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법을 배운 젊은 여성 대법제자이며, 지금은 결혼해 아이도 낳았습니다. 오늘은 제가 법률 방식을 활용해 박해에 맞서 어머니를 구한 일을 사부님께 보고 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그 과정에서의 수련심득을 나누려 합니다.
첫 번째 부분에서 몇 년 전 수련 중의 몇 가지 단편을 나누려 합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질서 있게 안배하신 수련의 길이었고, 제가 훗날 어머니를 구출하는 길에 든든한 수련의 기초를 다져주었기 때문입니다.
1. 고생을 참고 정진하며 무조건 자신을 찾다
1) 혼사로 인한 갈등, 안으로 자신을 찾다
어머니는 제가 어릴 때부터 제 수련을 중시하셨고, 제게 큰 기대를 품으셨습니다. 어머니는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신 후, 제 수련이 예상보다 못하다고 느끼셨습니다. 하지만 예비 시어머니 역시 수련인이셨는데, 제 어머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고 아이들도 컸으니 이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저희 결혼 날짜를 잡으셨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 어머니는 극력 반대하셨는데, 조금 더 늦게 결혼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저는 중간에 끼어 매우 억압된 심정으로 결혼했습니다. 게다가 신혼집 인테리어 냄새가 심해 우리는 시댁에 살게 됐습니다.
결혼 후 제 마음은 매우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약혼할 때부터 이미 ‘전법륜(轉法輪)’을 외우기 시작했기에 결혼 후에도 여전히 매일 법 암기를 견지했고, 덕분에 그 쓰라리고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저와 남편은 새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밥을 해야 했고, 어머니가 주는 압박과 시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남편이 일하지 않는 상황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게 수련했습니다. 어느 날 퇴근 후 모든 감정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 차 안에 앉아 울었습니다. 그 기간에 법을 외우는 상태가 비교적 좋았기에 울면서 사부님께 계속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울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제자는 절대 밖을 보지 않겠습니다. 단지 현 단계에서 제 도량이 부족함을 인정할 뿐이며, 분명 제게 문제가 있기에 빨리 제고해 올라오겠습니다.”
그때 이후로 안으로 찾는 습관이 제 마음속에 더욱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언제든, 무슨 일이든 오직 자신만 찾고 밖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2) 수련은 고생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전 남편이 가게를 하나 인수했습니다. 아이가 생후 3개월일 때, 저는 남편의 휴대폰에서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제가 추궁하자 그는 저 몰래 어떤 여자에게 속아 20만 위안을 사기당했고, 결혼 전 사업을 하다가 10만 위안의 빚을 져 신용카드에 총 30만 위안(약 6천만 원)의 빚이 있음을 시인했습니다.
저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고 월급이 매우 적어 평생 모아야 그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소 꾸준히 안으로 찾은 덕분에 순식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부부는 함께 고난을 겪는 법이고, 결혼 후에 생긴 일이니 이건 내가 넘어야 할 고비예요. 나는 수련인이니 당신과 함께 감당할 겁니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는데, 지금은 내가 냉정하고, 대부분 냉정함을 유지하겠지만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내 마음도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어요. 원망하거나 잔소리할 때가 있더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내가 서서히 반드시 닦아낼게요.”
저는 남편에게 양가 부모님을 집으로 부르라고 했고, 그분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 빚은 당장 갚을 수 없고 숨겨서도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께 돈 한 푼도 요구하지 않겠으니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 주세요. 앞으로 몇 년간 우리는 좀 힘들 겁니다. 그러니 명절에 자식들이 예의나 효도가 부족하더라도 탓하지 말아주세요.”
가게를 연 후 처음에는 제가 집에서 아이를 돌봤습니다. 때로는 대법서적을 보다가 이익에 대한 마음이 갑자기 치솟아 책을 더는 볼 수 없게 됐고, 1초도 못 기다리고 당장이라도 자는 남편을 끌어내 호통치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면 계속 걸어서 빙빙 돌며 마음을 다독였고, 서서히 차분해진 뒤 다시 법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젖을 떼고 가게에 나가 도왔는데 외상값을 갚지 않고 계속 외상만 하는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외상을 주지 말라고, 외상값이 쌓이면 그 사람이 더 갚기 어려워진다고 권했습니다. 남편이 듣지 않자 저는 ‘내 자신을 수련해야지, 강제로 남의 생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외상값을 갚지 않은 남자가 또 와서 외상으로 먹었습니다. 저는 몹시 불만스러워 남편에게 거절하라고 권했지만 남편은 듣지 않았습니다. 순간 저는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고 분노와 불만이 치밀어 올랐습니다. ‘말해도 듣지 않으니 더는 상관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는 ‘휙’ 하고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남편 혼자 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시계를 보니 마침 수련생들이 저녁 법공부를 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은 이 시간에 다들 집에서 법공부를 하는데 나는 여기서 화를 내고 있다니, 너무나 수련인답지 못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차분해졌고 다시 가게로 돌아가 남편에게 사과했습니다.
평소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날마다 갈고닦으며 도량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그 몇 년간 저는 매년 한 번씩 큰 이익의 관을 넘었습니다. 때로는 빚이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연말에 정산해보니 남편이 계산을 잘못해서 빚이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1년 뒤 겨우 다 갚았는데 이번에는 남편 친구가 사업 자금을 넣겠다며 돈을 빌려갔고, 원금과 배당금을 같이 주고 제때 갚겠다고 했지만 결국 갚지 않아 또 빚더미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밤, 침대에 앉아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수련은 큰 고생을 견뎌낼 준비가 필요한데 제자는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수련해서 이겨내겠습니다.”
해마다 이어진 시련 끝에 마침내 사부님의 보호 아래 빚을 다 갚았고, 저 또한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냈습니다. 빚을 다 갚은 후의 어느 날 밤, 마음속으로 ‘이제 이 일은 그만하고 싶어. 매일 새벽 2시 넘어서까지 밤새우는 건 너무 일을 그르치는 거야. 나는 예전에 회계 일을 했으니 집에 빚도 없겠다, 체면 서는 직장을 구해서 남 시중드는 일은 안 하고 쓸 만큼만 벌면 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저는 갑자기 제 근본 집착을 발견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제외하고, 성인이 돼 진정으로 수련을 시작한 뒤 제 수련의 근본 목적은 ‘인간세상의 고생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돼 명리를 다투는 것이 너무 무의미하고, 너무 고달프고 힘들게 느껴져서 반드시 수련해서 더는 인간세상의 고생을 겪지 않으려 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속인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수련했던 것입니다.
이 근본 집착을 깨달은 후 저는 의자를 가져다 가게 문 입구 밖에 앉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저는 말했습니다. ‘할 수 있어. 나는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저는 확실히 어릴 때부터 줄곧 고생해왔고, 어머니가 불법 감금됐을 때도 또래보다 훨씬 생활력이 강했습니다.
저는 다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고생을 잘 참지. 그렇다면 너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너는 마음 우러러 고생을 감내할 의향이 있어?’ 제 마음은 무겁고 서러웠으며 저는 ‘아니, 원하지 않아’라는 내면의 답을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너는 명명백백하게 고생을 감내할 의향이 있어?’ 저는 마음속으로 울었고, ‘그것’이 고생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너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너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할 수 있어?’ 저는 끝내 ‘기꺼이(甘願)’라는 글자를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다그쳐 물었고, 약 30분 동안 자신에게 물은 뒤에야 마침내 마음이 풀렸고, 억울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명백하게 자신에게 말하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기꺼이 고생을 감내하겠습니다. 제자는 명명백백하게 고생을 감내하고, 두려움 없이 후회 없이 수련의 길을 가겠습니다. 사부님 안심하십시오.”
그렇게 저는 이 근본 집착을 내려놓았다고 느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 수련 상태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매일 평화롭고 홀가분했으며, 생활 속에서 마음의 파동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고, 마치 곧 인간세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갈 것처럼 무욕무구(無欲無求)하고 텅 빈 듯 고요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다가 어느 날 아침, 갑자기 격리된 듯 다시 ‘집착’이 생기고 ‘사람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자신이 새로운 단계의 수련을 시작했음을 알았습니다. 몇 년 전에도 오랫동안 착실하게 수련한 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 세상 만물이 다 가짜 같고 인간세상에 머물 수 없어 금방이라도 떠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는 시간이 아주 짧아 2~3일 정도였는데 사부님께서 그 상태를 멈춰주셨고, 새로운 수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작년에 남편이 시어머니의 돈을 저축해 주었는데, 왠지 모르게 1만 위안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항상 집안의 빚이 겨우 없어지면 일이 터지는데, 건건마다 모두 남편이 제 조언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려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저는 매번 마음을 연마하며 더욱 진심으로 남편을 위해 생각하고 권유했습니다. “이익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아요. 당신이 돈을 너무 중하게 보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여기저기 ‘계산’만 하다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보는 거예요. 사람이 사는 건 돈을 얼마나 모으냐에 있는 게 아니라, 평생 업을 얼마나 없애고 빚을 얼마나 갚았는지,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근본이에요.”
지금은 남편도 수련으로 들어왔고 제가 수련 중에서 하는 모든 일을 기꺼이 지지해줍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살펴주시어 부부의 수련 인연을 맺게 해주셨습니다.
3) 고부 갈등 속에서 수련해 내다
저는 안으로 찾는 것이 층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깊이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고부 관계를 5년 넘게 수련했는데 대략 세 단계로 나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시어머니가 제 생각과 맞지 않게 행동하시는 것을 볼 때 노력해서 자신을 찾았지만 수련이 아주 더뎠고, 저는 늘 억지로 참아야만 밖을 보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침대에 앉아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장점이 있을 텐데, 오늘 시어머니의 장점을 한번 찾아보자. 1. 생활이 매우 검소하시고, 먹고 마시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셔. 2. 고생을 잘 견디고 솔직하게 직언을 하셔.’
더는 장점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 두 가지만 해도 너는 시어머니보다 못하니 자신을 수련해야 해.’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금방 시어머니의 이게 틀렸고 저게 수련인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그 생각들을 눌러버렸습니다. 서서히 마침내 시어머니를 주시하지 않게 됐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우쭐함과 남을 깔보는 마음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단점을 주시하지 않게 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어머니를 깔보는 마음이 올라와 잘난 체하며 제가 시어머니보다 낫다고 여겼고, 그렇게 수련을 이어갔습니다. 이런 상태가 반년 넘게 지속됐고 어떻게 넘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초겨울의 어느 날, A 수련생이 저에게 현지 교류에 참여하자고 했지만 저는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A는 말했습니다. “갑시다. 다른 지역은 다 교류했는데 우리 지역은 서로 모인 지 오래됐어요.” 그래서 저는 갔습니다. 그날 저는 제가 안으로 찾으며 착실하게 수련한 심득을 나누었습니다. 저녁에 A가 우리집에서 법공부를 마친 후 말했습니다. “오늘 당신이 교류한 내용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됐어요. 하지만 모두가 당신에게 있는 한 가지 문제를 보았는데 아주 뚜렷했어요.” 제가 “어떤 문제인가요?”라고 묻자 A는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하지만 모두가 알아요.”
수련생이 떠나간 후 제 마음은 들끓기 시작했고 부정적인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본 적도 없으면서(저는 타지에서 왔음), 한 번 보고 내 문제를 다 알았다고? A는 나보다 더하잖아. 부부가 다 수련생이면서 갈등이 첩첩산중인데 내 잘못을 들추려 하다니.’
이런 생각이 제가 아님을 알았지만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저는 나쁜 생각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온갖 생각을 하고 싶지? 좋아, 지금 생각하게 해줄 테니 실컷 생각해봐! 고작 내가 수련생과 거리를 두고, 기껏해야 다시는 그들을 만나지 않게 하려는 것뿐이잖아. 고작 그 정도지.’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나쁜 생각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으라고 하셨으니 나는 자신을 찾아보자.’ 즉시 제 문제를 알았고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바로 ‘우월하게 굴며 남을 깔보는 마음’이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A가 다시 저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지난번 당신의 교류가 참 좋아 못 들은 수련생들이 듣고 싶어 하니 우리 다시 모입시다.” 다시 교류할 때, 이번에 자신을 찾아보고 ‘우월하게 굴며 남을 깔보는 마음’을 깨달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A는 감동을 받아 목이 메어 말했습니다. “수련생들 사이가 모두 이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간격이 없을 텐데.”
그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도와 이 우월하게 굴며 남을 깔보는 마음을 없애주셨음을 알았고, 시어머니를 대하는 것도 더 평화로워졌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갈등의 뿌리를 찾아 스스로 돌파한 것입니다. 어느 날, 밥을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금생의 수련의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으로 이런 시어머니를 만난 것은 내 수련의 길을 닦아주기 위한 것이야. 만약 퇴직금을 받아 돈이 많고, 갖가지 반찬과 국을 매일 해주며, 아이도 돌봐주고, 온전히 나를 위하는 그런 시어머니를 만났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그건 나를 망치는 게 아닌가?!’ 저는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시어머니의 어려움도 이해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수련할 줄 잘 몰라서 그러시는 것이고, 그래서 매우 고되고 힘드셨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며 마침내 제가 왜 시어머니를 못마땅해 하는지 찾아냈습니다. 약혼 때 저와 시어머니는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시어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젊어서 겪은 일이 적고 성격도 급하며, 어머니는 또 감옥에 계십니다. 아마 제가 너무 예민한가 봅니다. 집에 가서 저 자신을 좀 수련하면 괜찮을 겁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맞아, 바로 네 잘못이야. 넌 어떻게 그럴 수 있니?! 수련인답지 않아!”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바로 그 말이 제 가슴에 박혔던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수련에 관한 일로 시어머니와 말 한마디 섞지 않겠다.’ 그래서 정말로 시어머니와 수련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문제의 뿌리를 찾았습니다. ‘남이 지적하는 것을 못 견디는 마음’이 상처받았던 것입니다. 제 인생에서 누구도 그렇게 직접적으로 ‘네가 틀렸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오직 시어머니만이 그 마음을 건드렸던 것입니다. 이 마음을 닦아 버린 뒤 저는 먼저 시어머니께 사과드렸고, 결혼 후 몇 년 동안 제 마음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도 매우 감동받으셨고 저는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완전히 수련해 냈습니다. 오직 자신을 수련해야만 수련생인 시어머니가 감동받으시고, 진정으로 안으로 찾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단지 남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시어머니도 최초의 수련상태를 찾아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2. 어머니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점차 남을 위하는 진념을 닦아내다
어머니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인의 신고로 또 납치됐습니다. 어머니를 구출하고, 공안·검찰·법원 인원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손을 붙잡고 사부님의 보호와 깨우침 속에서 확고하고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했고, 점차 사심을 닦아버리고 중생을 구하려는 진념(眞念)을 수련해 냈습니다.
1) 첩첩산중인 압박
어머니가 잡혀가신 것을 알게 된 직후, 저와 아버지는 집안의 대법서적들을 치웠습니다. 다 치우고 집에 돌아와 문을 열자마자 경찰이 가택수색을 하러 왔습니다. 하루가 지나 파출소에 가서 상황을 묻자 경찰은 어머니가 구치소에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몹시 괴로웠습니다.
저는 자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물건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기껏해야 며칠 구류되고 말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는 구세력의 박해를 인정한 꼴이 되어 사악에게 틈을 보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즉시 아버지를 찾아가 교류하며 경찰이 다시 집에 오면 글자 하나도 서명하면 안 된다고, 그렇지 않으면 ‘증인’이 돼버린다고 당부했습니다.
어머니는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셨습니다. 비록 압박이 매우 컸지만 저는 파출소에 가서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2000년 공안부 39호 문건과 2011년 신문출판서 50호령을 가지고 파출소로 사건 담당 경찰을 찾아갔습니다.
문을 나설 때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고 다리도 좀 떨렸습니다. 소파 옆에 앉아 제 다리를 두드리며 심장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지금 너무 약해. 이 정도 일도 감당 못 하면 안 돼. 너는 커져야 하고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협조해야 해.’
마음은 가라앉았지만 다리는 여전히 떨렸습니다. 파출소 출근 시간이 되어 다리가 떨려도 나가야 했고, 파출소 문 앞에 도착해 심호흡을 깊게 한번 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다리가 더 이상 떨리지 않았습니다.
파출소 안은 쇠창살로 모두 막혀 있어 그 너머로만 경찰과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제 어머니를 구치소에 가뒀는데,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요? 누가 제 어머니를 납치했습니까? 언제 사건을 접수하고, 언제 입건했나요? 저는 당신들이 먼저 가택수색을 하고 나중에 입건했다고 의심이 드니 이 모든 정보를 알아야겠습니다. 제 어머니는 신앙 문제이며, 법률은 행위만 처벌할 뿐 생각은 범죄를 구성하지 않습니다. 파룬궁은 X교가 아니며 파룬궁 서적은 합법적인 출판물입니다.”
제가 두 가지 자료를 남기려 했으나 그들은 감히 받지 못하고 사건 처리가 안 끝났다며 집에 가서 통지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와 아버지는 상의하여 인권 변호사를 찾았으나 변호사는 그 주에 시간이 없었습니다. 비록 좀 실망했지만 곧바로 제가 밖을 향해 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제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원래 사부님께서는 제가 변호사에게 의지하지 말고 제 길을 걷기를 원하시는군요.’
그렇게 저와 아버지는 변호사에 의지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작년에 저는 갑(甲) 지역 수련생들이 수련생 구출에서 정념이 매우 강하고 성숙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법률을 이용해 박해를 반대하는 것이 공백 상태임을 깨닫고는 갑 지역 수련생들을 초청해 우리 지역에서 관련 경험을 교류했습니다. 갑 지역 수련생들은 공안·검찰·법원과 접촉하는 과정 중의 정념을 우리에게 전해주었고, 기본적인 법률 상식도 알려주었습니다.
2)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다
이번에 어머니에게 일이 생겼을 때 저는 모든 것이 사부님의 체계적인 안배임을 깨달았습니다. 저 자신이 나서서 법률을 이용해 박해를 반대하고 현지 공안·검찰·법원 인원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변호사에게 의존하지 않고 제가 주역이 돼야 했습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끊임없이 경찰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연이어 불법 노동교양과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제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그늘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공안·검찰·법원 인원들과 대면해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괜찮으나 전화하는 것은 무척 두려웠습니다.
한번은 어머니의 상황을 알기 위해 검사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습니다. 오전 11시 30분부터 준비하고 있었는데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고, 1시간 동안 발정념을 해도 여전히 떨렸습니다. 이 일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고 제가 직접 전화해야 했지만, 마음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오후가 되어 저는 전신거울 앞에 앉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대법제자다.’ ‘너는 이 일을 할 것이냐?’ ‘할 것이다.’ 저는 30분 넘게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오후 4시가 다 되어 이제 전화하지 않으면 검찰원 퇴근 시간이라 전화를 걸었습니다. ‘뚜루루’ 하는 전화 벨 소리를 듣자 갑자기 두려움이 사라졌고 정상적으로 사건 진행 상황을 문의했습니다.
이 일이 지난 후 공안·검찰·법원 인원들과 다시 접촉할 때는 더욱 당당해졌습니다.
다음 날 변호사가 제게 검찰원에 가서 법률 자료를 제출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저는 검찰원에 가서 변호사가 타지에 있어 올 수 없다는 명목으로 법률 문서를 검찰관 보좌관에게 주었고, 그에게 정보(政保, 정치안전보위) 경찰의 법 집행 오류와 법률 적용 착오를 알리며 제 어머니는 무죄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또 공안 감찰 부서에 가서 정보 경찰의 법 집행 오류를 고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주시했고, 매일 밤 잠들기 전 하루 동안의 모든 생각을 되돌아보며 빠르게 제고했으며, 마음가짐도 점점 더 안정됐습니다. 아버지도 저와 함께 몇 차례 공안국과 검찰원에 다니면서 서서히 박해받은 그늘에서 벗어나셨고, 안으로 찾는 법도 배우셨습니다.
한번은 현지 기율검사감찰위원회(기율위)에 공안국 담당 경찰에 대한 고발장을 우편으로 보낸 뒤, 며칠 지나 시정부 민원실을 찾아가 감찰위원회에 입건 상황을 물었습니다. 민원실로 가는 길에 기율위 사람과는 접해본 적이 없어 마음이 좀 불안했습니다. 저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가족들이 뒤에서 천천히 걷는 것이 좀 원망스러워 ‘조금도 의지가 안 된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생각했습니다. ‘밖을 보면 안 된다. 가족이 같이 와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다.’ 저는 ‘시드니법회 설법’을 몇 번 되뇌었고, 마음이 서서히 평온해졌습니다.
민원실에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고 고발이 접수됐는지 묻고는, 39호 문건과 50호령을 그에게 보여주며 생각은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비록 민원실에서 고발을 접수해주지는 않았지만, 이번 일 이후 저는 예전처럼 오로지 어머니를 구출하려는 마음가짐에서 벗어나 사람을 구하는 각도에서 진상을 알리게 됐습니다. 공안·검찰·법원 사람들을 대할 때 두려움이 없었고 오직 당당하고 떳떳한 마음가짐만 있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접하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변했습니다.(계속)
(명혜망 제22회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1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21/50247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21/50247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