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청년 대법제자: 더 이상 휴대폰에 중독돼서는 안 된다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릴 때부터 법공부를 해왔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 때문에 외할머니께서 저를 대도시를 떠나 타지에서 공부하게 하셨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는 어머니와 떨어져 살게 됐습니다. 떠나기 전 어머니는 매일 최소한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하라고 당부하셨고, 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타지에 간 후 형식적으로는 법공부를 멈추지 않았지만(다행히도), 초등학교 말부터 중학교까지 휴대폰과 인터넷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 후 먼저 이가 부러지고 다음엔 엄지가 골절됐습니다. 모두 잘 회복됐지만, 여전히 휴대폰 중독을 끊으려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어느 날,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와 작은 산을 거닐던 중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저희는 재빨리 처마 밑으로 피해 비 한 방울도 맞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법을 읽어주시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귀가 울리며 소리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다리 감각도 없어지고 호흡도 곤란해졌지만 머리만은 비교적 맑았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를 반복해서 염하며 사부님께 청하고, 발정념으로 구세력을 부정했습니다. 다소 완화됐지만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 구원을 간청하며 다시는 휴대폰에 빠지지 않겠다고, 돌아가면 즉시 끊겠다고 말씀드렸지만 상태는 그대로였습니다.

그때 저는 ‘만약 사부님께서 제 수명을 여기까지 정하셨다면 사부님 안배대로 따르겠습니다. 사부님의 안배는 항상 최선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구세력의 안배라면 제가 어떻게 되든 인정할 수 없고 그들의 길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구세력은 저를 건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고, 이전의 저 역시 수련 과정의 모습이며 그 자체가 구세력이 만든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고 구세력도 부정하며 그들의 길을 걷지 않겠습니다. 더욱이 저는 아직 구해야 할 중생이 있고, 그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발정념을 하여 저를 사부님 요구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영체를 제거하고 구세력을 부정했습니다. 결국 서서히 회복돼 10분 후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활기차게 뛸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제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며, 속인 기준으로는 심장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정말 크게 정신이 번쩍 들었고, 조금이라도 나쁜 생각이 올라오면 즉시 발정념으로 제거하고 조금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즉시 게임을 삭제했고, 매일 법공부할 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집중했습니다.

그 후 2년간은 제 상태가 비교적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느꼈습니다. 이 시기에 ‘무조건 대법을 믿어야 한다’는 점을 빠르게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았던 저는 어머니가 법을 읽어주실 때 마음으론 법이 좋다는 걸 알면서도 먼저 과학적인 관점에서 의문을 제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사부님 원말씀이 아닐 때는 반드시 “내가 이해하기로는”이라고 전제하시며 제 질문에 하나하나 인내심 있게 답해주셨습니다. 결국 책 전체를 봐도 의심할 부분을 찾지 못했지만, 이 고비는 결국 제 스스로 극복해야 했습니다.

산에서 겪은 일 후 저는 ‘정진요지2-미신을 다시 논함’을 배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믿는다는 걸 이해했는데, 예를 들어 물리학자는 어떤 공식을 맹신하고 이는 그 층차에서 진리일 수 있으니 문제없습니다. 아무것도 안 믿는다는 사람도 결국은 회의론 자체를 맹신하거나 실증과학 방법의 유효성을 맹신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우주 진리와 비교하면 매우 낮은 층차이고 반드시 옳지도 않습니다. 진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볼 때 책의 논리 관계를 의심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현대과학 가설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논리로 겨우 유지되며 허점도 많습니다. 책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두 믿음이라면, 회의론을 믿을까요 아니면 대법을 믿을까요? 사부님께서 제 몸을 수없이 정화해주시고 셀 수 없는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제가 알든 모르든 그게 가짜였을까요? 비교해보면 어느 쪽이 더 중요할까요? 이성적 경험으로 판단해도 절대 가짜가 아닙니다! 저는 수련해야 하고 사부님과 법을 믿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하시라는 건 하고 하시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속인 중에서는 모든 걸 의심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제 대법은 예외임을 알았습니다. 대법에 대한 의심은 의미 없고 이지적이지 않으며 제 생각도 아니므로 버려야 합니다. 이후 법공부할 때 어릴 때부터 배운 책인데도 그때 보지 못했던 많은 일과 이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전엔 한 번도 진상을 알린 적이 없었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입을 굳게 다물었는데, 여섯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연이어 중공 박해를 받았기에 학교에서 누구도 제가 대법과 관련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늘 조심했습니다. 당시 정념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념으로 상대를 설득할 자신이 없었고, 설득 못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선생님에게 고발당하는 위험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며, 진상 알린 뒤 중생의 업력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2 이후 조금 더 정진하고 정념도 생겼으며, 대법제자는 서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에서 진상 알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는 매번 진상 알리기 전 반드시 발정념하고, 일반적으로 중공 역사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파룬궁까지 설명했습니다. 매일 머릿속으로 설명 과정을 반복 시뮬레이션을 해 논리가 명확하고 모든 말에 근거가 있으며 법에 부합하고, 두려움·체면·과시심을 뿌리 뽑고 자비로 정을 대체했습니다. 이성에게 진상 알릴 때는 마음속 조금이라도 부정한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없애고, 확신이 없으면 일단 말하지 않고 스스로를 엄격히 다스리며 머릿속 나쁜 생각을 제거했습니다.

이후 기본적으로 몇 개 학급 절반과 두 명 선생님이 제 기본 진상을 듣고 인정했으며, 몇 명 학생은 삼퇴도 했습니다. 제가 “책을 보면 중공 거짓말을 완전히 증명할 수 있다”고 하자 한 명은 대법 서적을 한 번 읽고 공법의 신기함을 느꼈지만 계속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좋은 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또 한 명은 대법 서적을 두 번 읽고 수련을 결심했습니다. 저 역시 성적이 중위권에서 상위권으로 올랐고 전공에서도 큰 돌파를 이뤘으며, 많은 전공과 수련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그 시기엔 이틀에 한 번꼴로 사부님께서 하나의 이치를 깨우쳐주셨고,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빠르게 제고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1 여름방학 후 구세력이 저를 다시 휴대폰을 보도록 유혹했습니다. 중독에 사로잡혀 법공부도 전례 없이 끊어지고 진상 알리기도 거의 중단했습니다. 이후 한동안 휴대폰 인터넷과 마음 다잡고 법공부를 반복했습니다. 매번 원만을 이루고 수련해야 하며 제가 구해야 할 중생이 남아 있다고 결심하면 법공부할 때 사부님께서 제 몸에 들어온 많은 나쁜 것들을 제거해주시는 걸 분명히 느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휴대폰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됐는지 셀 수 없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수련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진실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련할 때와 안 할 때의 차이를 몸으로 강렬하게 느낄 뿐만 아니라, 이성적으로도 법이 없다면 우주의 크고 작은 입자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법이 없다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고, 세속에서 아무리 큰 성취와 지혜가 있어도 모두 법이 준 것입니다. 저는 평소 사고가 민첩하고 틀에 박힌 생각을 벗어나는 걸 잘 하지만, 사부님 요구대로 하지 않을 때는 생각이 굳어지고 멍청해지며 각종 집착에 쉽게 휘둘렸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지금 사회에서 자신을 잃고 휩쓸리다 보면 결국 사악하게 깨닫고 공산당 당문화에 이성이 흐려져 법을 인정하지 못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수련을 안 하면 아무도 저를 위해 소업해주지 않고 집착을 제거해주지 않으며 사상업도 없애주지 않습니다. 법의 지도와 깨우침이 없다면 진정한 생명의 보장도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이토록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매번 실수할 때마다 “이것도 수련 과정이다”라고 말하며 다음엔 잘하겠다고 맹세해놓고는 결국 또 휴대폰에 끌려 다닌다면, 이는 사부님을 속이고 우주의 중생들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렇다면 제 본래 세계 중생은 희망이 없고, 서약해서 구해야 할 생명과 그 뒤 우주도 모두 희망을 잃게 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면 일체가 모두 영(零)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그래서 사상업력과 감각이 저를 법을 믿지 못하게 하고 이성을 버리게 하더라도 제 주의식은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구세력이 만든 감각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회를 한 번씩 놓칠 때마다 외부 도움을 받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수차례 제가 자초한 업력을 감당해주신 걸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일어나 잘 수련해 손실을 만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책이 수련을 방해한다면 그야말로 득보다 실이 큽니다.

이 기간에 어머니와 산 오르던 때와 비슷한 일들이 몇 번 더 있었는데, 모두 제가 휴대폰을 보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후 다시 돌아오려 할 때 발생했습니다. 때로는 포륜(抱輪)할 때도 있었는데, 매번 저는 ‘다시는 휴대폰으로 생명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수련은 장난이 아니며, 매번 정말로 열심히 했더라도 다음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한 번은 ‘전법륜’에서 개광 부분을 공부할 때 책을 들고 무릎 꿇어 사부님께 욕망의 뿌리를 뽑아달라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온몸이 대법 에너지에 감싸였고 몸과 머릿속 수많은 족쇄들이 분명하게 제거되는 걸 느꼈습니다. 약 10분 후 비록 집착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제 남은 건 제가 조금만 더 버리면 심성을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인터넷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이미 분명하게 말씀하셨기에 대법제자는 이 방면에서 더 이상 잘못해선 안 됩니다.

“사람은 마치 용기와 같아서 무엇을 담으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담아둔 법은 바로 법에 동화된 것이며, 당신이 흙을 담으면 바로 흙이다.”(싱가포르법회 설법)

저는 속인의 글이나 견해는 사실상 매우 한정적이고 틀릴 가능성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정보를 얻어 뭔가를 획득하고 싶다면 왜 법을 배우지 않습니까? 법공부를 통해 스스로 얻는 게 훨씬 더 좋지 않습니까? 속인 세상에서 일이나 공부, 진상 알리기를 위해서는 전문 논문이나 1차 자료를 볼 수 있고 명혜망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인 인터넷 뒤에 뭐가 있는지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온갖 부체, 낮은 영체와 썩은 귀신들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으며 그 자체가 거대한 마귀굴 같은데 가짜 기공 서적과 같은 이치입니다. 수련자가 여기에 휘둘리면 오히려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이고 지상불(地上佛)·지상도(地上道)와 같은 원리입니다. 그들은 부체처럼 사람의 정화지기(精華之氣)를 빼앗아 사지를 무기력하게 하고 지혜와 민첩함을 빼앗아갑니다.

사실 업무나 학습을 위해서 또는 속인에게 진상 알리거나 자료 찾기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터넷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발점이 매우 중요하니 깊은 심연 위를 걷듯 신중하게, 호기심이나 집착에 틈을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상은 현재 제 층차에서의 이해일 뿐이며, 수련생 여러분과 함께 정진하고 비학비수하고자 합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6/24/49631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6/24/496317.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