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쓰촨(四川)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집안이 매우 가난해 생활이 아주 고달팠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고열이 나 기절했는데, 부모님은 제가 죽은 줄 알고 사람을 시켜 황야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지 않았습니다. 둘째 숙모님께서 소를 먹이다가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죽지 않은 것을 보시고는 데려와 약초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세 살 때는 친구들과 놀다가 실수로 사람 키보다 깊은 웅덩이에 빠져 숨이 끊어질 뻔했다가 구조돼 살아났고, 나중에는 ‘대약진’ 운동 시기에 굶어 죽을 뻔하기도 했습니다. 일곱 살 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때, 어머니는 여자가 학교에 가봤자 소용없다며 집에서 소를 먹이고 나무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열 살 되던 해, 어머니는 저를 큰언니 집으로 보내 나무를 하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큰언니의 큰아들이 자꾸 업어달라고 보채서 업어주다가 그만 2미터 깊이의 화장실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고 집에는 어른도 없었으나 명줄이 다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형부의 동생네 닭이 없어져 찾으러 왔다가 화장실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걸 보고 자기 집 닭인 줄 알고 꺼내준 덕분에 둘 다 구출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위독한 상태였고, 큰언니가 의사를 불러와 10여 시간 동안 응급처치를 한 끝에 겨우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큰언니의 아들은 나흘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스물한 살에 남편을 따라 동북으로 왔습니다. 남편은 노동자였고 월급은 30여 위안이었습니다. 생활은 그럭저럭 꾸려갈 만했습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제가 스물아홉 살 되던 해, 남편이 갑자기 병에 걸려 50여 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 살과 여섯 살 된 두 아이를 남겨둔 채였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도 없었기에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하늘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고, 염라대왕이 나를 이토록 고생시킨다며 원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몸에는 네댓 가지 병이 생겼습니다. 심각한 위염, 신장염, 신장결석에 심장 부정맥과 부인과 질환까지 겹쳐 정말 죽느니만 못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1996년 12월 24일, 친구 두 명이 저를 찾아와 파룬궁을 수련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당시 바로 연공을 가르쳐주었는데, 평생 다리를 꼬아본 적도 없던 제가 40분 동안 결가부좌를 했습니다. 이튿날 친구는 ‘전법륜(轉法輪)’과 연공 도해 한 권을 구해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교를 하루도 다닌 적이 없는데 어떻게 법공부를 하겠습니까? 친구는 두 아이에게 읽어달라고 하라고 했고, 두 아이도 제 수련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사부님의 연공 도해를 보며 수인(手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배우자마자 사부님의 법상(法像)을 보았습니다. 금빛이 찬란했고 머리 위의 광환이 번쩍이며 점점 높이 솟았으며 눈도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깜짝 놀라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기뻐하며 “사부님께서 이제 널 돌봐주시는 거야. 격려해주시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두 아이가 읽어주는 사부님의 설법을 통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진정으로 높은 층차에서 수련하는 고덕(高德) 대법임을 알게 됐습니다. 심성을 높이고 명예와 이익, 정을 내려놓으며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고생을 겪는 것이 바로 업을 소멸하고 업의 빚을 갚는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더는 원망이 없어졌고 심리적 평형을 이뤘습니다. 고생을 겪는 것이 법을 얻기 위함임을 알았습니다. 수련 12일째 되던 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셨습니다. 그날 저는 설사와 구토를 했는데 검은 혈전 같은 것들을 쏟아냈고 열도 났습니다. 저는 업을 갚는 것임을 알고 굳건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대법제자다. 너희에게 빚진 것을 모두 갚아주마.” 사흘 뒤 모든 증상이 사라졌고 그때부터 모든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몸이 아주 가뿐해졌고 힘이 넘쳐났습니다.
1. 사부님께서 대법서적 읽는 법을 가르쳐주시다
법을 얻은 지 한 달 남짓 지난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날은 퇴근을 좀 일찍 했는데 두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습니다. 보배로운 책인 ‘전법륜’을 보았지만 저는 글자를 단 하나도 몰랐습니다. 저는 책을 가슴에 품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아이들이 읽어주는 건 너무 느려요. 언제쯤 한 번 다 읽을 수 있을까요. 제가 글자를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읽고 싶을 때 언제든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말을 마치고 책을 제자리에 둔 뒤 잠이 들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사부님께서 책 속에서 나오시더니 책을 펼쳐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긴장해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저는 학교에 다녀본 적이 없어 글자를 모릅니다.” 사부님께서는 책을 내려놓으시고 제 왼쪽 귀를 두 번, 오른쪽 귀를 두 번 파내시더니 다시 책을 펼쳐 보여주시며 어떠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창호지 무늬처럼 칸칸이 보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은 다시 책을 덮어 두시고는 제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한 번 치고 가셨습니다. 제가 사부님을 소리쳐 부르며 일어나려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고 그때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다음 날 딸이 법을 읽어줄 때, 첫 줄을 읽으면 두 번째 줄 글자들이 툭 튀어나왔고 그 글자들을 다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책 종이는 분홍색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딸에게 “이 글자들을 이제 다 알 것 같아”라고 하자 딸은 깜짝 놀라며 “엄마 열나는 거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제가 진짜라고 하자 믿지 못하는 딸 앞에서 글자 몇 개를 읽어주었습니다. 딸이 보니 다 맞게 읽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딸에게 저는 눈물을 흘리며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거라고 말했습니다! 딸은 “엄마 정말 신기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자신조차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지만 저는 정말로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스스로 법공부를 했습니다. 사부님의 책이라면 어떤 것이든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속인의 글자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무리 바빠도 매일 법공부를 하고 사부님의 경문을 외웠습니다. 자신을 잘 닦아 심성을 높이고 명리와 정을 내려놓으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사람이 돼야만 사부님의 제도에 보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5월 어느 날, 직장 상사가 제 동료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올해 일이 너무 바빠서 당신들 두 명 중 한 명은 다른 조로 가야겠어.”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동료가 말했습니다. “다른 조는 제가 갈게요. 여기 일은 덥고 힘들어서 벌써 하기 싫었거든요. 매년 둘이서 하던 일을 올해는 한 명 적게 한다니 언니더러 하라고 하세요!” 저는 ‘나는 수련생이니 그녀와 다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사는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과연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다르군요. 언니 고마워요. 공짜로 시키지 않을게요. 두 사람 몫의 월급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상사는 돈을 한 푼도 더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두 사람 몫의 일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힘이 났고 온몸에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아주 고요했기에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사부님의 경문과 ‘홍음(洪吟)’을 외웠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상사가 또 찾아와 말했습니다. “다른 반 사람들 몇몇이 힘들어서 병이 났어요. 2교대로 24시간 풀가동해야 합니다. 기계는 멈추지 않는데 사람이 부족하네요. 그런데 이건 기술이 필요한 첫 공정이라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아요. 언니가 2교대를 다 뛰어주면 두 사람 몫의 돈을 줄게요.” 저는 웃으며 “저를 기계로 보시는 건 아니죠?”라고 했더니 상사는 “언니는 기계보다 일을 더 잘해요”라며 웃었습니다. 이틀 뒤 상사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언니를 따라서 파룬궁 수련하세요. 언니가 건강한 것 좀 보세요. 날개만 있으면 정말 날아갈 것 같아요. 혼자서 두 사람 몫을 거뜬히 해낸다니까요.” 그 후 정말로 동료와 친구 몇 명이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2. “당신 신선 아니오?”
1999년 ‘7·20’ 이후 사악이 대법과 사부님을 미친 듯이 모함하기 시작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는 매일 비방과 날조된 소식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을 굳게 믿었고 대법이 우주에서 가장 바르고 좋은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사악의 유언비어는 저를 흔들 수 없었습니다.
2005년 3월 초, 저는 도시로 나가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현지는 다소 폐쇄적이라 정체(整體,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았고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이 막 나왔을 때라 진상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일념을 내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이튿날 도시에 사는 속인 친구가 저를 보러 왔기에 도시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친구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지만 저는 천천히 찾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두 시간 정도 머물다 돌아갔는데 집에 가자마자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너무나 운 좋게도 직장 동료가 부모님을 돌볼 입주 도우미를 찾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사정을 말했더니 동료가 아주 만족해하며 기다릴 테니 빨리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친구 집으로 갔고 동료는 아주 만족해하며 월급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저는 월급은 얼마든 상관없지만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나는 파룬궁수련생인데 가족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 둘째 일을 마친 후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할 텐데 전기료 같은 것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인지, 셋째 제 방을 따로 하나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은 파룬궁을 반대하지 않지만 아버지가 홍군 출신에 공장장을 지내고 퇴직하신 분이라 아주 완고하게 반대하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대퇴부 골절로 누워계신 지 열흘 정도 됐는데, 의사 말로는 가벼워야 반년 뒤에나 걸을 수 있고 심하면 마비될 수도 있다고 해서 도우미를 구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저는 제 수련을 반대한다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하지 않겠으니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제가 마음에 든다며 양보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자기 아버지가 모르게 조용히 책을 보고 연공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안 되죠! 그건 ‘진(眞)’이 아니잖아요”라고 했지만 그녀는 일단 그렇게 정하자며 나중에 아버지께 잘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의 어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그날 저녁 할머니께 식사를 챙겨드리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할머니, 저는 파룬궁수련생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할머니는 저를 보시더니 “이렇게 좋은 사람이 왜 파룬궁을 해?”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이 어떻다 저떻다 하더라는 할머니 말씀에 저는 그것이 다 우리 사부님과 파룬궁을 모함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분신자살했다는 왕진둥(王進東)을 보세요. 온몸에 불이 붙었는데 다리 사이에 놓인 휘발유 통은 멀쩡하잖아요. 그리고 그 어린 소녀는 기관지를 절개했다는데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요.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할머니는 아니라고 하시며 제 말을 다 믿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인연이 정말 크시다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몇 번을 따라 배우셨고 다 외웠다고 하셨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식사를 챙겨드리러 가자 할머니가 제 이름을 부르며 “나 다 나았어! 이제 움직일 수 있어!”라고 하셨습니다. 농담하시는 줄 알고 정말이냐고 여쭸더니 진짜라며 발과 몸을 움직여 보여주셨습니다.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일을 마치고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묻자 할머니는 아픈 곳을 눌러보시더니 안 아프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셨습니다. 이제 땅을 밟고 설 수 있겠다고 하셔서 신발을 갖다 드리며 신어보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신발을 신자마자 밖으로 걸어 나가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실에 있던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나오시는 걸 보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 나오신 거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그럴 리가 없다며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거실을 한 바퀴 도시는 것을 보여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당신 신선 아니오?”라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불법(佛法)을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즉시 딸에게 전화해 어머니가 다 나았다고 알렸습니다. 딸과 사위는 장모님이 노망나신 거 아니냐며 확인하러 달려왔습니다. 딸네가 바로 뒷동에 살고 있었거든요. 와서 직접 확인한 딸은 “언니, 하느님이 보내신 분인가요? 오신 지 사흘 만에 엄마가 낫다니 정말 신기해요. 신을 믿으시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맞습니다. 사부님께서 보내신 거예요.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고 파룬궁은 사람을 구하는 법이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기회를 빌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신을 믿느냐는 제 물음에 사위는 믿지 않지만 이번 일은 설명할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 사건과 장자석(藏字石) 이야기를 해주며 삼퇴를 권했고 그는 동의하며 탈퇴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온갖 기회를 이용해 그 집의 모든 친척, 친구, 이웃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모두 대법을 인정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저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셨고 매일 1층으로 내려가 저를 도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셨습니다. 수십 년간 피워온 담배와 술도 끊으셨습니다. 그 집에서 9개월 넘게 일하며 50~60명을 탈퇴시켰습니다. 나중에 아들이 돌아오게 돼서 다른 집으로 옮겼는데 총 다섯 집을 거치며 집집마다 신기한 일이 일어났고 집마다 수십 명씩 탈퇴시킬 수 있었습니다.
3. 대면 진상과 전화 진상
나중에 다른 집에서 일하게 됐을 때도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장을 보는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습니다. 주로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렸는데 그 과정에는 고통도 즐거움도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신고하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니 모든 위험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평소 장을 볼 때 주인은 빨리 다녀오라며 택시비를 주곤 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진상을 알릴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기사에게 문화대혁명 때의 지식인 박해, ‘6·4’ 천안문 사태 때의 대학생 학살, 그리고 지금의 파룬궁 박해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 듣고 난 기사는 당신을 공안국에 넘기면 내가 1만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며 차를 세우려 했습니다. 저는 즉시 정념을 발했습니다.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부님이 결정하신다.’ 그리고 기사에게 말했습니다. “기사님, 그 1만 위안을 받으면 몇만 위안을 잃게 될지 아세요? 겁주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 하는 말입니다. 운전하시는 분이라 평안을 지키는 방법을 알려주려는데 저를 해치려 하다니 이 세상에 천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기사는 웃으며 진짜 이름으로 탈퇴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도시 수련생에게서 휴대폰을 한 대 구해 매일 나가서 음성 전화를 세 통씩 걸었습니다. 전화로 사람을 구하는 과정 역시 자신을 닦는 과정임을 느꼈습니다. 상대방이 잘 들어주면 환희심이 생기지 않도록 닦아야 했고, 신고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두려운 마음을 닦아야 했으며, 욕을 먹으면 조급함과 원망하는 마음을 닦아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전화를 걸며 자신을 바로잡으니 사람 마음은 점점 줄어들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은 더욱 순수해졌습니다.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점점 많아졌고 효과도 좋아졌으며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직접 삼퇴를 권할 때 중생이 구원되는 기쁨과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탈퇴한 분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할 때면 저는 사부님께서 시키신 일이니 제게 고마워하지 말고 사람을 구하러 오신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대법 사부님께 감사하다고 말하곤 합니다.
실제 사례 두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인민대표였던 분입니다. 전화가 연결돼 삼퇴로 평안을 지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는지 묻자 그는 “들어봤소. 파룬궁 맞지?”라고 했습니다. 제가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셨는지 묻자 그는 국가 간부라 탈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간부라도 평안은 지켜야 한다며 지금 천재지변이 많고 공산당이 부패했는데 탈퇴하지 않으면 그 일원이 돼 재난이 닥칠 때 연루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웃으며 자신은 무신론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무신론은 인간의 도덕을 파괴하는 독약입니다. 신앙이 없으면 심법(心法)의 제약이 없어 끝없이 나쁜 짓을 하게 됩니다. 지금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럽습니까. 부패, 살인, 마약 등등 그렇지 않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은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진심으로 당신과 가족을 위해 드리는 말씀이니 ‘설마’ 하는 마음으로라도 가명으로 탈퇴하자고 권했습니다. 그는 “좋소, 그렇게 합시다. 당신도 조심하세요. 휴대폰 카드가 현지 카드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를 걱정해주는 마음에 감동해 고맙다고 하자 그는 당연히 자신이 고마워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사부님께 감사드리라고 하자 그는 대법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어느 대학생입니다. 삼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그런 거 안 믿는다며 자기는 아무것도 가입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붉은 스카프(紅領巾)는 분명히 맸을 거라며 진심으로 당신을 위해 하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붉은 스카프를 맬 때 맹세를 했기에 탈퇴하지 않으면 중공이 멸망할 때 연루될 것이고 그때 후회해도 늦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집에서 대학까지 보내주느라 부모님이 얼마나 애쓰셨겠냐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더 말씀 안 하셔도 돼요. 공청단에 가입했었는데 탈퇴시켜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탈퇴해서 평안하고 행복해지면 당신은 뭘 얻나요?”라고 묻더군요. 저는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기에 당신이 평안해지면 제 마음이 위안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그는 감동하며 “엄마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 아이들이 벌써 마흔이 넘었다고 웃으며 대답했고 그는 그럼 할머니라고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네댓 명의 수련생과 함께 전화로 진상을 알려 한 번에 수십 명씩 탈퇴시켰습니다. 이렇게 몇 년을 꾸준히 해왔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탈퇴시켰는지 수는 따로 세지 않았습니다.
4. 난을 넘기다
2007년 어느 날, 소조 발정념을 하러 수련생을 찾아가던 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졌습니다. 뼈가 살을 뚫고 나올 정도였지만 저는 마음이 매우 평온했습니다. 이것이 사악의 교란과 박해임을 분명히 알았기에 인정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정념을 하며 사부님께 뼈를 맞춰달라고 빌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왼손으로 오른팔을 다리 위에 올리고 한 번 누르며 당기자 ‘우두둑’ 소리가 나며 뼈가 맞춰졌습니다. 왼팔과 대보니 좀 삐뚤어져서 다시 당겨서 맞췄습니다. 다시 대보니 잘 맞았고 손가락과 팔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 울면서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소조에 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손이 크게 부어올랐습니다. 딸은 병원에 가야 한다고 난리였지만 저는 완강히 거절했습니다. 약은 안 먹더라도 사진이라도 찍어보자는 딸에게 저는 이미 다 맞췄는데 사진은 찍어 무엇 하느냐고 했습니다. 딸은 일주일 안에 부기가 안 빠지면 묶어서라도 병원에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흘이면 빠질 거라고 안심시켰습니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발정념을 하며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구세력의 모든 안배를 부정했습니다. 팔은 몽둥이처럼 부어올라 욱신거리고 아팠습니다. 평소처럼 연공을 하려니 움직일 때마다 뼈에서 소리가 났고 머릿속에는 ‘뼈가 어긋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즉시 그것이 제 생각이 아님을 깨닫고 부정했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 없으며 제 몸은 사부님께서 주신 금강불괴의 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꿋꿋하게 연공을 이어갔습니다. 충관(沖灌)을 할 때 손이 올라가지 않자 즉시 사부님의 법을 외웠습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전법륜) 그때 사부님의 목소리가 뇌리에 울렸습니다. “신이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있음이로다”(홍음2-두려울 것 뭐냐)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꽹과리와 북소리와 함께 “힘내라, 힘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저는 고통을 잊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연공을 견뎌냈고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18일째 되는 날 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아이들도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고, 이는 나중에 제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는 데 좋은 기초가 됐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제가 한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이며 모두 사부님의 거대한 감내와 고생스러운 헌신 덕분이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악의 광기와 홍진(紅塵)의 유혹을 견디고 천백 생의 두터운 업력을 씻어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겠습니까.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해 세 가지 일을 잘해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참고: 이 글은 본인이 직접 쓴 것으로 수련생은 오타와 문장 일부만 다듬었다. 학교를 하루도 다닌 적 없는 이가 이런 교류 원고를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대법이 창조한 기적이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5/5039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5/50392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