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법을 배우지만 법을 얻지 못하는 문제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늘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에서 다음 부분을 공부했다. “많은 사람이 고층차로 수련하려 하는, 이런 생각이 있고 이런 소원이 있으나, 수련에서 법을 얻지 못한 결과 매우 큰 곤란이 조성되었으며, 또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 예전에 이 부분을 공부할 때, 나는 줄곧 이것이 다른 사람들, 즉 다른 기공을 연마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법의 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는 관계없다고 여겼는데, 나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고층차의 법이므로, 나에게는 이런 상황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최근에야 사실 나 자신도 이 방면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10여 년 전을 회상해보면,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처음 외울 때는 많은 법리를 깨달았고, 또한 나에게 상응하는 우주와 층층의 몸이 사부님에 의해 바로잡히는 것을 느꼈다. 인상이 매우 깊었고 또한 매우 신성했다. 하지만 점점 익숙해져서 책을 보지 않고도 외울 수 있게 된 후, 나는 이전의 상황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매우 익숙하게 외웠지만 머리를 거치지 않았다. 특히 첫 번째 강의를 외울 때 너무 익숙해져서 각 문장의 표면 의미를 모르는 상황에서도 암기를 완료할 수 있었고, 많아야 한 시간이면 되어 읽는 것보다도 더 빨랐다.

예전에 내 주변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더욱 빨라서 40분이면 한 강의를 외웠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이렇게 빨리 외우는데 법리를 깨달을 수가 있나요?” 그녀는 깨달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녀는 또 한참 설명했는데, 법리를 깨닫지 못해도 그녀의 수련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식의 말이었다. 나는 그녀가 한 말을 반신반의했다. 왜냐하면 나는 자신의 이런 상태가 늘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또 매우 큰 난을 겪게 됐고, 사부님의 일깨움과 안배 하에 매우 어렵사리 이번 난을 통과한 후, 나는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늘 문제가 생기고, 늘 빗나가고, 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하는가? 내 어디에 문제가 생겼을까?’ 사실 이 몇 년간, 나는 간헐적으로 이와 같은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와 투쟁해왔지만, 매번 『전법륜』을 들고 천천히, 마음에 들어오게 외우려고 하면 짧은 시간만 견딜 수 있었고, 그 다음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것처럼 또 빨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천천히 배워서 매 문장의 표면상 의미를 알 수 있을 때는 일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고, 또한 몸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날 격려하시고 신심을 증강시켜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번은 매우 진지하게 암기했는데, 매 문장의 표면상 의미를 다 알았고, 두 강의를 외운 후 자신이 법으로 구성된 상태가 됐음을 발견했다. 전체 사유 상태가 완전히 변했고, 어떤 인간의 마음도 없었다. 이것이 아마 법입자의 상태일 것이다. 매우 신성했고, 나는 한순간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극락세계가 바로 “법이 구성해 낸 체현”이라는 한 층의 함의를 이해했다.

또 한 번은 법공부를 매우 진지하게 했는데, 배운 후 자신의 몸이 순금으로 된 것을 발견했다. 또 다른 일부 느낌도 있었는데, 예를 들어 발정념으로 공(功)을 동원한 후의 그 힘이 산을 가를 수 있는 상태 등이었다. 이런 상태들은 모두 나에게 매우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 후 명혜망에서도 몇 편의 교류 글을 보았는데,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온 후의 체득을 말한 것으로 나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 각종 방식으로 날 일깨워주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나는 여전히 사유에 이끌려 빠르게 외웠고, 빨리 외운 후에는 이 문장의 의미가 아직 반영되지도 못했는데 다음 문장이 이미 입에서 튀어나왔다.

사부님께서 또 수련생의 입을 빌려 일깨워주셨다. 한번은 법공부 팀에서 어떤 수련생이 법을 베껴 쓰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매 문장을 수십 번 읽어야 펜을 놓는다고 했다. 이 수련생이 또 말했다. “법의 지도가 없으면 어떻게 수련하겠어요!” 나는 또 생각해보고 사부님의 설법과 대조해보니 자신이 헛배운 것 같았다.

그 후, 나는 집에서도 법을 베껴 쓰기 시작했다. 나는 결심했다. ‘반드시 주원신(主元神)이 법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법을 베껴 쓸 때 이 문장의 표면적 의미를 나는 반드시 분명히 알도록 노력했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문장을 쓰지 않았다. 이렇게 하니 매일 많은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때로는 책이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을 보며 진실로 이것이 한 권의 천서(天書)라고 느꼈다. 비할 바 없이 귀중하고, 무수한 법리가 내게로 밀려왔다. 나는 사부님께서 하신 한 말씀이 생각났다. “어떤 제자는 말한다. ‘리훙쯔 대사(李洪志大師)님께서 말씀하신 한 마디 한 마디가 천기(天機)이며, 천기를 누설하신다.”(전법륜) 예전에는 나에게 이런 느낌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매일 법공부 속도가 매우 느렸으며, 늘 한 가지 요소가 법이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했다. 나는 줄곧 이런 요소와 대항했고, 내가 힘들게 정신을 집중해야만 법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왜인지 몰랐다. 15일을 배운 후, 나는 또 법공부 팀에 갔고, 나 자신의 법공부 체득을 조금 이야기했다. 한 수련생이 말했다. “당신은 부원신(副元神)과 주원신이 서로 인체 수련을 쟁탈하고 있으며, 당신은 부원신이 너무 강해요.” 나는 그때 한순간에 깨달았고, 순간 온몸이 진동을 느꼈으며, 온몸이 저리고 전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이는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려 문제의 소재를 지적해주신 것이고, 동시에 내가 깨달은 순간에 사부님께서 바로 나에게 이런 안배를 청리(淸理)해주기 시작하신 것이다. 이런 안배는 구세력의 안배다. 왜냐하면 구우주의 이치에 따르면 주원신은 근본적으로 수련 성취할 수 없기 때문에 구세력은 대법제자에게 준 체계 중에서 바로 부원신 수련을 배치한 것이다. 동시에 나는 또한 이런 부원신이 몸을 빌려 수련하는 배치를 결코 승인하지 않겠다고 강대한 일념을 발했다.

그 후 내가 법공부할 때, 또 세 차례 이런 상황이 나타났는데, 바로 주원신은 외우는 내용을 모르지만 그래도 틀리게 외우지 않는 것이었다. 매번 나타날 때마다 나는 멈춰서 이런 배치를 부정하고 동시에 발정념을 했다. 저녁이 됐을 때, 내가 집안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머리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되돌아서 나왔다. 아마 부원신이 보낸 것 같았는데, 대략적인 뜻은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부원신을 가리킴)가 외울 때 많은 좋은 점과 좋은 것을 얻기 때문이다’였다. 그래서 나는 부원신에게 말했다. “대법은 주원신 수련이며, 내가 주체이고, 너는 호법(護法)이다. 네가 만약 내 인체를 쟁탈해 수련해서 내가 수련 성취되지 못하면 너도 헛수련이다. 그리고 네가 내 인체를 쟁탈해서 법을 외우면, 설령 아무리 좋은 것을 얻는다 해도 내가 만약 수련 성취되지 못하면 너도 훼멸될 것이다. 그리고 네가 본 것이 반드시 진상은 아닐 수 있고, 구세력이 너로 하여금 보게 한 가상일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너의 층차도 유한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계속 교란한다면 나는 발정념으로 너를 반드시 청리할 것이다.”

그때부터 내가 법을 배울 때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교란하던 그 강대한 교란 요소가 없어졌고, 나는 걷거나 차를 타면서도 외울 수 있게 됐고, 또한 매 문장의 표면적 의미를 알 수 있게 됐다. 예전에 내가 법공부할 때 대항하던 요소가 바로 부원신의 교란이었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물론 가끔 내가 여전히 무엇을 배우는지 모를 때가 있지만, 예전의 그런 매우 큰 교란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런 것은 아마 사상업력이나 관념의 교란으로 조성된 것일 수 있다. 법공부 중에 나는 많은 법리를 깨달았고, 또한 자신에게 존재하는 많은 문제를 알게 됐다. 이런 문제를 사부님께서 하나하나 일깨워주셔서 깨닫게 해주셨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가르치시는 것처럼 매 걸음마다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수련에는 법의 지도가 있다. 만약 수련 중에 법리를 볼 수 없다면 반드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나는 일억의 대법제자(大法徒)가 있는데, 매 제자들 모두에게 나 이 주체가 친히 어떻게 수련하라고 알려주며 돌봐줘야 한다면, 당신들 개개인이 만나게 되는 문제를 모두 직접 나에게 문의한다면, 당신들 개개인의 공의 연화, 당신들 세계의 원만, 당신들의 소업, 당신들의 일체의 일체를 모두 나 이 주체가 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법정인간의 최후의 장애를 깨끗이 제거하기 전에 이것은 안 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많은 수련생들이 또 나를 만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 법이 있으므로 나는 비로소 당신들에게 법을 스승으로 모시라고 알려주었으며 이것이 근본적인 목적이었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이 한 부의 법, 그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 나는 나의 거대한 능력을 이 한 부의 법 안에 넣었다. 그러므로 이 한 부의 법은 당신들에게 무엇이든 모두 해줄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이해한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이끌어 수련시키실 때 매 단계마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문제를 만나면 제자가 사부님께 물어볼 수 있다. 지금은 구세력의 교란으로 인해 사부님의 주체가 이렇게 할 수 없으시므로, 사부님께서 법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신다. 그러므로 매 단계마다, 즉 매번 한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법으로 지도하는 것이 극히 관건적이다.

선종은 바로 법이 있음을 승인하지 않고, 법의 지도가 있음을 승인하지 않아서, 일조(一祖)부터 육조(六祖)까지는 괜찮았지만 그 후에는 안 됐다. 만약 대법제자가 법을 배웠는데 법을 얻지 못한다면 결과는 매우 엄중할 것이다. 선종의 교훈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이 짧은 한 달 안 되는 시간에, 나는 자신의 많은 문제를 보았는데, 사실은 법이 내게 일깨워준 것이다. 매 수련생이 있는 층차는 모두 다르므로, 서로 다른 법으로 수련을 지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법리를 볼 수 없기 때문에 밖으로 구하여 다른 사람이 있는 층차의 법으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하는데, 사실 이것은 바로 난법(亂法)이다. 또 어떤 수련생은 법리를 보고서 다른 사람의 수련을 지도하러 가는데, 자신이 본 법리는 단지 자신이 있는 층차의 것일 뿐이고 자신에게만 지도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예를 들어 수련생을 도와준다는 구실로 교류하고 도와주는 이것은 많은 협조인이 난법에 참여하는 원인이다. 또 작은 범위의 난법도 있다. 이전에 내 주변에 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매번 갈등을 만나면 나에게 와서 물었고, 나도 줄곧 그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는데, 마지막에 그녀는 여전히 세상을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사실 작은 범위의 난법을 한 것이다─문제를 만나서 자신이 법 중에서 답을 찾을 수 없고 수련생을 찾아가서 해결하려는 것, 이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그들이 한 말을 법으로 삼아 사용하는데, 이것은 난법 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사부의 가족으로 하여금 대법에 대해 죄를 범하게 하고 있다.”[정진요지3-무엇이 조사정법(助師正法)인가] 만약 법학습이 마음에 들어올 수 있다면 매 단계마다 모두 법 중에서 답을 찾을 것이고, 많은 문제를 모두 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 ‘각지 설법2-미국 플로리다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틀림없이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인데, 내 생각에 법 공부를 통해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구체적인 문제가 오로지 당신들이 법 공부만 하면 모두 해결될 것이다.”

빗나가지 않으려면 문제를 만나서는 바로 자신이 해결하고, 법공부 중에서 사부님께서 어떻게 일깨워주시는지 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사도(邪道)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또 예를 들어보겠다. 예전에 한 수련생이 글을 썼는데, 많은 사람이 법을 배우지만 뭘 배우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서, 그는 한 가지 예를 들었다. 수련생에게 “천목 층차를 결정하는 세 가지 요소는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 글을 본 때는 바로 법을 배워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던 때였다. 나는 힘들게 반나절을 생각해서 두 가지 요소를 생각해냈지만, 세 번째 요소는 뭔지 몰라서 생각해내지 못했다. 나는 또 의아했다. ‘나는 법공부를 어떻게 한 것인가, 이걸 어떻게 모르지? 그저 지정 좌석에 앉아있었을 뿐이라는 이것이 날 말하는 것인가? 사부님께서 명확히 말씀하신 것을 왜 이렇게 많이 모르지, 이상하다!’

그 후 보름 뒤, 나는 법을 배우면 마음에 들어왔고, 마침 또 ‘천목(天目)에 관한 문제’를 외웠다. 외울 때 나는 자신에게 매 문장의 표면 의미를 반드시 알 것을 요구했다. 내가 다시 이 작은 절을 외운 후, 많은 것을 깨달았다. 무엇을 천목을 연다고 하는가? 천목 층차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소, 사람이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 천목으로 어떻게 사물을 보는가, 세간법(世間法) 천목 층차, 출세간법(出世間法) 천목 층차 등등등등. 사부님께서 모두 명명백백하게 써주셨는데, 예전에는 마치 보지 않은 것 같았다. 여전히 방금 천목 문제로 예를 들어 말하면, 예전에 매번 천목을 말할 때면 나는 늘 ‘서유기’의 이랑신이 생각났고, 천목은 바로 앞이마 그 부위에 세로로 된 눈이 하나 있는 것이라고 느꼈다. 다만 수련인은 다른 공간의 앞이마에 세로로 된 눈이 하나 있고, 이 눈이 바로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천목이며, 우리가 사물을 볼 때 그것으로 본다고 생각했다. 이제야 내가 ‘서유기’의 이야기로 대법의 천목을 연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법 중에서 나에게 나타내준 천목 열기는 송과체에서부터 앞이마까지 하나의 통로를 열어 송과체가 직접 통로를 통해 밖을 내다 보게 하는 것인데, 물론 이것은 세간법의 일반적인 상황이다. 예전에는 정말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상상으로 법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상황은 아직 매우 많은데, 지금은 모두 하나하나 사부님에 의해 바로잡히고 있다. 그리고 나는 또 발견했는데, 만약 정말로 법리를 볼 수 있다면 법의 요구에 따라 견지하고, 심성을 지키고, 집착을 버리는 것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배후에 법의 내포가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 몇 편의 명혜망 교류 글은 모두 법공부가 마음에 들어와야만 하는 것과 주원신 수련의 문제를 언급했다. 수련생 여러분이 참고로 볼 수 있고, 법공부 때 아직 정신을 집중할 수 없는 수련생들에게는 아마 하나의 경각 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똑똑히 법을 외워 온몸과 마음이 대법으로 가득하다
자신에게 묻다, 수련을 엄숙하게 대했는가?

개인적인 체득이고 층차가 유한하므로,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27/49548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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