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경축 5.13] 대법이 우리 집을 밝게 비추다

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롄롄(蓮蓮) 구술, 룽룽(榮蓉) 정리

[밍후이왕] 저는 농촌 대법제자 롄롄이며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대법)를 수련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큰일을 해본 적이 없고 한마음 한뜻으로 가정을 지키며 생활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원래 온갖 병에 시달렸으나 집이 가난해 치료할 돈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병에 걸렸는지 검사조차 받아보지 못하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시아버지는 반신불수가 됐고, 남편은 온종일 얼굴에 그늘이 졌으며, 양을 길러 돈을 좀 벌어 아들과 딸의 공부에 보탰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강해지려는 소원을 품고 대법 수련으로 들어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공(중국공산당)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고 제가 ‘수련한다’라는 한마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중공 사당(邪黨)은 그 후부터 끊임없이 저에게 소란을 피웠습니다.

다음 해인 2000년에 우리 집이 웃음거리가 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아이가 넷이나 있는 우리 마을의 유부녀가 제 남편을 유혹해 도망친 것입니다.

이때부터 양쪽 가정이 깨진 가운데서 생활상 곤란을 겪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사당의 교란, 가정의 압력은 저를 얼굴도 들지 못하고 숨조차 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열등감 때문에 밖에 나가기를 꺼렸고 학교에 다니지 않으려 했으며, 아버지를 증오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70대인 반신불수의 시아버지가 계속 우리 집에서 요양하고 계신 것입니다. 시아버지는 두 아들과 두 딸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가끔 시아버지를 뵈러 오기만 했고 아무도 시아버지를 모셔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에게 따진 적이 없었습니다. 집은 수리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떠날 때 친한 친구에게 돈까지 빌렸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총 수만 위안(몇 백만 원)의 빚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떠나자 빚쟁이는 저까지 도망쳐 빚을 못 받을까 봐 문을 가로막고 돈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좋은 말로 돈을 갚겠다고 했습니다. 만기가 돼도 대출한 돈을 갚지 못하자 저는 하마터면 소환장을 받아 끌려갈 뻔했습니다. 누군가 보증을 서고 난 후에야 일이 일단락됐습니다.

저는 예전에 성격이 매우 난폭했고 시시비비를 따지기 좋아했으며 제가 옳을 경우 더욱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남편이 떠났을 경우 저도 떠났을 것이고, 시아버지를 남편이 상관하지 않으면 저 역시 상관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도 가버리면 그만이고 남편이 빌린 돈은 그가 갚아야 하니 전혀 상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진선인(真·善·忍)’의 요구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며 일에 부딪히면 참아야 하고, 타인이 우리에게 잘 대하지 않을 수 있어도 우리는 타인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습니다. 집안 시아버지와 아이들이 이처럼 저를 필요로 하니, 저는 어디에도 가지 않고 시아버지와 아이들을 지키면서 세월을 보내며 빚을 갚아나갔습니다.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면서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갔어도 남편은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반신불수의 시아버지를 모시며 세 아이의 공부를 뒷바라지했습니다. 십여 무(畝, 1무는 약 666.7㎡)의 밭농사를 하면서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 했고, 아들이 며느리를 맞이하도록 집을 지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오래된 집이어서 건축 부지가 움푹 패어 들어갔고 마당에는 물이 고여 집안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저 혼자 흙을 운반해서 30cm 남짓 깔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롄롄은 미친 거예요? 아니면 바보가 된 거예요? 어떻게 이런 능력이 있을 수 있죠? 철인도 그녀처럼 못해낼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철인이 아니지만 철인만이 버텨낼 수 있는 일에 부딪힌 적이 있습니다.

한번은 이웃집 개가 제 손가락 한 마디 절반을 물어 먹어버렸습니다. 이웃은 매우 놀랐고 저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습니다. 저는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니 괜찮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할 일이 있으면 그대로 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손가락의 뼈와 살이 손톱과 함께 자라나 전부 복원됐는데 흉터조차 없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잊고 타인을 위해 마음을 쓰는 과정에서 제가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했기에 제 모든 병이 사라졌으며, 다 쓸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남아돌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행한 바가 법에 부합하는 것을 보시고 저를 도와주셨고 제게 기적이 나타나도록 해주셨는데, 저는 대법이 복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니 참 좋습니다.

그 무렵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점점 심해졌고 저 역시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파출소 사람이 또 저를 찾아왔는데, 아이들이 제가 수련한다고 말하면 납치될까 봐 “어머니는 수련하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있고 난 뒤 저는 생각할수록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던 일을 내려놓고 파출소로 찾아갔습니다. 오전 내내 기다려서야 마침내 담당 경찰관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수련한다고 말하려고 할 때 그는 분노하며 “수련하세요! 먼저 남쪽 벽에 가서 서 있어요! 보낼 때까지 기다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후 내내 서 있었고, 날이 어둑해질 무렵이 돼서야 담당 경찰관은 부드럽게 “왜 아직도 돌아가서 반신불수인 아버지를 모시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일이 있고 난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파출소에서는 저를 가둬 강제노동을 시키려고 마을 간부와 이야기했는데, 마을 간부가 걱정하며 “이 사람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요. 이 사람이 없으면 어르신과 아이들은 누가 돌봐요? 이 집안은 산산조각 난다고요”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이 산산조각 나지 않은 것은 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대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해에 저는 농사를 지으면서 다른 사람보다 비료를 적게 줬지만 수확량은 오히려 더 많았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또 시간을 내어 현지 마을 공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모든 빚을 깨끗이 갚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씩 이어졌습니다. 마을에서 다른 사람이 집 한 채로 며느리를 맞이하면서 몇 십만 위안(몇 천만 원)이 들었지만, 저는 며느리를 맞이하는 데 집 두 채로 1만 위안(약 190만 원)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두 아들은 근로자에서 사장이 됐습니다. 5~6년 만에 우리 집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업신여기던 가난한 집에서 사람들이 칭찬하는 좋은 집안이 됐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러워하며 “그 사람이 수련해서 받은 복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집을 떠나 도망쳤던 그 시절을 사람들은 모두 잊은 듯했고 아무도 더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때 밖에서 빈둥거리던 남편이 더는 내연녀를 먹여 살릴 수 없어, 두 사람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아들들은 자신들이 수모를 겪게 만들었던 아버지를 포기하려 했지만, 저는 “우리는 수련하는 가정이야. 누구에게나 모두 자비롭고 관용으로 대해야 해. 아버지에게 거칠게 대해서는 안 돼”라고 대법의 이치에 따라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들들은 그제야 아버지를 받아들였습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고생을 하소연하지 않았고 싸우거나 다투면서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남편의 내연녀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대법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 가정도 없었을 거예요. 한 사람이 수련해 온 가족이 혜택을 받았어요”라고 가장 먼저 알려줬습니다.

남편은 제 병이 다 나은 것을 봤고, 연로하신 아버님의 장례를 다 치른 것도 알았으며, 아이들도 장가를 가고 사업이 성공해 장래가 창창한 것을 보았고, 자신이 빼돌린 돈을 제가 대신해 전부 갚은 것도 알았습니다. 남편은 감동해 변했습니다. 가족에게 미안함이 가득해 무슨 일이든지 앞 다투어 했으며 착실하게 생활했습니다. 이제 남편은 대법 진상 호신부를 지니고 다니는데, 대법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해주신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남편은 손재주가 있어 요리를 잘했습니다. 올해 설날 남편은 두 아들과 함께 열두 테이블에 상을 차려 온 집안 가족(총 12명, 손자뻘 네 명)과 친지 친구들과 함께 식사했는데, 모두 맛있게 먹으면서 떠들썩하게 잘 보냈습니다.

이 행복한 장면을 바라보면서 저는 또 10여 년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해 남편이 도망친 후, 저도 시아버지를 모시지 않고 떠났다면 어떻게 오늘날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했다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지 못했고 심지어는 나쁜 길로 들어섰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시아버지를 모시는 일에서 제가 시동생, 시누이들과 따지면서 화를 내고 싸웠다면, 원래부터 병이 있던 저는 화가 나서 생명의 위험이나 의외의 사고가 있었을 것이고, 가족 간의 정, 가풍, 마을 분위기를 손상하고 마을 간부가 선한 마음으로 저를 도와주기는커녕 저를 강제노동수용소로 보냈을 것입니다. 만약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후 저와 아이들이 모두 남편을 증오하고 포기했다면 현재처럼 아름답고 원만한 가정을 어떻게 이룰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만약’이라는 이 일체는 모두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진실한 말을 하고 진실하게 일하며 선하게 타인을 대하고 상대방을 관용하도록 대법이 저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그대로 따라 함으로써 혜택을 받았고 모두 다 함께 혜택을 받았으니, 정말 선한 일을 하면 좋은 보상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대법은 우리의 집을 밝게 비췄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제23회 파룬따파의 날과 대법 홍전 30주년을 맞이해서, 저는 온 가족을 대표해 사부님께 경하드립니다!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사부님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5/29/44226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5/29/44226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