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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로 도를 깨닫고, 대법으로 사람마음을 개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 5월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한 노년 대법제자입니다. 퇴직 몇 년 전에 어머니의 병환으로 부모님이 제 집에 오셔서 살게 되었는데, 지금 두 분 모두 90세에 가까우십니다. 저는 퇴직 후 대부분의 시간을 거동이 불편하고 완전히 자립할 수 없는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며 보내고 있습니다.

예상치 못하게 이 가정환경이 제 수련 길에서 가장 넘기 어려운 관문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사부님의 대법이 있어 제 마음의 매듭을 계속 풀어주셨고, 고통과 짜증, 행복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이 효도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노인을 모실 때 마음을 수련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크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착한 마음을 가진 소녀였고, 마음 깊은 곳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자녀가 되고 싶었습니다. 백 가지 선행 중 효가 첫째라는 전통 미덕은 제가 일찍이 실천하려 했던 목표였습니다. 특히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는 더욱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때로는 ‘진선인(眞·善·忍)’ 대법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었기에, 스스로 해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모시던 8년 동안, 저는 만족스러운 답안지를 제출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정 부모님을 모시는 데는 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것이 제 수련 길에서 가장 큰 난관이 되었고, 제 마성(魔性)이 여실히 드러나는 한편, 그 마성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수련 경험이 되었습니다.

1. 더러움을 두려워하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로는 부모님과 함께 지낼 기회가 거의 없었고, 명절에 집에 가더라도 며칠 머물지 못했습니다. 저는 항상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매일 함께 생활하면서 제 관념과 맞지 않는 일들에 견디기 힘들어졌고, 특히 아버지에 대해 점점 더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도처에서 코를 풀고 가래를 뱉는 등 위생 관념이 부족했고, 아무리 말씀드려도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최근에는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데나 소변을 보시고, 변기 안팎을 대변으로 더럽히는 등 집안을 매우 더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행동들은 저를 매번 화나게 하고 며칠씩 괴롭게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제가 보는 좋지 않은 것에 상응하는 좋지 않은 관념이 제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관념은 무엇일까요? 결국, 그것은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각종 인간적인 마음이었습니다. 만약 남을 먼저 생각한다면, 아버지가 노인이고 더구나 혼미한 상태임을 고려하여 그를 이해하고, 포용하며,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아버지의 행동이 저를 불편하게 하고 번거롭게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런 세월 동안 저는 늘 바깥을 향해 보며 타인의 잘못만 찾고, 제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 그 뿌리를 완전히 파내지는 못했습니다. 이 문제는 저를 깊은 사색에 빠지게 했습니다.

왜 저는 더러움을 두려워하는 이 관문을 넘지 못하는 것일까요? 더러운 것만 보면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솟아 도저히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더러움을 모르기 때문에 그는 대변도 감히 먹고, 그는 오줌도 감히 마신다.”(전법륜) “과거에 내가 아는 한 사람은, 그 말똥덩이가 얼어서 딴딴한데도 그는 아주 맛있게 갉아먹었는데, 그는 속인이 명백한 상태하에서는 겪어내지 못할 고생을 겪을 수 있었다.”(전법륜) 갑자기 깨달음이 왔습니다. 과거 다른 수행법의 스승들은 제자들이 업을 빨리 갚도록 제자의 ‘더러움을 두려워하는’ 부분을 차단시켜 고통을 통해 빨리 업을 갚게 했습니다. 더러움도 완전히 나쁜 것이 아니라 업을 소멸하는 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은 제가 명명백백한 상태에서 이 일을 꿰뚫어보고 내려놓으며, 동시에 이 부분의 업력을 없애고 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아 제고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전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있어 아버지의 행동을 다른 가족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행동이 저를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알리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얼마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지를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저를 깨우친 후, 저는 원한의 마음을 품고 다른 가족들에게 이런 일들을 더 이상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저를 향한 것이고, 제 수련을 위한 것이며, 제가 제고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제고하지 않고 이것을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이야기로 전한다면, 그것은 노인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구설수를 삼가야 한다’는 큰 금기를 어기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더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뒤에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이 있음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원망, 혐오, 차별, 통제 등입니다. 더러움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려면 더 깊은 층의 집착을 파내야 합니다.

2. 원망심

여러 마음이 뒤섞여 있을 때는 어떤 마음이 주된 작용을 하는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문제를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더럽다고 싫어하는 것은 표면적인 현상이고, 그 배후에는 더 깊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대변은 더럽게 보이지만, 저는 어머니의 대변에 대해서는 달랐습니다. 어떤 거부감도, 원망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7년 전, 어머니는 장 절제 수술을 받으신 후 장 기능 장애가 생겨 대변을 조절하지 못하고 모르는 사이에 흘러나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바지, 이불, 바닥, 화장실 등에 묻히시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대변을 처리할 때는 어떤 심리적 장벽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버지의 대변에 대해서는 그토록 혐오감을 느꼈을까요? 깊이 파고들어 보니, 제 마음속에 부모님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똑똑하고 능력이 있으며 마음씨 좋지만 성격이 강하고 권위적이셨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성격과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 원래 가정의 네 자녀 중 셋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농사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셨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 어머니가 기술을 배우라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배우지 않겠다, 배우면 다 내가 해야 할 텐데, 똑똑한 사람은 멍청한 사람의 노예다”라고 거부하셨습니다. 예전에 수동 면도기로 수염을 깎던 아버지에게 여동생이 전동 면도기를 사드렸지만, 사용법을 아무리 가르쳐도 배우지 못하셨고, 심지어 버튼도 누를 줄 모르셔서 결국 사용하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신체는 어머니보다 건강해 청력과 시력이 좋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좋지 않아 최근에는 혼미해지셨습니다. 반면 어머니는 요즘 크게 말해야 들으시고, 백내장이 있어 수술도 못하는 상태라 사람도 알아보기 어려우시며, 몸도 편찮으셔서 열흘에서 스무 날씩 누워계십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아버지의 일상을 챙기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건강하실 때 아버지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일을 쉽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아버지는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매우 크셔서 자주 저희에게 하소연하십니다. 아무리 위로해도 어머니의 마음은 풀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말씀은 유창하게 하시지만 일은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시고, 다른 사람이 가르쳐 드려도 고집을 부리며 듣지 않으십니다. 둘째 여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아버지와 자주 다투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제 머릿속에는 ‘어머니는 좋고 아버지는 좋지 않다’는 관념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런 관념의 영향으로 아버지를 싫어하고, 깔보고, 원망하며, 통제하려는 집착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원망하고 업신여겨서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일찍부터 아버지를 착하지 않고 잘 참지 못하는 분으로 인식했습니다. 여러 번 마음을 바로잡으려 했지만 며칠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계속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 오랫동안 법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대법을 배우면서, 생명은 이번 생만이 아니라 생생세세 윤회하며, 어떤 빚을 졌는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생에 한 가족으로 안배된 것은 주로 저를 성취시키기 위한 것이며, 제 심성을 제고하고 은혜와 원한을 마무리하기 위한 것이므로, 저는 이번 생의 다양한 역할의 성연(聖緣)을 저버릴 수 없습니다.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파헤쳐야 한다고 굳게 다짐했습니다.

3. 분별하는 마음

어느 날,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고 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바로 제가 좋고 나쁨을 분별하는 마음이 있어서 사람과 일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겼고, 그에 따라 마음에 편향된 파동이 나타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가짜 자아를 비워내, 모든 일이 자유자재하게 오가도록 하고 거부감이나 배척 없이,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고, 이것이 아름답고 저것이 추하며, 이것이 깨끗하고 저것이 더럽다는 등으로 뇌가 분석하거나 분별하지 않게 하고, 오직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잘 처리하기만 하면 됩니다. 외부 사물이 자신의 청정하고 신성한 마음을 교란하지 않게 하는, 이런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입니다.

이렇게 높은 기준을 자신에게 요구한 후, 그날 바로 체험했습니다. 소변이나 가래를 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아버지를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습니다. 부모님을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따뜻한 에너지가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았던 얼음덩어리를 녹였습니다. 순간 마음이 시원하고 통쾌했으며, 몸의 모든 세포가 자유롭고 편안하며, 조화롭고 기쁜 상태에 잠겨 있음을 느꼈습니다.

저를 이런 환경에서 청정무위의 경지에 도달하게 해주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어떤 관념도 없는 경지, 이런 상태에서 일하고, 마음에 기쁨과 분노, 원망과 책망 등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감정을 갖지 않는 이런 상태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4. ‘존중’에 대한 이해

마음속으로 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제가 진심으로 이루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에서는 왜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님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을까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평소 제 머릿속에 자라난 이기적이고 자신만을 위하는 불순한 생각들이 제 몸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정한 제 의지와 완전히 어긋난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좋지 않은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바로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며 오랫동안 이런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노인을 존중하겠다는 말은 실천할 수 없는 공허한 말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비록 실제로는 부모님을 도왔지만, 내면의 고통과 번뇌는 제거할 수 없었고, 부모님과의 언어적 충돌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모를 모시는 자녀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왜 우울해지고 심신이 소진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의 고통을 버리지 못한다면, 장기간 억압되고 왜곡된 상태에서 신체와 정신 상태가 점점 나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망과 미움 없이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며 기쁨에 도달하는 것은 요원할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바뀐 후, 마음이 가벼워지고 정신도 맑아졌습니다. 예전에 저는 ‘존중’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사람이 대인관계에서 잘 행동해야만 존중받을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존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 말은 다른 사람이 존중받을 만한 일을 했을 때만 적용된다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음을 수련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존중은 어떤 조건도 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결과는 무엇일까요? 내면에 분리와 분별이 생기고, 다른 사람을 깔보고, 싫어하고, 얕보는 등 좋지 않은 마음이 생깁니다. 수련자로서 신성하고 청정한 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하고, 참된 자아가 외부 환경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게 하며, 심성을 지켜 항상 청정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맺음말

저는 자주 동료나 같은 단지의 친구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모두 제가 혼자서 부모님을 모시는 것을 알고 말합니다. “아이고, 정말 힘들고 쉽지 않겠네요”, “당신은 겉으로 보기에 기운이 좋아 보이는데, 힘들지 않나요?” 그들이 말하는 힘듦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압박감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제게 불평 같은 부정적이고 감정적인 짐이 마음에 무겁게 눌려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대법 수련자이기 때문에 신체가 매우 건강하여 피로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가끔 심리적 압박감이 있어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다면 마음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최근 사부님의 설법을 공부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主元神(주왠선) 외에, 당신의 신체 속에는 또 한 사람의 생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있고, 육체 자체는 또 부모의 형상을 한 생명이 있으며, 부친, 모친의 그 형상 역시 살아있는 것이다.”(미국법회 설법-뉴욕좌담회 설법)

저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두 노인을 부양한다’는 생각조차도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본래 제 몸 안에 이미 부모님의 형상이 있는데, 마음속에서 부모님과 저 자신을 하나로 융합한다면, 가볍고 자유로우며 마음에 분별이 없지 않을까요? 저는 부모님을 모두 제 자신으로 여기니 마음이 비워지고, 이런 느낌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제 수련 체험을 정리하여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여러분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목적은 제 내면의 어려운 변화를 통해 파룬따파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도덕적 승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저처럼 이기적이고, 고집스럽고, 조급하며,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을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친절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는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사부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14/4895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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