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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행해 가족이 복을 받다

글/ 중국 헤이룽장 대법제자 구이전(歸真)

[밍후이왕] 나는 헤이룽장성에 있는 중학교의 수학 교사다. 올해 쉰다섯으로 2004년 10월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하고 병이 많았다. 기관지염, 수족냉증이 있었고 감기로 열이 나고 기침하는 일이 잦았으며, 찬 음식을 감히 먹지 못했다. 병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는데, 결혼 후에는 병이 몇 가지 더 늘어났다. 요도염, 부속 기염, 신우신염, 심장병, 경추병, 신경쇠약, 불면증, 풍습 등이었다. 여름과 겨울 방학에는 몸에 병이 나서 먼 길을 떠나지 못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 의외의 사고로 수련을 시작하다

2004년 10월, 나는 중학교 3학년 졸업반 담임을 맡았는데 학생이 80~90명이나 되는 큰 반이었다. 내년에 시험을 봐야 하는데 당시 학생들 성적이 너무 형편없었다. 나는 학생들의 성적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같은 학년의 한 선생님이 4반 수학은 전멸이라고 했다. 나는 걱정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혹시 수영하면 힘들어서 잠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소용없었다.

한번은 수영하러 갔는데 청결제 원액이 물안경에 묻어서 대충 닦아내고 다시 안경을 쓰고 40여 분 수영을 했다. 그런데 눈이 점점 아프고 눈물이 계속 나더니 눈이 떠지질 않았다. 함께 갔던 동료가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고 주사를 나흘 동안 맞았다. 동료는 내 눈에 후유증이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자기는 출장을 간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하얼빈 중의약 대학부속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의사 말로는, 병변성 각막염에 걸렸는데 각막에 혈관이 없고 신경이 없어 약물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했다. 남편은 큰일 났다면서 내 눈이 실명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약을 좀 받고 출근하고 싶었지만, 의사는 일단 안심하고 입원하라고 권했다.

나는 그때 겨우 40세였다. 딸이 이제 중학생인데, 앞으로 겪어야 할 인생 변고를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예전에 한 동료가 파룬궁 진상 소책자를 줘서 본 적이 있었다. 대법 호신부를 준 것도 몸에 지니고 있고 추천해준 대법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도 한번 보았지만, 당 문화 무신론의 오염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대법 호신부를 꺼내 거기 있는 글자를 보며 그 뜻을 깊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내 눈은 갈수록 밝아졌다. 의사가 약물이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무슨 작용인가? 나는 눈이 하루가 다르게 좋아져 보름 만에 퇴원했다. 파룬따파가 나를 구해줬고, 대법 사부님께서 내게 한 쌍의 밝은 눈을 주셨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로 하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며 관련 문장과 서적들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생명의 의미와 좋은 사람이 되는 표준은 바로 ‘진선인(真·善·忍)’이며, 천안문 분신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중공의 당 우두머리 장쩌민이 못난 질투심에서 이번 사악한 박해를 발동했고, 그와 공산 사당(共產邪黨)의 마교(魔教)가 서로 이용한 것임을 알았다. 세상 사람이 모두 독해(毒害)됐는데, 특히 중국인이 더 심각하게 중독됐다.

2. 곤경에 처해도 선념을 품고 진상 알리기를 견지하다

지식을 전하고 인성을 길러주는 것은 교사라는 직업의 덕목이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학생이 되게 하고, 선악을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천직이다. 한번은 수업에서 ‘진선인(真·善·忍)’ 세 글자를 칠판에 적고 학생들에게 그 뜻을 가르쳐줬다. ‘진(真)’은 진실한 말을 하고 사람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이다. ‘선(善)’은 선량함이며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이다. ‘인(忍)’은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것으로, 참고 양보하며 원한을 품지 않는다. 나는 많은 것을 설명해줬고 학생들도 진지하게 들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수업에서 한 말을 교육위원회에 고발했다. 교육위원회에서 당 업무를 관리하는 송 아무개가 간사 몇 명을 데리고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과 당 업무 관리 하는 부 교장 선생님을 찾았다. 나는 교장실로 불려갔다. 한 간사가 기록하는 것을 보고 내가 말했다. “당신들은 문화대혁명 때처럼 사람을 괴롭히는군요! 나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놀라서 나와 싸우며 절대 수련하지 말라고 했다. 한참을 떠들다가 재미가 없으니 조용해졌다.

2004년 섣달 그믐날 저녁, 나는 나가서 대법 진상 표어를 붙이고 싶었다. 아이가 울면서 같이 TV를 보자고 해 속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저는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진심을 보시고 내가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셨다. 아이 숙모는 진상을 알고 소책자도 많이 보았다. 그녀는 내가 대법을 수련하고 건강해진 것을 보고 나를 지지했다. 숙모는 아이에게 “엄마가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가 나하고 같이 놀자”라고 타일렀다.

그들이 나를 지지하면 그들에게 이롭다는 것, 이것은 바른 법리다. 일체는 법을 위해 왔고 사람 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선택하셨고, 나는 법을 얻기 위해서 세상에 왔다. 나는 사명이 있다. 사람 이치에 부합해, 그들과 함께 있으며 설을 쇠는 기쁨에 빠져서는 안 된다. 설이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대법의 복음을 더 많은 세상 사람에게 선물할 것이다. 나는 진상 표어를 다 붙이고 돌아오다 부주의로 풀을 옷에 다 묻히고 손도 얼어서 저렸지만, 마음이 기쁘고 발걸음이 나는 듯 가벼웠으며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3. 가정 고비를 잘 넘기고 남편이 진상 알리기를 돕다

남편은 사당(邪黨) 독해를 받아 처음에는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사악의 박해를 받을까 봐 걱정했다. 직장에서도 남편에게 압력을 가했다. 남편은 직장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고, 아이의 앞날에도 영향 있을까 봐 걱정하며 아이와 내가 파룬따파를 배우지 못하게 했다. 내 친한 동료들과 남편 친구들도 나를 말렸다. 내가 연공 하려고 가부좌하면 남편이 다리를 끌어 내렸다. 밤에 모두 잠이 들고 나서야 조용히 연공할 수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잘못이 없어요. ‘진선인’이 나쁜가요? 아이에게 진실하고 선량하며 인내심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게 잘못인가요?” 남편은 “약자가 강자를 이길 순 없어요. 공산당이 하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화를 내며 나를 비난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보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이 뭐라고 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자존심이 강하고 체면을 중시하며 스스로 인품이 고결하다고 여겨 남을 업신여겼다. 남을 포용하지 못하고 상대방 처지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 매 맞는 것이 두렵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우며, 고생을 두려워하고 자아를 보호했다. 싫은 소리를 들으면 마음에 새겼고, 원망 증오, 쟁투, 억울함, 불평으로 마음의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타인이 존중해주기를 바랐다. 남의 단점을 눈여겨보고 장점은 보지 않았다. 이 모두가 당 문화의 변이된 부정적 사유 관념이다. 남편에 대해 좋지 않은 관념이 많이 생겨 그를 무시했는데, 사실은 질투심이며 선하지 않은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자비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1]

나의 이런 사상 행위는 모두 진선인 우주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좋지 못한 마음은 모두 진짜 내가 아니다. 나는 끊임없이 법공부하며 사부님의 법에 따라 자신을 바로 잡고, 타인의 각도에서 그를 이해했다.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이렇게 말해줬다. “우리 반 그 여학생이 당신이 대장군 같다고 했어요. 당신은 아주 솔직한 사람이에요. 잔꾀 부리지 않고 약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친절하고 호의적이죠. 친구를 위해 많이 헌신하며, 선량하고 남을 돕기를 좋아해요. 똑똑하고 능력도 있고, 성실하고 또 음악적 재능이 있어요. 아쉽게도 중국에 살아서 그렇지 환경이 바뀐다면 당신은 아마 아주 즐겁게 살고, 당신의 능력도 주변 사람의 인정을 받을 거예요. 다만 중국에서는 어려서부터 공산당이 사람을 괴롭히고 탄압해서 존엄성이 없게 사는 것뿐이에요.”

나는 또 남편에게 말했다. “사람의 영혼은 고귀해요. 중국은 5천 년 문명이 있어요. 나는 어려서부터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일을 시작하고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선생님을 찾지 못했어요. 이제 마침내 내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시는 사부님을 만났고, 인생의 방향을 깨달아 더는 헤매지 않게 됐어요. 내가 이 법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어요? 게다가 저의 병이 다 나았어요. 이건 당신도 보았어요. 장쩌민이 너무 나쁜 것입니다. 사람에게 좋은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하고, 선량한 그들을 박해했어요. 시아버님이 우파로 몰린 것과 같아요. 공산당이 사악한 것입니다. 당신은 피해자예요. 선악에는 응보가 있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당신이 정의와 선량의 편에 설 거라고 믿어요.”

남편이 핀잔을 줘도 나는 논쟁하지 않고 평온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당신이 나를 위해 많은 것을 감당해줬어요. 당신은 심장이 좋지 않으니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내게 자신의 부족함을 보게 해줬어요. 원망하지 않아요.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고 너그럽게 대하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자 남편은 “그래요? 나한테 정말 고마워요?” 하고 물었다. 나는 “예”라고 말했다.

나는 끊임없이 발정념했다. 남편 공간장에 있는, 그가 구도되는 것을 저애하는 일체의 공산사령(共產邪靈)과 일체 사악 생명 요소를 청리함으로써 남편의 명백한 일면이 대법을 믿고 사부님을 믿게 했다.

남편은 차츰 변했다. 내가 ‘9평 공산당’ 녹음을 들으면 그도 같이 들었다. 내가 법을 읽어줘도 반감을 표하지 않았다. 남편 친구가 집에 와서 같이 식사할 때 내가 진상을 알리고 싶어 하자, 남편은 자신이 말하겠다며 친구들을 모두 삼퇴시켰다. 내가 나가서 법을 실증하는 일에 대해서도 남편은 이해해줬다. 매번 차에 진상 소책자를 가지고 나가는데, 남편이 가져가라고 하며 현수막도 걸고 스티커도 붙이라고 했다. 가끔은 나와 함께 진상 전단을 붙이고, 또 차를 갖고 가서 다른 수련생이 진상 전시판을 거는 것을 돕기도 한다. 남편은 식당에서 파룬궁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과 논쟁을 하고, 화가 잔뜩 나서 집에 돌아와 “누가 감히 진선인이 나쁘다고 말하는가!”라고 한다.

4. 입원한 남편이 다른 환자들에게 대법을 소개하다

2014년, 남편은 하얼빈 의과대학 제2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환우들에게 파룬궁을 배우라고 권했다. 아쉽게도 자기는 술 담배를 끊을 수 없어서 늘 병원 신세를 진다고 말했다. 병원 환우들은 내가 남편의 딸인 줄 알았다고 했다. 남편 침대 옆의 환자는 뇌졸중이라 말도 하지 못하고 스스로 거동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의 아내와 아들은 초조해하며 자주 화를 내고 매일 힘들어했다.

그의 아내는 내가 매일 기분 좋게 웃으며 활력이 넘친다고 말했다. 나는 저녁에 잘 쉬지도 못하고 또 남편을 돌봐야 했다. 남편은 식도 커버 수술을 했다. 남편은 성격이 거칠어 자주 나에게 화를 냈지만, 나는 논쟁하지 않고 여전히 어린애 달래듯 살뜰히 보살피며 조금도 원망하거나 짜증 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저녁에 복도 바닥에 누워도 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법공부는 조금 해도 연공은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보름 넘도록 그렇게 지냈다.

그때 나는 파룬궁이 정말 초상적이며 사부님께서 매 순간 제자를 보호하고 계심을 알았다. 그녀가 내게 “마음가짐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가요?” 하고 물어 “저는 신앙이 있습니다. 진선인을 믿어요”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녀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제가 만약 대법을 배우지 않고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에 따라 착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다면, 저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나는 그녀에게 공산당의 사악함을 알렸다. 이렇게 좋은 법을 원흉 장쩌민이 국민에게 배우지 못하게 했으며, 그것(사당)이 사람을 다 속였을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의 장기를 적출하기까지 했다는 걸 말했다. 그것(사당)은 정말로 나쁘다고 알렸다. 그녀는 다 받아들였고 삼퇴도 했다. 나는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묵념하면 당신들 모두 점점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녀는 돌아가면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다.

5. 딸이 좋은 사람이 되어 복을 받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태어날 때, 많은 신들이 따라서 내려왔다. 그 후부터 해마다 모두 있었고, 신들은 줄곧 아래로 내려왔다. 내가 법을 전할 때가 되어서는, 그 신들이 마치 눈꽃처럼 내려왔다. 바로 그렇게 많았다. 내가 이 나이를 계산해 보니, 내가 법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25세 전후의 이런 젊은이들인데, 정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구도받지 못했다. 모두 신이 온 것”[2]이라고 하셨다. 우리 딸이 바로 그 연령대 아이다. 잘 이끌지 못하면 내게 책임이 있다.

딸은 자주 나와 함께 대법 책을 읽었다. 딸은 사부님의 ‘홍음(洪吟)’을 금방 외웠다. 딸은 또 저녁에 나와 함께 나가서 진상 소책자를 배포하거나 스티커를 붙이고 현수막을 걸곤 했다. 내가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감히 붙이지 못하고 있으면 자기가 가져가서 대범하게 붙이고는 나를 겁쟁이라고 했다. 딸은 두려운 마음이 없다. ‘진선인’이 딸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다.

예전에 나는 늘 아이의 학습 성적을 중시했다. 이제는 인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 딸아이 휴대전화에 사부님 설법을 넣어주고 시간이 있으면 보라고 했다. 나는 늘 딸에게 주변 친구에게도 진상을 알리라고 일깨워줬다. 딸은 지혜롭게 친구들에게 기본적인 대법 진상을 알렸고, 삼퇴를 시킨 친구도 있다.

대학에 다닐 때 딸이 말했다. “어느 날 무엇 때문인지 사람은 정말 신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조용히 하고 사부님의 설법을 한번 다 봤어요.”보고 난 후 사부님께서 딸의 신체를 정화해주셨는데, 손발이 차갑지 않고 생리도 정상이 됐다.

대학 생활 5년 동안 딸은 숙소 친구 일곱 명의 존중을 받았다. 다른 숙소 친구들도 딸을 좋아해 모두 사귀고 싶어 했다. 딸은 숙소 반장으로 친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각종 생활과 학습 문제를 도와서 해결해주며 마치 큰언니처럼 그들을 보살폈다. 친구들이 문제가 있어 어머니를 찾으면 그들의 어머니는 너희 큰언니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숙소 위생은 가장 관리하기 힘들다. 집에서 다들 천금 같은 아가씨들이라 일을 해보지 않아 게을렀고, 뭐라고 말하는 것도 듣기 싫어하고 기분 나빠했다. 당번이 됐는데도 어떤 학생은 모르는 척했고, 한마디 일깨워주면 언짢아했다. 처음에는 딸도 기분이 좋지 않아 내게 하소연했다.

나는 “우리 딸이 초등학교 때도 학급 위생위원이었지 않니? 그때도 애들이 게으름 피우고 꾀를 쓰고 그랬잖아? 엄마가 너는 착한 아이니까 일을 좀 많이 해도 힘들지 않을 거라 했었지. 그 애들처럼 하면 그들 장래가 좋지 않다고. 누가 그런 애를 좋아하겠니? 이제 우리는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원만은 불과(佛果)를 얻나니 고생을 낙으로 삼노라 몸 고생은 고생이 아니나니 마음 수련이 가장 어렵도다’[3]라고 하셨어.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더 좋은 아이가 돼서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그들과 따지지 말아야 해. 사실 그 애들이 그렇게 하는 건 딱한 거야. 네가 헌신했으니 그들이 좋은 것을 네게 준 것이고, 너는 소업도 하게 됐어. 그럼 그 아이들이야말로 바보이고 네가 가장 총명한 거야.”

딸은 그때부터 더는 그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누가 당번이든 숙소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개의치 않고 예전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을 대했다.

딸이 착하게 살아 사부님께서는 딸에게 많은 복을 주셨다. 2016년에 졸업하려 할 때 영어 4급 시험을 예상보다 훨씬 잘 치러서 순조롭게 통과했다. 딸은 놀기를 좋아해서 시험에 통과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다른 애들처럼 그렇게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딸은 6월에 졸업하고 운 좋게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얻었다. 집과 거리도 가까워서 우리가 자주 왕래할 수 있어 나의 소망도 이루어졌다. 딸은 일자리를 찾는데 집에서 돈을 쓰지 말라고 했다. 다른 집 학부모들이 “너의 어머니가 그 일자리 얻으려고 돈을 얼마나 썼니?”라고 물으면, 딸은 “돈을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딸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잘하라고 당부했다. 과 주임은 딸이 점심에 집에 밥 먹으러 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전례를 깨고 딸에게 점심을 주문해주었다. 처음에 입사했을 때 선배들은 제 일을 불친절한 말투로 딸에게 시키곤 했다. 딸은 업무량이 많았다. 한번은 딸이 아빠 보려고 선배에게 기계를 좀 꺼달라고 했다가, 선배의 태도를 보고 다른 동료에게 부탁했다. 딸은 아무런 원망도 없이 여전히 그 선배를 도왔고, 그 언니가 너무 불쌍하다고 말하면서 밤에 늘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딸은 일하면서 공부를 병행해 2018년 11월 말에 석사 학위를 땄다. 나는 그 기간에 수련생과 농촌에 가서 집마다 새해 달력을 나눠주느라 딸을 돌보지 못했다. 나는 사람 구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아 정법 시기 대법제자의 요구를 만족했다. 딸은 첫 시험에서 1점 차이로 2등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몇 년을 공부했다. 과 선생님과 동료들은 “공부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점수가 이렇게 높게 나오다니” 하고 놀랐다. 다음 시험 볼 때 딸의 영어 회화 실력이 좋았다. 과 주임이 올해는 연구생을 받지 않으려고 했지만, 딸이 이렇게 우수한 것을 본 데다 또 동료가 “이 사원은 우리 과에서 많은 이익을 냈습니다. 받으세요. 이 사람이 여기에서 일하다 특수한 상황이 생기면 제가 돕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는 예외적으로 딸을 받았다. 2019년 6월, 딸은 또 순조롭게 전국 통용 전문의사증을 따냈다.

이 모두가 대법이 딸에게 내린 복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 – 경지(境界)’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16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홍음- 마음 고생’

 

원문발표: 2020년 2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2/2/40056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