.

병원 치료가 끝난 후 형님은 더는 간병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시면 시아버지 혼자서는 감당하실 수 없었기에, 저는 남편과 상의해 시어머니를 우리집으로 모셔와 돌보기로 했습니다. 걱정이 된 시아버지도 함께 오셨습니다. 우리는 두 분을 모셔와 햇볕이 잘 드는 방을 드렸습니다. 저는 본래 집안의 막내로 자라 남을 수발드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마음속에 법이 있었기에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악취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부님께서 저의 더러움을 타는 마음을 잠가주신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시어머니의 친아들이 변기를 보며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습니다. 시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사다 드리고 요리해 드렸는데, 두 분은 매 끼니 돼지머리 고기를 드시고 싶어 하셨습니다. 제 요리 실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두 분은 매우 맛있게 드셨습니다. 그 기간에도 저는 세 가지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리는 동안 시아버님이 집에서 시어머니를 보셨고, 제가 돌아오면 아버님이 밖으로 나가 산책하며 마음을 달래셨습니다. 10~15일 정도 지내신 후 시아버지는 마음이 놓이셨는지, 집에 두고 온 가축과 개가 걱정돼 고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시어머니는 정신 질환으로 밤에 잠도 잘 주무시지 않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대법 진상 자료를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해에는 션윈 영상을 볼 수 있었기에 TV로 션윈 영상을 틀어드렸습니다. 영상을 트는 순간, 생각지도 못하게 시어머니는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듯 조금씩 구석으로 몸을 옮기더니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몹시 두려워하며 보지 않겠다는 몸짓을 하셨습니다. 저 역시 션윈의 위력이 이토록 클 줄은 몰랐습니다. 시어머니의 그런 반응을 보고 오히려 션윈을 계속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만큼은 시어머니의 뜻에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영상을 틀어드렸고 밤에 잠들 때에야 껐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시어머니의 표정은 경악에서 점차 무관심으로, 다시 편안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나중에는 아주 집중해서 보시더니 스스로 TV 앞까지 몸을 옮겨와 보셨고, 처음 오셨을 때의 음산한 표정은 사라지고 웃음까지 띠게 되셨습니다. 결국에는 TV를 끄지 못하게 하셔서 24시간 내내 션윈 영상을 틀어드려야 했습니다. 정신 상태도 점점 좋아지셨습니다. 처음 오셨을 때는 머리를 산발한 채 깎지도 빗지도 못하게 하셨는데, 션윈을 보신 지 얼마 후에는 머리를 감고 빗는 것도 허락하셨고 얼굴색도 붉은 기가 돌며 건강해지셨습니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드리는 것도 순순히 따르시니 정말 딴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후 다리 부상도 거의 완쾌하셨고, 제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해서 더는 돌볼 시간이 없었기에 시어머니를 고향으로 모셔다드렸습니다. 이때 션윈 영상도 함께 챙겨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날, 우리는 시어머니를 구들방에 모시고 이불과 요를 모두 새것으로 갈아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깨끗하게 빗은 머리에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친척과 이웃들이 구경하러 왔다가 딴사람이 된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는, 우리가 전하는 대법의 진상에 감탄하며 대법의 아름다움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시어머니가 그 자리에 앉아 계신 것 자체가 최고의 진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시어머니와 왕래가 없던 친척들까지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와 변화된 모습을 확인하고는 진심으로 대법 진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그들이 진상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안배하신 것임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평소 우리는 시부모님께 기름, 소금, 세제 등 생활용품을 사다 드립니다. 명절마다 속옷부터 신발, 양말, 솜옷까지 겉과 안의 옷을 모두 새것으로 사드렸습니다. 시아버지는 명절이면 기쁜 얼굴로 저희가 사드린 새 옷을 입고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세배를 하셨습니다. 이러한 변화 덕분에 시아버지와 남편의 관계도 완화됐습니다. 예전에 남편은 어릴 때부터 아버님께 매 맞고 꾸지람을 듣기 일쑤였고, 직장 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명절에 집에 가면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쫓겨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아버지는 명절에 남편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실 정도가 되셨습니다.

2. 직장에서 실천하는 진선인

제 직업은 계산원 겸 창고 관리직입니다. 처음에는 창고 관리만 맡았고 계산 일은 할 줄도 몰랐습니다. 관리 과정에서 저는 시종일관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물건을 대하며 훔치거나 탐내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쉬는 날 다른 사람이 관리하다가 계산이 틀려 장부가 맞지 않으면, 매니저는 비싼 물건으로 부족분을 채우거나 할인하지 않는 상품을 할인 상품으로 바꿔치기해서 메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것은 속임수가 아닌가, 결국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쉬는 날 당직자가 창고를 열었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100위안이 넘는 상품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더는 속임수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해 매니저에게 말하고 제 돈으로 보충했습니다.

한동안 계산원이 부족했고 회사는 경제 사정으로 감원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사장님은 제 인품을 알고 계셨기에 제게 계산원 업무를 겸직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월급은 그대로였지만요. 처음에는 나이도 있고 해서 다른 일을 찾고 싶지 않아 망설였으나, 다른 직원들은 손해 보는 일이라며 제 옆에서 계속 부정적인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그 일을 맡았습니다.

계산원 업무는 일반인들에게는 꽤 배우기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수습생이 한 달을 배워야 겨우 손에 익히고도 갈팡질팡합니다. 어떤 이들은 배우기 힘들어 일을 그만두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배울 때는 체계적으로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2~3일 정도 지켜보고 모르는 것을 물어봤을 뿐인데, 마치 지혜가 열린 듯 며칠 만에 다 익혔습니다. 스스로 교육 매뉴얼까지 만들 정도였으니, 이 모든 것이 대법이 제게 준 지혜임을 압니다.

계산 업무에는 강한 책임감과 도덕성이 요구됩니다. 이전 계산원들은 할인되지 않는 상품을 할인된 것으로 처리한 뒤 그 차액을 가로채곤 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기에 진선인(眞·善·忍)의 요구에 따라 탐욕을 부리지 않았고, 회사의 돈을 한푼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손님이 거스름돈을 가져가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런 돈을 모두 모아두었습니다. 퇴직할 때 손님들이 받지 않은 돈과 정산 후 남은 돈 등 총 500위안이 넘는 금액을 재무과에 모두 반납했습니다.

이후 코로나가 끝난 뒤 많은 직원이 떠났을 때도 사장님은 늘 저를 찾아 계산 업무를 부탁하셨습니다. 그분들은 제 인품을 인정하는 것이며, 곧 대법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대법제자만이 물욕이 넘치는 이 탁한 세상에서 탐욕 없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음을 그들도 깨달은 것입니다.

3. 션윈이 친지들에게 가져다준 복

한 수련생의 아들 A는 외국에 거주하며 부부가 남 밑에서 일하느라 수입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A가 사장님과 출장을 갔는데, 사장님의 모든 서류를 A가 들고 있었습니다. 공항을 나와 화단 옆에 잠시 앉아 있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많았습니다. 차를 타러 이동하던 중 A는 사장님과 자신의 서류가 든 가방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서류를 잃어버리는 것은 큰일이었고 직장에서 잘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A는 평소 어머니가 위급할 때 외우라고 했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외웠고,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계속해서 구절을 외웠고, 마침내 화단 옆에 놓여 있는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여전히 앉아 있었음에도 아무도 가방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일 이후 A는 대법을 인정하게 되었고, 긴급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련생은 아들 부부와 함께 션윈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관람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의 친구가 “직접 사업을 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A가 밑천이 없다고 하자, 그 친구는 “마침 사업하기 좋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자네가 운영해 보게. 돈을 벌면 그때 갚아도 좋네”라며 건물과 사업권을 모두 넘겨주었습니다. 서류 절차도 아내를 통해 놀라울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돈을 벌어 친구의 돈을 금방 갚았고 사업은 번창했습니다. 명절에는 아들이 기쁜 마음으로 직원들에게 뷔페를 대접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A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 것 같은’ 행운이 찾아온 것입니다. 진정 션윈이 그들에게 복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그 후로 A 부부는 매년 션윈 공연을 거르지 않고 관람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친척 한 분은 12년 동안 귀에서 계속 고름이 나왔습니다. 어느 해 외국에서 션윈을 볼 때, 누군가 공연을 보고 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귀가 낫기를 바랐습니다. 공연을 본 후 정말로 귀에서 고름이 멈췄고, 그 후로 수년째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 수련생의 아들은 최근 1~2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병원 치료, 민간요법, 한의학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나아지지 않아 어머니가 무척 걱정했습니다. 수련생은 아들에게 외국에 나가 션윈 공연을 직접 보자고 설득했습니다. 아들은 평소 TV로 중계되는 션윈 영상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결국 설득되어 공연을 보러 갔습니다. 외국에서 직접 공연을 보고 돌아온 아들은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션윈 관람객이 노인들뿐일 줄 알았는데, 현장에 가보니 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했습니다. 또 막이 오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공연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 충격과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으며 강한 에너지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건장한 남자가 공연 내내 눈물을 흘리니 처음엔 쑥스러웠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자신처럼 빛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돌아온 뒤 그는 몸과 마음이 씻겨 내려간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늘 무기력했던 아들이 이제는 활기가 넘치고, 션윈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감동에 젖어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 많은 사람에게 션윈을 알리고 직접 보러 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저는 1995년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한 이후 줄곧 대법의 크나큰 은혜 속에 머물러 왔습니다. 비록 수련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아 이리저리 넘어지기도 했지만, 사부님께서는 늘 방대한 자비로 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30년의 풍파 속에서 사부님의 인도와 보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세상 그 어떤 언어로도 부족하기에, 오직 부지런히 정진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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