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집착을 분석하고 명확히 하여 사람에서 벗어나자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느 날 사부님 설법을 공부하다가 다음 구절을 읽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과학, 그것은 아주 천박하다. 과학자 자신의 말이 아직 발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대단히 믿고 있으며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여기고 있다. 이런 인식은 현대사회의 많은 이론과 서양종교에, 천주교나 기독교를 관계치 않고, 포함되어 있다. 당신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당신들의 주(主)가 아니라, 당신들이 진정하게 믿는 것은 과학이다. 말하자면 당신들의 뼛속까지 당신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과학이다. 반면, 당신들의 종교는 단지 한 가지 표면형식인, 사람의 문명적 행위로 되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이 과학, 그것 역시 하나의 종교이다. 그것은 대단히 완벽한 종교이다.”(유럽법회 설법) 이 중에는 “말하자면 당신들의 뼛속까지 당신들이 진정으로 믿는 것은 과학”이라는 구절이 있다.
내 사유는 ‘뼛속까지’라는 글자에 고정됐고, 마음속으로 ‘설마 내 뼛속 깊이 믿는 것이 과학이란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줄곧 한 가지 관념이 날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대법을 믿지, 과학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매번 사부님의 이 방면에 관한 법을 공부할 때마다 현대과학이 나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번에 사부님 법 중의 ‘뼛속까지’라는 글자가 단번에 날 일깨워 주었다. 나는 이 방면에서 진지하게 사고하고 안으로 찾는 동시에, 계속해서 사부님의 「미국서부법회 설법」, 「스위스법회 설법」, 「캐나다법회 설법」 등 기타 각지 설법을 배독했다.
그중 「미국서부법회 설법」에 이런 한 단락의 법이 있다.
“제자: 저희 많은 사람이 과학을 연구하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대법을 배우는 많은 사람이 고급 지식인이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이 과학이 양성한 것이다. 사실 현재의 모든 사람은, 학교에 다녔다면 곧 과학이 양성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과학은 이미 인류사회의 각 분야를 관통하고 있고 당신이 사용하는 일체, 접촉하는 일체, 당신의 눈으로 본 일체는 모두 다 이 과학이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환경을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날 수 있다면 방금 당신이 제기한 이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사회는 모두 이러하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일을 잘하면 된다.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일과는 별개의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 수련 중의 경지, 당신의 수련상태는 일 중에서 체현될 것이며 더욱 잘할 것이므로, 당신을 어디에 갖다 놓아도 모두 좋은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과학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대법을 배운 후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리이고 인류의 현재 과학은 대법과 전혀 비길 방법이 없음을 발견한다. 이 자리에 앉은 대법제자들, 당신들이 알고 있는 우주의 상황과 진리는 지금의 인류 과학을 훨씬 넘어섰다. 최첨단의 것도 당신들과는 비할 수 없다. 인류보다 높은 것은 속인으로 하여금 영원히 알지 못 하게 한다. 속인은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준 이 우주의 상황을 영원히 탐구(探測)해 내지 못한다. 당신이 어떤 사업에 종사하든지 당신은 모두 대법을 수련할 수 있다. 법에 대한 당신의 이해가 점차 깊어지면, 당신 자신의 사상은 자연히 전변(轉變)이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진리 앞에서 다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문제를 똑똑히 말해야겠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모두 속인의 집착을 하고서는 원만에 이를 수 없다. 과학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당신들이 각기 다른 속인의 마음을 갖고 입문할 수는 있지만, 수련 중에서 모두 제거해 버려야 한다.”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법을 얻기 전에 나는 이미 과학이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에 들어왔을까? 나는 입문할 때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맞으면 나는 믿겠다.’ 이 생각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문제가 있다고 의식한 적이 없었고, 여러 해 동안 여러 차례 근본 집착을 찾았지만, 이 말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근본 집착을 찾을 때도 교류하는 수련생들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나 자신도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바로 2025년 설 기간에 한 수련생 집에 갔는데, 거기서 한 수련생과 교류할 때 또 이 말을 했더니, 수련생이 즉시 “그게 바로 근본 집착이에요!”라고 했다. 당시 나는 놀라면서도 그녀 말이 맞다고 믿었다. 하지만 왜 그런지는 명백히 알지 못했다.
수련생 집에서 돌아와 나는 반복해서 진지하게 자신을 찾아보았다. 법을 얻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법공부 후에는 이미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법을 얻기 전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법을 얻은 후에는 또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내가 천천히 차분하게 법으로 가늠하자, 점차 진정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첫째, 이 말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과학을 믿는다는 것이다. 신앙은 먼저 마음을 성실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말에는 성의가 없었다.
둘째, 내가 이 몇 년간의 수련을 돌이켜보니, 거의 모두 이 과학의 그림자가 있었고, 많은 집착심이 반복적으로 제거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많은 난관에도 이 과학의 요소가 침투돼 있었다.
셋째, 나는 일찍이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에서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몇 사람이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하는데, 모두 오체투지하며 매우 경건하게 무릎 꿇고 절했다. 나는 당시 갑자기 생각했다. ‘나는 대법 사부님께 이렇게 경건한가?’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어서 내가 진심으로 사부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고 느꼈다. 나 자신도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넷째, 내가 발정념으로 내 뼛속 깊이 각 층 공간 중의 모든 과학 요소와 공산 사령의 요소를 철저히 청리하고 멸할 때, 내 천목으로 보았고 동시에 선명하게 느꼈다. 내 신체에서 갑자기 층층의 검은색 인간 형상의 업력이 솟구쳐 나왔는데, 정말 많고 많아서 아주 오랫동안 청리했다.
다섯째, 나는 마음속으로 더없이 진실하게 생각했다. ‘내가 입문할 때의 그 일념은 잘못됐다. 법공부한 지 20여 년 만에 나는 마침내 깨어났다.’
시시각각 자비로운 보호를 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한 걸음 한 걸음 나를 이끌어 법 중에서 근본 집착을 찾게 하셨고, 또 법 중에서 한 걸음 한 걸음 근본 집착을 타파하도록 안배하셔서 내가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게 하셨다.
한 가지 보충할 점이 있다. 어느 날 사부님의 설법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배독할 때 그중 한 단락의 법이 있었다. “또 하나, 사람의 사유에는 어떤 순서가 있게 마련인데, 이 순서 역시 적용되지 않으므로 당신은 우주에 대해 전혀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이 단락의 법에서 나는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사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적용되지 않는 순서(절차)도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생각했다. ‘왜 많은 때에 무슨 일이 있으면 자각하지 못한 채 어떤 사고의 길을 따라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안 되며,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를까?’ 아마도 바로 이 사유의 절차도 관건적인 작용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또 발정념으로 이 사유의 절차를 청리했다. 과정 중에 서늘한 기운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느꼈고 머리가 많이 맑아짐을 느꼈다.
그 후 사부님께서 꿈속에서 일깨워주셔서 나는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은 개인이 최근 한동안 법공부할 때 깨달은 것이다. 바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8/10/49813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8/10/4981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