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베이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제자의 사명은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원하는 것이다. 중생 구원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자신의 수련이 바로서야 한다. 오직 자신이 먼저 안정되어야만 중생을 더 잘 구원할 수 있다.
개인수련에서 정법수련으로 전환되면서 나는 줄곧 안정되게 걷지 못했고, 넘어지고 부딪치며 반복적으로 박해당했다. 이런 상태는 대법제자가 가져야 할 상태가 아니며, 사부님이 원하시는 것도 아니고, 중생 구원에 반작용만 일으킨다. 나는 줄곧 이런 피동적 상태를 바꾸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부님께서는 무량한 자비로 늘 이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제자를 일으켜 세우시며 격려하고 가르치신다. 사부님은 바로 제자를 성취시키려 하신다. 이제 나는 깨달았다. 발생한 모든 박해는 단지 사부님께서 장계취계하신 것이다. 이 박해를 이용하시어 제자가 반복적으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찾고 이를 보완하도록 하여, 최종적으로 제자 스스로 바르고 안정되게 걸으며 성숙할 수 있게 하셨다.
왜 반복적으로 넘어지는가? 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첫째는 법을 잘 배우지 않은 것이고, 둘째는 명혜망의 수련생 교류를 중시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이 안정되게 잘하도록 하시려고 우리에게 법공부와 교류를 안배해 주셨음을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예전의 법공부는 완전히 형식에 치우쳤고, 표면적으로는 매일 책보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법을 얻지 못했다. 명혜망은 거의 보지 않았고, 일주일에 한 번 명혜주간을 보는 것도 끝까지 진지하게 보지 못했으며, 역시 임무 완수하는 식으로 대충 훑어보기만 했다. 나는 모든 교란을 배제하고 이 두 가지 일을 잘하겠다는 일념을 굳혔다.
두 방면에서 착수: 법공부 시간과 품질 보장
법공부 시간: 지금 이미 이렇게 여러 해 뒤처졌고, 20여 년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으며, 그 많은 사부님 설법을 당시에 모두 진지하게 잘 배우지 않았다. 지금 나는 서둘러야 하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활용하여 손실을 만회해야 한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일을 마치면 바로 앉아서 법공부를 한다. 걸어 다니거나 사람을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도 모두 이용한다. 당일 외울 법을 휴대폰에 찍어서 여유 시간을 이용해 법을 외운다.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전법륜(轉法輪)’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작은 소리로 한 강(講)을 읽으며, 나머지 시간은 밤 12시 전 세계 전체 발정념 시간까지 모두 ‘전법륜’ 암기에 사용한다. 매일 한 문장이나 몇 문장씩 외우고 매일 계속해서 앞으로 외워나가면서 분량이나 속도에는 얽매이지 않으며, 오직 법을 얻는 것에만 중점을 둔다. 낮에는 사부님의 기타 저서들을 배우고, 약 1시간(일반적으로 30~40분)을 내어 당일 명혜망 수련생 교류 문장을 진지하게 읽는다.
법공부 품질 보장: 법공부가 형식에 치우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 방법을 채택한다. ‘전법륜’을 매일 한 강씩 작은 소리로 읽어 완독하고, 더 이상 묵독하지 않는다. 예전에 묵독할 때는 모르는 사이에 잠들어버렸고 책도 떨어뜨렸다. 매일 ‘전법륜’ 한 강을 모두 읽은 후 이어서 외운다. ‘정진요지(精進要旨)’, ‘정진요지2’, ‘정진요지3’, ‘홍음(洪吟)’부터 ‘홍음6’까지, 각 편의 문장을 반복해서 수십 번, 최소 열 번 이상 본다.
일부 경문 암기는 주로 자신이 필요할 때 수시로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곳과 관련된 경문들을 대상으로 하며, 주로 ‘정진요지’와 ‘홍음’ 그리고 신경문들이다. 이 모든 경문은 매일 자전거를 타는 시간을 이용해 암송하며 학습한다.
하루는 어떤 사오한 사람이 그의 것을 나에게 보여주려 했고, 나는 감히 볼 수 없으며 보기 두렵다고 말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단번에 튀어나왔다. “더는 사악이 법 공부가 부족하고 사람의 마음이 중한 수련생을 이용하여 퍼뜨린 난법하는 난귀들의 가짜 경문을 보거나 전하지 말아야 한다. 정념정행(正念正行)을 유지하고, 두뇌를 청성(淸醒)하게 하여 이지적이고 전면적으로 세인을 구도하자.”(정진요지3–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바로 내가 매일 암송하는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세인을 구도하자’ 중의 사부님 설법 내용이었다. 착실하게 배워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쉽게 사악의 속임수에 넘어갔을 것이다. 정말 위험했다!
여기서 수련생과 법 암송 방법을 나누고자 한다. 사부님께서 최소 열 번 ‘정진요지’를 읽으라고 하신 말씀에서 영감을 받아, 예를 들어 내가 사부님의 어떤 경문을 암송하고 싶으면, 이 경문을 반복해서 구하는 마음 없이 수십 번, 수백 번을 보고, 눈을 감으면 뇌리에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 경문을 휴대폰으로 찍어두고 길에서 가끔 외우다가 막힐 때 휴대폰을 꺼내 대조해 보면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말씀하셨는데, 단지 자신이 잘 배우지 않았을 뿐이다. 예를 들어 박해가 발생하는 원인과 해결 방법에 대해 사부님은 20년 전에 이미 지적하셨다.
“이 문장은 잘 썼으며, 인식은 더욱 잘하였다. 일부 수련생은 법 공부를 중시하지 않고, 대법(大法)수련생 속에서 나타난 무슨 정황이든 늘 모두 속인의 마음으로 인식하는데, 맹목적인 숭배에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며, 사실 이런 사람 마음의 표현은 수련인과 속인의 진실한 체현이다. 또한 자신에게 수련 중의 허다한 곤란을 가져올 수 있어, 법을 실증하는 것과 수련생 간의 법에서의 상호 협조(協調)를 교란한다. 가장 뚜렷한 것은 허다한 수련생들이 박해를 엄중하게 받는 것 역시 자신의 사람 마음이 너무 중하며, 정념이 부족하여 조성된 것이다. 해결하는 방법은 반드시 법 공부를 중시하고, 착실하게 법 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 대법은 대궁을 바로잡을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는데, 그럼 무엇 때문에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게다가 이 기연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다!”(정진요지3-사람 마음을 제거하자)
명혜망을 진지하게 보지 않는 것도 자신이 넘어지고 정법 노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다. 만약 정법 초기부터 내가 명혜망을 중시했다면, 나는 반드시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우회로를 걷지 않았을 것이다. 한 사람의 깨달음은 한계가 있고, 한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으며, 한 사람의 경험은 한계가 있다. 전 세계 대법제자들의 경험과 지혜가 명혜망에 집약되어 있으니, 이는 무한한 것이다. 수련생들의 문장을 읽는 것은 수련생들과 함께 경험하고 공동 성장하며 지혜와 정념을 더하는 과정이다. 수련생들의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차이를 찾아냈고 부족함을 발견했으며, 무수한 계발을 받았고 정념을 더했으며 지혜를 더했고, 더욱더 신사신법하게 됐으며 더욱 사부님께 감사하게 됐고, 세 가지 일을 더 잘하게 됐다. 명혜망은 대법제자의 수련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일부분이다. 진심으로 모든 수련생이 직접 명혜망에 접속하여 매일 명혜망을 보고 매일 명혜망에서 교류하며 공동 제고하여 함께 집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수련생들이 명혜망을 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는데, 사실 당신이 명혜망을 매우 중시하여 매일 반드시 명혜망을 볼 경우 명혜망은 매우 쉽게 열린다.
정념이 이미 생겼고, 정념이 자라고 있다. 사람에서 벗어나 중생을 구원하는 중에서 대법제자의 일체를 원만하게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부는 박해 중에서 대법제자를 보호하고 있지 속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사존께서 베푸신 무량한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성숙하고 안정되게 걸을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는 너무나 크고 많은 것을 지불하셨습니다! 기대에 부응하는 대법제자가 되어 용맹정진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부님을 도와 세인을 구원하고 사명을 원만하게 완성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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