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악단에서의 나의 수련 체득

글/ 유럽 천국악단 단원

[명혜망] 저는 불가리아 출신으로 2006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오늘 서술 방식으로 지난 몇 년간 악단에서 활동하며 겪은 수련 체득을 사부님과 수련생 여러분과 공유하려 합니다.

천국악단 초기 시절

2008년 파리에서 열린 한 퍼레이드에서 저는 처음으로 천국악단을 보았습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기 전 저는 신호등 옆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운전자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당신들은 누구인가요? 이 활동은 또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라고 물었습니다.

퍼레이드가 공식적으로 시작됐을 때 저는 참지 못하고 대열 맨 앞, 악단과 가까운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비록 제가 쉼 없이 움직였지만 마음은 오직 그들 곁에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속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솟구쳤고 한동안 평정심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6년 뒤인 2013년이 돼서야 저는 마침내 그 감동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천국악단의 일원이 됐기 때문입니다.

2013년 저는 처음으로 코펜하겐에 가서 활동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저는 플루트 연주 실력이 충분히 좋지 않았고 스스로도 완전히 준비되지 않았다고 느꼈으나, 발생한 몇 가지 일들을 겪으며 사실은 사부님께서 제가 반드시 견지해 나가야 한다고 암시해 주시는 것이라 느꼈습니다.

첫 번째 특별한 경험은 제가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 비행기 탑승을 준비할 때 발생했습니다. 뜻밖에도 2등석 승객이었던 저희 중 많은 이가 무료로 1등석으로 승급됐습니다. 승무원의 태도가 냉담했기에 저는 차마 이유를 묻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는 퍼레이드가 곧 시작되려 할 때였습니다. 스태프가 한 미국 사진작가가 이번 활동을 위해 특별히 서둘러 왔기 때문에 악단 전체가 근처 광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곁에 있던 당시 스페인 수련생에게 “전 아직 악단에 참가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같이 사진을 찍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저 저를 향해 웃으며 “그냥 거기 서 계세요.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부터 저와 천국악단의 신기한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플루트 연주에서 직면한 어려움

제가 직면한 한 가지 난제는 바로 좋은 선생님을 찾아 올바른 플루트 연주 기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선생님은 이 방면에서 아주 전문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저라는 학생을 매우 중시했고 저와 함께 대법제자들이 창작한 노래들을 자주 연주했습니다. 그녀는 또한 저를 도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그녀의 학생들과 가족들에게 소개해주었습니다.

약 2년 뒤 저는 우리 시에서 가장 우수한 음악 선생님 중 한 분을 찾았습니다. 그분의 지도하에 저는 많은 나쁜 습관과 잘못된 자세를 교정했습니다. 이전에는 매끄럽고 맑은 소리를 내기 어려웠고 많은 경우 호흡이 길게 받쳐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종종 몇 시간씩 연습해도 효과가 미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차례 심성 시험을 통과한 뒤 시험 삼아 플루트를 불어보았는데 갑자기 제게 뚜렷한 진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저를 동력으로 가득 차게 했고 저로 하여금 깨닫게 했습니다. 수련의 제고야말로 연주가 갈수록 좋아지는 핵심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그 당시 저는 한편으론 직장 동료들을 상대하고 한편으론 각종 시험에 직면했습니다. 때로는 통과하고 때로는 통과하지 못했지만 저는 수련 속에서 진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악보를 외우는 도전에도 직면한 적이 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처음 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 제가 악보대를 팔에 묶고 악보를 보았는데 길을 가는 내내 악보대가 자꾸 떨어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정말 악보를 다 외워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저는 ‘사부님 감사합니다’와 ‘불은성악’처럼 복잡한 곡들이 오히려 다른 곡들보다 기억하기 더 쉽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저는 두 번 플루트를 바꿨습니다. 첫 번째는 12세 소년이 쓰던 야마하 제품이었고 두 번째는 현재 제 선생님의 플루트입니다. 매번 새 플루트를 받을 때마다 저는 무척 기뻤고 매우 아꼈으며 항상 세심하게 관리해 그것들이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퍼레이드 중 안으로 찾다

제가 도대체 퍼레이드에 몇 번 참가했는지 분명히 말할 수 없지만 매번 연주 기법을 연마하는 것이었고 저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했으며 제가 안으로 찾는 법을 더 잘 알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퍼레이드를 할 때 제 마음가짐에는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초기에는 훈련과 준비 부족으로 제 주의력이 항상 악단 주변의 일들에 끌려갔고 종종 지휘의 리듬에 주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저는 점차 퍼레이드 중 밖을 보기보다 더 많이 안으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과거에 저는 항상 무의식적으로 다른 수련생들이 무엇을 하는지 주의했고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지 보았습니다. 사실 내면 깊은 곳에서 저는 항상 모든 것을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 시기에 저는 종종 이러한 통제욕을 드러냈습니다. 이따금 수련생에게 바지 단추를 채우라고 일깨워 주거나 머리카락을 조금 정리해 주는 것은 문제없지만 항상 이런 사소한 일들에 시선을 고정하고 놓지 않는다면 다소 과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제 앞의 수련생이 항상 퍼레이드 중 실수를 하고 대열을 맞추지 못하거나, 곡을 시작할 때 지휘의 명령에 주의하지 못해 악기를 들면 제 마음은 유독 몹시 괴로웠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때때로 현지 수련생들이 질서 유지를 돕거나 보안을 제공할 때 우리 대열 앞에서 걷거나 우리 곁을 급히 지나가며, 심지어 때로는 부주의로 우리와 부딪힌다는 점입니다. 물론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많은 일들이 더 있지만 저는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제 목적은 원망이 아니라 제 안으로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는 모든 주의력을 지휘와 명령에 두고 있습니다.

어느 해 저희는 프라하에서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 일찍 도착해 한 베트남 수련생의 아파트에 머물렀는데, 그곳에는 이미 많은 다른 베트남 수련생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바닥에서 잠을 잤으나 그중 한 명이 내내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참았고 마음이 몹시 불편해 결국 그녀에게 저는 법공부를 하고 있어서 주의력을 집중할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악단 단원이 아니었고 저 역시 그녀를 알지 못했기에 제가 그녀에게 목소리를 조금 낮춰 달라고 했을 때 그녀는 무척 불쾌해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도 모두 저를 향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법공부를 하며 제 자신을 평온하게 했습니다.

다음 날 저는 다른 두 베트남 수련생(A와 B)과 함께 전체 악단이 리허설을 위해 묵는 숙소인 호텔로 갔습니다. 그들은 채소와 진귀한 과일이 가득 담긴 큰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너무 무거워 거의 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몇몇 안내판이 있었지만 위에는 온통 체코어여서 저희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저희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물었고 상대방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희는 버스에 올라탔으나 한 정거장 만에 또 누군가 저희에게 방향이 틀렸으며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수련생은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여행 가방을 먼저 차 아래로 내렸다가 다시 차 위로 올려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5~6차례 반복 발생했습니다. 저희는 끊임없이 차에 오르고 내렸으며 매번 방향을 잘못 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무거운 여행 가방을 옮기던 두 수련생은 무척 화가 나서 자신들의 언어로 쉼 없이 저를 원망했고 또한 좌절감을 띤 채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이미 최선을 다해 끊임없이 현지인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언어만 할 줄 알았기에 저는 여전히 올바른 방향을 찾지 못했습니다. 갑자기 저는 멈춰 서서 “그만 말하고 발정념을 시작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당신들을 여기에 두고 가버릴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저희는 함께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저는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제게 호텔로 가는 첫 번째 버스는 이미 떠났고 어느 정류장에서 반드시 다른 차로 환승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또한 저희에게 내릴 곳을 짚어주었고 마침내 저희는 순조롭게 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두 번째 버스를 타려 준비할 때 A가 또 저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그녀에게 “구글 지도를 켜세요. 이제 당신이 우리를 호텔로 안내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길을 잘못 들었고 저희는 원래 정시에 리허설에 도착할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을 또 낭비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저 자신을 안으로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마침내 호텔에 도착했을 때 저는 평온해졌고 속으로 ‘이 일에서 나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나 자신의 잘못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처음으로 수련생이 그 채소가 가득 찬 큰 여행 가방을 옮기며 아파트를 떠나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속으로 ‘우리가 지금 리허설을 하러 가는 건가, 아니면 채소 시장에 가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미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전날 밤 제 태도 역시 좋지 않았는데 제가 다른 수련생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했을 때 한 말이 결코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감정이 한데 더해져 곧 교란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후 호텔에서 평온해졌을 때 저는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전법륜)

이후 기회가 생겼을 때 저는 A를 찾아갔는데 그녀 역시 저와 같은 플루트 조였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사과했습니다. 저는 B에게도 사과했는데, 비록 그녀가 당시 저보다 더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저의 사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은 제게 대법제자로서 어떤 상황에 부딪히든 모두 자신을 안으로 찾아야 하며, 말하는 것을 신중히 하고 모든 것을 반드시 법으로 가늠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분노는 수련인이 가져야 할 상태가 아니며 이 모든 경험은 모두 저의 심성 제고를 돕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올해 퍼레이드에서 만난 도전

올해 로테르담의 퍼레이드는 제게 각별히 험난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토록 많은 교란과 마주한 지 이미 오래됐습니다. 때로는 플루트에 갑자기 공기가 들어가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고 때로는 머릿속이 일순간 백지가 돼 악보가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필사적으로 정신을 집중하려 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졸음까지 몰려와 두 다리가 돌처럼 무겁게 느껴져 걷는 것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멈춰 섰을 때, 저희가 서서 움직이지 않을 때 저는 다른 한 수련생의 눈이 감기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다른 공간의 정사(正邪) 교전이 필시 매우 치열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어(論語)’를 외우기 시작했고 서서히 교란이 비로소 줄어들었습니다.

작년 7월 저희는 런던에서 퍼레이드에 참가할 때 적잖은 도전에 부닥쳤습니다. 전반부 내내 비가 내려 옷, 구두, 장갑, 악기가 전부 비에 젖었습니다. 바람도 매우 강했고 각종 교란이 연달아 출현했지만 모두 저희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순조롭게 퍼레이드를 완수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매우 많습니다. 저희의 사명은 사부님을 협조해 중생을 구하는 것입니다. 비록 각종 도전과 마주하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그들은 저희를 위해 박수를 쳤으며 저희의 음악을 들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박자에 따라 유쾌하게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순간들이 저로 하여금 모든 불편함, 고통과 좌절을 잊게 합니다. 많은 때 저는 모두 감동해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저는 제 자신에게 ‘울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악기를 잘 불 수 없어’라고 일깨웁니다.

맺음말

모든 책임자들의 헌신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들은 저희의 연주 수준 제고를 도왔고 또한 전체 악단이 오늘날의 수준에 도달하게 했습니다. 저는 또 최근 몇 년간 줄곧 제 곁을 동반해 준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수련 속에서 저의 끊임없는 진보를 도와준 것은 바로 그들입니다.

2014년 마드리드 법회에서 저의 경험을 나눌 때 저는 “천국악단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제게 있어 일종의 크나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2년이 지났고 저는 여전히 같은 심정을 품은 채 한 번 또 한 번 이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글에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천국악단 창단 20주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20/50671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2/20/5067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