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내가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린 동안에도 사부님께서는 기다려주셨다

글/ 중국 동북대법제자 환성(喚醒)

[명혜망] 저는 동북 지방의 수련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법을 얻었지만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오랫동안 속세의 명리(명예와 이익)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이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다시 수련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이 무량한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어, 이 글로 대법의 소중함과 사부님의 위대함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1. 어린 나이에 법을 얻다

1996년, 저는 17살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등굣길에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나’라고 부르는데, 각각의 ‘나’를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인생이 펼쳐진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하다가 답을 찾지 못하면 하늘을 한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여름에서 겨울로, 다시 겨울에서 여름이 되는 동안 계속 이 문제를 생각했지만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1998년 여름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저를 깨우셨는데 잠결에 이 한 마디만 들렸습니다. “가자, 연공하러 가야지!” 저는 눈을 비비며 물었습니다. “연공이요? 무슨 연공?” 어머니께서는 “파룬궁이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연공장에 가보니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그곳은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소박하고 친절하면서도 소탈했습니다. 보도원은 밝게 웃으시며 저의 연공 동작을 계속 고쳐주셨는데, 너무나 선하고 인내심이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갔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정말 심오하고, 정말 순정하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드디어 찾았습니다. 저는 곧바로 저의 단짝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이 기쁨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연공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공(靜功)을 수련하기 시작하자마자 가부좌라는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제 다리는 유연하지 못해서 양쪽 다리를 대충 걸쳐놓아도 고통이 심했고, 반가부좌를 해도 10분 만에 발목, 종아리, 무릎, 허벅지, 고관절까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들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결가부좌도 안 했는데도 그렇게 아파?” 저는 “네, 아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귀하게 자라 고생을 해본 적이 없고, 의지가 강하지 못해 가부좌가 두려웠습니다. 반면, 어머니께서는 처음 연공을 시작했을 때부터 결가부좌를 하셨습니다. 고통으로 얼굴에서 땀이 흐르고, 다리가 검푸른색으로 변해도 절대 다리를 풀지 않고 견디셨습니다.

고통이 두렵고 학교 공부도 바빴기에 저는 연공장에 가는 횟수가 적었고, 대법에 대해 항상 감성적인 인식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렸던 저는 명예와 이익, 남녀의 정을 강하게 동경하며 아름다운 앞날을 추구했기에 진정으로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2. 집을 떠나기 전의 당부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는 동안 1999년이 되었습니다. 그해 7월, 악당 우두머리 장쩌민은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7.20때부터 사악한 매체들은 끊임없이 대법에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흑색선전을 했으며, 대법제자의 친척, 친구, 직장, 주민센터 직원들은 수련생의 가정에 큰 압박을 주었습니다.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저는 마음 속 깊이 사부님을 존경하고 대법을 우러러봤으며, 한 점의 망설임이나 의심도 없었습니다. 저는 ‘전법륜’을 읽었기에, 사부님과 대법은 그들이 말하는 것과는 절대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 사부님의 ‘홍음’을 읽었기에, 불법(佛法) 진리를 위해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아깝지 않으며, 절대 사부님을 배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모든 곳에서 삼엄한 감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은 일반 전화로는 대법에 관한 이야기를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는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저는 그 친구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이야기할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을 꺼내려고 했지만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이야기할까 말까 망설이던 순간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홍음-무존). ‘설령 내가 박해로 죽는다고 해도 오늘 진상을 알려주겠다.’ 그래서 저는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둥근 무엇인가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그때부터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또 다른 친구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면서 파룬궁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하다보니 대법이 너무 억울하고 사부님께서 너무 억울하시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2000년, 저는 집을 떠나 타지에 있는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 어머니께서는 저를 걱정하셨고 저도 어머니를 걱정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사악한 환경에서 어머니께서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잘못된 길로 갈까 봐 어머니께 당부했습니다. “엄마, 절대 대법을 배신하면 안 돼요!” 어머니께서는 “절대 그럴 일 없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걱정되어 당부하셨습니다. “앞으로는 법공부와 연공을 독촉할 사람이 없어. 혼자서 법공부를 잘해야 해. 절대 대법에서 멀어지면 안 돼!” 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와 헤어졌습니다.

3. 헛되이 보낸 청춘 시절

대학 입학 초기에 저는 그래도 법공부를 했습니다. 다만 기숙사에는 사람이 많아 연공할 조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도 저를 보살펴주셨습니다. 대법을 생각하거나 설법 녹음을 들으면 종아리가 아팠는데, 그 통증은 가부좌할 때와 똑같았으며, 녹음을 듣지 않으면 통증이 즉시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전화로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때는 휴대전화가 없어서 전화 카드를 사서 매주 길거리 전화 부스에서 어머니와 통화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떠난 후 처음엔 네가 법에서 멀어질까 봐 정말 걱정했어. 그런데 오늘 ‘전법륜’을 펼치다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를 보았단다. 나는 그 큰 나무는 나고, 작은 나무는 너라고 생각했어. 너 법공부를 잘할 거지?” 또 한 번은 어머니께서 기뻐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꿈에서 네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캠퍼스 상공을 날고 있는 모습을 봤어.” 저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서 다시 ‘전법륜’을 소중히 펼쳐들고 읽었습니다.

한번은 전화 부스에서 수련생이 직접 쓴 진상 전단지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한번은 길가의 공터에서 수련생이 스프레이로 쓴 진상 표어를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수련생들을 만나 함께 법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고, 저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속세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며, 명예와 이익, 남녀의 감정을 쫓아갔습니다.

‘천안문 분신 사건’이 발생한 후, 저는 가끔 기숙사에서 파룬궁 박해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룸메이트 친구들에게 ‘전법륜’은 살생하지 말라고 가르치므로 파룬궁 수련생들이 분신했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저는 하나하나 설명해줬습니다. 그때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들이 너무 많아서, 저는 이야기하는 내내 계속 몸이 떨렸고, 체온이 내려가서 이까지 딱딱 쪼았습니다. 30분 정도 이야기하는 동안 계속 그런 상태였습니다.

또 한번은 한 여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은 ○○종교라고 하더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말을 막으려 했지만 너무 떨렸습니다. 결국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대략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같은 돌발 사건인데, 왜 미국 ‘9.11 사건’에서는 화면이 흔들리고 흐릿하며, 사람들 목소리가 엉켜서 뒤죽박죽인데, ‘천안문 분신 사건’의 화면은 그렇게 깨끗하고 선명할까요? 게다가 원거리샷, 근거리샷, 클로즈업까지 카메라 샷이 다양해서 마치 전문가가 촬영한 것처럼 보일까요?” 교수님은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고, 학생들도 긴장하며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때는 마치 공기가 굳어버리고 시간도 멈춘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은 잠시 멈칫했다가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함부로 말하지 않겠어요.”

대학 시절 저는 대법을 위해 말을 한 적이 몇 번 되지 않았는데, 이는 그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시간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데 쏟고, 아르바이트에 쏟았으며, 모든 면에서 속인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방학에 집에 돌아갔을 때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법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어머니와 함께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 스티커도 붙였습니다. 그때는 대법제자로 돌아갔다가 어머니의 시야를 벗어나면 다시 속인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수련에 확고하지 못해 한 손으로는 인간의 삶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신을 붙잡은 채, 좋은 시절을 모두 헛되이 보냈습니다.

4. 어머니의 부름

2004년부터 직장 생활하면서 저는 더 바빠졌고, 어머니를 찾아가 법공부할 기회도 더 줄어들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제가 걱정되어 늘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늘 네가 걱정되지만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 위안하곤 해. 그리고 걱정 대신 네가 법을 얻은 것을 축복해주고 있어. 요즘 법공부를 했니? 법공부를 꼭 해야 해! 마음속에 법이 있어야 해!” 이처럼 어머니께서는 오랜 세월 지속적으로 저에게 법공부를 권유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기뻐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발정념을 했는데, 네 공간장에 먼지가 정말 두텁게 쌓여 있더구나. 내가 발정념을 한 후에는 아주 깨끗해졌어.” 어떤 때는 또 매우 걱정하시며 몇 번이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 내가 꿈을 꾸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징과 북을 치며 붉은 용과 봉황이 새겨진 가마를 메고 너를 데리러 왔단다. 가마가 정말 아름다웠고 사람들은 축제를 치르는 것처럼 기뻐했단다. 그건 네 세계의 중생이 네가 법을 얻은 것을 알고 모두 경축하고, 네가 돌아갈 때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 지금 법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돼!” 어머니께서는 또 집에서 법공부를 시작하실 때, 가금 먼저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비록 천 리 밖에 떨어져 있지만 어머니께서는 제가 수련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한 번 독촉하면 며칠 법공부를 하고, 그 다음엔 다시 돈을 벌고, 승진하고, 연애하고, 쇼핑과 모임을 하느라 바빴으며, 마음에는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찼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급하여 휴가를 내고 집에 오라고 하셨고, 사부님께서는 더욱 조급하시여 꿈에서 저에게 시간이 많지 않으니 빨리 집에 돌아가라고 권하셨습니다! 저는 자주 짐을 가득 들고 기차나 지하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달려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매 번 차 문이 닫히기 직전에 짐을 다 챙기지 못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가려다가 깨어나곤 했습니다.

저는 반드시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가야만 대법과의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설날, 연차, 5.1 노동절, 10.1 국경절에 출장이 없으면 바로 표를 사서 집에 돌아갔습니다. 신기하게도 명절 때 기차표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여서, 많은 사람들이 비싼 특석이나 암표, 입석표를 사야 했지만, 저는 매번 쉽게 침대차 티켓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집에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가장 최근의 ‘명혜주간’ 등 대법 간행물을 저에게 보여주셨고, 저는 수련생들이 온갖 고문을 겪으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또 진상 자료와 스티커를 저에게 주시며 배포하게 하셨습니다. 자료를 배포하러 갈 때마다 저는 고향 수련생들이 정말 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습니다. 거의 모든 전봇대에 다양한 내용의 진상 표어가 붙어 있었고, 찢어버리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표어들은 바람과 햇볕에 색이 바라고 얼룩졌지만, 글자는 여전히 잘 보였습니다. 아파트 단지들에는 주기적으로 새로운 진상 소책자가 배포되고 있었습니다. 고향 수련생들이 얼마나 많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게 되니 저는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생각됐습니다.

나중에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보고 나니 중공의 죄악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모두 실명으로 탈퇴했는데, 저도 며칠을 고민한 끝에 실명으로 삼퇴했습니다. 이 일을 안 경찰은 아버지의 직장에 찾아가 아버지를 위협했습니다. 경찰들은 당시 여러 대의 경찰차를 출동시켜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었으며, 부모님은 그 후에도 몇 년 동안 수시로 괴롭힘을 당하셨습니다. 2007년, 경찰은 또 저에게 연락해 면담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파출소에 들어설 때 마음이 매우 평온했습니다. 저는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대법을 수련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담담하게 경찰에게 ‘삼퇴’의 원인과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도움 덕분에 이 사건은 거기서 마무리되었고, 저는 안전하게 다시 회사에 복귀했습니다.

5.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

그 몇 년 동안 저는 마치 두 얼굴을 가진 사람 같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대법을 위해 목소리를 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익과 욕망에 매몰됐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계속 저를 보살펴주셨고, 제가 부당한 재물을 취하지 않도록 하고, 최대한 선을 지키게 하셨으며, 그렇지 않으면 즉시 응보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업무를 볼 때 차라리 제 돈을 쓰더라도 회사 돈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저는 업무를 잘 해 나갔고 상사는 저를 신뢰했으며,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괴롭혔던 위장 통증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몇 번 염하자 완전히 뿌리가 뽑혀, 그 후 10여 년 동안 약 한 알 먹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차에 치일 뻔했는데 차가 바로 제 앞에서 멈춰 서서 큰 고비를 넘겼습니다.

나중에 저는 연애하다가 실연한 후 오랫동안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느날 제가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자, 그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에너지가 흐르더니 고통스러운 느낌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일어섰을 때 저는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단 몇 분 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저의 수련 상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최악의 경우 법공부는 한 달에 한 번, 연공은 두 달에 한 번만 했습니다. 저는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할 수조차 없었고, 완전히 속인이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저를 위해 끊임없이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수차례 꿈속에서 과거 여러 생의 단편들을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와 제자들이 산 넘고 물 건너 서천으로 경을 가지러 가는 모습, 천국세계의 장엄한 모습도 보았습니다. 꿈속에서 집으로 가는 열차는 늘 떠나기 직전이었고, 저는 매번 급하게 쫓아갔지만, 손에 든 크고 작은 짐들 때문에 달려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차 문 앞에 다다르는 순간 잠에서 깼습니다.

꿈속에서 사부님께서는 또 설법을 하고 계셨고 자비로운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시며 “자리에 앉아서 법을 들어라”는 신호를 보내셨습니다. 매번 꿈에서 깨어난 후 제 마음은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고, 죄책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꿈속에서 엄하게 경고하시기도 했습니다. 연화좌에 앉아 공중에 떠 있는 사부님의 법신께서는 저를 내려다보며 한참 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어딘가로 날아가셨습니다. 책망이나 꾸짖음도 없었고, 표정도 자비롭고 온화하셨지만, 저는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과 경외감을 느끼면서 사부님을 감히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소녀 시절부터 서른 살이 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제가 아무리 못나게 행동해도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일깨워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세속을 쫓던 저의 마음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돈을 탐할 때면 자책했고, 사치스러운 향락을 누릴 때면 불안함을 느끼면서,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도 모르게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발적으로 ‘전법륜’을 집어들기 시작했고, 가끔 현수막을 만들거나 진상 표어를 썼으며, 가끔 출장 갈 때도 진상 편지를 휴대했습니다. 저는 제 행동을 반성하며 생각했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 얼마나 많은 수련생들이 오직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고 집을 떠나고 생명까지 바쳤는가!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났지만 목적은 영화부귀를 위해서였다. 나는 더 이상 일시적인 향락을 위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이 심성의 격차는 얼마나 큰가!’

6. 진정한 수련의 대열에 서다

2011년부터 저는 진정으로 수련하려고 법공부와 연공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체 법공부를 하는 곳과 수련생들이 있는 환경을 찾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2013년 저는 결혼했고, 남편은 직장을 옮기려고 했습니다. 그는 해외나 대도시의 대기업 취직해 돈을 많이 벌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사부님, 어디든 좋으니, 단체 법공부를 할 수 있고, 대법을 실증할 기회가 많은 곳으로 남편이 일자리를 찾게 해 주세요!”

그해 6월, 저는 임신하자 일찌감치 직장을 그만두고 당분간 친정에 머물면서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도 걱정하며 한 마디 하셨습니다. “앞으로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을 텐데 잘 생각해 봤니? 대부분 너처럼 하지 않을 텐데 신중하게 생각해봐.” 하지만 저는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고 출산 직전에 직장을 그만두면 9만 위안(약 1800만 원)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도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수련을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저는 그토록 좋은 수련 환경을 떠나 명리를 쫓았지만, 이제는 직장과 명리를 내려놓고 좋은 수련 환경을 찾을 때가 된 것 같았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친정집으로 떠날 때 제 마음은 정말 가벼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제 마음은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기차에 오르기 전에 저는 대합실에서 바닥에 앉아 급하게 ‘전법륜’을 꺼내들고 갈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읽어 내려갔습니다. 오가는 역무원, 승객, 보안 요원, 경찰들이 제 곁을 지나가며 저를 호기심으로 쳐다봤지만,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조용히 책을 읽었고, 완전히 법속에 몰입되어 마치 세속의 온갖 시끄러운 일들이 저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저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매일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으며, 자료와 진상 스티커를 만들고, 대면으로 진상을 알리면서 충실하고 의미 있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저는 또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보기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에는 깨닫지 못했던 많은 법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그동안 굽은 길을 걸었으니, 앞으로는 고속도로를 달려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좀 두려웠습니다. 속세에 너무 많이 빠져 있어서,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지 못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또 저에게 일깨움을 주셨습니다. ‘사부는 오염된 금도 순금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사부님의 격려는 저에게 계속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셨고, 저는 감사함 속에서 정진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참 아찔했다, 수련 기회를 놓칠 뻔했으니! 다행히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나를 벼랑 끝에서 구해주셨구나.’ 그 후 사부님께서는 제가 이미 진정한 수련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기뻐서 어머니를 껴안고 그동안 저를 포기하지 않고 깨우쳐주신 어머니께 진심으로 감사드렸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나에게 고마워하지 말고 사부님께 감사해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감격하며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이 제자가 너무 늦게 깨달아서 그동안 걱정을 많이 끼쳤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웃다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잘 됐어! 그때 네가 집을 떠날 때, 내가 너를 그 작은 나무라고 했잖니? 그 작은 나무가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걸 보고, 난 네가 반드시 다시 수련할 거라고 믿었어!”

7. 맺음말

지난날을 돌아보며 저는 후회에 목 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아마 ‘후회’라는 말로는 제 마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2014년, 35살이 된 저는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힘들게 가정 관을 넘으면서 마침내 후회의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그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고 통곡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과거의 저에게 돌아가서 “제발 깨어나라! 이렇게 좋은 대법을 수련하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좋겠다고 한탄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이미 흘러갔습니다. 과거의 저를 일깨워줄 기회가 없으니 오직 이 말로 오늘의 저를 채찍질할 뿐입니다.

법을 얻은 해에 저는 19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세상 물정을 몰랐기에 그동안 많은 유감과 후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올해 저는 46살이고, 열두 살 아이의 엄마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마치 우둔하여 걸음마를 늦게 시작한 아이 같았습니다. 사부님께서 한결같이 저의 손을 잡아주시고, 어린 시절의 방황, 청춘 시절의 명리에 대한 동경, 혼인의 시련, 강렬한 정욕, 진상을 모르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수련 방해 등 어려운 상황에서 한 걸음씩 되돌아오고 조금씩 성숙하게 도와주셨습니다. 덕분에 수련 환경도 갈수록 좋아졌고, 사부님의 보호 아래 다시 법연(法緣)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저는 나중에 원래 직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지금 저는 안정된 직장, 건강한 몸, 화목한 가정, 시어머니와의 좋은 관계, 다정한 남편, 착한 아이를 가졌고, 친정 부모님과 함께 비교적 안정적으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부님께 세 가지 소원을 더 빌고 싶습니다. 첫째,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힘을 중생구도에 사용하여 저의 신성한 사명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둘째, 저에게 난을 조성하여 저의 수련을 돕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더욱 선하게 대하고, 더 높은 수준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입니다. 셋째, 어린 제자를 잘 이끌고, 제가 모범을 보이며,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친정어머니께서 저에게 그러셨듯이 말입니다.

사부님의 은혜는 잊을 수 없습니다! 제22회 명혜망 중국법회에 임하여, 저의 지난 세월의 교훈, 수많은 유감과 죄책감, 길을 잃었다가 되돌아온 기쁨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 특히 그 시절의 어린이 제자와 그들의 자녀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젊은 수련생들에게 교훈이 되고, 길을 잃은 생명들이 수련의 길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허스(合十).

사부님의 말씀을 들으세요

젊은 수련생들이여
만약 당신도 나처럼 대법 속에서 성장했다면
만약 당신도 한때 성스러운 연꽃에 비유되었다면
만약 당신도 부모님의 간절한 부름을 들었다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그 한마디 한마디를 들었다면
부디 나의 전철을 밟지 마세요
나중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하고
지나간 모든 일에 후회와 두려움을 느끼게 될테니까요

젊은 그대들이여
혹시 속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나요
혹시 환상 속에 빠져 진위를 분별하지 못하나요
혹시 타향에서 그림의 떡을 탐하며
명리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나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대법으로 돌아오세요
사부님께서는 줄곧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말이에요

찰나에 지나가는 청춘 시절에
누구든 답해주지 않은 의문이 있을 때
‘전법륜’을 펴서 불법(佛法) 이치를 알게 된다면
인생은 헛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더욱 아름다운 삶이 펼쳐질 거예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대법으로 돌아오세요
사부님께서 정법이 끝나는 시간을 거듭 미루셨고
매일 거대한 고통을 감당하십니다
시간은 이미 사부님의 머리를 하얗게 물들였는데
이 노고와 염려를 중생은 알고 있을까요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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