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수련이 점점 더 최후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최근 사부님의 일깨움을 통해 저에게 질투심과 기타 각종 집착심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했으니 마땅히 엄숙하게 대하고 그것을 제거해야 합니다.
질투심을 발견하다
줄곧 저는 질투심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매번 사부님께서 질투심 문제를 강의하신 것을 보거나 수련생들의 질투심에 관한 교류 문장을 볼 때면 늘 대충 지나갔고 진지하게 자신을 대조해보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조건이 모두 좋아서 고급차를 몰고 호화 주택에 살았습니다. 저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몸 밖의 것이고 백 년 후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본귀진(返本歸眞)할 수 있는 우주대법을 얻었으니 얼마나 행운입니까. 제가 얻은 것은 그들이 얻고 싶어도 영원히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저는 그들보다 행복하므로 마음이 아주 담담했고 부러움도 없었으며 더욱이 그들을 질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질투심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 오전 집에서 먼저 법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며칠째 미뤄둔 진상지폐를 아직 만들지 않은 게 생각나 먼저 진상지폐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방음이 안 돼 프린터가 작동할 때 소리가 좀 컸습니다. 낮에는 이웃들이 보통 출근해서 집에 없으므로 저는 낮 시간을 골라 인쇄했습니다.
제가 쓰는 프린터는 좀 오래돼 급지 롤러가 때때로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리할 줄 모르고 아는 수련생도 바빠 줄곧 그냥 사용했습니다. 어떤 때는 손으로 지폐를 밀어줘야 순조롭게 넘어갔고 어떤 때는 손으로 밀어도 급지가 안 됐으며 어떤 때는 지폐가 나온 후 진상 문구가 반만 인쇄돼 지우고 다시 인쇄해야 했습니다.
저는 지폐를 바꿔온 후 모두 먼저 신권 10위안, 20위안을 처리했는데 가는 줄로 인쇄할 부위를 갈아주면 인쇄한 글자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그다음 벽돌로 눌러 평평하게 한 후 사용했습니다. 남편(수련생)도 벽돌로 눌렀지만 먼저 갈지 않고 그냥 눌렀고 어떤 때는 쓸 때 갈았습니다. 제가 여러 번 일깨워줬지만 여전히 그랬습니다. 어떤 때는 인쇄해야 할 때 제가 도와 갈아줘야 해서 아주 번거롭다고 느꼈습니다.
그날도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프린터는 부엌 바닥에 놓여 있었고 저는 옆에 앉아 인쇄를 시작했으며 남편은 안방 침대에 앉아 법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준비해둔 지폐부터 인쇄했습니다. 부엌에는 난방이 없어 아주 추워서 빨리 끝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과정 중에 또 진상 문구가 전부 인쇄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나 마음이 조급해지고 인내심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쇄가 끝난 돈을 세어보니 며칠 쓸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아 나머지는 먼저 인쇄하지 않고 프린터를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무심코 침대에서 법공부하는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인쇄할 돈이 있어요?” 저는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만약 있다면 분명 일찍 저에게 가져다 인쇄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결과 남편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아주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있으면 일찍 내놨어야지, 빨리 가져와요!” 그런데 남편은 움직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파 밑에 있으니 가져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주 마지못해 소파 밑에서 돈을 꺼냈습니다. 열어보니 평평한 지폐가 몇 장 없었습니다. 원래 기계 급지도 순조롭지 않은데 이렇게 주름진 지폐를 어떻게 쓰겠습니까?! 저는 선하지 않은 어조로 말했습니다. “이 돈을 얼마나 눌렀어요? 이렇게 평평하지 않은데 어떻게 써요? 신권은 갈았나요?” 남편은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 눌렀는데 아직 갈지 않았어요. 갈아줘요.” 이 말을 듣고 저는 더욱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아주 오래 눌렀는데 왜 아직도 이래요?! 어떻게 누른 거예요? 내 것도 당신이 누른 시간보다 짧은데 왜 당신 것보다 평평할까요? 게다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갈고 나서 누르라고. 왜 듣지 않는 거예요?” 어조에는 질책과 원망, 불만이 섞여 있었습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그럼 쓸 수 있는 것을 골라서 인쇄하고 쓸 수 없는 것은 다시 한동안 눌러놔요.”
이때 저는 이미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많이 말했는데도 나와서 보지도 않고 그냥 거기 앉아서(법공부하는 자세) 움직이지도 않네. 수련인인데 왜 남을 위해 생각하지 않지? 이 방은 이렇게 추운데 와서 좀 도와주면 빨리 끝낼 수 있지 않나. 자기만 생각하네. 당신이 법공부하고 싶으면 나도 법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화가 났는데 갑자기 저도 수련인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마음인가? 질투심이 아닌가? 분노하며 억울해하는 마음이 아닌가?’ 남편은 따뜻한 침대에 앉아 있고 또 햇볕도 쬐는데 저는 오히려 추운 부엌에서 일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바로 질투입니다! 원래 제게 질투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것은 또 다른 일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저희 집에는 줄곧 한 가지 전통이 있었는데 설날이나 명절 또는 집에 손님이 올 때 어른이나 손님이 상에 앉지 않으면 아이들은 먼저 상에 앉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제 또래 아이가 먼저 무언가를 집어 먹을 때마다 저는 속으로 그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성년이 된 후 어떤 때 제가 집에서 요리를 하고 아직 상에 앉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먼저 먹을 때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보는 눈빛이 변했고 마음속으로 아주 화가 났습니다. ‘내가 힘들게 반나절 동안 만든 음식인데 나는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먼저 먹을 수 있지?’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도 질투심이 아닙니까? 원래 저는 줄곧 질투심이 있었는데 이렇게 여러 해 수련하면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반드시 닦아버려야 합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또 질책, 원한, 원망, 사심,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안일심을 발견하다
저에게는 또 하나의 완고한 집착심이 있는데 바로 안일한 마음,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이며 특히 졸음 문제입니다. 어릴 때부터 잠을 좋아하는 이 문제가 있었습니다. 법을 얻어 수련한 후 어느 정도 변화가 있었지만 새벽 연공 후 다시 자는 문제는 줄곧 돌파할 수 없었습니다. 수련의 최후에 이르렀는데도 여전히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하며 아직 완전히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도 조급하고 아주 괴로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한심한 저를 보시고 여러 번 일깨워 주셨고 저도 이 고비를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해내지 못했습니다. 매번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나면 모두 후회하고 낙담합니다.
한번은 꿈속에서 제가 물속에 서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저와 일정한 거리가 있는 앞쪽에 등을 돌린 한 무리 사람들이 서 있었는데 저와 그들은 똑같은 흰색 어깨가 반쯤 드러난 긴 옷을 입고 있었고, 당시 의식 중에는 바닷물 속에 서 있었습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똑같은 옷을 입고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시 마음속으로 ‘이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 앞에 오셨고 저는 미약한, 저 자신도 거의 들을 수 없는 소리로 “사부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엄숙한 눈빛으로 저를 한 번 보시더니 몸을 돌려 제 앞의 그 무리를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당시 저는 따라가지 않고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깨어난 후 이것이 무엇을 깨닫게 하는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바닷물(海水, hǎishuǐ)의 발음이 ‘아직도 자니?(還睡, hái shuì)’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이었습니다!
또 한번은 어느 날 아침 6시 발정념을 마친 후 컴퓨터를 꺼내 인터넷에 접속하려고 했습니다. 동북의 초겨울은 난방이 없어 방이 아주 추워서 이불 속에 엎드려 컴퓨터를 베개 옆에 놓았습니다. 자유문(自由門)을 열었는데 그 기간 중국공산당(중공)의 봉쇄가 심해 인터넷 접속이 어려워 마음속으로 ‘나의 인터넷 접속을 가로막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한다’고 생각했고 또 ‘비둘기(자유문의 아이콘)야, 힘내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안 돼 졸려서 의식이 흐릿해졌고 잠든 것 같았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큰길에 서 있었고 길에는 행인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할머니가 걸어오셨고 웃으며 제 앞의 땅을 가리키며 말하셨습니다. “당신은 정말 복이 있어요. 정말 복이 있어요!” 할머니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보니 제 앞 땅에 흰색 작은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새보다는 크고 비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바로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땅에서 걷고 있었습니다. 이때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살찐 고양이 한 마리가 비둘기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작은 흰 비둘기는 옆의 눈더미로 파고들었는데 머리는 들어갔지만 꼬리는 아직 밖에 드러나 있었습니다. 살찐 고양이의 입이 이미 작은 새에 가까워졌고 저는 의식 중에 고양이가 그 비둘기를 먹으려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걸어가서 손에 나무 막대기를 들고 그 고양이를 쫓아내려 했습니다. 이때 고양이는 이미 머리를 숙이고 그 비둘기에 가까이 갔습니다. 저는 옆에 서서 나무 막대기로 그 고양이를 밀었는데 마음속으로는 조마조마하며 고양이의 공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나무 막대기는 아주 부드러워 전혀 작용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깨어났고 웹페이지가 잠깐 열렸다가 끊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또 몇 번 시도했지만 모두 다운받으려는 자료를 완전히 다운받지 못했습니다. 방금 꾼 꿈을 생각하며 깨달았습니다. 따뜻한 이불 속에 엎드려 인터넷을 하는 것은 저에게 줄곧 안일한 마음, 고생하기 싫어하는 마음, 두려운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꿈속의 비둘기는 바로 자유문의 작은 비둘기이며 그 살찐 고양이는 바로 사악한 요소입니다. 손에 든 나무 막대기가 부드러운 것은 진지하게 정념을 내보내지 않고 형식에 치우쳤기 때문에 나무 막대기가 부드러워 사악을 제지할 그렇게 큰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사부님의 일깨움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평소 발정념을 하는 것이 대부분 형식에 치우쳤습니다. 대다수가 마음을 고요히 하지 못했으며 생각이 늘 딴 곳으로 갔고 어떤 때는 정념 종소리가 울려서야 5분이 됐음을 발견했는데 생각이 4분 동안 딴 곳에 가 있었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적’(사악한 요소)을 제거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저에게는 아직 많은 집착심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익심, 쟁투심, 허영심, 미를 추구하는 마음,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 남의 지적을 싫어하는 마음, 원망심 등 집착심입니다. 정법이 최후의 시각에 이르렀는데 아직 이렇게 많은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으니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정말 부끄럽습니다. 너무나 형편없이 수련해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죄송합니다. 이제는 정말 수련을 엄숙하게 대해야 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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