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가족은 우리를 돕고 성취시키기 위해 온 존재

글/ 산둥 대법제자 상화(祥和)

[명혜망] 수련하지 않는 속인 가족이 있으면 소통하고 지내기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박해하는 시기에 대법제자는 파룬따파 법리의 지도가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속인 가족은 명리정(명예, 이익, 정)의 경지에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우리의 수련을 막거나 반대하곤 하는데, 특히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면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일종의 가상입니다. 우리가 그 속에서 벗어나 가상에 미혹되지 않을 때, 원래 다른 안배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다섯 번 이혼을 요구하다

저는 심각한 위장병, 자궁근종, 가슴 답답함, 저혈당성 현기증(세 번 쓰러짐) 등 여러 질병을 앓았는데 2002년 수련을 시작한 후 병이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남편은 제가 수련 후 건강해진 것을 보고 중공의 박해가 심각한 시기였음에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중공의 폭압을 우려해 제가 수련생들과 함께 단체로 협력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제게 파룬궁과 가정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사흘의 생각할 시간을 줬습니다.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저는 법을 떠날 수 없었고 가정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는 제게 아직 정(情)이 매우 무거웠고(당시는 인식하지 못함), 다른 하나는 파룬궁을 수련해 이혼하면 대법의 명예에 누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둘 다 원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혼하자는 거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이혼은 당신의 선택이지 내 선택이 아니에요. 나는 둘 다 원해요.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건 잘못이 없어요. 만약 당신이 굳이 이혼을 선택한다면 당신 좋을 대로 해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럼 이 일을 어머니와 동생에게 알리겠소.” 평소 저희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저는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알리는 것을 꺼렸지만, 이때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 알리고 싶으면 알리세요.” 그는 제 남동생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지만 흐지부지됐습니다. 그 후에도 한 번 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면 이혼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또 흐지부지됐습니다.

2007년, 저는 진상을 알리다 중공 관계자에게 납치돼 벌금을 물었습니다. 이번에 그는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반드시 이혼해야겠다고,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남동생의 중재로 다시 평온을 찾았습니다. 2008년, 저는 또다시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고 그는 다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와 그는 모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기간에 저도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게 됐고, 제게 일부 극단으로 치우치는 집착이 있음을 발견하고 저의 일부 바르지 않은 행동을 바로잡았습니다.

2022년 섣달그믐, 저는 NTD TV 프로그램을 보는 데 집착해 수련생에게 위성 수신기 조정을 부탁했습니다. 그가 섣달그믐 점심 식사를 위해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렸을 때 수련생이 수신기를 수리하러 와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멈춰야 했습니다. 이번에 그는 매우 화가 난 듯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설 쇠고 절차(이혼)를 밟으러 갑시다.” 저는 원래 NTD TV 시청에 대한 집착 때문에 가족의 감정을 고려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남편에게 사과하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 분노가 치밀어 올라 말했습니다. “당신이 나랑 이혼하자고 한 게 이번이 다섯 번째예요. 이혼을 입에 달고 사는데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나요?”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묵했습니다. 밤에 저는 화를 품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情)이 무엇인지 똑똑히 봤어요. 모든 게 가짜예요. 당신은 몇 번이고, 이번이 다섯 번째예요. 이혼이란 단어가 그렇게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뜻밖에도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안 고치면 다섯 번이 아니라 일곱 번, 여덟 번도 말할 거요.” 저는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정월 초이틀, 갓 결혼한 조카 부부가 새해 인사를 하러 왔는데 저와 마주 앉아 물었습니다. “외숙모, 눈이 왜 그러세요?” 거울을 보니 왼쪽 눈의 눈동자만 검고 눈 전체가 새빨갰습니다. 고통이 지나간 후, 저는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왜 반복해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 걸까?’ 문득 그가 했던 말 “당신이 안 고치면 다섯 번이 아니라 일곱 번, 여덟 번도 말할 거요”가 생각났습니다. 이혼하면 일곱 번, 여덟 번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그가 저를 돕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가 저를 어떻게 돕는다는 걸까요? 저는 갑자기 지난 수년간(거의 20년)이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저의 무거운 정과 마음속 원망, 선과 자비심 부족 등의 집착을 사부님께서 제가 제고하기를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다! 하지만 저는 계속 깨닫지 못했고 남편도 많은 고통을 겪게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 깊이 참회하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당신이 아무리 듣기 싫은 말을 해도 원망하지 않을게요. 이제야 알겠어요. 당신은 계속 저를 돕고 있었군요.”

남편의 반복적인 태도 변화에 직면하다

2023년 5월, 남편은 선원 일자리를 구하려 했지만 해운회사 경기가 좋지 않고 구직자는 많았습니다. 남편은 나이도 많고 경험도 없어 몇 군데 연락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원래 그는 선원이 될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한 해운회사에서 출근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열흘 남짓 후에 배를 타야 했는데, 남편은 배가 바다에 있어 육지를 떠나면 병원에 가기 불편하니 몸을 빨리 추슬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편은 제게 전화해(저는 다른 지역에 있었음) 집에서 제가 하던 대로 (연공) 동작을 따라 했는데, 불과 열흘 만에 경추 질환이 낫고 어깨까지만 들 수 있었던 팔도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포륜할 때 무언가 ‘툭’ 하고 다리 위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며칠간 집에 머물며 그의 연공 동작을 교정해주고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그는 제게 어떻게 정념을 발해 자신의 공간장을 정화하는지 물었고, 단반하고 정념을 발해 자신의 공간장을 정화해보기도 했는데, 그 모습이 비교적 경건했습니다. 배에 오른 후 그는 매일 정념을 발해 공간장을 정화하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습니다.

한 달여 후, 시아버지께서 암 진단을 받으셔서 남편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도 한 달 정도 집에 머물며 그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이것이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예전에 남편도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서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는 전혀 그럴 뜻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추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얻게 됐고 그가 직접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와서 보니 남편이 선원 일자리를 구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고,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의 일부였습니다.

두 달 후, 제가 다른 지역에서 집으로 이사 와보니 남편은 연공을 비교적 경건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이 두 달 동안 자신도 시험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얼굴 반쪽과 관자놀이, 치아가 쿡쿡 쑤시는 듯한 통증이 있었는데, 속인의 말로는 삼차신경통이었습니다. 그는 견딜 수 없어 40여 위안어치의 약을 먹었는데, 예전에는 치통이 있으면 약을 먹자마자 나았지만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는 사부님께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임을 깨닫고 참았더니 한 달 정도 지나 나았습니다. 이어서 반대쪽이 아프기 시작했고 그는 다시 참고 견뎠더니 또 나았습니다. 동시에 코에도 붉은색의 단단한 덩어리가 생겼는데 그에게는 비염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사부님께서 정화해주시는 것이라며 그냥 뒀더니 얼마 후 또 나았다고 했습니다.

비록 남편이 오래된 수련생처럼 법공부와 연공에 전념하지는 못하고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연회가 있을 때 조금 마심) TV도 보고 휴대폰도 했지만, 법공부와 연공을 꾸준히 하는 것을 보고 저는 마음이 매우 흐뭇하고 기뻤습니다.

어느 날 한담 중에 제가 밖에 나가 진상을 알리는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지며 말했습니다. “우리 그냥 법공부하고 연공만 하면 안 될까?” 제가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러자 그날 저녁 그는 제가 아무리 권해도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평소에 당신은 늘 우리는 남에게 빚지지 않고 남이 우리에게 빚지게만 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럼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셨는데, 지금 대법이 모함을 당하고 박해받는데 제가 공정한 말 한마디도 못 한다면 제가 양심 있는 사람일까요? 당신이 저를 이해해주길 바래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평온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꿈을 꿨습니다. 제가 밖에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남편이 제 고향 집 단층집에 있었고 안에는 많은 수련생이 있었습니다. 집의 북서쪽 모퉁이 마당에는 넓은 출구가 있었습니다. 한 낯선 남자가 제게 못 본 척하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몸을 돌려 집으로 가려는데, 서쪽 담벼락에 붉은 오각별이 높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집에 가서 그것을 떼어내려 했습니다(꿈속에서 그것이 사악한 영과 관련 있음을 알았음).

다음 날 오전에 남편이 저를 부르더니 말했습니다. “당신이 진상 얘기를 꺼내니 내 아픈 곳을 건드렸소. 수년간 이 일이 늘 흐지부지됐으니 오늘 우리가 선택을 합시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소. 하나는, 당신이 신앙에 전념해 진상을 알릴 거면 알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요. 이 선택을 하면 위험이 따르니 월급을 잃거나 심지어…(그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감옥에 가는 것을 의미함)를 각오해야 하오. 다른 하나는 그냥 법공부하고 연공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거요. 어떤 선택을 하고 싶소?” 저는 절충하자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꼭 진상을 알려야겠다면, 2~3년 뒤 내가 퇴직한 후에 내가 함께 나가서 망을 봐주면 안 되겠소?” 저는 남편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승낙할 수는 없었습니다. “2~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 뜻은 알겠소. 그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당신만 즐겁다면, 나는 당신 같은 경지가 못 되니 그저 평안하게 잘 살고 싶을 뿐이오. 나 자신을 희생할 테니 당신은 나를 신경 쓰지 말고, 나는 스스로 조절하겠소.” 저는 듣고 매우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이번에 남편은 이혼으로 저를 압박하는 대신 자신을 희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매우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계속 휴대폰을 만지고 TV를 봤습니다.

다음 날 오전, 저는 남편을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제가 조심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속인으로서는 생로병사 등이 모두 어쩔 수 없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관장해주세요.” 이때 남편은 갑자기 노발대발하며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한 말을 했습니다. 저는 온몸을 떨며 눈을 감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 옷을 입고 길을 나서려 했습니다. 제가 고통스럽게 소형 녹음기로 사부님 설법을 틀자 남편이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함부로 틀지 마시오. 당신이 들으려면 당신 방에 가서 트시오.” 말을 마치고 그는 길을 나섰습니다.

저는 ‘제세(濟世)’와 ‘보도(普度)’ 대법 음악을 틀자 더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지금 짓는 업보와 이전과 또 달라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저의 어떤 집착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을까요? 돌이켜보면, 그가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한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왜 온몸을 떨었을까요? 그것은 제가 그에 대한 정이 깊어 그가 업을 짓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최근 저의 기쁜 마음, 즉 환희심을 사악이 파고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마치 죄인처럼 느껴졌고, 제가 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이 남편을 대법 밖으로 밀어낸 것 같았습니다. 이 순간 저는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 자신과 관련된 중생의 구원 여부와 관계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제대로 돌아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저는 다시 어머니 수련생 댁으로 돌아갔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깊이 파헤치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다

저는 하루빨리 집착을 찾아내 자신을 잘 수련하고 싶은 강렬한 소망이 있었지만, 미혹 속에 있는 듯 어디서부터 돌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매일 사람을 구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 외에 매일 마음을 다해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는 것, 즉 전법륜(轉法輪)과 사부님의 각지 설법을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빨리 바로잡으려는 강렬한 소망을 품고 실천에 옮기자, 온몸이 에너지에 감싸이는 것을 느꼈는데, 특히 가부좌할 때 뚜렷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가지(加持)해주심을 알았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해보니, 남편은 저의 거울이므로 그의 행동을 대조해 제 자신을 찾아보고 모든 집착을 파헤쳐야 했습니다. 저는 아래 몇 가지를 찾아냈습니다.

1. 사람의 정(情)이 매우 무겁다. 그가 여러 차례 이혼을 말할 때마다 저는 매우 슬퍼하고 괴로워했는데, 이것은 부부의 정이 저를 좌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외에도 모녀의 정, 자식에 대한 정, 형제자매의 정 등도 매우 무거워 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몰랐습니다. 이것은 안 될 일입니다. 정은 사람 속의 것이고 저는 연공인이므로 정을 원치 않고 자비심으로 정을 대체해야 합니다.

2. 사부님과 법을 100% 믿지 못했다. 남편이 사부님과 대법에 불경한 말을 한 것은 제가 중시해야 할 문제였습니다. 제 자신을 찾아보니, 저 역시 종종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여기고, 보이지 않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막연하고 불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공간의 법을 제가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와는 무관하다고 느끼고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 법리 속에서는 사부님의 법신이 곁에 계심을 명백히 알지만, 종종 불안하고 고립무원한 느낌이 들어 저의 이지와 지혜 등에 의지해야 했습니다.

3. 자신의 기준으로 남에게 강요하다. 남편은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지 말고 자신이나 잘 돌보면 되지, 아홉 글자를 외운다고 사람이 구해지냐고 말했습니다. 그의 차원에서 어찌 대법제자가 사람을 구하는 신성한 사명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수련하여 어느 한 층차 중에 이른 사람, 그는 단지 그 한 층차 중의 광경을 볼 수 있을 뿐, 이 층차를 넘어선 진상을 그는 보지 못하며 믿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이 한 층차 중에서 본 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긴다. 그가 그처럼 높은 층차 중까지 수련하지 못했을 때, 그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데, 이것은 층차가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의 사상도 승화해 올라갈 수 없다.”(전법륜) 제 자신을 찾아보니, 저 역시 자주 포용하는 마음으로 수련생의 집착을 대하지 못했습니다. 심성 층차가 다르고 수련인의 집착이 다르며 수련의 길이 다릅니다. 잘 수련된 일면은 격리돼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수련생의 사람 마음과 집착뿐입니다. 저의 유한한 층차에서 얼마나 알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수련생의 집착은 사악의 교란 속에서 맑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런 상황을 만난 것은 제 자신을 돌아보는 것 외에도 선의로 일깨워주고 정념으로 수련생을 가지해야 합니다. 수련생의 모든 집착을 평화롭게 대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시며, 다른 수련생의 집착은 자신의 거울이고 사부님의 깨우침이며, 그것을 만난 것은 자신에게 닦아 없애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4. 하늘의 공을 탐하다. 남편은 종종 그가 저보다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제 자신을 대조해보니, 사람이 가져야 할 겸손의 미덕을 실천하지 못하고 종종 스스로 괜찮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어떤 법리를 깨달았는데 다른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거나, 법을 실증하는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이 전반적으로 고려했는데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했다거나, 어떤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자신이 해냈는데 다른 사람은 하지 못했다거나,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집착이 있는데 자신에게는 없다거나 하는 것 등입니다. 수련인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신 것인데 무엇을 과시하고 기뻐할 것이 있겠습니까? 정말로 교만하고 무지하며 더 심해지면 자심생마(自心生魔)할 것입니다.

5. 극단으로 치우치다. 남편은 제게 메시지를 보내 제가 이상과 신념을 위해 가정과 결별하는 ‘영웅지사’ 같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우리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 한 희생과 헌신은 그가 말하는 ‘영웅지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남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2023년 명혜망 중국 대법제자 법회 문장 ‘동창과 동료들을 모두 구원하게 하다’를 읽었습니다. 속인이 수련생을 칭찬하며 “정말 대단한 ‘여성 혁명가’군요!”라고 하자, 수련생은 즉시 자신을 찾았습니다. “그의 말은 제가 어디를 잘못했는지 깨닫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중생의 눈에 제가 ‘혁명가’가 됐을까요? 제가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은 아닐까요? 수련인은 묵묵히 자신을 닦는 동시에 자비롭게 중생을 구해야지, 속인처럼 떠들썩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기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대법제자는 자신을 잘 닦고 중생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야지, 사람 속의 어진 선비들이 어떤 이상을 위해 분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들이 아무리 고상하고 분투해도 모두 사람의 층차에 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는 우주가 성주괴멸(成住壞滅)하는 속에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하러 왔으며, 모든 중생(수련하지 않는 우리 친지, 친구, 가족 포함)을 구해야 하는, 신(神)이 사람에게 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층차에 있으므로 그들을 구하려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와 이해할 수 있는 행동으로 해야 합니다. 그들의 인지 범위를 벗어나고 속인의 형식을 벗어나면 그들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저는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소위 ‘혁명지사’처럼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아요. 저는 그저 어디서든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고, 매사 자신을 닦아 최대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가정과 사회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일원입니다. 우리의 표현은 평화롭고 선하며 자비로워야 하고, 중생과 즐겁게 지내는 가운데 그들의 선념과 양심을 일깨워 맑은 정신으로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자신의 가족은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가보다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늘 지켜보며, 이를 통해 대법을 이해하고 인식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다양한 표현을 통해 수련인에게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도록 일깨워줍니다.

6. 자아에 집착하다. 남편은 중공의 TV를 보는데, 그가 아직 중공의 본질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할 때 저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측면에서 그에게 중공의 TV를 봐서는 안 된다고 일깨워줬습니다. 그는 듣고 나서 저처럼 극단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며 제 인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반박하고는 계속 봤습니다. 저는 이 속에서 저 역시 자아가 매우 강한 집착이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수련생이 여러 차례 대법 서적을 속인의 책과 같은 책장에 두지 말라고(비록 다른 칸에 있더라도) 건의했지만 저는 듣지 않다가, 불법 가택수색을 당한 후 반성하면서야 이것이 사부님과 법에 대한 불경한 심각한 집착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련 중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 자신을 찾아보면 길을 덜 헤매고 빨리 제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당 문화가 심하다. 남편은 부부가 한마음 한뜻이어야지,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자주 말합니다. 따라서 제가 법공부를 하고 그가 속인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한마음 한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중공의 사상 통일, 인식 통일, 보조 통일이라는 당문화가 아니겠습니까? 저 역시 자주 마음속으로 그가 저와 같기를 바랐고, 그의 관심사가 저와 다르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며 다른 의견, 다른 인식의 존재를 포용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쟁투심과 원망심이 있어 완전히 평화롭고 자애롭게 대하지 못했습니다.

8. 속인 생활에 미련을 두다. 남편은 그저 평온하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제 자신을 찾아보니, 마음속 깊은 곳에서 현실의 명리정을 여전히 중시하며 자녀가 자신에게 좀 더 잘해주기를, 남편이 자신을 좀 더 아껴주기를 바라고, 월급이 올랐다는 소식을 들으면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뻐했습니다. 중생은 모두 법을 위해 왔으며 부모, 형제, 아내, 자녀가 대법제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들 역시 구원받기를 바라며 우리를 성취시키기 위해 온 것입니다. 수련인과 그들은 구원과 피구원의 관계이며, 법에 동화해 자신을 잘 닦는 것이야말로 자신과 그들이 올 때의 큰 서약입니다. 수련인은 속세에 몸을 두고 마음은 세상 밖에 두며, 행하면서도 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찾아낸 이상의 집착은 아직 전부가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집착이 있으니 구세력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남편이 교란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남편의 명백한 일면은 바로 법을 위해 왔고, 저를 돕고 성취시키기 위해 온 것입니다. 제가 미혹돼 깨어나지 못할 때 그는 사부님과 법에 불경한 죄업을 짊어지면서까지 저를 고통 속에서 깨닫게 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질서 있는 안배 속에 있으며, 우리 모두가 미혹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제도하시기 위해 정말로 애쓰십니다!

깨달은 것(아마도 일부만 깨달았을 것입니다)이 해낸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아직 많은 집착이 있지만, 우리가 사부님의 법에 따라 법을 잘 배우고, 시시각각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으며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하나하나의 집착을 제거하는 동시에 조금씩 선과 자비를 닦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박해받지 않는 것은 법의 요구

진상을 알리면서 박해받지 않는 것은 법의 요구이며, 중생이 구원받는 데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진상을 알릴 때 종종 속인들이 아무개가 어떻게 박해받았다고 말하는 것을 만납니다. 한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으면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훼멸될 죄업을 짓게 하고, 주변의 친지, 친구들에게는 법에 대한 반감과 오해를 불러일으켜 그들의 구원에 영향을 미칩니다.

박해는 다른 공간 사악의 조종입니다. 저 자신과 주변 수련생들이 박해받은 것을 반성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일하려는 마음이 앞서고, 사람의 열정에 의지하며, 법공부가 부족하고 자신을 닦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중독된 세상 사람들 배후의 사악을 해체할 수 없는데, 어찌 사악에게 박해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닦으라고 하십니다. 사부님의 거듭된 당부를 우리는 얼마나 해냈습니까? 우리가 법에 동화되고, 마음이 온전히 중생(우리 주변 사람 포함)에게 있으며, 자비로운 마음과 자비로운 장(場)이 있고, 사부님과 대법이 자신과 함께한다면, 누가 감히 박해하겠습니까?! 어떤 사악한 요소도 모두 해체될 수 있고, 중생이 구원받는 장애가 제거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저의 심성 층차에서의 작은 깨달음을 써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수련생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의 지적을 바랍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10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6/4695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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