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수련의 길로 들어서다

글/ 한국 화인 수련생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수련을 시작한 지 2년 남짓한 신수련생입니다. 사실 저는 1999년 이전에 부모님을 따라 법을 얻었지만 박해가 시작되면서 법을 놓고 완전히 속인 사회에 물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대법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확고했고, 꿈속에서도 위험에 봉착하기만 하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외웠습니다. 어떤 땐 꿈속에서 대법 서적을 감추고 부모님을 보호해 주며 사악들과 맞서기도 했습니다. 저는 또 병원에 근무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병을 치료하러 오는 친척, 친구, 병원 동료들에게도 삼퇴하게 하고 진상 자료를 나눠주곤 했습니다. 이렇게 평온한 삶을 살던 저에게 인생의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1. 인생의 전환점

저는 22년 동안 병원에서 약사 일에 종사했습니다. ‘직업약사자격증’까지 있는 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그동안 편안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줄곧 일자리가 안정되지 않았고 이것저것 해보았지만 모두 돈만 날리고 말았습니다. 2019년에 친구의 소개로 식당을 경영했는데 잘 안되는 데다 전염병까지 터지면서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더는 일어설 방법이 없는 우리는 집까지 다 팔고, 저는 눈물을 머금으며 22년간 근무한 직장을 떠나 타향인 한국행 길에 올랐습니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평생 해보지도 못했던 일들, 이 모든 게 저에게는 너무나 생소했습니다. 흰 가운을 입었던 제가 먼지 뒤집힌 작업복을 입는 순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저 자신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저는 안경 뒤로 마스크 낀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어 가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갔습니다.

죽을 만큼 힘든 저에게도 한 가닥 꺼지지 않는 불빛이 있었는데 바로 저의 버팀목이 되어준 파룬따파(파룬궁)였습니다. 저는 일하면서도 사부님께서 쓰신 ‘홍음-마음고생’에서의 한마디 말씀인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를 늘 외웠습니다. 또한 법공부를 전혀 못 했던지라 어머니 수련생이 늘 하시던 말씀만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사람이 아무 병도 없고 재난도 없다면 백 년 뒤에 꼭 지옥에 간단다. 사람은 고생하려고 태어났거늘 자기가 생생세세에 쌓은 업 때문에 병이 생기고 난이 오는 거란다. 그러니 그 업을 꼭 갚아야 해. 이것을 다 좋은 일로 생각하거라.” 저는 자신을 위안하며 차츰 일상에 적응되어 갔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저는 회사에서 중국 동포들을 보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하게 했으며 한국에 올 때 가져온 호신부(護身符)도 나눠주었습니다.

2. 우주 대법을 다시 얻다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던 그때쯤 어느 날 갑자기 팔다리가 가려워졌습니다. 작은 뾰루지가 많이 나면서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진물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습진이 도진 것이었습니다. 몇 년 전 완고한 습진으로 엄청나게 고생한 적이 있는지라 겁이 덜컥 났습니다. 병원 몇 곳을 돌아다녀도 별로 효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수련의 길이 얼마나 간고하고 쉽지 않은지를 잘 알고 있는지라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 언니 수련생이 갈팡질팡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과 신심을 주었습니다. 마침 그때 남편의 한마디가 저를 방황 속에서 헤쳐 나오게 했습니다. “수련하겠으면 제대로 하고 안 하겠으면 그만두든지, 병원에도 안 가고 수련도 제대로 안 하고 도대체 어쩌려고?”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남편의 입을 빌려 저를 일깨워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법공부를 하면서 법리로 자신을 깨우쳐갔습니다.

곤란에 봉착하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면 언니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념을 바로잡고 수련하는 법을 배워나갔습니다. 또한 새벽 연공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일어나기 힘들 때면 마음 속으로 발정념 구결을 외치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피부 상처가 어느 순간 점점 마르면서 좋아지고 있을 때 또 왼쪽 손등이 가려워지더니 똑같은 습진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보기 흉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10여 년 전 두 손등이 모두 이렇게 습진으로 고생했는데, 사부님께서 이번에 전부 청리(淸理)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물집을 하나하나 손으로 터뜨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내게 업이 많아 사부님께서 소업하게 해 주시는구나. 이건 좋은 일이야. 이 나쁜 진물아 얼른 빠져나가거라.’

제 생각이 옳았는지 이튿날부터 진물이 적어지고 상처가 아물어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 상처가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며 놀라워했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려는 저의 마음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수련을 시작하면서 예전에 고생했던 오랜 불면증, 비염, 인후염, 위축성 위염, 경추병 등 고질병들이 점점 나아졌습니다.

3. 아버지에 대한 정을 내려놓다

2023년 2월 저는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급히 귀국했지만 아버지는 마음 아프게 떠나보낸 이 딸의 얼굴조차도 알아볼 수 없으셨습니다. ‘효도 한번 제대로 못 해 드리고 이 딸이 잘사는 모습도 못 보여드렸는데 이렇게 떠나시다니?’ 저는 마음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귀에 대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아홉 글자를 잊지 마시라고 거듭 속삭였습니다. 한없이 비통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저의 일상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되어 저는 습진이 도지면서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내가 다시 대법에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셨는데 지금 내가 대법제자가 된 걸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 저는 늘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머리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윗몸 전체를 아예 일으킬 수 없어서 겨우 몸을 옆으로 돌리고 팔을 짚으며 이를 악물고 일어났습니다. 예전에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아버지가 사악의 박해로 경추 부분을 다치면서 오랫동안 목을 맘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주무실 때도 계속 반듯하게 누웠으며 한참을 움직여야 겨우 일어나곤 하셨습니다. 지금 저의 상황이 그때 아버지의 상태와 똑같았습니다. 어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저보고 말씀하셨습니다. “수련인은 그런 정에 휩싸여선 절대 안 된다. 당장 아버지에 대한 정을 다 내려놓아라.” 저는 그제야 제 생각이 잘못된 걸 알고 정념으로 물리쳤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어나기가 많이 편해졌고, 저녁에 퇴근하고 또 발정념했더니 다음날은 깨끗이 나았습니다. 대법의 신비함을 또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4.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다

30여 년을 알고 지낸 친한 언니가 인천에 있습니다. 삼퇴를 예전에 했지만, 대법을 별로 인정하지 않고 중공(중국공산당)에 대한 진실도 그다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 때문에 대법을 더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몇 년 전, 중국에서 우담바라꽃도 직접 본 그 언니가 대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게 무척 안타까워서 저는 진상 편지를 쓰기로 맘먹었습니다. 진상 편지를 쓰는 3일 동안 내내 저의 귓가에서 대법 음악이 아주 똑똑하게 들려왔는데, 마치 사부님의 격려와 다른 공간 중생들의 기쁨에 찬 환호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악의 교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인천으로 남편이 운전하고 떠났으나 내비게이션이 계속 길을 이상하게 안내했습니다. 남편은 30년 운전 경력도 있고 한두 번 가본 길도 아니며 내비게이션을 볼 줄 모르는 건 더욱 아니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한 시간을 헤매다가 내비게이션의 안내대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튿날 저는 지하철이라도 타고 가려고 나섰지만,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빠개지듯 아팠습니다. 남편이 걱정하며 또다시 운전하고 떠났습니다. 이번엔 별 이상은 없었지만, 저의 몸에 대한 교란은 심했습니다. 계속 발정념을 했으나 정념이 부족해서인지 별 효험이 없었고, 결국 편지는 전했지만 진상 효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우리 대법제자의 수련 상태가 중생구도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말이 되면 저는 중국인들이 많은 시장 거리에서 신문 배포를 하면서 가끔 대법 진상도 알리고 그들을 삼퇴하게 하곤 합니다. 순조로울 때도 있고 별의별 이상한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며칠 전 혼자 신문 배포를 하는 중에 한 중국 남성이 홍삼 상자를 들고 다가오더니 제게 공짜로 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공짜는 가지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남성의 얼굴이 확 변하더니 “파룬궁은 X교다. 넌 중국 사람인데 왜 공산당을 반대하냐? 나도 공산당원이다”라고 소리치며 다짜고짜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국 법률에 파룬궁이 X교라고 규정한 게 없어요. 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지 마세요. 우리는 중국과 중공을 따로 보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좋게 설명해도 그는 막무가내로 대법을 모함하면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고,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문득 언니 수련생의 말이 떠올라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우주의 대법입니다. 당신도 이 우주의 한 사람으로서 대법을 모함하지 마세요. 당신한테 안 좋아요.” 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금방까지 날뛰던 남성이 갑자기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됐어요, 됐어. 관둡시다. 말하지 맙시다”라고 목소리를 낮추며 돌아서서 가버렸습니다.

저는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해졌습니다. 저는 속으로 ‘사부님 감사합니다’를 거듭 되뇌었습니다.

5. 가정 수련 환경에서 심성을 제고하다

제 남편은 시종 대법을 완전히 믿진 않습니다. 더구나 부모님이 수련하면서 아버지가 박해를 자주 당하다 보니 마음고생도 많이 했고 이런저런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남편 역시 대법의 혜택을 적잖게 보았습니다. 전염병이 심할 때 함께 일하는 동료가 감염으로 3일 동안 매일 교체되었지만, 남편은 한 번도 감염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계속 높던 간 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고 오랫동안 나던 입 냄새도 없어졌습니다. 차를 구매했을 때도 저는 생각 못 했는데, 남편이 스스로 연꽃 호신부를 가져다 차에 걸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가 갓 수련을 시작하자 반대도 했지만 제 몸이 좋아진 데다 날마다 활기차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번 9월 21일 ‘제주도 행사’는 한사코 반대했습니다. 저는 매우 가고 싶었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점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한 수련생과 교류하다가 그 언니 수련생이 말했습니다. “남편은 보통 사람이니 많이 이해해 주고, 절대 원망하면 안 돼. 모두 자기 자신을 찾아봐야 해. 안으로 잘 찾아봐.” 그날 저녁 ‘휴스턴법회 설법’을 보는데 마침 다음 문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자: 남편은 제가 연공하는 것을 단식하며 반대합니다.

사부: 이 일은 내 생각에 실제상 당신이 어떻게 대하는지에 달렸다. 무릇 가족들의 교란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첫째, 확고하게 수련하는지 보고, 둘째는 수련자의 心性(씬씽)이 어떠한지 보며, 셋째는 친인들이 소업을 도와주고 있다.”

저는 여러 번 반복하여 읽으면서 안으로 열심히 찾았습니다. 저에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 세 가지가 다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꼭 가겠다는 확고한 마음이 없었고 나중엔 남들이 간다기에 대법 행사보다 ‘제주도 구경이나 해볼까’란 사심이 앞섰고 그 뒤엔 또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 안일심, 원망심, 질투심, 별의별 집착들이 다 드러났습니다. 저는 하나하나씩 끄집어내어 바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차츰 남편에 대한 원망이 점점 적어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며 여러 가지 집착심이 제거되는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 일에 반전이 생겼습니다. 토요일 저녁 단체 법공부를 마치고 나서 협조인이 이튿날 행사에 관하여 얘기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처음으로 이렇게 크게 하는 퍼레이드입니다. 이전엔 한 번도 있은 적이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이전에 한 번도 없었는데 앞으로 더는 없을 수도 있잖아. 꼭 가야 한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집에 오면서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갈 거야. 남편과 상의도 안 하고 통보만 할 거야.’ 그러면서 사부님께 청을 드렸습니다. ‘사부님 꼭 가게 해주세요. 이 제자도 중생구도에 꼭 참여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신기하게도 이번엔 아무런 잡념 없이 오직 대법 행사에 참여하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집에 오자마자 저는 남편에게 “내일 제주도 꼭 갈 거예요. 대만에서도 베트남에서도 오고, 남들도 다 가는데 왜 나만 못 가요? 평소에 아무리 뛰어다닌들 이럴 때도 나서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태도가 단호해지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저는 급히 다른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항공권을 구매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저를 만난 수련생 언니들은 너무 잘됐다며 저보다도 더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는 제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그늘이 져 있었습니다. ‘내가 더 잘하면 돼.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아무 문제 없어. 난 우주에서 가장 바른 일을 하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저는 저 자신을 위로했습니다. 오후에 퍼레이드가 끝나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행사는 잘 끝났어?”라며 어머니가 밝은 목소리로 물으셨습니다. “네, 잘 끝났어요.” 저는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더구나 밤에 두 시간도 자지 못해서 머리가 온종일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기뻐하며 이런 얘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너 이번에 참 잘했어. 진짜 큰 위덕을 쌓았어. 그리고 네가 잘했기에 사위도 큰 죄를 면했다.” 이어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점심에 발정념하기 전, 먼저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네 모습이 환하게 떠오르더라. 그런데 머리 위에 예쁜 꽃들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고 알록달록한 고무풍선들이 둥둥 떠 있었어. 얼마나 생동하고 환하던지. 네가 번듯하게 앉아 있더라. 오후에 또 앉아 있는데 이번엔 네 이마 중간에 깊은 터널 같은 게 나팔꽃처럼 길게 나와 있더구나. 깊숙하고 끝이 안 보였어. 너 이번에 심성 제고를 참 잘했어.”

어머니 말씀을 듣고 나니 왠지 멍해졌습니다. 마음이 매우 평온했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처음부터 저를 쉽게 가게 했더라면 아마 제가 이렇게 심성 제고를 할 수 없었겠죠. 정말로 남편이 저를 소업하게 해주고 저의 심성을 제고시켜 주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제가 한국에 나오게 된 것도, 여태까지 일어난 일들도 모두 남편이 저의 수련을 도우러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저의 마음을 적시면서 앞으로 정말 잘해야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바르게 하니까 남편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정말로 사부님 말씀처럼 수련에는 우연한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6. 수련의 길에서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수련을 시작하고부터 사부님께서는 저의 몸에서 많은 신기한 일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큰 파룬, 작은 파룬이 도는 것을 직접 느꼈고, 천목이 열렸다고 느낀 날엔 사부님께서 꿈속에서 환하게 웃으시며 제게 다가오기도 하셨습니다. 방황하는 저에게 격려를 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한번은 열 손가락 끝이 전부 껍질이 벗겨졌는데 제가 ‘환골탈태’를 떠올리는 순간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련을 시작해서 2년 동안 시험 치는 꿈만 해도 세 번 꾸었지만 모두 제대로 끝까지 시험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척 후회되고 자신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많은 난을 물리치며 연장하신 시간인데, 이 제자는 아직도 수련의 길에서 정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이미 저만치 멀리 갔는데 뛰어도 모자랄 판에 아직도 뭐가 아쉽다고 이렇게 여러 집착심을 놓지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저는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회사와 일상생활에서 곤란에 부딪치거나 심성 시험이 있을 때면 교류 문장에서의 ‘이것이 바로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아닌가?’라는 말을 떠올리며 심성 제고를 중시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과시심, 남을 좌우지하려는 마음, 원망과 이익의 마음, 질투심 등 집착심을 하나하나 내려놓았습니다.

직장 동료들이 일 잘한다고 칭찬할 때, 수련생 언니들이 정진한다고 격려해 줄 때면 저는 즉시 제 마음가짐을 바르게 했습니다.

법에 다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사부님의 새 경문 ‘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가 발표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초 당신이 걸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미 생명으로 서약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지나간 시일이 짧든 길든, 서약은 엄숙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수련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 대법을 떠난 것이 초기이든 최근이든, 수련하든 수련하지 않든, 모두 서약을 실현해야 한다.”

사부님의 말씀 마디마디가 저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저는 계속 허송세월하면서 지옥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 죄를 앞으로 어떻게 갚겠습니까. 사부님께선 제자 한 명이라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자비를 베푸시어 정법이 거의 끝나가는 이때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비록 제대로 수련한 시간이 짧지만 저는 30년이란 시간을 대법과 함께 걸어 왔습니다. 홍법도 하고 중생구도도 하면서 한시도 대법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죄 많은 이 생명을 지옥에서 끌어내주시고 몸을 정화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수련을 잘하지 못하여 대법에 먹칠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대법을 더욱 부정하고 우리가 말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십니까? 만약 제게 대법이 없었다면 저는 이미 우울증에 걸렸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고 혹은 우리 가정이 풍비박산됐을 수도 있다는 것을요. 만약 오늘날 제가 대법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저는 갖가지 질병과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면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 정신적 압력은 또 얼마나 심할까요?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겨우 지탱하여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은 항상 웃는 얼굴과 활기찬 모습으로 씩씩하게 다니는 저를 의아하게 쳐다보곤 합니다. 그들은 마치 마음속으로 ‘저 여자는 그 좋은 직장을 버리고 나와서 힘들게 돈 벌어 다 남에게 주면서 뭐가 좋다고 맨날 저렇게 웃고 다니지?’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어찌 알 수 있을까요? 오직 사부님의 바다 같은 은혜와 우주 대법의 무궁무진한 힘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어머니도 한국에 나오셔서 저와 같이 대법 수련에 정진하고 계십니다. 요즘처럼 취직하기 힘든 시기에 제 아들은 큰 도시에서 마음에 드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더욱 기쁜 건 아들이 출장으로 한국에 자주 나올 수 있어서 가끔씩 아들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은혜와 대법의 혜택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는 더욱더 열심히 노력하여 사부님과 함께 꼭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풍파를 겪었고 얼마나 많은 감회가 있었을까요? 하지만 제가 가장 잘한 일은 또다시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입니다. 저처럼 한때 법에 들어왔다가 지금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분들은 부디 수련의 길로 돌아오세요! 여러분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10시간씩 근무해야 하는 저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바로 명혜 라디오의 교류 문장이었습니다. 비록 수련을 잘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용기 내어 이 글을 썼습니다. 저를 격려해 주고 도움 주신 여러 수련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많은 지적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5년 한국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7/5029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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