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집착심과 당문화 제거

글/ 중국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1997년에 대법 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법을 배운 건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5년 전, 남편(수련생)이 심장병이라는 형식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그 일은 마치 날벼락 같아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매번 일부 대법제자가 생명을 잃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몹시 애석하게 여기지만, 그 자신은 정말로 정진하지 못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대법을 수련했으니, 이것이 바로 보호우산이라며, 이후부터 사부가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은 참으로 강렬한 것이 아닌가? 이런 마음으로 수련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보호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어디 수련인가?”(각지 설법12-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사부님 말씀이 바로 나를 두고 하신 게 아닐까? 이게 바로 근본적인 집착을 버리지 못한 상태가 아니겠는가? 나는 그것을 깨닫고 반드시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집착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법을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배우라고 하셨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을 많이 배워야만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고, 이성적으로 법을 인식할 수 있으며, 법리를 깨닫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돌이켜보면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그는 세 가지 일을 다 하긴 했지만 법공부를 소홀히 했고, 심성도 좀처럼 제고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겼을 때도 법의 기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았고,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시는 건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이다! 이 뼈아픈 교훈으로 나는 근본 집착을 버리게 됐다. 이 교훈은 너무도 크고 무거웠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데에는 나도 큰 책임이 있다. 남편은 외지에서 일하고 있었고, 한 달에 며칠만 집에 와서 쉴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단체 법공부 형식에 따라 남편이 법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지 못했고, 남편은 오로지 장사하고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다. 나는 남편의 집착을 보고도 사부님의 법으로 선의를 갖고 깨우쳐주지 않았고, 여러 차례 중공 악당의 당문화 표현 방식으로 꾸짖듯이 말해서 그가 문제를 겪을 때 나와 소통하려 하지 않게 만들었다. 정말 뼈저리게 후회된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 절실한 때에 그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3년 전,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아들 집으로 와서 새로운 수련 환경에 들어가게 됐다. 며느리는 외동딸로 어려서부터 도시에서 자라 생활 수준이 우리집보다 높았다. 나는 농촌에서 장사하며 살아왔다. 지역이 다르고 생활 습관과 음식 취향도 달라서 최선을 다했지만 가끔은 며느리를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한번은 옷을 옷장에 넣을 때 주름이 생겼고 그 일로 며느리가 기분이 나빠졌다. 나는 아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아들이 그 이유를 말해줬다. 그러자 나는 아들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는 너희가 바쁜 줄 알지만 내가 혼자서 장보고, 밥하고, 아이 보고, 아기 빨래하고, 청소까지 네 사람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있는데, 나에게 화를 내다니, 그 애는 정말 너무 배려심이 없어.” 그 순간 내 안의 억울함, 원망, 질투심, 쟁투심이 모두 드러났다.

바로 내가 이런 사람의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런 환경을 안배해 주신 것이다. 내 안에는 아직도 두려움, 보답을 바라는 마음, 듣기 좋은 말만 좋아하는 마음, 가족에 대한 집착, 과시심, 환희심, 색욕, 좋은 일만 바라는 마음이 있다. 나는 이런 마음들을 전부 버려야 한다. 그것들은 내가 아니다.

평소에 나는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고됨 속에서도 기쁨을 느꼈다. 가끔 며느리가 나보고 요리를 못 한다거나, 집을 지저분하게 만든다거나, 물건을 엉뚱한 자리에 뒀다는 등의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말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혹시나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 집착이 드러나면 나는 곧바로 그것을 배척하고 없애려 했다.

또 한번은 내가 선의로 한 말을 며느리가 악의로 오해해서 며느리가 아들과 다툰 적이 있었다. 나중에 내가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더니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는 반드시 표준중국어를 배워야 해요. 표준중국어를 해야만 이런 오해를 없앨 수 있어요.” 나는 “나는 60이 넘었는데 어떻게 표준중국어를 하겠느냐?”라고 답했다. 아들은 “어머니는 말이 빠르고, 어조가 특별히 무겁고, 표현 방식과 말할 때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어머니의 선의를 느끼기 어려워요”라고 했다. 아들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야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이게 바로 당문화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게 습관되어 있어서 어떻게 인식할 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아들의 입을 빌려 나를 깨우쳐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좋은 수련 환경을 안배해주시고, 며느리가 나의 심성을 높일 기회를 만들어준 것에 감사드렸다.

나는 내가 아직도 많은 당문화의 표현이 있음을 깨달았다. 말을 가로채기 좋아하고, 거짓말하며, 반문구나 의문구를 많이 쓰고, 일을 진지하게 하지 않고 얼버무리는 태도 등이다. 나는 반드시 이런 당문화의 독소를 모두 없애고 전통적인 인간의 바른 행위로 돌아가야 한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해내고 원만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며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의 도움에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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