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첫 생각은 남을 위한 것이었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수련을 시작하기 전 저는 이혼했고, 그 후 지금 살고 있는 마을로 재혼해 왔습니다. 남편은 마을에서 무시받는 사람이었고, 저 또한 이혼녀로 그런 사람과 재혼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을 얻은 후 저는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손해를 감수하다

가을 농사철, 밀 타작을 마친 후 짚단을 쌓아야 했습니다. 처음엔 길가에 쌓으려 했으나 지나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줄까 봐 안쪽으로 옮겨 쌓았습니다. 그렇게 쌓고 나니 옆에 해바라기도 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웃집 할머니가 나와서는 “사람이 맞나? 짚단을 쌓으면 쌓았지, 한가운데 쌓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아주머니, 원래 경계선에서 두 자는 비워두었고 아주머니 땅에 쌓은 것도 아닙니다. 만약 제가 아주머니 땅을 침범했다면 아주머니가 제 땅을 쓰셔도 좋고 저는 아예 심지 않겠습니다. 어디에도 방해되지 않았잖아요. 여기는 제 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상대는 계속 욕을 하다가 화가 풀렸는지 그제야 돌아갔습니다. 옆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떠난 후 “이 할머니는 순전히 남을 괴롭히는 거야. 남의 땅에 쌓은 것도 아닌데 왜 욕을 하는 거야”라며 저를 두둔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수련한 지 겨우 1년이었는데, 마음속으로 ‘다투지 않겠다. 남의 땅에 쌓은 것도 아닌데 욕하면 그냥 참자’고 생각했습니다.

한번은 남편이 경유를 사용하는 삼륜차를 몰고 마을 입구 길가에서 방향을 바꾸려던 중, 한 승합차가 급속도로 달려와 추월하려다가 길가에 있던 우리 마을 사람 두 명을 들이받았습니다. 그 두 명은 상당히 심하게 다쳤습니다. 부상당한 두 사람이 남편을 알아보고 “샤오우(小五, 남편의 어린 시절 별명), 너는 그냥 갈 수 없어. 우리가 이렇게 됐는데 모른 척할 거야?”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원래 매우 성실한 성품이라 그들과 함께 교통경찰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승합차 운전자는 억지를 부리며 남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신이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내가 추월할 필요도 없었고, 그럼 사람을 치지도 않았을 겁니다”라며 남편도 일부 배상해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결국 교통경찰은 남편이 무면허로 비자동차를 운전했다는 이유로 3분의 1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2,600위안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나중에 경찰은 저도 불렀습니다. 당시 저는 법을 얻은 지 40일 정도밖에 안 됐는데 ‘만약 남편이 정말 빚진 게 있다면 갚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우리집은 너무 가난해서 하루 벌어봤자 몇 위안에 불과했고, 《전법륜(轉法輪)》 한 권 살 돈조차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2,600위안을 배상해야 했으니 빌릴 곳도 없고 누구도 빌려주지 않아 정말 막막했습니다. 결국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갚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 부종이 기적처럼 회복되다

어느 날 남의 집 일을 도와주다가 잠시 그 집 온돌에 누웠는데, 누운 지 얼마 안 돼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껴 즉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보니 목이 붓고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만두를 빚으면서 딸에게 “엄마 눈이 안 떠진다”고 하자 딸이 깜짝 놀랐습니다. 제 얼굴이 부어서 온통 평평해져 있었습니다. 그 느낌은 마치 손오공의 긴고아처럼 머리를 조이는 듯해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마침 사위가 전화를 했는데, 도와주기는커녕 딸을 데려가겠다며 “밥도 못 해주실 것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가려면 가라, 사람들이 내 이런 모습을 보면 창피하기도 하고’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사위가 시아버지와 함께 왔는데, 둘이 제 모습을 보고는 웃기까지 했습니다. 속으로 ‘빨리 가라, 빨리 가라, 보지 마라’고 생각했습니다. 거울을 보니 제 작은 눈이 실낱만큼만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지?’ 너무 괴로워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습니다. 법공부를 하려 해도 눈을 뜰 수가 없어 ‘안 되면 법을 외우자’고 했지만 많은 법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발정념을 하며 조용히 정법 구결을 외웠습니다.

이틀쯤 지나 A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 병업 시련을 겪는 두 수련생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A가 외출해야 해서 그들을 우리 집으로 데려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얼굴이 아직 붓기가 안 빠졌어요. 피부가 너무 얇아져서 손으로 만지면 끈적거리고 노란 물이 나올 것 같아 너무 괴로워요. 이런 모습으로 어떻게 나가겠어요?”라고 했습니다. A가 “그럼 어떡하죠?”라고 하자, 저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두 수련생도 병업 고비를 넘고 있잖아’라고 마음을 정하고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보기 흉하면 흉한 대로,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갔습니다.

자전거를 밀고 A 수련생 집 마당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수련생들이 말하기를 “들어올 때는 얼굴이 부어 있었는데, 두 수련생을 데리고 나갈 때는 얼굴이 금세 달라졌어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저도 특별히 가뿐해지고 이전의 부은 느낌이 사라진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와서 그들에게 만두를 만들어 함께 먹고 진상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만두를 먹은 후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자전거밖에 없어 태워다 줄 수 없었는데, 특히 나이 든 한 분은 우리 집에서 1km 떨어진 곳에 살았습니다. 그분이 떠난 후에도 안심이 안 돼 자전거를 타고 집까지 찾아가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했습니다. A 수련생 말로는 병업이 있던 그 수련생이 A 집에 하루 머물렀는데 바지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등 정신이 좀 혼미했다고 해서 집을 못 찾을까 걱정됐던 것입니다. 가서 확인해보니 다행히 무사히 집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만두 한 끼를 함께 먹는 그 짧은 시간에 병업이 있던 두 수련생이 모두 좋아졌고 저 역시 나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무슨 난을 만나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어느 층차의 요구에 부합하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사부님은 무엇을 보시는가, 바로 우리의 이 마음을 보십니다. 그러면 이 난은 해소됩니다.

병업이 있는 수련생을 도우며 집착을 버리다

저는 농촌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니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해서 항상 눕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안일심이고 제가 너무 게으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만약 돌봐야 할 노인이 있다면 이렇게 게으를 수 없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랜 수련생 D를 모셔와 한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그 기간 D는 저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떠날 때 저는 ‘다음에 오시면 더 잘 모셔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의사인 C 수련생이 갑자기 찾아와 병업 중인 D를 데려왔습니다. D는 C의 이모였습니다. D는 막 병원에서 나온 상태로 생활이 전혀 불가능해 누워만 있어야 했고, 앉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법공부를 하며 정성껏 돌봤습니다. 우리 밭에서 딴 신선한 참외를 한 입도 먹지 않고 D에게 가져다드리니 “너무 달고 사 먹는 것보다 맛있다”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D와 저는 마음이 잘 맞았습니다. 화장실에 가실 때는 안아서 모시고, 작은 의자와 요강을 준비해 도와드렸습니다. D가 “제가 폐를 끼치는군요”라고 하자 저는 “우리 집에 오셨으니 그런 마음은 내려놓으세요”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세 명의 여자 수련생이 와서 함께 법공부를 하고 우리 집에서 묵었습니다. 그런데 D가 씻기를 꺼려 몸에서 냄새가 나자 그들은 다음 날 돌아갔습니다. 저는 ‘이야말로 날 시험하는 것이구나.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지 보려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D의 얼굴을 씻기고 몸을 닦아드리며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D는 법공부만 하고 마음을 열고 교류하려 하지 않았으며 말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는 또래의 다른 노년 수련생들을 찾아 함께 모여 법공부와 교류를 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D는 여전히 말이 없었습니다. 열흘째 되던 날, D는 온돌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게 됐고, 저는 격려하며 함께 온돌에 기대어 연공했습니다. 한 달여가 지나자 D는 이웃집에 놀러 갈 정도로 좋아졌고, 저는 이웃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도록 권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어느 날 D의 아들이 어머니를 보러 왔는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 우리 엄마가 밖에 걸어 다니네!”라고 놀라워했습니다. 두 달이 채 안 돼 D는 병업 고비를 넘겼고, 저는 삼륜차로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때가 명절이 가까워질 무렵이었습니다.

섣달 그믐날쯤, D가 C 수련생 집에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었는데, C의 손자가 장난을 치다가 D를 밀어 넘어뜨렸습니다. 그 바람에 그녀는 다시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됐습니다. C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와보세요, 일이 좀 생겼어요”라고 했습니다. 가보니 그런 상황이었고, C는 제가 즉시 D를 집으로 데려가길 바랐습니다. 저는 좀 난처해하며 “며칠만 시간을 주세요. 지금 명절이라 먼저 친척들 인사를 빨리 다녀온 후 바로 모시러 오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C는 다소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저는 빨리 일을 끝내고 돌아와 D를 모셔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후 저는 다시 D를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마을 이웃 몇몇은 “우리 마을엔 약국 하나 없는데, 만약 응급상황이라도 생기면 책임질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D와 교류하며 “정(情)에 대한 집착이 너무 크지 않나요? 조카딸을 도우려는 마음이 지나쳐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빨리 정을 내려놓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정념을 발했습니다. 한 달 후 D는 다시 좋아졌고, 아들이 와서 집으로 모셔갔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제가 뭘 했겠습니까? 그저 함께 법을 읽고 생활을 좀 돌본 것뿐입니다. 제게 무슨 큰 능력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첫 생각이 다른 사람을 위했을 뿐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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