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청년 대법제자입니다. 출근한 이래 직장에서 전후 네 분의 교장 선생님을 겪었는데, 아래에 저와 교장 선생님들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공유하려 합니다.
1. 첫 번째 A 교장 선생님 이야기
그것은 제가 처음 1학년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의 일입니다. 당시 막 출근하여 경험도 부족했고 동료들과도 서먹하여 오직 업무 열정만으로 교육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제가 교장실로 호출됐습니다. 그녀는 제 반 학부모가 그녀에게 투서를 보냈다며 제가 아이를 때린 적이 있는지 물으셨습니다. 저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학부모가 교장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일도 다 있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때린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또 학부모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혹시 오해받을 만한 부분이 있었는지 생각하며 얼른 A 교장 선생님께 “가끔 아이 귀를 만지거나 겁을 주긴 했지만, 진짜로 잡아당기진 않았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A 교장 선생님은 상황을 파악하신 후 저를 돌려보내셨습니다. 나가면서 제가 “교장 선생님, 그 편지를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여쭤보았지만, A 교장 선생님은 동의하지 않으셨습니다.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줄곧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도대체 어느 아이의 학부모일까?’ 그런 기분이 한동안 지속됐는데, 저는 대법제자가 이렇게 지내서는 안 되고 무슨 일이든 안으로 찾아봐야 하며 자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전법륜)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진짜로 아이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상징적으로 겁을 주는 것도 좋지 않고 선(善)을 행하지 못했으니 제 잘못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저를 신고한 학부모가 누구인지 알게 됐습니다. 우리 반의 장난꾸러기이자 숙제도 잘 안 해오는 여학생의 학부모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그 학부모가 어떤 유형인지도 알게 됐고 매번 수업 때마다 그 여학생을 유의해서 보게 됐는데,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이는 참 순진해서 탓할 순 없어, 그런데 학부모 내외가 왜 아이를 챙기지도 않으실까?’ 마음속으로 학부모에 대한 원망이 생겼습니다. 저는 자신을 바로잡으려 노력하며 ‘이건 옳지 않고 대법제자는 원망하는 마음을 가져선 안 되며 반드시 이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철없는 학부모를 만났다고 해서 아이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아이를 방치하며 제멋대로 되게 내버려 두는 요즘 세태의 교사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세속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나중에 A 교장 선생님을 만나 자연스럽게 지난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투서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 아이와 학부모의 상황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A 교장 선생님은 이번에는 아주 기뻐하시며 먼저 그 투서를 보여주셨습니다. 필체를 보니 정말 그 아이의 학부모가 맞았습니다. 비록 그런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아이에 대한 저의 사랑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저와 함께했고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2. 두 번째 B 교장 선생님 이야기
대법제자인 저는 학부모의 돈이나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을 줄곧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동료 교사가 학부모의 부탁을 받고 사무실로 찾아와 아이를 잘 봐달라며 쇼핑 상품권 등을 건네기도 했고, 어떤 때는 학부모가 정·부교장 선생님이나 동료를 통해 저와 함께 식사 자리를 만들어 감사를 표하며 아이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또 어떤 학부모가 제 휴대폰 요금을 직접 충전해주며 아이에게 잘해줘서 고맙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저를 매우 난감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 사부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는 저는 이런 이익 앞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으며 어떤 부분이 대법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살펴봤습니다. 결국 체면 때문에 거절을 잘 못 하는 마음을 찾아냈고 난감해하는 마음, 명예욕,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을 닦아 없애자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덕분에 학부모들이 건넨 ‘돈 봉투’를 지혜롭고 정중하게 거절할 수 있었고 학부모 및 아이들과의 사이는 더욱 친근해졌습니다. 저는 때로는 현금을 봉투에 담아 적당한 기회에 아이에게 직접 주면서 “요즘 참 잘하고 있어서 어머니께서 선생님더러 이 용돈을 너에게 주라고 하셨어. 네가 좋아하는 책을 사서 봐”라고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아이 학부모의 휴대폰 요금을 충전해주기도 했고 또 가격대가 비슷한 선물로 아이에게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내 학부모님의 성의에 감사드리며 제가 아이를 잘 가르칠 테니 안심하시라고 전했습니다. 학부모는 귀가 후 아이를 통해 제가 돌려준 물건을 즉시 받게 되어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학부모님들도 감동하여 다시 감사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습니다.
우리 반의 어떤 학부모는 저의 행동에 감동하여 크게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습니다. 결국 B 교장 선생님께 저를 칭찬하는 문자를 보내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저는 전체 교사 회의 때 B 교장 선생님의 발언을 통해 이 일을 알게 됐는데, B 교장 선생님은 그 학부모가 칭찬 문자를 보낸 후 자신이 모 학급 학생의 학부모라는 문자를 또다시 특별히 보냈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해 E 부교장 선생님 사무실에 가서 1학년 담임을 맡을 반을 제비뽑기해야 했는데, 마침 그 학부모님이 학교에 볼일이 있어 오셨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는 뜻밖의 만남에 무척 반가워했습니다. 학부모님이 감개무량하게 말했습니다. “우리 딸이 1학년 입학할 때 동년배보다 나이도 어리고 공부를 힘들어했는데, 나중에 시간이 지날수록 잘하더니 6학년 때는 어문 성적이 학급 상위권에 들었어요. 기초가 튼튼해서 중학교 가서도 분명히 잘할 거예요.” 학부모님은 또 아이가 이제 학년 상위권에 들 정도라며 시내의 중점 중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6년 동안 잘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기뻐하며 “아이가 정말 대견하네요! 그렇게 훌륭하게 클 줄 몰랐어요!”라고 축하해 드렸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정말로 지망하던 중점 고등학교에 합격했고 방학 때 학교로 두 해나 저를 찾아왔습니다. 갈 때는 나중에 연락하고 싶다며 제 연락처를 받아 갔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전공을 선택해 타지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B 교장 선생님과 가장 오래 지냈습니다. 그녀가 재임하는 동안 저는 2년 연속 ‘우수 교사’로 선정됐고 그녀도 저를 매우 아껴주셨습니다. 나중에 제가 장쩌민(江澤民) 고소에 참여하자 파출소와 교육국에서 B 교장 선생님에게 압력을 가했고, B 교장 선생님도 여러 차례 저를 찾아와 속마음을 떠보거나 서명을 강요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 적지 않은 압박감을 느꼈고 B 교장 선생님의 언행에 불만을 품고 ‘어떻게 저러실 수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깨닫지 못하자 꿈속에서 두 번 일깨워주셨습니다. 첫 번째 꿈에서는 B 교장 선생님을 봤는데, 처음에 제가 못 알아보자(꿈속의 그녀는 현실보다 젊고 예뻤음) 저에게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고 웃으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녀의 그 동작과 표정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두 번째 꿈에서는 교장실 뒤편 창밖 멀리에 돌로 만든 불상이 보였는데, 머리가 하나가 아닌 불상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 박해가 구세력이 배치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B 교장 선생님을 원망해서는 안 되고, 사실 진상을 알지 못해 대법 박해에 가담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B 교장 선생님은 비록 여러 차례 저에게 서명을 강요하셨지만, 결국에는 선량함을 선택하여 저를 보호해주셨고 저를 학교 외부 사람들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B 교장 선생님 역시 복을 받으셨습니다. 그녀는 줄곧 퇴직하고 싶어 하시며 “이젠 출근하기 싫어요, 이만하면 충분히 했어요”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소원은 정말로 이루어졌는데, 코로나 기간에 조기 퇴직하셨고 그해에 고급 교사 자격 심사에도 통과되셨습니다. 나중에 듣자니 퇴직 후의 삶이 풍요롭고 만족스럽다고 합니다.
3. 세 번째 C 교장 선생님 이야기
지난해 파출소 경찰 두 명이 저를 괴롭히려고 학교에 왔다가 정문 문위실에서 F 부교장 선생님에게 제지당했습니다. 그중 한 경찰이 제 사진을 들고 F 부교장 선생님에게 “여기에 이 교사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F 부교장 선생님은 “있습니다만, 학교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경찰은 그가 책임자가 아님을 알고 C 교장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F 부교장 선생님은 그들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자 마침 교육국에서 회의 중이던 C 교장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C 교장 선생님은 F 부교장 선생님에게 “절대로 그들을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 영향도 좋지 않으니 선생님을 잘 보호하라”라고 전했습니다. 결국 경찰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F 부교장 선생님이 문자로 저에게 경찰의 전화번호를 보내 그 경찰에게 전화하라고 전달하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서야 가겠다고 했습니다.
퇴근 후 F 부교장 선생님의 문자를 본 저는 예전처럼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전화번호를 보니 예전에 저에게 몇 번 걸려 온 번호였는데,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상의한 후 그날 오후 퇴근길에 먼저 파출소 경찰에게 연락했습니다. 이번에 파출소 담당자가 바뀌어서 예전의 그 뚱뚱하고 젊은 경찰이 아니었습니다. 만난 후 저는 왜 전화를 안 받았는지 설명했고 그에게서 예전의 그 뚱뚱하고 젊은 경찰은 다른 곳의 소장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밤 그 뚱뚱한 경찰이 또 우리집에 와서 괴롭힌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갈 때 제가 그 경찰의 어깨를 토닥이며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괴롭히지 마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잠시 멍해 있더니 떠나갔습니다. 그 후 2년 연속 그는 괴롭히러 오지 않았고 그날 밤이 그의 마지막 방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뚱뚱한 경찰이 선량함을 선택하여 정의로운 행동으로 복을 받아(젊은 나이에 소장이 됨) 기뻤습니다.
나중에 학교 쉬는 시간에 당직을 서다가 F 부교장 선생님을 만났는데, 걱정하실까 봐 제가 먼저 다가가 파출소 경찰을 만났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는 “그 경찰 참 재미있더군요. 제가 선생님께 전해드린다고 했는데도 굳이 제가 문자 보내는 걸 지켜보고 전송됐는지까지 확인하더라고요. 도대체 왜 선생님을 찾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별일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매년 그렇게 괴롭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상하네요, 우리가 선생님 대신 서명해줬고 그들도 다시는 안 찾는다고 약속했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제야 학교 측에서 저 몰래 그들에게 서명해준 것을 알았습니다(그들이 서명한 것은 무효이며, 대법제자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사부님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경찰들은 원래 그래요. 말한 것은 지키지 않고, 지키지 않을 말만 하니 믿을 수 없습니다. 매년 와서 괴롭히는데 어떤 때는 밤에도 옵니다.” 그가 “밤에 오면 꽤 무서울 텐데요”라고 말하자 저는 “무서울 게 뭐 있나요, 제가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라고 말했습니다. F 부교장 선생님은 “젊은 선생님 참 대단하네요. 매번 보면 선생님은 아무 일 없던데 마치 신께서 돕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저에게는 대법 사부님이 계시니까요, 대법 사부님은 불가능이 없으십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C 교장 선생님도 이 일을 마음에 두고 계셔서 경찰이 또 괴롭히러 오는지 물으시더니 직접 파출소장에게 전화해 “우리 학교 선생님을 더 이상 찾지 마세요, 그 선생님은 참 좋은 분이에요”라고 말했다고 전해줬습니다.
나중에 C 교장 선생님도 큰 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 학교에 오신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올해 봄에 승진하여 더 좋은 기관으로 영전하셨습니다. 재임 기간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모든 교실에 에어컨을 설치하려 하셨는데, 에어컨 설치 후 전력 용량이 부족해 변압기를 교체해야 했습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상부의 승인을 받기도 어려웠습니다. 작년 여름 방학 지나고 개학 때 전체 교사 회의에서 그는 기쁜 얼굴로 선생님들에게 “이번 신청이 생각보다 너무 순조롭게 처리되어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음껏 에어컨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 네 번째 D 교장 선생님 이야기
D 교장 선생님이 학교에 오신 지 3개월이 채 안 됐을 때입니다. 오시기 전에 어떤 동료들이 그분의 됨됨이를 수소문해 봤는데 평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야 하고 그들이 함부로 말하는 것에 동조해선 안 되며, D 교장 선생님에게 발정념을 하여 그가 갈수록 바르게 되고 진선인(眞·善·忍)을 선택하여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저는 학교 정문 입구에 예전부터 쓰여 있던 ‘사이비교’ 관련 선전 간판이 이번 학기에 다른 내용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고 매우 기뻤습니다. 이 사악한 간판 때문에 작년 여름 방학 마지막 날 저는 F 부교장 선생님에게 “이 간판은 우리 학교에 불길하니 방학 기간을 이용해 교체합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F 부교장 선생님도 신앙이 있어 신불(神佛)과 선악응보(善惡應報)의 이치를 믿기에 바꿔주겠다고 약속하며 “젊은 선생님은 아는 것도 참 많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제가 뭘 그리 많이 알겠습니까,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의 지혜를 열어주신 덕분입니다. 하지만 개학 후 저는 F 교장 선생님이 그 사악한 선전 간판 내용을 바꾸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작년 가을, 우리 학교 선생님 여러 명이 잇달아 발을 다쳐 걷지 못하게 되자 당시 학교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학교에 사기(邪氣)가 있다는 등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았습니다. 선생님이 발을 다칠 때마다 사람들은 이 일을 입에 올렸고, 심지어 G 부교장 선생님은 C 교장 선생님이 이 일에 대해 말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말했다고 전하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 C 교장 선생님은 사람을 불러 풍수를 보기도 했습니다.
이후 이 선전 간판을 교체한 일이 F 부교장 선생님이 한 것인지 D 교장 선생님이 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누가 바꿨든 간에 모두 큰 선행을 한 것이니 중생들을 위해 참 기쁜 일입니다.
오늘 퇴근길에 H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눴는데, 하마터면 이 중생의 이야기를 빠뜨릴 뻔했습니다. 그는 초기에 B 교장 선생님의 지시를 받아 제일 먼저 저를 괴롭히러 왔던 사람입니다. 앞서 글에서 언급했던 박해에 가담했다가 건강에 문제가 생겨 많이 여위었던 그 사람입니다. 나중에 장기 병가를 냈다가 학교로 복귀한 후로는 B 교장 선생님이 아무리 압력을 넣어도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B 교장 선생님도 그의 태도가 확고한 것을 보고 더는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장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더 많은 세인이 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역사의 중요한 시점에 중공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악을 멀리해서 진상을 알고 복을 받아 모두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되길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7/50296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7/50296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