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무쓰 수련자 장궈하이, 4년 무고한 감옥살이 이후에도 감시와 괴롭힘 당해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파룬궁수련자 장궈하이(張國海)는 2019년 7월 첸진 공안분국 중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2021년 샹양구 법원에서 4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타이라이(泰來) 감옥에서 그는 전기경찰봉 전기 충격, 고추물 분사, 구타, 각 잡고 앉기, 강제노동 등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2023년 7월 27일 장궈하이는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여전히 끊임없이 중국공산당(중공) 인원들의 감시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올해 52세인 장궈하이는 일찍이 번듯한 직장과 원만한 생활을 했으나 그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에 따르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견지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중공 인원들에게 납치됐다. 7번 구치소에 감금됐고 한 번 세뇌반에 끌려갔으며 두 번 불법 노동수용소에 수감됐고 한 번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부당하게 공직에서 해고됐고 거액의 벌금을 물었으며 아내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와 이혼해 가정이 파탄 났다.

다음은 장궈하이가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고문을 당한 과정에 대한 진술이다.

1. 납치, 약탈, 구타를 당하다

2019년 7월 27일 저녁 5시경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이가 많은 경찰 한 명이 사복을 입고 계속 저를 따라 위층으로 올라왔습니다. 저는 꼭대기 층에 사는데 열쇠를 꺼내 문을 열자마자 방비할 틈도 없이 한 무리의 경찰이 올라와 저를 납치했습니다. 이후에 저는 당일 오후에 먼저 제 이웃인 장쑤란(張淑蘭) 노인을 납치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납치에 가담한 사람은 자무쓰시 첸진 공안분국 중산 파출소 지도원 자오보(趙博)를 위시한 수명의 경찰과 보조경찰이었으며 이번 납치는 그들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불법 가택수색을 했습니다. 대법서적 2세트 총 80여 권, 파룬도형(法輪圖形) 2장과 사부님 법상 1장, 은행 카드, 휴대폰, 플레이어, 노트북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후 그들은 또 2차 가택수색을 했는데 토비(土匪, 도둑떼)처럼 좋아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가져갔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찻잎, 다관, 믹서기, 보온 찻잔을 가져갔고 또 제가 사용하던 명주 이불, 순면 옷, 하오줴(豪爵) 오토바이 등 집에 있는 조금이라도 좋은 물건은 모두 쓸어갔습니다.

저는 첸진 분국으로 납치돼 조서를 받았는데 소위 증거라는 것은 제 거처에서 수색해 낸 파룬궁 서적과 진상 자료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3~4시경 저는 헤이퉁 구치소로 납치됐습니다. 헤이퉁 구치소에서 저는 1년 10개월 가까이 불법 감금됐습니다. 구치소의 임시 감방에 처음 들어갔을 때 감방장인 죄수는 인터넷 사기범이었는데 그는 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제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금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질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그가 응보를 받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수년간 선량한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가담하고도 줄곧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응보가 끊이지 않습니다.

임시 감방에 며칠 불법 감금된 후 저는 감방을 옮겼습니다. 한번은 죄수가 트집을 잡자 당직 경찰이 저를 질질 끌며 당직실로 데려갔습니다. 그 경찰은 키가 별로 크지 않고 피부가 거무스름했는데 딱지 종이로 만든 몽둥이를 들고 저를 한바탕 때렸고 저는 맞아 바닥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구치소에는 침대가 없어 모든 사람이 커다란 평상에서 지냈습니다. 사람이 많을 때는 커다란 평상에 도저히 다 누울 수 없어 4명이 잠을 자지 않고 2시간씩 교대로 근무를 서야 했는데 저도 강제로 근무를 서야 했습니다.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연공을 할 수 없는 데다 정신적 압박이 너무 커서 제 신체 면역력이 떨어졌고 왼쪽 무릎에 찐빵만 한 고름 주머니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구치소의 남성 의사는 마취약도 놓지 않고 칼로 상처를 내고 고름을 빼내 안의 고름을 잔뜩 짜냈고 저는 3일 동안 링거를 맞았습니다. 이 기간 저는 한 번 외부 심문을 받았습니다.

2. 4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2021년 4월 어느 날 오후 구치소에서 불법 재판이 열렸고 저는 스스로 변호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는 죄가 없습니다. 파룬궁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며 저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고 더욱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사회에 위해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범죄의 특징은 사회적 위해성인데 저는 해당하지 않습니다”라고 정당하고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재판 현장에는 판사 한 명, 서기 한 명, 변호사 한 명, 그리고 경찰 몇 명이 있었습니다. 판사는 “당신이 만약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회개서를 쓴다면 형량을 조금 줄여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법률은 본래 장엄해야 하는데 제가 단지 본심에 어긋나게 회개서 하나만 쓰면 자신의 소위 형기를 결정할 수 있다니 그렇다면 법률의 공정성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고 원고도 없으며 피해자도 없는데 단지 제 여가 시간을 이용해 연공으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며 체력을 튼튼히 하고 진선인 기준에 따라 심성을 수련했다고 해서 범죄가 된다면 법률은 너무 큰 웃음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제게 내린 판결문에는 날짜가 31일로 적혀 있었는데 우스운 것은 4월에는 31일이 없다는 것이며 사건 담당자는 또 판결문을 다시 가져가 함부로 날짜를 고쳤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파룬궁을 탄압하면서 법 집행 인원들은 이미 마음속으로 빤히 알고 있었는데 이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에 대한 박해는 법률을 따지지 않으며 그들의 태도는 단지 형식적으로 거치며 대충 얼버무리는 것입니다.

저는 4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21년 5월 10일 솽야산 비자산 감옥에 위치한 집중훈련대로 납치됐습니다. 감옥 안에는 인권도 없고 존엄성도 없었으며 제가 몸에 지니고 있던 옷가방은 한바탕 뒤져졌고 모두 반드시 쪼그리고 앉아 번호를 보고해야 했으며 낮에는 복도에서 각 잡고 앉아있어야 했고 경찰은 ‘삼자경’과 ‘제자규’를 배우도록 이끌었으며 감옥 규정 책을 들고 설명했습니다.

전염병 원인으로 정상적인 3개월의 집중훈련 기간이 단축됐습니다. 24일 후인 6월 3일 저는 소위 감옥으로 보내졌는데 SUV 차량에 탔고 차에는 또 차이나모바일 부사장과 솽야산 광무국 부국장이 있었으며 그들 두 사람은 어느 한 감옥으로 보내져 먼저 차에서 내렸고 이후 저는 타이라이 감옥으로 납치됐습니다.

중공 감옥이 죄수를 감옥으로 보내는 원칙은 가까운 곳으로 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자무쓰 인원은 자무쓰 장커우 감옥에 보내져야 합니다. 흑사회나 악질 범죄자는 감옥 내에서 인맥을 형성할까 봐 2년마다 한 번씩 감옥을 옮깁니다. 그러나 중공은 파룬궁수련자를 집에서 먼 감옥에 불법 감금하는데 가족의 면회를 불편하게 하기 위함이며 이는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한 걸음 더 나아간 박해입니다.

示意图:中共监狱中的奴工迫害

중공 감옥에서의 강제노동 박해 모식도

3. 잔혹한 고문을 당하다: 전기경찰봉 전기 충격, 고추물 분사, 구타 및 강제노동 강요

타이라이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제가 몸에 지니고 있던 옷가방은 전부 버려졌고 솜옷과 홑옷, 판결문도 버려졌으며 저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갈아입을 옷조차 없었습니다. 강제로 감옥 규정을 외우게 하고 강제노동을 시켰는데 재봉틀을 밟아 컨테이너 자루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으로 수출하는 옥수수 전분과 포도당 전분의 사각형 모양 상자 포장 자루로 모두 플라스틱 재질이었고 자루가 매우 컸습니다. 아침 7시경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4시경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했습니다. 재봉틀 밟는 것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는 16감구 1분감구에 불법 감금됐습니다.

막 들어갔을 때 관리를 맡은 치치하얼 죄수 왕둥중(王東仲)이 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복도의 큰 철문 양측에 기존 죄수들을 줄 세웠고 20여 명의 죄수들이 CCTV를 가린 채 저를 한바탕 심하게 구타했습니다. 제 가슴을 때리고 제게 ‘보증서’를 쓰라고 했으나 저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죄수는 “당신은 100대 이상 맞은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배후에는 틀림없이 경찰의 사주가 있었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죄수가 감히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때리지 못할 텐데 경찰이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생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자 이름 모를 경찰 한 명이 저를 사무실 문 앞까지 오게 했습니다. 그가 제게 말할 때 제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제 얼굴에 고추물을 분사했습니다. 고추물이 눈에 들어가자 화끈거리는 화상을 입은 느낌이었고 저는 고통스러워 콧물과 눈물을 쏟으며 통증을 참기 어려웠는데 몇 번이나 뿌렸는지 모릅니다. 제게 3서(三書, 세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했으나 저는 쓰지 않았고 한동안 괴롭힌 후 그는 저를 세면장으로 보내 얼굴을 씻고 감방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몇 개월 이후 죄수가 저를 신고하며 제가 파룬궁을 홍보한다고 하자 성이 천(陳)씨인 경찰 한 명이 저를 사무실로 불러 제게 잔혹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전기경찰봉 전기 충격과 고추물 분사였습니다. 그는 전기경찰봉으로 제 가슴 부위를 지져 상처를 냈고 아울러 고추물을 제게 뿌렸는데 얼마나 오랫동안 고문당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무너져 내릴 정도로 고문을 당했고 참는 것도 이미 한계의 한계에 달했으며 사상과 의식이 모호해져 강요에 의해 본심에 어긋나는 3서를 썼습니다. 그 이후 제게 가해지는 박해가 겉보기에는 줄어든 것 같았고 제게 조금 편한 일을 시켜 저는 작은 재봉틀을 밟았습니다. 이 인간 지옥에 하루하루 머무는 것은 모두 심신에 대한 거대한 파괴였으며 저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신앙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처럼 비인간적인 일을 당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기간 저는 자무쓰 법원에서 보낸 벌금 딱지를 받았는데 벌금이 1만 5천 위안이었습니다. 제 은행 카드에 1만여 위안의 돈이 있었는데 공안국이 법원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저는 공직에서 해고된 이후 사방으로 잡일을 했고 이는 제가 배달 기사를 하며 1위안, 1위안씩 모은 유일하게 남은 조금의 피땀 어린 돈이었는데 전부 빼앗아가 한 푼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공산 악당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것은 정말이지 씨를 말려 소멸시키려는 것입니다!

4.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친 이후에도 여전히 감시당하다

2023년 7월 27일 저는 마침내 억울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첸진구 정법위 한 명과 가도판사처 두 명이 감옥으로 와서 소위 저를 ‘마중’했는데 실질적으로는 이후 저를 감시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곧장 집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저는 중산 파출소로 데려가 졌으며 중산 파출소는 석방 증명서 한 부를 남겨두었습니다. 가도 직원들은 저를 속이며 위선적으로 제게 최저생계보장금을 신청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4년간 감옥에서의 고문을 겪으면서 저는 몸이 매우 좋지 않아 비위 부위가 자주 아팠고 몸이 피로하며 힘이 없어 잠시 일할 수 없었습니다. 생활을 위해 저는 지역사회에 가서 최저생계보장금 신청처를 찾았는데 톄루 2단지의 남성 주임은 검고 못생겼으며 인상이 흉악하고 나이가 적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는 악랄하게 “파룬궁 분자는 최저생계보장금을 해줄 수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지역사회 주임은 두 명의 인원을 데리고 제가 사는 곳에 왔습니다. 저는 아주 낡은 꼭대기 층의 작은 다락방에 세 들어 사는데 그들은 제 생활에 관심이 없고 제 건강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오히려 저를 감시하러 와서 제 전화번호를 물었으나 저는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이후 저를 감시하는 지역사회 인원 한 명이 제 전화번호를 알아내 제게 전화를 걸어 어디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원래 있던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박해받아 몸이 갈수록 나빠져 음식을 먹으면 쉽게 토해냈고 피골이 상접했습니다. 여전히 감시받고 괴롭힘당하고 있어 제게 정신적 압력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일찍이 번듯한 직장과 원만한 생활을 했으나 이 박해로 인해 인생 궤적이 이처럼 바뀌었습니다! 1991년 저는 선양 철도기계학교에 합격해 들어갔고 1995년 졸업 후 하얼빈 철도국 자무쓰 차량 사업소에 배정받아 일했습니다. 1996년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신경쇠약에 걸렸던 저는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는데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앞뒤로 7차례 납치됐고 7차례 구치소에 감금됐으며 한 차례 세뇌반에 끌려갔고 두 차례 불법 노동수용소에 수감됐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는 전기경찰봉 전기 충격, 구타, 각 잡고 앉기 등 잔혹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제 가족 또한 거액을 갈취당했고 직장에서는 부당하게 저를 해고했으며 아내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저와 이혼해 가정이 파탄 났습니다.

[장궈하이가 중공의 박해를 당한 사실은 명혜망 보도 ‘일찍이 여러 차례 박해당해, 헤이룽장 자무쓰시 장궈하이 4년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 ‘두 차례 노동수용소 박해, 자무쓰시 장궈하이 원흉 장쩌민(江澤民) 고소’, ‘자무쓰 파룬궁수련자 장궈하이 여러 차례 박해당한 경력’을 참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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