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를 분명히 인식해 닦아 없애다

글/ 헤이룽장(黑龍江)성 대법제자

[명혜망]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광장에서 아침 단련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나는 장차 반드시 더 고심하고, 역사가 아주 오래된 그런 공법을 찾아 배울 거야.’ 이후 대법을 만났을 때 저는 굳게 확신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찾던 것이고, 이것이 내가 원하던 거야.’ 그래서 저는 반드시 저 자신을 잘 수련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뒤의 수련 과정에서도 스스로 수련을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자신을 괜찮다고 여기는 그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수련생이 제게 자아가 너무 강하다고 지적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마치 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그렇게 평가하는 말을 처음 들었기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 수련생의 선의에서 나온 일깨움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자아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끝내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후에도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혀 자신의 문제를 차분히 찾아보지 않았고, 온종일 일에만 바쁘게 매달렸습니다. 사실 그 자아의 표현은 바로 이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이기적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고, 줄곧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결국 아직 자신을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일부 수련생들이 점차 저를 멀리하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자신의 문제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저 마음속으로 매우 낙담하고 괴로울 뿐이었고, 도대체 이것이 무엇 때문인지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매일 접촉하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수련생이었고, 일반인과는 거의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멀리하던 그 수련생들 역시 겉으로는 저와 매우 분명한 다툼이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수련생들 모두가 자신을 수련할 줄 알았기에 제게 시간을 주어 스스로 깨닫게 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수련생들에 대해 원망을 품게 됐고, 그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으며, 저와 갈등이 있어도 저와 교류하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 고향을 떠나 딸의 집으로 오게 됐습니다. 이 낯선 환경에서 저는 거의 수련생을 접할 수 없었고,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일반인이었습니다. 마치 행각하러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집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동네의 샤(霞)씨 성을 가진 언니를 알게 됐는데, 그녀는 자주 저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하거나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가자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언니를 멀리하고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인연 있는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언니와 함께 있을 때마다 언니는 줄곧 쉬지 않고 말을 이어 갔고, 하는 말은 모두 집안의 사소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저를 매우 싫증 나게 했고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됐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생각해 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있을 때 접촉하던 사람들이 모두 수련생이었음에도 저는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접촉하는 사람들이 모두 일반인인데, 이 상황에서도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저 역시 일반인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만나게 되는 모든 일에는 우연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제게 제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다른 사람을 싫어하고 귀찮아하는 마음을 수련해 없애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이 기회를 붙잡아 자신을 제고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언니 또한 저를 멀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안으로 자신을 찾아보며 돌아봤고, 집에 있을 때 일부 나이가 많은 수련생들이나 겉으로 보기에 다소 서투른 수련생들을 대하면서 인내심을 갖고 그들과 교류하지 않았고, 그들의 말을 들어 줄 인내심도 없었으며, 더 나아가 선한 마음으로 그들의 감정을 헤아려 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저는 종종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오만하고 자만했으며 동정심도 없었습니다. 그들을 깔보고 얕잡아보면서 자신만 잘 수련했고, 누구도 자신만큼 수련을 잘하지 못한다고 여겼습니다. ‘아, 이것이 바로 자아가 아닐까?’ 그 순간 저는 제 자아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드러나는지 찾아냈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적절한 기회를 찾아 언니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언니가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언니는 매우 감사해했고 또한 적지 않은 혜택을 받아 대법의 위력과 아름다움을 절실히 느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언니의 친한 친구 한 명이 넘어져 팔이 골절되는 일을 당했습니다. 언니는 그 친구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 주었고 그 친구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염하자 곧 팔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이후 그 친구는 매일 ‘파룬따파하오’를 염했고, 팔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완치됐습니다. 그 뒤 저는 또 기회를 찾아 언니에게 해외 대법제자들이 홍법하는 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언니는 그때부터 중공 악당을 싫어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어디 국민을 위하는 거예요? 전 세계가 다 대법이 좋다고 하는데 중공만 수련하지 못하게 하니 정말 창피하네요.”

이런 일들을 겪은 뒤 저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됐고 언니와의 선연(善緣)을 깊이 느꼈습니다. 만약 처음에 제가 그녀를 싫어해 멀리했다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잃었을 것이고, 인연 있는 사람을 놓쳤을 것입니다. 또한 저는 점점 더 언니가 바로 제 거울이라는 느낌을 받게 됐습니다. 언니에게서 어떤 나쁜 습관을 보기만 하면 거의 모두 자신에게서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바로 이 기회를 이용해 제가 자신을 수련하도록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언니와 함께 있을 때면 언니는 종종 매우 강한 통제욕을 드러냈고 그것이 저를 몹시 불편하게 했습니다. 특히 길을 걸을 때마다 제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까지 간섭하며 이렇게 걸으라, 저렇게 걸으라고 했는데, 마치 그녀가 없으면 제가 걷지도 못하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져 그녀가 지나치게 강압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차례는 언니가 제 팔을 붙잡고 억지로 끌고 가며 신호를 무시하게 해 제 마음이 몹시 불쾌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언니를 싫어하고 멀리하고 싶어 하던 그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하던 중 저는 문득 깨닫게 됐습니다. 이것은 또다시 제가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의 문제를 찾도록 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전에 집에서 수련생들과 접촉하던 모습을 떠올려 보니, 저는 늘 조급하게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려 했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모두 저만큼 깨닫지 못했다고 여기며, 자주 다른 사람의 말을 가로막고 제가 깨달은 것을 남에게 강요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제 말만 듣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니와 같은 유형이 아닐까?’ 그제야 저는 ‘아, 내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이런 모습이 수련생들에게 얼마나 참기 어려웠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저와 소통할 수 있었겠습니까. 수련생들이 저와 접촉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자신을 알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자신을 드러내며 거만하게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자 정말 부끄럽고 창피해 견딜 수가 없었고, 자신이 괜찮다고 여기던 그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동시에 언니를 싫어하던 그 마음도 말끔히 없어졌습니다.

그때의 저를 돌이켜보니 제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을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상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기라도 하면 마음속으로 곧바로 불평이 생겼고, 심지어는 다른 사람을 찾아가 시비를 따지게 되면서 뒤에서 남을 논평하고 험담하는 부당한 행동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로 인해 수련생들 사이에 갈등과 간격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처럼 강대한 자아에 이끌려 누군가가 저보다 더 잘하거나 수련생들의 인정을 받기라도 하면 질투심과 분개하는 마음, 원망하는 마음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자아 때문이었습니다. 이 자아를 증명하기 위해 저는 늘 제 장점만 말하려 했고, 사람이 많을수록 더 허풍을 떨며 주변 사람들의 감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제 시선은 항상 다른 사람이 법에 맞지 않는 부분만을 주시했고, 다른 사람의 집착에 집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그 집착은 구세력(舊勢力)이 안배한 것인데, 이렇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구세력을 승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고도 스스로는 알지 못했습니다. 결국 모두가 저를 견디지 못해 멀리하게 되고서야 비로소 고통스러워하며, 사람들이 모두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저에게 불공평하다고 여기게 됐고, 그로 인해 원망의 마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이번에 저는 진정으로 사사로움과 자아를 위하는 자신을 또렷이 보게 됐고, 이것이 바로 자아가 매우 강하게 드러난 전형적인 모습임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이 자아는 너무나 나빴고 하마터면 자신을 망칠 뻔했습니다. 만약 계속 그대로 발전했다면 난법(亂法)으로 치닫고 자심생마(自心生魔)에 이르렀을 것이니, 얼마나 위험한 일이었을까요. 다행히도 수련생들이 명석하고 이지적으로 저에게 시장(市場, 활동한 공간이나 기회)을 주지 않고 저를 멀리해 주었으며, 또한 수련생의 선의에서 나온 일깨움이 제게 정말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수시로 제 언행을 살펴보게 됐고, 어떤 일을 겪을 때마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느낌일지를 자주 생각하게 됐습니다. 또한 제가 또 어디에서 자아를 드러냈는지 스스로 반성하곤 했습니다. 아울러 제 곁에서 저와 인연으로 만나게 된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고심 어린 안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를 통해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인식하게 됐고, 또한 제 한정된 층차에서 사부님께서 왜 “사실 많은 일반 대법제자들이 묵묵히 잘 수련하고 있다”(각지 설법 4-2003년 애틀랜타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는지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 마음속에 담고 있는 생각이 모두 다른 사람을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언니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저와 함께 외출하는 일이 매우 줄어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자신을 수련하는 법을 배우게 되자 일들에도 변화가 생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단지 개인의 제한된 층차에서의 수련 체득일 뿐이오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4/50536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24/5053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