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청년 시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은 지 어느덧 26년이 흘렀다.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며, 사부님께서 주신 수련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가려 한다.
가족의 수련으로 큰 병 낫고 감성적으로 대법 얻어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에 매우 열심이었고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믿었으며, 무신론과 진화론을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어머니는 각종 만성질환으로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어머니의 건강은 내 마음의 병이 됐고, 불안과 비관 속에서 중학교 생활을 보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우수한 학업 성적이 나에게 조금이나마 즐거움을 가져다주길 바랐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뜻밖의 실패를 겪었고, 엄청난 심리적 낙차는 나를 애초부터 좋은 운을 누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했다. 마지못해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설득했고, 재수를 선택하지 않고 만족스럽지 못한 학교에 진학했다. 겨울방학 때 어머니는 백혈병 진단을 받으셨다. 당시에는 나에게 숨겼지만 나는 어른들의 표정에서 상황의 심각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의심과 공포 속에서 나는 학교로 돌아갔다.
1998년, 외숙모가 부모님께 파룬궁 수련을 소개하며, 파룬궁이 신체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고 돈을 들여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었지만, 줄곧 무신론과 진화론을 받아들여온 나는 병원 치료를 받지 않고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부모님 모두 대법이 좋다고 말씀하시고 사부님의 설법 녹화 영상을 보여주셨지만, 나는 깨달음이 부족했고 믿지 않았다. 부모님과 다툰 후 나는 일찍 학교로 돌아갔다.
그 후 어머니가 정말 신기하게도 건강을 회복하신 것을 보고, 나는 사부님과 파룬궁에 한없이 감사했다. 어머니와 우리 가정을 구해주신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수련할 생각은 없었다. 1999년 4월, 아침 조깅을 하다가 학교 정문 앞 거리 공원의 연공장을 발견했고, 집에서 봤던 파룬(法輪) 도형을 보게 됐다. 나는 혼잣말로 ‘아, 우리 학교에도 연공장이 있구나. 어떻게 전에는 몰랐을까, 내일 가봐야지’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연공장에 갔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는 매우 친절하게 연공 동작을 가르쳐주었고, 그렇게 나는 어렴풋이 대법을 얻게 됐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부님의 세심한 안배로 여러 차례 대법에 가까이 갈 기회를 주셨기에 우둔한 내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처음 대법을 얻었을 때 나는 여전히 감성적 인식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수련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대법을 얻은 지 불과 3개월 만에 박해가 시작됐다.
가정이 박해를 받고 수련 중단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됐을 때, 나는 타지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었고 다른 수련생들과 연락할 수 없었다. 외롭고 두려웠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침묵을 택했고 몰래 책을 보며 법공부를 했다. 다행히 막 취직한 남편이 곁에 있어 마음속에 약간의 의지처가 생겼다. 하지만 우리 둘 다 대법을 얻은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 개인수련이 탄탄하지 못했고, 법공부도 따라가지 못했으며, 속인 마음으로 수련과 박해를 대했기에 많은 우회로를 걸었다.
그 후 남편은 회사에서 진상 자료를 떨어뜨린 것을 동료가 신고해 직장의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여러 차례 세뇌반에 보내졌으며 결국 노동수용소로 끌려가게 됐다. 그때 우리 아들은 태어난 지 겨우 몇 개월이었고, 나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서 살고 있었다. 수유기였던 나는 경찰에게 소환돼 몇 시간 동안 심문을 받았고, 결국 현지 경찰이 나에게 아이를 데리고 친정을 떠나 내가 사는 도시로 돌아가도록 압박했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남편과 혼인신고를 했을 때부터 일방적으로 나의 근로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이후 내가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내 직책을 취소하고 월급을 2~300위안으로 낮춰 스스로 사직하도록 압박했다. 경제적 박해, 남편의 감옥 수감, 어린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 경찰의 잦은 방문과 위협… 시어머니(수련생)가 집에서 도와주셨지만, 두려움과 아이를 돌보는 고됨, 남편에 대한 걱정으로 매일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들이 갓 돌이 됐을 때, 다른 수련생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거처를 밝혀 경찰이 문을 부수고 들어와 모든 대법서적과 법상(法像)을 압수하고 시어머니를 구금했으며, 나에게도 다시 무슨 행동을 하면 나도 체포하고 아이는 고아원에 보내겠다고 위협했다.
잇따른 박해에 직면해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대법서적이 없어 법공부를 할 수 없었고 인터넷에 접속할 여건도 없었다. 점차 나는 대법에서 멀어졌다. 나는 박해와 괴롭힘에서 벗어나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중에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는 여전히 정진하지 못했고, 속인의 평온한 삶을 부러워했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의 수련은 멈춰섰고, 이 멈춤은 거의 10년이나 이어졌다.
잘못된 길에서 돌아와 이성적으로 수련하다
속인처럼 행복한 삶을 추구하려 했을 때, 나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에 점차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박수가 너무 빨라져 자주 병원을 드나들었지만, 분명 몸이 불편한데도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이 나오지 않았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온갖 일이 순조롭지 못했다. 나는 낙심하고 실망했으며, 내면은 공허하고 막연했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나와 남편이 수련을 포기한 것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여러 차례 우리에게 대법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다시 수련을 시작하라고 권유하셨다. 사부님의 끊임없는 일깨움 속에서 나는 마침내 2013년에 다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다. 특히 2014년 해외여행 중 공원에서 외국 수련생들이 공개적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모습을 보고 큰 격려를 받아, 귀국 후 진지하게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체계적으로 법공부를 시작했고, 서서히 법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며 더 이상 표면적인 글자 의미에만 머물지 않게 됐다.
“유유한 만세의 인연은 대법이 한 줄로 이끈 것이네 난(難) 중에서 금체(金體)를 연마하거늘 어찌하여 발걸음이 한가로운가”(홍음2-신의 길은 어렵나니)를 읽고, 내 마음 깊은 곳이 울림을 받았고 사부님의 오랜 안배와 간절한 기대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제도하려고 온 것으로 나는 당신의 그 착해지려는 마음을 제고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할 뿐이다”(시드니 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신 것을 읽고,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를 강렬하게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수련에 대한 결심과 의지가 커졌고 더 이상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있는 층차에서 인식할 수 있는 법리를 깨닫게 해주셨고, 나는 진정한 수련을 체득하게 됐다.
나는 적극적으로 생활에 임하기 시작했고 오랜 열등감을 바꾸고, 법공부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다. 심성 고비를 만났을 때 때로는 참지 못했고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참았지만, 수련인의 요구에 따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진정으로 고비를 넘을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안으로 찾는 것을 중시하기 시작하면서 나를 괴롭히던 많은 사람과 일들이 하찮아졌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 제거했다. 한때 직장 내 업무 배분에 대해 분개했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오히려 배척당하고 억압당해, 시간이 촉박하고 처리하기 까다로우면서도 업무량과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소규모 프로젝트만 배정받는다고 느꼈다. 진정한 기술력이 요구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는 모두 나와 무관했다. 나에게 배정된 연간 판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불만과 초조한 감정이 일어난 후 나는 각성했고 수련상의 차이를 인식했다. 이미 이익심과 질투심을 제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법리상으로 깨닫고 난 후 이러한 집착심을 배척하기 위해 노력했고, 아무리 어려워도 수련인의 기준대로 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스스로를 격려했다. 점차 평온한 마음 상태를 회복했다. 최근 3년간 모두 연말이 가까워질 무렵 뜻밖에 대규모 주문을 받아 연간 목표를 순조롭게 달성했다. 동료들은 농담으로 “다투지도 빼앗지도 않는데 아무것도 영향받지 않네”라고 말했다.
회사는 최근 몇 년간 실적 개선을 위해 조직 구조를 계속 조정해왔고 여러 차례 구조조정이 있었지만, 나는 사부님의 안배하에 줄곧 안정적인 일자리를 유지했다. 대법은 나에게 지혜를 열어주어 생각이 명확해지고, 많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했으며 오류율도 매우 낮았다. 함께 일했던 모든 동료가 내 업무를 인정했고 모두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했다.
나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성격적 약점을 극복하고 동료와 친구들에게 주도적으로 진상을 알렸으며,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해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로 평안을 지킬 수 있도록 격려했다.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 가정과 사업이 모두 순조로워지고 좋은 일이 계속 생긴 동료도 있었다.
한 연배 있는 동료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중 갑자기 심장병이 발병했다. 하루를 참았지만 여전히 가슴 통증이 심해 어쩔 수 없이 120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빠르게 그를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했고, 검사 결과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위해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매우 위급한 상황이었다. 당시 의료 자원이 부족해 각 대형 병원마다 환자가 넘쳐나고 많은 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동료는 매우 운 좋게도 제때에 더 전문적인 대형 병원으로 이송돼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고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그가 입원해 있을 때 나는 문자로 평안을 지키는 구결을 꼭 외우라고 당부했다. 봉쇄가 해제된 후 그를 찾아갔을 때 호신부(護身符)를 잘 보관하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는 큰 소리로 “계속 지갑에 넣어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라고 말했다.
출근길에 길가에서 쓰러진 한 아주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행인이 구급전화를 걸었지만, 구급차는 교통 체증 때문에 신속하게 도착하기 어려웠다. 나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아주머니 곁에 쪼그려 앉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저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평안하실 겁니다.” 나는 계속 작은 목소리로 외웠고 아주머니는 점차 눈을 떴으며 이후 앉을 수 있게 됐다. 단 몇 분 만에 아주머니는 의식을 되찾았고 이때 구급차도 제때 도착했다.
나의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 매우 부끄럽다. 나는 정진했다고 할 수 없고 수련의 길에서 느리고 힘들게 걸어왔다. 다행인 것은 사부님께서 정진하는 수련생을 내 곁에 안배해 나를 격려하고 더 잘하도록 해주셨고, 또한 명혜망을 통해 전 세계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마침내 금생에 대법을 얻은 의미를 깨달았고 나 자신의 사명을 이해하게 됐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중생을 구하며, 나처럼 한때 길을 잃었던 수련생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이전의 길을 어떻게 걸어왔든, 사부님께서 주신 수련의 시간을 반드시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의 길을 잘 걸어가야 한다.
지난 일을 돌이켜보면, 대법의 법리가 내 마음의 오염을 씻어내고 나를 새롭게 빚어주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1/5057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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