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포기하지 않으신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적부터 대법을 접했으나 수련에 들어서지는 않았습니다. 2020년 전염병이 발생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도 저는 깨어나지 못한 채 여전히 속인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이 하늘에서 큰 물줄기를 따라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더러운 구정물이 흐르고 있었고 무수한 사람이 그 안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비백산할 정도로 겁에 질렸습니다.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저 높은 하늘의 무한한 광명 속에서 거대한 부처님의 손이 나타나 우리를 하늘로 건져 올리셨습니다. 저는 감격하며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떠올리며 저를 구해주신 분이 사부님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표면적인 뜻조차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대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 대법 수련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다

저는 젊은 층에 속합니다. 예전에는 딱히 병은 없어도 늘 몸이 무겁고 개운치 않았으나 연공을 한 뒤 좋아졌고 몸이 줄곧 가벼웠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 한동안 기운이 없어 매우 힘들고 말 한마디 하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가는데 몸이 좋지 않아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에 신호등 앞에서 초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통을 겪고 나니 갑자기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몸이 불편한 느낌이 이렇게 힘든 것이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이 신호를 위반하는 것을 보면 마음속으로 비난하곤 했는데, 어쩌면 그들에게도 말 못 할 고초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 다르고 심리적 압박감이 다를 것입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기에 너무나 행운입니다.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시고 대법 법리의 가르침이 있어 항로를 잃지 않지만, 속인들은 얼마나 고달프겠습니까! 저는 타인의 어려움을 더 깊이 체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련생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련생마다 층차가 다르고 각자 다른 시련을 겪으며 잘할 때도 있고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련생인 올케가 한동안 아이를 돌보느라 오랫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하고 발정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심성 표현이 속인보다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녀를 인정하지 못하다가 점차 그녀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는 줄곧 그녀와 법공부에 대해 교류하고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어조와 선한 마음을 조절하고 진심으로 그녀를 배려하며 기회를 찾은 끝에 드디어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올케는 감격해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저는 그것이 법의 위력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스스로 법공부할 방법을 찾으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

2. 가정 안에서 조금씩 심성을 제고하다

결혼 후 저는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이혼할 수 있을지만 늘 생각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편견이 깊어 결혼 후 몇 년 동안 아이도 갖지 않은 채 오랫동안 냉전을 벌였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진선인(眞·善·忍) 법리의 가르침 아래 끊임없이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았습니다. 남편을 친가족으로 대하려 노력하고 그의 단점을 가볍게 보았습니다. 점차 남편에 대한 관념을 내려놓고 그의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하며 선하게 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한 그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정법(正法)이라는 진상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흐른 뒤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부부의 관계가 완화된 것을 보시고 손주를 재촉하셨습니다. 아이를 가진 후 저는 많은 시련을 겪으며 심성을 승화시켰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원래 저와 남편이 함께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자 시부모님이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너희 아이를 봐주려고 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은 어머니가 계시니 낮에는 아이를 돌보지 않았고 밤에만 저와 아이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아이가 한밤중에 울어도 물을 떠 오거나 기저귀를 가는 등 도움을 주기는커녕 옆에서 눈을 부릅뜨고 화를 내며 방해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우 화가 났지만 수련인으로서 그와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산후조리가 채 끝나기도 전인 15일 만에 남편은 휴가를 마치고 출근했고, 편히 쉬겠다며 다른 방으로 옮겨가 아예 아이 돌보는 일에서 손을 뗐습니다. 시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시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아이가 낮에 깨어 울거나 먹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상황에서 시어머니는 늘 자리에 없으셨고, 아이를 씻겨야 할 때도 마침 일이 있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매일 아침저녁으로 닭에게 모이를 두 번 주시고 점심 식사 후에는 한두 시간 낮잠을 주무셨으며 밤 9시 반이면 쉬셨습니다. 낮에는 밭에 가서 채소를 심거나 친척 집을 방문하고 마을 어르신들을 문안하러 가기도 하셨습니다. 제 마음은 심사가 뒤틀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들에게 의지할 수 없게 되자 불평과 원망이 생겼습니다. 다행히 대법 법리의 가르침이 있어 우리 사이에 그런 인연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의존, 원망,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음식에 대한 집착 등을 닦아버리기로 했습니다. 심성이 제고된 후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상대방이 저를 성취시켜 준 것에 감사해야 했습니다.

남편은 배움이 적어 갈등이 생기면 늘 크게 소리를 질러 가정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는데, 저는 이를 심성을 제고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밤 10시쯤,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세탁기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만지던 남편이 갑자기 저에게 왜 한밤중에 빨래를 하느냐며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내가 힘들게 아이를 돌보다 짬을 내서 빨래하는 게 그렇게 방해가 되나? 세탁기 소리가 얼마나 크다고, 그리고 아직 한밤중도 아니잖아?!’ 남편은 늘 밤 12시 넘어서까지 휴대폰을 보다 잠드는데 시어머니는 보통 10시 전에 주무시기에 혹시 어머니께 방해될까 봐 그런 것인지 그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의 요구대로 안으로 찾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한 것은 확실히 제 편의만 생각했을 뿐 남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소리 지르는 것은 저에게 덕(德)을 주는 것이라 여기고 그날부터 낮에 짬을 내어 빨래하는 것으로 바꿨습니다. 이런 세세한 일이 아주 많습니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남편과 지금까지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낮에 시어머니가 아이를 보실 때 항상 아이를 본인 방으로 데려가 문을 닫으셨습니다. 첫 손주라 정(情)이 너무 깊어 아이를 계속 눈앞에 두고 싶으셨던 모양인데, 아이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불안해져도 저는 대놓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이를 방으로 데려가기만 하면 원망이 일어 마음이 뒤숭숭했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보이지 않아 시어머니 방 앞을 서성이며 아이를 불러내려 했습니다. 이를 본 남편이 저에게 왜 궁상맞게 구느냐며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가 소리치자 저도 참지 못하고 말다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제가 연공인임을 깨닫고 화를 참으며 인내심 있게 도리를 설명해 집안에 다툼이 일어나지 않게 마무리했습니다. 이 일 후에 저는 이 정을 닦아버리기로 주의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물었습니다. ‘내 도량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라고 가르치셨는데 시어머니도 중생의 일원이지 않은가.’ 저는 시어머니를 자비롭게 대하고 매사 시어머니를 배려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아이에게도 시어머니에게도 좋은 일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심성을 제고하자 도량이 넓어졌고 지금은 고부 사이가 아주 화목합니다. 제가 끊임없이 마음을 닦는 과정에서 남편과 시어머니도 변했습니다.

3. 수련생 사이에서 심성을 제고하다

어머니 댁에 자주 가서 식사하기에 그곳에서도 마음을 닦았습니다. 올케 A도 신수련생인데 한번은 그녀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두 사람 다 안으로 찾을 줄 몰라 크게 싸웠고, 화가 난 A는 물건을 집어 던지더니 쓰레기통을 어머니 등 쪽으로 던졌습니다. 제 마음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최대한 그녀의 고충을 이해하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그녀가 틀렸다는 생각,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옳지 않으며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저히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어떻게 닦을지 고민하며 명혜망의 수련교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러다 수련생이 인용한 사부님의 한 구절 법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동수인데, 당신들은 적인가? 당신들은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당신들은 마땅히 가장 친밀해야 하며, 서로 도와야 하는데, 당신은 누구를 보고 눈에 거슬려하는가?”(각지 설법14-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사부님의 “당신은 누구를 보고 눈에 거슬려하는가?”라는 구절이 제 마음 깊은 곳을 때렸고 그 마음이 한순간에 내려놓아졌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동수(同修)이며 사람을 구한다는 공동의 사명을 띠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가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동하는 동시에 저 자신을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 또한 친정 어머니께 자주 소리를 지르며 불효하고 불경하게 대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현대적인 관념과 행위였으므로 고쳐야 했습니다.

한번은 발정념을 할 때 올케가 화를 내며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왜 발정념을 안 하지?’라며 그녀가 수련에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제 염두는 매우 발랐습니다. ‘올케가 세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방해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고 그녀의 정념을 강화한다’라는 일념을 더했습니다. 저는 올케에 대해 나쁜 생각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제가 차를 운전해 수련생들과 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아이를 안고 있어 불편했기에 남동생에게 주차를 부탁했습니다. 남동생이 알았다며 가려는데 갑자기 올케가 동생에게 밥을 담으라고 시켰습니다. 잠시 후에 하겠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 첫 일념은 화가 나서 밖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질투심이 강해서 남동생이 저를 돕는 꼴을 못 보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며 예전에 발생한 비슷한 일들로 인해 형성된 관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생각을 돌렸습니다. ‘우연한 일은 없다.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을 닦으라는 것인가? 나에게 질투심이 있는가? 내가 너무 자기중심적인가?’ 찾고 찾다 보니 기억이 났습니다. 법회가 끝날 무렵 저는 더 머물고 싶었지만, 다른 수련생이 급히 돌아가야 했습니다. 저는 수련생을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에 돌아왔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내키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타인을 배려한 것이 아니었으니 이것은 사심이자 자아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30분 동안 계속 울었는데 그 수련생은 계속 제 정이 너무 깊다며 마음을 내려놓으면 아이가 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를 달래서 울지 않게 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며 수련생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고 원망과 쟁투심이 일었습니다. 알고 보니 제 장(場)이 온화하고 자비롭지 못했던 것입니다. 제 마음에서 올케에 대한 화가 사라지자, 저쪽의 올케도 갑자기 태도가 변해 저를 따뜻하게 챙겨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올케라는 ‘거울’을 비춰보며 저 자신의 나쁜 생각과 관념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표현 방식만 다를 뿐이었습니다. 올케의 이런 ‘연기’가 아니었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빨리 자신의 사람 마음을 인식하고 제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가 가장 잘 닦지 못한 부분은 친정 어머니(수련생)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어머니는 대열에서 이탈했던 노수련생이셨는데 제가 수련을 시작한 후 점차 새로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수련 전에는 어머니와 사흘이 멀다 하고 싸웠습니다. 수련 후 많이 고쳤지만 여전히 잘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늘 어머니의 잘못만 들추어낸다고 하셨습니다. “엄마는 이게 틀렸어요, 저건 법에 어긋나요, 엄마는 이런 마음이 있고 저런 집착이 있어요”라고 제가 남의 잘못을 낱낱이 들추어낸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어머니의 문제를 보면 저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수련생에게는 모두 사부님이 계시며 마땅히 자신을 착실하게 수련해야지 밖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안으로 찾다 보니 제가 보았던 어머니의 집착, 즉 당문화(黨文化)가 심하고 말 한마디 듣지 못하는 마음, 수구(修口)하지 않는 것,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자기중심적인 태도와 이기심 등이 저에게도 고스란히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다툰 후 후회스럽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명색이 대법을 수련하는데 왜 아직도 이 모양인가 싶어 괴로웠습니다. 방으로 돌아와 책을 펴고 ‘진수(眞修)’를 암송했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이렇게 괴로운 것은 명리정(名利情-명예, 이익, 정)을 내려놓기 위함이었습니다. 수련자로서 명리정을 내려놓는 것은 큰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저는 지금 좋은 일을 만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좋은 일이었습니다. 순식간에 구름이 걷히고 밝은 하늘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마음이 전혀 괴롭지 않았습니다. 저는 곧장 나가서 어머니께 사과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싸우고 나서 마음이 가라앉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말입니다. 어머니를 대할 때 늘 수련인답게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못했는데 정말 잘 고쳐야겠습니다.

4. 신수련생도 사람을 구해야 한다

사람을 구하는 사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에 자주 감동합니다. 예를 들어 한번은 시댁 식구들에 대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쁜 감정이 생겨 시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시어머니가 나가시자마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수련생 B의 집에 가서 함께 밖으로 나갈 때 저는 일념을 발했습니다. ‘나를 방해하고 내 머릿속에 잡념을 넣어 사람 구하는 일을 못 하게 하는 모든 마(魔)를 전부 멸한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어느 마을에 장터가 선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아이가 잠들었기에 저는 얼른 자료를 가지고 마을로 들어가 배포했습니다. 처음에는 말을 잘 못했지만 마음을 조절하고 정념과 자비심을 더해 계속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한 권을 줄 때마다 한 명에게 설명했고 5명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에 동의했습니다. 자료를 다 돌린 후에는 환희심과 과시심을 닦아버리려 주의했습니다. 차로 돌아오니 겨우 30분이 지났고 아이는 마침 깨어나 저에게 안기려 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와 중생구도에 감동해 온몸이 불광(佛光) 아래 감싸인 듯했고 마음에는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아주 자연스럽게 시어머니께 인사를 건넸고, 신기하게도 이전에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구체적인 이유조차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며칠 동안 계속되던 아이의 기침도 멎어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주말에 수련생 B와 나갔는데, B가 아이를 봐주는 동안 B의 아이 L과 함께 시장에 갔습니다. L은 발정념을 하고 저는 자료를 돌리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마침 가져온 자료 중에 ‘혜성(慧聲)’이 많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지혜로 ‘거지가 부처님을 찾아가다’라는 페이지를 펼쳐 아이들의 주의를 끌었고 여러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부모들이 책을 못 보게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전통문화를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고, 간간이 대법 진상을 곁들여 설명했습니다. 비록 모든 아이에게 삼퇴까지 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대법 진상을 알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습니다.

지난 몇 년간의 수련 속에서 대법과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수많은 진상을 알게 됐고, 중생에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에 반대하며 중생을 구하는 가운데 감내하는 능력과 고생을 참는 능력, 갈등을 처리하는 능력이 대폭 향상됐습니다. 또한 소심하고 인색하며 내성적이던 성격이 온화하고 밝으며 대범하게 변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법이 준 복입니다. 수련 중에 자주 사람의 염두와 신(神)의 염두가 교차하지만,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기에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대법의 용광로 속에서 다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용맹정진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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