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성 청년 쉬페이룽, 장쑤성 우시 감옥서 2년 억울한 옥살이 당해

[명혜망](장쑤성 통신원) 원적이 허난성 푸양(濮陽)시 푸양(濮陽)현인 32세 파룬궁수련자 쉬페이룽(許飛龍)은 2023년 8월 11일, 장쑤성 쑤저우(蘇州)시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쑤저우시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쑤저우 지역 공안·검찰·법원의 모함으로 부당하게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2024년 1월 말, 장쑤성 우시(無錫) 감옥으로 납치됐고, 2025년 8월 10일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했다.

쉬페이룽은 1992년생으로, 허난성 푸양시 푸양현 하이퉁(海通)향 쉬쒀청(許鎖城)촌 사람이다. 2023년 8월 11일, 쉬페이룽은 장쑤성 쑤저우시 공업단지 펑황청(鳳凰城) 아파트 단지에서 진상 전단을 붙이다가 새벽 2시 30분경 쑤저우 둥사후(東沙湖)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의 임대 주택은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그날 밤, 쉬페이룽은 쑤저우시 제2구치소로 납치됐다.

쑤저우시 제2구치소에서 당한 고문

구치소에서 경찰은 쉬페이룽이 연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그는 단식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구타를 당했음에도 쉬페이룽은 계속 단식으로 항의했다. 감방에서 쉬페이룽은 먼저 강제로 물 주입을 당했다. 5일 후부터 쉬페이룽은 구치소 사람들에게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하기 시작했다.

한 수감자가 경찰이 준 육각 드라이버를 들고 쉬페이룽이 말하는 틈을 타 그의 입에 넣었고, 이로 인해 쉬페이룽의 오른쪽 위 큰 어금니 일부가 부러졌다. 원래 그전부터 음식을 먹을 때 오른쪽 치아가 좀 아팠는데, 이 일로 통증이 더욱 심해져 식사를 왼쪽으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융마오(雍茂·음역)라는 의사는 매우 악랄했는데, 강제 음식물 주입을 할 때 쉬페이룽의 기도를 움켜쥐어 질식하게 했다. 쉬페이룽이 “공산당은 곧 끝장납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미친 듯이 쉬페이룽의 얼굴을 때렸고 여러 차례 그의 얼굴에 고춧물을 발랐다.

경찰은 수갑으로 쉬페이룽을 침대에 묶었는데, 수갑이 꽉 조여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쉬페이룽의 팔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할 때 쉬페이룽이 튜브를 물고 버티자, 입안이 찔려 피투성이가 됐다. 어떤 때는 수십 분간 꽂고 있었고, 하루에 두 번, 한 번에 500~600ml를 주입했으며 1시간 넘게 수액을 맞게 했다.

3개월여가 지난 2023년 11월, 쉬페이룽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전 단식 기간에 경찰은 가족의 정을 이용해 쉬페이룽을 굴복시키려 그의 부모에게 식사를 권유하게 했으나, 당시 쉬페이룽은 먹지 않았다. 당시는 무더운 날씨였는데 쉬페이룽의 부모는 구치소 문 앞에서 한 달 넘게 노숙했고, 경찰이 그의 가족에게 하루 숙소를 마련해 준 적도 있었다.

구치소에 불법 감금된 지 두 달 후 쉬페이룽은 박해로 걷지 못하게 됐다. 이후 쉬페이룽은 부당하게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2024년 1월 말 장쑤성 우시 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서 나올 때까지 쉬페이룽은 계속된 박해로 걷지 못했다.

우시 감옥에서 당한 고문

감옥에서 경찰은 쉬페이룽이 연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쉬페이룽은 단식으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쉬페이룽을 감시하던 자들은 마약사범 두 명으로, 한 명은 완퉁(萬通)이란 자로 사형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다른 한 명은 자오레이(趙磊)로 체중이 120kg이었다. 이들은 쉬페이룽을 폭행할 때 각자 그의 한쪽 팔을 붙잡고 몸의 혈자리를 집중적으로 눌렀으며, 관자놀이와 얼굴, 손의 여러 혈자리를 힘껏 찔렀다. 한번은 두 사람이 염주로 관자놀이를 찔러 염주가 끊어지기까지 했다. 그들이 괴롭힐 때 쉬페이룽은 속으로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정념(正念)을 발했다.

2024년 3월, 완퉁이 떠나고 살인범 쉬진춘(徐勤春)이 왔다. 쉬진춘은 쉬페이룽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리고 허벅지 안쪽을 세게 움켜잡았는데, 움켜잡힌 허벅지는 누렇게 변해 조금만 건드려도 통증이 심했다. 그들은 새로 들어온 수감자 몇 명을 시켜 쉬페이룽을 감시하게 했고, 손이 조금만 움직여도 그들은 쉬페이룽을 짓눌렀다.

한번은 그들이 쉬페이룽을 끌고 생체 정보를 채집하러 가서, 여러 명이 그의 얼굴을 때리고 배를 움켜잡았다. 그들이 쉬페이룽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켰지만 쉬페이룽은 협조하지 않았다.

2024년 4월 22일, 쉬페이룽은 다시 단식을 시작했다. 5월 초, 감옥경찰은 쉬페이룽의 가족을 불러 그를 설득하게 했다. 앞서 자오레이는 쉬페이룽을 때렸기에 교체됐고 완퉁이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검찰원의 지시에 따라 쉬페이룽에게 이른바 ‘6서(六書, 여섯 가지 수련 포기 각서)’, ‘5비(五批, 다섯 가지 비평)’를 쓰게 강요했으며, 쓰지 않으면 계속 고문했다.

파룬궁 박해를 전담하는 주스룽(朱士龍)이라는 감옥경찰이 있는데, 그는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할 때 극도로 잔인하다. 쉬페이룽은 장기간 걷지 못해 화장실에 갈 때도 바닥에 앉아서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두 다리를 앞으로 뻗어 무릎을 꿇고 볼일을 봤으며, 혼자서 일어설 수 없었다. 2024년 5월 초부터 이 감옥경찰은 새 수감자들에게 쉬페이룽의 팔을 붙잡고 질질 끌게 했다. 쉬페이룽은 마치 팔이 부러진 것처럼 심한 고통을 느껴 비명을 질렀는데, 수십 미터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쉬페이룽이 다시 단식으로 항의하자 하루에 한 번 병원으로 끌려가 강제로 한 번에 1300ml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쉬페이룽은 기력이 거의 없었으며, 그들은 그가 거의 기절할 때까지 끌고 다녔다.

감옥에서 경찰은 쉬페이룽에게 이른바 ‘매 길들이기(수면 박탈 고문)’를 가했다. 아침 6시에 쉬페이룽을 끌어내 고문 도구 ‘호랑이의자’에 앉혔고, 낮에 잠을 재우지 않은 채 밤 12시까지 이어갔는데 이것이 첫 번째 근무조였다. 두 번째 조는 12시부터 2시까지, 3일째 되는 날은 2시부터 4시까지, 4일째 되는 날은 4시부터 밤 9시 20분까지, 5일째 되는 날은 근무조가 없었지만 아침 6시부터 밤 9시 20분까지 계속 버티게 했다. 그들은 8시가 조금 넘으면 일을 마쳤으면서도, 쉬페이룽은 매일 밤 9시 20분까지 ‘버티게’ 했다.

이후 수감자가 루자오원(陸兆文)으로 교체됐다. 여러 명이 쉬페이룽을 붙잡고 있는 동안, 루자오원은 그의 젖꼭지를 꼬집고 관자놀이를 찔렀다. 쉬페이룽이 조금이라도 졸면 그는 밥그릇으로 쓰는 철제 대야를 쉬페이룽의 귀 옆에서 쳐 마치 징을 치듯 소리를 냈고, 그때 쉬페이룽의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후 쉬페이룽의 왼쪽 귀에는 낭종이 생겼는데 현재도 귀에 혹이 남아 있다. 감옥경찰은 강제 음식물 주입 시 물을 한 번에 1600~1800ml까지 주입했으며, 나중에는 하루 두 번, 한 번에 1300ml를 주입했다. 그는 쉬페이룽의 양쪽 갈비뼈도 찔렀다.

병원으로 강제 음식물 주입을 하러 가는 길에 쉬페이룽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치자, 루자오원은 검은 두건을 그의 머리에 씌웠고, 이어 조임 끈으로 만든 두건을 다시 씌운 뒤 조임 끈으로 그의 입을 꽉 묶었다. 이로 인해 쉬페이룽은 코로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2025년, 루자오원이 다시 와서 이전에 의류 감구에 있었던 자오레이가 만든 덧씌우개를 가져와 쉬페이룽의 머리에 씌웠고, 그로 인해 쉬페이룽은 질식해 입과 혀에 감각이 없어졌으며 반혼수 상태에 빠졌다.

감방에 새 사람이 들어올 때마다 쉬페이룽은 “파룬따파하오”를 말하며 진상을 알렸고, 그러면 루자오원은 바닥이나 화장실을 닦던 걸레를 그의 입에 쑤셔 넣거나 목구멍을 찔러 쉬페이룽이 밤새 혹은 하루 종일 통증에 시달리게 했다. 그들은 또 그의 양쪽 갈비뼈도 찔렀다. 겨울 밤에는 쉬페이룽을 강제로 끌어내어 당직을 서게 했고, 또 옷을 입힌 뒤 창문을 열어 얼어붙게 하려 했다. 하루 24시간 내내 쉬페이룽은 수감자들의 감시를 받았다.

감옥에서 쉬페이룽은 이른바 ‘6서’, ‘5비’를 쓰지 않았고,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악당(중공)의 모든 박해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에 5~6명의 수감자가 폭력을 써서 그의 손에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다. 2025년 8월 10일, 쉬페이룽은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우시 감옥을 나왔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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