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 전, 나는 십여 가지 난치병을 앓고 있었다. 류머티즘과 골증식, 요추전위증과 요추추간판탈출증 등으로 양방·중의 치료를 다 받아봤지만 일시적인 완화에 그쳤고, 사계절 내내 허리와 다리, 각 관절에는 류머티즘 연고를 붙이고 다녔다. 기관지 천식과 알레르기 비염도 있어 유행성 감기에 걸리면 기침이 심해졌고, 때로는 재채기와 콧물이 멈추지 않아 손에는 손수건을 들고 눈물과 콧물을 닦아야 했으며, 입에는 감초정을 물고 있어야 숨을 좀 편하게 쉬었다. 젊은 나이에 온몸에서 약 냄새가 진동하니 남들이 싫어할까 봐 사람 많은 곳에는 잘 가지 않았다. 표재성 위염과 위경련도 있어 음식을 잘못 먹거나 조금만 차가워도 배가 아프고 구토하거나 설사를 했기에, 일 년 내내 조끼를 껴입고 다녔다.
당시 나는 만성 불면증에 시달려 정신이 흐리멍덩한 탓에 외출하다가 문틀에 몇 차례나 부딪치기도 했다. 턱관절염(턱 빠짐)이 심해지면 통증이 극심해 음식을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고, 날씨가 조금만 서늘해지면 목도리를 둘러야 했다. 동성 빈맥과 저혈압에 메니에르병까지 겹쳐 3층만 올라가도 심박수가 1분에 120회에 달했으며, 아직 마흔도 안 된 사람이 마치 늙은 할머니처럼 보였다. 일 년 내내 약을 먹으며 겨우 출근했고, 증상이 심해지면 입원 치료를 받아야만 겨우 완화됐다. 병상이 없을 때는 복도에 임시로 머물며 링거를 맞기도 했다. 그 시절, 끊임없는 병마와 정신적 고통은 나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마저 잃었다고 느끼게 했고, 생활 습관이 정상인과는 점점 멀어졌다. 성격도 점점 난폭해져 누구를 봐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늘 하늘이 내게 불공평하다며 원망하곤 했다.
한번은 크게 앓고 난 뒤 전화위복으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처음 법을 얻었을 때, 한번은 연공 중 귀 옆에서 무언가 아래로 흐르는 느낌이 있어 손으로 만져봤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밥을 먹을 때 턱관절의 통증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또 한번은 포륜(抱輪, 파룬좡파)을 할 때, 허리 부위에서 한 쌍의 큰 손이 밀고 누르는 듯한 감각이 있었고, 나중에 가장 골칫거리였던 요추추간판탈출증과 골증식이 모두 나아진 것을 발견했다. 나는 단지 매일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대법의 요구대로 좋은 사람이 되려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에서부터 내 몸을 정화해주신 것이었다.
집에서 법공부할 때, 나는 여러 번 ‘전법륜(轉法輪)’ 보서(寶書)의 글자들이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각종 난치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저절로 나았고 몸에는 기운이 넘쳤다. 매일 정상적으로 출근하면서 집안일도 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게 됐다. 기쁨과 감사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병 없이 온몸이 가벼운 즐거움은 마치 꿈이 실현된 듯한 행복이었다.
20여 년간 수련하는 동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사악한 박해를 마주할 때나 병업 고비를 겪을 때마다, 나는 늘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 격려 덕분에 그것을 이겨낼 수 있었다. 내가 수련에서 제고하는 한 걸음 한 걸음에는 사부님의 수많은 심혈과, 사심 없는 감내와 베푸심이 담겨 있다. 제자인 나는 사부님께 영원한 감사와 끝없는 존경을 드릴 뿐이다. 법을 얻어 수련한 후, 나는 늘 하늘의 은혜에 감사드리고 위대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어릴 적 우리집은 생활이 비교적 어려웠고, 나는 원래 승부욕이 강한 성격이라 성인이 된 후에도 돈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겼다. 1980년대 결혼 후 우리 부부의 총수입은 100위안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일을 알뜰하게 계획해야만 세 식구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련한 지 1년도 채 안 됐을 때, 나는 아이와 함께 은행에 볼 일이 있어 갔다. 서류를 작성하려고 손을 내밀어 자리를 비우는데, 만기가 된 정기예금 증서 한 장이 내 앞에 나타났다(금액은 몇천 위안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누군가 여기 두고 간 것 같은데 창구에 가져다주자. 찾는 사람이 오면 직원이 돌려줄 테니 그 사람이 안타까워하지 않게 말이야.” 그때는 이 예금증서가 나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을 몰랐다. 다만 사부님께서 좋은 사람이 되라고 알려주신 것만 생각했다. 첫째,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 남의 돈을 공짜로 가져서는 안 된다. 둘째, 예금증서를 창구에 가져다주면 주인이 금방 찾을 수 있다. 당시에는 비실명 예금제라 별다른 신분증 없이 예금증서만 있으면 인출이 가능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는 남의 돈을 꿀꺽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렇게 주저 없이 창구에 건네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명예나 이익 때문에 직접 주인을 찾아 돌려주거나, 최소한 사례를 바라거나 고맙다는 말이라도 들어야 마음이 만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했고, 한때 돈과 명예를 지나치게 중시했던 나를 변화시켜 주었다.
한번은 이웃과 함께 치킨을 사기 위해 줄을 섰는데, 내 차례가 됐을 때 잔돈을 세어보니 1위안도 안 되게 부족했다. 나는 직원에게 말했다. “잔돈은 다음에 드리면 안 될까요? 아니면 잔돈을 한 움큼 거슬러줘야 하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전혀 양보하지 않고 “돈 없으면 먹지 마요!”라고 했다. 순간 체면이 좀 깎인 것 같았지만 생각을 바꿔 ‘나는 지금 수련하는 사람이고 뒤에 줄 선 사람들이 기다리는데’라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100위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다. 퇴근 시간이라 줄이 길었고, 나는 받은 잔돈을 세지도 않고 가방에 넣고 서둘러 창구를 떠났다. 그런데 옆에서 세어 보니 20위안이 더 들어 있었다. 그때 이웃도 닭 한 마리를 사서 나와 함께 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저 사람이 급해하더니 거스름돈을 더 줬네요”라고 말했다. 이웃 언니는 “굳이 돌려줄 필요 없어. 조금 전에 몇 푼 모자랐다고 태도가 쌀쌀맞고 심지어 듣기 싫은 말까지 했잖아. 왜 돌려줘?”라고 했다. (이는 사부님께서 일반인의 입을 빌려 나를 시험하신 것이었다.) 나는 “제가 불편을 끼쳐서 저 사람이 실수한 거예요”라며 창구로 돌아가 그녀가 틈이 나자 얼른 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방금 급해서 거스름돈 잘못 주셨어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발끈해서 말했다. “거스름돈을 잘못 줄 리 없어요. 면전에서 확인 안 했으니 책임 안 져요!” 말투가 아주 거칠었다. 나는 재빨리 20위안을 더 줬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태도가 바뀌며 말했다. “아, 언니는 정말 좋은 분이네요! 요즘 세상에 누가 돈 더 받은 걸 싫어하겠어요?” 나는 말했다. “예전 성격 같았으면 저도 방금 그 듣기 싫은 말에 싸웠을 거예요. 하지만 전 지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에 좋은 사람이 돼야 해요. 남의 이익을 점할 수는 없어요.” 그녀는 돈을 받아 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와, 파룬따파 수련생은 정말 착하네요. 고마워요, 언니!”
수련 초기의 작은 체험을 써내며 자신에게 수련 초심(初心)을 되찾도록 상기시키고, 안일함 등 각종 사람마음을 신속히 버리라고 격려해 본다. 수련은 결코 게을리할 수 없으며 항상 용맹정진해야 한다. 정법 수련이 최후의 최후 단계에 이르렀을 때, 제자는 반드시 수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발정념(發正念)을 많이 하고 정성을 다해 법공부와 법 암기를 하며,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여 집착을 제거하겠다. 사부님과 대법을 보호하고 서약을 실천하며 사명을 완수하겠다. 또한 주어진 모든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여 많은 중생을 구함으로써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다.
원문발표: 2025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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