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정법 수련이 이미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다년간의 수련을 통해 저는 질투심의 여러 표현 형태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겪은 몇 가지 일들을 통해, 다른 차원에서 제 안에 숨어있던 질투심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이 학교에서 막 돌아오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선생님은 제 아들이 학교에서 동급생을 부딪쳐 넘어뜨려 머리를 다치게 했다며, 학부모가 즉시 학교로 와서 이 문제를 처리하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저는 아들을 데리고 급히 학교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아들에게 당시 상황을 물어보니 아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하교 시간에 교실 밖으로 뛰어나가자, 아들도 함께 놀고 싶어 뛰어갔는데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면서 뒤에 있던 친구를 실수로 넘어뜨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위에 또 다른 친구가 넘어지면서, 아래에 깔린 체구가 작은 A라는 학생이 다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말했습니다. “엄마, 왜 선생님은 저만 부르시고 다른 친구들은 안 부르시죠?”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연공하는 사람이고, 나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돌보신다. 내가 겪는 일은 우연이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안으로 찾으라고 하셨으니, 분명히 내가 심성을 높여야 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라. 이 일이 우리에게 닥쳤다면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용감하게 마주해야 해. 우리 자신이 어디를 잘못했는지 찾아봐야 해. 만약 뛰지도 않고 장난도 치지 않고 질서 있게 줄을 섰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 엄마도 네가 무서울 거라는 걸 알아. 괜찮아. 우리 함께 마주하자.”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들의 긴장된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후 저는 아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선생님께 사과드리고, 해당 학생에게도 사과했습니다. 비록 A 학생의 머리에 출혈도 없고 혹도 생기지 않았지만, 그 부모님의 표정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고 병원 검사를 요구했습니다. 선생님도 병원에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연공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남을 먼저 생각해야 하기에 저는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함께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죠.” 병원에 가기 전, 우연히 국어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에게 “A 학생의 부모님이 기율위원회에서 근무하세요”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이상 없다고 했지만 A 학생의 부모님은 CT 촬영도 요구하셨습니다. CT 결과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모든 비용을 부담했고 A 학생의 상태도 지속적으로 살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진심이 전해졌는지, A 학생 부모님의 표정도 점점 누그러졌습니다. 이후 대화 중에 우리 아이가 A 학생을 직접 덮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분도 조금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계속 A 학생의 건강을 살폈고 이튿날 A 학생의 부모님은 아이가 괜찮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는 A 학생의 부모님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저와 아들은 마음속으로 계속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염하며, ‘나는 연공인이다. 어떤 일을 마주하든 선하게 해결해야 하며, 항상 타인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이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가지(加持) 속에서 선해(善解)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일이 지나갔지만 제 마음속에는 줄곧 조금의 불평이 은근히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가족들과 이 일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선생님에게도 책임이 있어. 아이가 어리고 장난치는 건 아주 정상적인 일이잖아. 선생님은 왜 질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한 거야? 왜 처음에 달리기 시작한 아이는 찾지 않고? 게다가 요즘 선생님들은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약하잖아. 기율위원회에서 일하는 학부모가 무서워서 선생님이나 학교가 고발당할까 봐 두려웠던 거고, 자기 돈은 쓰기 싫으니까, 배경도 없는 너를 끌어들여 병원비를 내게 만든 거야……”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제 마음속의 불평을 정곡으로 찔렀고 그제야 저는 제 마음속에서 은근히 작동하던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억울한 대우를 받고 공정하지 못한 취급을 당했다는 분개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 아니겠습니까? 제가 예전에 다른 사람을 괴롭히거나 빚을 진 적이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어찌하여 마음 뒤편에 이런 속인의 생각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까요? 겉으로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고 있지만 마음속 깊이 숨겨진 이 질투심이 제 정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 마음을 반드시 발견하고 파헤쳐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묻는 과정 속에서 저는 질투심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깊이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착실한 수련에 영향을 주고 우리의 심성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질투심을 제거하는 데 특별히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고 이후 수련의 과정에서도 사부님께서는 여러 일을 통해, 이익심과 색욕심을 제거하려는 과정에서 그 뒤에 숨어 있는 질투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내려놓기 어려운 어떤 집착심들을 깊이 파헤치려 할 때마다 그 뒤에는 어김없이 질투심의 그림자가 보이곤 했습니다.
한번은 외삼촌이 외할머니·외할아버지 댁의 철거보상금 중 2만 위안을 저희에게 보내왔습니다. 겉으로는 ‘나는 수련인인데 이 돈을 받으면 덕으로 갚아야 하는 것 아닌가?’하고 받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지만, 어머니(수련생)와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불평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철거보상금은 이보다 훨씬 많을 텐데, 우리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가장 오래 모셨고, 가장 많은 정성을 들였는데 외삼촌네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이 정도 주면 많이 준 거라고 생각하겠지……’ 이처럼 온갖 불평의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저는 겉으로는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전혀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저는 이익심을 진정으로 내려놓게 되었고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사람의 정과 이치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정으로는 ‘어르신을 더 많이 돌보았으니 더 많이 받아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인간 사회의 법으로는 ‘자식이면 마땅히 상속권이 있다’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저는 한순간에 자신이 쓰고 있던 판단 기준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숨겨진 질투심을 파헤치고 나서부터는 더는 이 이익심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긴 수련의 길을 걷는 동안 종종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곤 합니다. 정법 수련의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제가 쓴 이 수련 체험이 수련생 여러분과 서로 격려하고 함께 정진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부님의 자비롭고도 고생스러우신 제도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층차의 한계로 부적절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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