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법에서 연마하여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다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5년 법을 얻은 67세 수련자입니다. 수련 중에 특별히 보이는 것은 없지만 자비하신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와 제자들을 구하여 집으로 데려가시려는 고심 어린 안배와 거대한 감당을 깊이 느낍니다. 제자로서 사부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동안의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존 앞에서 많은 유감과 부끄러움이 있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수많은 사람 마음의 괴로운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때, 대법이 저를 인도하여 끊임없이 사람 마음을 버리고 순수해지게 했습니다. 여기서는 제 수련 과정의 어려움을 겪었던 작은 부분만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착실히 수련해 원한을 없애고 감사함을 배우다

작년에 A 수련생 집에서 컴퓨터 문제를 해결하도록 임시로 도왔습니다. 당시 그 소모임에 병업(病業) 고비를 넘고 있던 수련생이 있어서, 며칠 동안 그 모임의 법공부와 자료 배포 등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이미 사악에 의해 한동안 감시당하고 있었고, 결국 우리 다섯 명이 납치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수련생들의 구출 노력으로, 한 달 후 우리 세 명의 수련생이 풀려났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사악이 뒤집어 놓은 어수선한 방을 대청소해야 했습니다. 저는 혼자 살고 있는데, 이웃에 사는 큰고모가 우리집 열쇠를 갖고 있어 이미 방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당시 세제 등 생활용품을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큰고모 집에 빌리러 갔는데, 보니 모두 우리집 물건이었기에 일부를 가져왔습니다. 그 후로 거의 매일 일상용품을 찾을 수 없었고, 원망하는 마음이 솟아올랐습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가져가지 않은 게 없네. 내가 이 상황인데 설상가상으로 어려움을 더하다니.’ 며칠 후, 모두 ‘양성(코로나 확진)’이 아니었을 때 큰고모만 ‘양성’이 됐습니다. 마음속으로 약간 고소했습니다. ‘내 물건을 훔치고 나쁜 짓을 해서 그런 거야.’ 이런 생각들이 자주 마음에서 올라왔고, 뭔가 찾을 수 없을 때마다 고모를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큰 불선(不善)한 악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실, 전에 제가 사악에게 납치됐을 때마다 큰고모가 항상 제 아이들과 집을 돌봐주었고, 저는 늘 감사했으며 아이들에게도 큰고모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가르쳐서 매년 설날이면 아이들이 큰고모에게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모든 것을 잊어버렸고, 더 이상 타인의 선함을 생각하지 못했으니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제 몸에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분명히 원망심과 이익에 대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발정념으로 그것들을 제거하려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는 수련인이니, 법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그 후, 물건을 찾지 못하거나 원망과 이익에 대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다!’ 수개월이 지나도 이 좋지 않은 마음은 여전히 때때로 올라와서 매우 괴로웠습니다.

계속된 법공부와 명혜망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통해, 제 수련이 착실하지 않고 표면적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질투심, 타인을 업신여기는 마음, 악의적으로 추측하는 마음 등이 남아있어 이것들이 제 안에 형성된 부패물질이었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어 보니, 사실 이런 마음들은 오랫동안 잠재해 있었고, 착실한 수련이 부족해 그것들을 키워왔던 것입니다. 사부님은 이미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을 제거할 환경을 마련해 주셨는데 제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2~3년 전으로 기억합니다. 여러 번 저를 도와주었던 한 수련생이 제 옷장 위 판자가 필요했습니다. 당시 저는 부엌에 있었는데, 그녀는 저와 상의 없이 판자를 빼냈고, 그 과정에서 먼지가 근처 침대에 떨어졌습니다. 또한 판자 위에 상자가 있어서 적절한 대체 판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마침 그날 저는 ‘소업(消業)’ 중이라 몸이 매우 불편했습니다. 그 상황을 보자마자 마음이 동요했습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좋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사부님의 안배를 저버렸고 제 마음을 수련할 좋은 기회였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자비롭게 제 사람 마음들을 제거할 기회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만나는 모든 이를 선념(善念)으로 대하려고 노력했고, 점차 수련생들과 큰고모의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동시에 속인 중의 물건을 추구하지 말라고 스스로 경계했습니다. 물건을 찾지 못할 때 더 이상 타인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서서히 전에는 보지 못했던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보게 되었고, 타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능한 한 제때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점차 그 원망하는 마음이 저를 떠났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진상을 알리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선량해 보이네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위대한 사존께서 부여해주신 것입니다!

2. 자아와 이기심을 제거하고 일할 때 먼저 타인을 생각하다

저는 수학 교사입니다. 학교에서 수학 수업은 보통 하루 처음 두 시간에 배정되며, 다른 과목들은 수학이나 주요 과목에 양보합니다. 집에서도 남편은 대소사를 신경 쓰지 않아 집안일을 제가 모두 관리합니다. 수련 전에는 질서정연함과 효율성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전공과 직업 및 생활에서 형성된 규칙을 따르는 습관이 관념이 되어 심지어 고질병처럼 자리잡았습니다. 매일 제 계획대로, 효율성을 강조하며, 순서대로 일해야만 마음이 편안했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했습니다. 누군가 제 계획을 망치면 매우 불쾌했습니다. 반평생 동안 형성된 이런 습관이 제 수련에 큰 장애물이 됐습니다. 때로는 수련생과 협력해야 할 일도 제 관념에 맞지 않으면 핑계를 대고 피하려 했습니다.

몇 년 전, B 수련생과 함께 수련생을 구출하러 성도(省都)에 갔습니다. 먼저 도착해 있던 A 수련생이 우리를 맞이해 숙소로 가는 도중 길을 잃어 대로에서 헤매다가 4~5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저는 A가 너무 시간을 낭비했다고 짜증내며 불평했지만, 동행한 B는 매우 평온했습니다. 나중에 B가 다시 성도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저는 거절했는데도 B가 끝까지 설득한 덕분에 결국 함께 갔습니다. 완강히 거절하기 어려워 따라가면서 “A와 함께하면 일 처리가 늦어져서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B는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그와의 수련 수준을 비교하며 제게 문제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왜 우리 둘의 반응이 다른지 살펴보면서 자신을 돌아보니, ‘내’가 어떻게 할지, ‘내’ 시간, ‘내’ 안배가 바로 사(私)임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생을 위해 이 사심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私)로 형성된 관념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때로 그것에 건드려지면 불만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수련생의 컴퓨터 시스템을 설치할 때는 제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항상 변화무쌍한데 어떻게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 수 있겠습니까? 다시 피하고 싶어져서 다른 두 명의 기술 담당 수련생에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진상 알리는 데 방해가 돼요. 당신들이 해주세요.” 진상 알리기를 핑계로 삼았습니다. 수련생이 좋은 말로 저를 설득했습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수련생들에게 필요한 일인데 어떻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원래 컴퓨터 기술 담당 수련생이 적은데, 무엇을 하든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을 돕는 것 아닌가요?” 저는 망설이며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기술 담당 수련생 중 납치된 이들도 있고, 박해로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어, 저와 M 수련생 둘만 남았습니다. M은 불평 없이 대부분의 기술 작업을 맡아, 제때 천지행과 연락하여 파일 다운로드를 담당했습니다. 수련생의 사심 없고, 자아 없고, 불평 없이 여러 수련생 집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제 부족함을 깨달았습니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자아를 내려놓았고, 진지하게 계속해서 수련생들에게 컴퓨터 기술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착실한 수련이 부족하고 표면에만 머물러 있었기에, 자아와 이기심의 짐을 짊어지고 몇 년을 걸어왔습니다. 계속 법을 배우고 안으로 찾아 숨겨진 안일함, 추구하는 마음,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 마음,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일할 때 먼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마음 등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마음이 여전히 제거되지 않자, 사부님께서 새로운 안배를 마련해주셨습니다. 어느 날, 이 ‘이기적인 자아’가 폭발하여 드러났습니다.

작년에 구치소에서 풀려난 후 수련생이 제게 빈집을 마련해주어 잠시 마음을 안정시키고 법을 공부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 수련생은 제가 납치됐을 때 구출 활동에 참여했던 분입니다. 제가 풀려났을 때, 수련생은 먼저 집을 깨끗이 청소하자고 했지만, 저는 한 달 동안 법을 보지 못했으니 먼저 법공부를 하고 나서 정리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이 동의하지 않아 결국 다투게 됐습니다. 즉시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수련생의 희생과 도움에 감사해야 했는데 다툰 것은 말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짐했습니다. ‘다른 수련생을 먼저 생각하고 자아를 내려놓자.’ 수련생의 의견에 따라 함께 먼저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습니다. 일을 마친 후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니, 여전히 이기적인 자아의 관념이 저를 해치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반드시 그것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제가 아니었습니다.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해야 함을 깨닫고 실천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자아’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수련생이 언제 어디서 저를 찾더라도 먼저 수련생을 생각했고, 마음이 불편해지면 그것을 배척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이 언제 어디서든 저를 필요로 하면 조건 없이 도왔습니다. 때로는 마음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제때에 그것을 배척할 수 있었습니다.

한 수련생이 구치소에서 처분보류(取保候審, 1년간 보석하되 보증금·보증인을 세워 수사와 재판을 회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로 풀려나 저를 찾아와 인터넷에 접속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녀의 집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소문 때문에 다소 두려웠지만, 그 두려움을 버리고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사부님께 보호를 청하고, 발정념으로 사악을 해체한 후 수련생의 집에 가서 인터넷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이기적’이고 ‘자아’의 큰 짐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수련을 통해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모든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고, 모든 시련을 소중히 여기며,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감당하신 것과 안배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이제 수련생들의 얼굴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들의 소중함과 희생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난 20여 년의 수련 속에서 사부님께서는 저를 인도하시고, 죄업(罪業)을 감당해 주시고, 보살펴 주시며, 집으로 돌아갈 길을 닦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복인지요! 사존과 한 세상에 있으면서, 사존을 도와 전례 없는 우주 정법의 홍대한 천상(天象)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이 만고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수련생들 간의 인연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서약을 이행하여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구원해주신 사부님께 큰절을 올려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5/6/4926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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