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악단에 참가한 수련 체험

글/ 멜버른 천국악단 연주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06년 시드니에서 천국악단이 창단됐고 저도 운 좋게 악단의 첫 번째 단원 중 한 명이 됐습니다. 당시를 떠올려보면 몇몇 수련생이 곧 문을 닫을 악기점에서 여러 가지 악기를 사 와 공원의 넓은 잔디밭에 놓고 모두가 고르도록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수련생은 모두 사부님의 신묘한 안배 아래 각자 자신의 법기(法器)를 선택했고 음악이라는 형식으로 진상을 알리며 세상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학교 밴드에 들어갔는데 그때 배운 악기가 바로 트럼펫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께서도 모든 악기를 우리 앞에 놓고 하나하나 다 시도해 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저는 모든 악기를 다 불어봤는데 플루트를 부니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했고 색소폰과 클라리넷은 소리가 나지 않았으며 트롬본과 알토 호른은 악기가 너무 크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트럼펫을 집어 들었는데 소리가 났습니다! 그날 저는 기쁜 마음으로 트럼펫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 가자 부모님은 깜짝 놀라며 “어떻게 여자아이가 트럼펫을 골랐니? 우아하지 않잖니”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도 결국에는 계속 불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학교에서 트럼펫의 기초를 다지게 됐습니다.

수년 후 대법이 널리 전해졌고 사부님께서도 트럼펫을 부셨다는 말을 듣고 당시 무척 기뻤습니다. 천국악단이 창단됐을 때 저는 트럼펫을 들었는데 뜻밖에도 기본 음계 하나를 불어낼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그렇게 일찍 나에게 트럼펫을 배우도록 안배하셨구나. 참으로 인연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악기를 소리 내는 것과 진정한 음악과 연주 기술을 익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다른 진상 알리기 항목과 마찬가지로 모두 공을 들여야 하고 정밀함을 더해가며 완벽을 추구해야 합니다. 불어내는 음표 하나하나가 원자탄과 같아서 틀리면 다른 공간을 깨끗이 하고 사람을 구하는 효과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트럼펫을 부는 과정에도 심성을 높일 기회가 많은데 예를 들면 환희심이 쉽게 생기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트럼펫 파트에서 비교적 나이가 어린 편이었고 음악 기초도 약간 있어서 지휘자와 주변 수련생들에게 자주 칭찬을 받았기에 저 스스로 꽤 잘 분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이 드신 수련생들이 제가 어리기에 격려해주신 것뿐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를 다시 돌아보면 트럼펫 부는 수준은 정말 겉핥기였고 어쩌면 그조차도 안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스스로 매우 만족했습니다.

이후 저는 속인 생활에 바빠 천국악단을 10여 년간 떠났습니다. 중간에 몇 번 돌아가려고 시도해 봤지만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예전 부단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저를 포기하지 않았고 명혜학교에 아이를 데려다줄 때마다 귀찮은 내색 없이 제게 언제 악단으로 돌아오냐고, 트럼펫 파트에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말을 무려 10년 동안이나 반복해 들었습니다. 때로는 멀리서 그를 보기만 해도 ‘아 세상에 내가 아직도 트럼펫을 다시 시작할 시간을 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길을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 주셔서 저는 자신의 사명과 당초 사부님께서 어릴 때부터 트럼펫을 배우도록 안배해주신 인연을 잊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코로나 봉쇄 기간에 저는 집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법기를 다시 집어 들었고 음악으로 진상을 알리는 길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천국악단으로 돌아와 보니 악단에는 좋은 관리 제도가 갖춰져 있었고 전체적인 수준도 크게 향상돼 있었습니다. 또 각 분야의 전문 인사들이 지도를 맡고 있었으며 예전에 비해 곡도 훨씬 많아졌고 연주 효과도 아주 장엄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변화는 제가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키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천국악단의 ‘1번’ 자리에서 ‘마지막 번호’로 밀려난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제게 여러 가지 집착심을 내려놓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때로는 이름이 불려 혼자 연주해야 할 때 긴장해서 오히려 더 잘 불지 못했는데, 이는 제가 체면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연습이 부족하고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긴장까지 하면 더 잘 불 수 없지 않습니까? 역시 제 문제였습니다. 또 수련생이 어떻게 불어야 한다고 말해주면 마음속으로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기억하건대 한번은 제가 “저는 박자를 잘 못 맞추니 그냥 여러분을 따라가면 됩니다”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은 참으로 비전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박자는 어떤 음악에서든 근본이 되며 차라리 음이 틀릴지언정 박자가 틀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둘 다 틀리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한번은 이른바 ‘쥐똥’ 같은 역할을 한 적도 있습니다. 공연 중 어쩌면 딴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곡을 잘못 불었습니다. 다행히 첫 음이었고 사부님께서 감춰주시고 손실을 만회하게 도와주셨습니다. 당시를 돌아보면 저는 오직 ‘개선(凱旋)’의 첫 음을 잘 불고 싶었습니다. 최근 연습을 꽤 잘했다고 느꼈고 고음 G라는 큰 고비를 드디어 넘겼기에 이 첫 번째 고음 G를 분명 아주 우렁차게 불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 너무 강했던 탓에 지휘자가 다른 곡을 말했는데도 제 머릿속에는 오직 ‘개선’이라는 곡뿐이었습니다. 첫 음을 잘 불고 싶었던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생각이 섞인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음 하나하나를 잘 부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내야 하는 일이며 전체 효과를 위한 것이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분명하게 저의 과시심이 작용한 것이고 심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기에 역시 안으로 찾고 법공부를 더 많이 해야 했습니다.

과시심은 자신이 꽤 잘 불었다고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호흡이 맞지 않는 데서도 나타났습니다. 때로는 리허설 때 제가 잘못 불었는데 수련생이 선의로 일깨워주면 입으로는 “아니에요, 저는 거기 안 불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맞게 불린 부분은 제가 마침 불지 않았던 곳이었고 수련생이 틀렸다고 말한 곳은 제가 불었던 곳이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겉으로 웃으며 받아들였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고 싶지 않았고 속으로 그리 납득하지 못했습니다. 악단은 다른 진상 알리기 항목과 마찬가지로 협력이 제일이며 개인의 수준을 과시하는 것이 전혀 아닙니다.

천국악단에 참가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언제든, 매번 단체 활동을 나갈 때마다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몸이 불편할 때도 연주를 마치고 나면 괜찮아졌습니다. 생활 속 일들도 제가 활동에 가겠다고 결정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순조로워졌습니다. 당연히 이는 생활의 자잘한 일들을 실제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모든 것이 매우 순조롭게 변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매일 연습할 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무척 피곤하지만 트럼펫을 불고 나면 늘 기운이 났습니다. 그래서 ‘피곤함’ 역시 하나의 관념이자 물질입니다. 만약 그것에 개의치 않고 해야 할 일을 한다면 그것은 설 자리가 없어져 저절로 소멸할 것입니다. 물론 저 자신도 매번 그렇게 확고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활동이 끝났으니 피곤하겠지, 돌아가서 좀 쉬자. 저녁에는 법공부하러 나가지 말자’라고 생각하면, 이 게으름 피우려는 일념이 나오자마자 저는 정말로 피곤해졌습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육체에 필요한 휴식은 있어야 하며 저는 단지 제 관념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한번은 퇴근하고 집에 왔는데 머리가 아주 아팠고 마치 갈라질 것 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자신이 연공할 힘이 없다고 느껴 그냥 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을 잤는데도 여전히 안 됐고 머리가 계속 아팠으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위장이 계속 뒤집히며 무척 메스꺼웠습니다. 그러다 ‘꼭 일어나서 발정념하고 연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했을 때 마침 아들이 트럼펫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대법 곡을 불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두통과 나팔 부는 소리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것인데 뜻밖에도 아들이 제 방향을 향해 대법 곡을 분 후 철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제 두통이 싹 나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밥을 먹을 수 있게 됐고 연공할 힘도 생겼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악단으로 돌아온 최근 몇 년간 저는 매 수련생에게서 많은 헌신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외지 공연을 가면 조율하는 수련생은 모든 단원의 다음 날 아침 식사를 챙겨야 했습니다. 아주 늦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그는 여전히 여관 문 앞에서 서로 다른 항공편으로 도착하는 수련생들을 기다렸다가 우리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마라톤 퍼레이드 공연 때 폭우가 내렸는데 수련생들이 미리 준비한 텐트, 우의, 따뜻한 물과 간식을 보고 저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매번 단체 활동을 나가기 전에 저는 항상 묵묵히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합니다. 제가 실수하지 않게 가지해 주시고 퍼레이드와 공연이 성공하도록 가지해 주시며 관중 배후의 다른 공간에 있는 좋지 않은 것을 깨끗이 제거해 그들이 더욱 쉽게 대법을 받아들이고 진상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매번 관중의 미소와 감탄하는 표정을 보고 또 박수 소리를 들을 때면 제 마음은 무척 기쁩니다.

저는 천국악단의 일원이 돼 이렇게 따뜻하고 서로 협력하는 환경에서 수련하며 음악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천국악단 창단 20주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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