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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미망(迷茫) 속에서 대법을 찾아 청춘을 소중히 하고 나쁜 습관을 버리다

글/ 쓰촨(四川)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법은 신기하고 뛰어나며 법력은 넓고 미세한 곳까지 퍼져 있다. 본문에서 말하는 사례는 단지 대법의 위력이 세속에서 나타난 한 작고도 작은 체현에 불과하다. 대법은 인류에게 세상의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고, 대법의 신기함과 뛰어남은 더욱이 사람에게 반본귀진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에 들어선 지 1년 가까이 되는 청년 대법제자이다. 이는 내가 처음으로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 모집에 참여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수련하기 전후의 경험을 써내려고 하는데, 더 많은 중국인, 특히 어려서부터 무신론을 주입당한 청년들이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고 만고의 기연을 소중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안 좋아 체육 성적은 해마다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매년 환절기에 늘 감기에 걸렸고, 열이 나고 기침을 했다. 고등학생 때는 한 달 가까이 기침하면서 호전되지 않았다. 어느 날, 집에서 수박을 먹는데 갑자기 등이 극심하게 아팠고 호흡 곤란이 왔으며, 허리를 곧게 펴지 못했다. 병원에 보내져 X-ray를 찍었는데, 오른쪽 폐가 80% 압축된 기흉이었고, 생명에 지장이 있어 입원 치료했다.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고, 가슴에 도류관을 삽입하고 특수 제작된 케이스를 연결하여 숨을 내쉴 때 사용했다. 10여 일 후에 폐의 압축량이 30%까지 낮아져 퇴원했다. 그러나 한 달 후에 재발하여 오른쪽 폐가 65% 압축되어 또 입원했다. 의사는 완벽하게 치료할 방법이 없어 어쩌면 평생 재발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환자는 기침이나 힘든 일, 격렬한 활동을 피해야 한다.

그 후로 수년간 여러 차례 기흉이 재발했다. 이 병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았다.

청춘을 허송세월하고 나쁜 습관에 물들다

10살이던 해, 집에 컴퓨터가 생겨 게임을 하게 되었다. 또 그 해부터 TV, 신문, 잡지의 야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면서 음란한 행위에 물들었다.

어려서부터 학업 성적이 비교적 좋아 부모님의 기대를 만족시켜 드릴 수 있었고, 줄곧 현지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녔다. 표면적인 영광은 게임과 색정에 대한 내면의 집착을 덮어 감추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매주 한 번 집에 갔다. 고된 수업 중에서 내가 정신적으로 가장 의지한 것은 바로 매주 한 번 집에 가서 몇 시간 컴퓨터를 하고, 야한 사진이나 게임을 다운로드하여 핸드폰으로 옮겨 와 학교에서 계속 즐기는 것이었다.

대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 인기 있는 전공을 택했는데, 어려움이 상당히 높았다. 느슨한 환경에서 틈만 있으면 거의 게임을 하거나 야한 사이트에 접속했다. 나는 늘 무단결석을 했고, 시험 전에야 벼락치기를 해서 일부 과목은 재시험을 보거나 재수강을 해야 했다. 성적이 나쁘니 더 공부하기 싫었는데, 악순환이었다. 한동안은 게임에 질려서 나는 차라리 영화, 애니메이션, 예능을 보았지만,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님은 이런 나를 보고 실망하셨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슨 방법이 있지도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대학원 응시에 실패했고, 친척이 내가 졸업한 후에 그의 회사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외지에서 혼자 살면서 자제력이 더 떨어져 게임과 색정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졌다. 늘 게임 계좌에 돈을 충전했고, 야한 사이트의 주소도 몇 개나 외울 수 있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 기운이 없었고, 늘 현기증이 나고 기침을 했다. 그때의 나는 인생의 목표를 잃은 것 같았고, 각종 컴퓨터 게임과 야한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자신을 독해하고 시간을 허비했다.

미망(迷茫) 중 도처로 찾다

짧은 몇 년 사이에 나는 성적이 아주 우수했던 소년에서 허송세월만 하는 청년으로 변했는데,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실연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내 몸은 갈수록 나빠졌고, 동시에 내심에서는 또 더는 의기소침해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고생을 겪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대학 때 한 차례 여행을 마친 후에 일행과 헤어지고 혼자 차를 기다리다가 쓴 말이 있다. “하늘도 넓고 땅도 넓은데,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구나.”

대학생이던 어느 날, 또 기흉이 재발하는 증상이 나타났는데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휴식을 취한 후에 이 병이 도대체 왜 생기는지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싶었다. 한 인터넷 포럼에서 ‘환자’인 한 젊은 남성이 야한 영상을 보는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한다고 쓴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병은 바로 정기(精氣)가 손실되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일부 누리꾼도 자신들 역시 같은 상황이라는 답변을 달았다. 이를 보자마자 나 역시 이런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둘러 색욕을 끊는 방법을 검색해봤다. 나는 일부 방법을 찾아냈고 (훗날 이런 방법은 모두 불교와 세간소도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나하나 시험해 보면서 약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얼마 안 돼 건강이 회복되자마자 또 생각이 들었고, 끊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로 나는 수련은 의학이 고치지 못하는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집에 수불수도(修佛修道)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주역’을 연구하여 점을 치는 것을 좋아하셨으며, 아버지는 기공 연마를 즐겨 건강하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중화전통문화에 흥미가 있어 동주(東周)와 삼국시기의 이야기를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명신(名臣)과 무장(武將)의 인의(仁義)와 지조를 존경하고 탄복했다. ‘서유기’와 ‘봉신연의’를 보는 것도 좋아했고, 고대 사람은 정말로 신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중학교에 다닐 때, 운문을 좋아했고, 가끔 스스로 써보기도 했다. 긴 시를 한 편 쓴 적이 있는데, 주제는 바로 대붕(大鵬) 한 마리였다. 대붕이 명사(名師)를 만나 진정한 전수를 받은 후에 차마 인간 세상의 재난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하세하여 무장이 되어 간사한 이를 없애고 악을 제거하며 폭군을 몰아내 천하는 태평해지고, 대붕은 왕위(王位)와 공주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대붕의 모습으로 돌아와 하늘로 날아갔다는 내용이었다.

대학 시절에 색욕을 끊었던 그 경험 후에 애써 찾지는 않았음에도 이따금 수련과 관련된 것들을 접하게 되었으며, 가끔 인터넷에서 일부 불교 이야기를 보곤 했다. 그리고 불교 경서를 일부 읽은 적이 있다. 때로는 불경에 좋은 구절이 있어 서명이나 좌우명으로 사용했다. 새로운 지역을 여행하거나 그곳에서 생활할 때마다 친구의 제안으로 같이 현지 사찰에 놀러 가거나 혹은 혼자 가기도 했다. 불교 이외의 것도 적잖게 접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몰랐기에 뭐든지 봤으며, 마음속으로 수련을 믿었다. 하지만 유명한 스승의 지도가 없어서 괴로웠고, 어떻게 수련하는지도 몰랐기에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짜와 가짜를 가리기도 어려웠다.

유학 기간에 법을 얻다

어쩌면 기연이 아직 닿지 않았던 걸까. 돌이켜보면, 나와 파룬따파는 적어도 세 번 스쳐 지나갔다.

대학생 때, 나는 세 학우와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걷던 두 학우를 누군가 불러 세웠다. 나와 다른 한 학우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후에 두 학우가 뒤따라와서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사람이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프로그램 CD를 주었지만 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파룬궁 진상을 몰랐기에 ‘왜 고발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무료로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배포할까?’라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일을 시작한 후였는데, 우연히 ‘웹 에이전트’를 사용해서 따지웬과 일부 민주화운동 사이트를 보았다. 나는 민주화운동 사이트에서 중공의 생체장기적출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문장의 필자는 장(江) 씨 ‘피비린내 나는 무리’가 중국인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했다는 내용만 썼고, 그 대상이 파룬궁수련자라는 말은 없었다.

따지웬 사이트를 대강 훑어볼 때, 나는 마치 무언가에 의해 격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중공 ‘시진핑, 장쩌민’에 관한 뉴스만 관심을 두고, ‘위화(偽火)’, ‘1400사례 분석’, ‘4·25청원 진상’ 등 파룬궁 기본 진상은 오히려 보지 않았으며, 사이트 오른쪽 위의 ‘삼퇴(중공의 당, 단, 대에서 탈퇴)’한 인원수가 뚜렷이 적혀 있음에도 클릭해보지 않았다. 얼마 안 돼, ‘웹 에이전트’는 봉쇄되어 나도 보지 않았다.

일을 시작한 지 1년 후에 가족의 지지를 받아 해외유학을 준비했고, 학교 10곳에 신청했다. 몇 달 후에 운 좋게 10곳 중에 가장 좋은 학교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본과 성적만으로는 합격하기 어려웠다. 훗날에야 이 모든 것이 사존의 자비로우신 안배였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공동주택 부근에 파룬궁 진상거점 한 곳이 있었다. 나는 매일 지나다녔지만 마치 무언가에 의해 격리된 것처럼 신문을 한 번도 받지 않고 진상 보드판을 한 번도 진지하게 보지 않았다. 당시 룸메이트는 거의 매주 ‘밍후이주보’를 한 부 받아왔지만 나는 그것도 보지 않았다. 이것이 세 번째로 대법과 스쳐 지나간 경험이다.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얻기 어려운 공부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 과거처럼 다시는 그렇게 허송세월하지 않았다. 유학 기간에 지금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그녀는 선량하고 성실했으며, 도덕 관념이 일반 사람보다 높았다. 당시 그녀가 파룬따파 제자라는 것을 몰랐다.

중국에서 ‘훙황란(紅黃藍)’ 유치원 아동학대 사건과 ‘빈민촌 거주 하층민’ 추방사건이 발생했을 때, 주위 중국인 유학생들은 다들 그러려니 하며 마비된 모양새였다. 나는 너무 슬펐다. 나는 공민기자가 베이징 교외에서 취재한 영상을 찾아서 여자 친구에게 보여주며 중공에 대한 내 생각과 집안 어른들이 직접 겪으신 피비린내 나는 ‘6.4’ 학살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말한 일을 여자 친구도 다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중공의 포악한 본성에 대해 아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하루는 여자 친구와 자습실에 있었는데, 옆 책상에 ‘밍후이주보’ 한 부가 있었다. 여자 친구는 ‘삼퇴’ 페이지를 펼쳐 내게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을 힐끗 보고는 “나는 이 숫자를 못 믿겠어. 너희 집 어른들께 여쭤봐. 중공 통치하에서 누가 감히 탈당할 수 있겠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삼퇴는 탈당사이트에 성명을 발표한 것임을 몰랐고, 사당지부에 가서 탈당하는 줄 알았다. 나의 무지막지한 태도에 그녀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졸업하기 두 달 전, 여자 친구는 국내에서 실습했다. 내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때, 그녀는 내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삼퇴’는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걸 듣고서 나는 아주 기뻤고, 돌아가거든 탈퇴하기로 했다. 그녀는 엄숙하게 내게 말했다. “‘불이법문’해야 해.” 그녀는 내게 돌아가거든 진지하게 ‘전법륜(轉法輪)’을 보라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의문의 답은 그 안에 있다고 했다. 나는 반신반의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 즉시 핸드폰으로 파룬따파 사이트를 검색해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몇 페이지 읽지 않았는데, 배가 아프기 시작해 지하철에서 내려 화장실을 찾았다. 그 후에 다시 지하철을 탔는데, 몇 정거장 안 가 또 아팠다. 이렇게 계속 화장실을 찾았지만 지치지 않았고, 도리어 갈수록 몸이 가벼워졌다. 훗날 법공부를 통해 자비로우신 사존께서 나의 신체를 청리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컴퓨터로 ‘삼퇴’사이트에 들어가 중공의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공산사악주의를 위해 일생토록 분투하겠다던 독의 맹세를 철저히 없앴다.

나는 하루 반의 시간을 들여 ‘전법륜’을 다 보았다. 이것으로 내 세계관이 완전히 변했다. 과거의 그런 불교서적, 기공서적과 난잡한 사이트에서 해답을 얻지 못했던 문제를 단번에 명백하게 알게 되었다.

사존께서는 평이하게 알기 쉬운 말로 높고 깊은 우주법리를 말씀하셨고, 구절마다 천기였다. 나는 사람이 사는 의의를 알게 되었고, 사람은 왜 병이 있고 이토록 고생스러운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우주 최고특성 진선인(真·善·忍), 이것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천고의 수많은 수수께끼, 예를 들면 더(德)가 어떻게 공으로 연화되는지, ‘현관’, ‘묘유주천’, ‘누가 연공하면 누가 공을 얻는다’ 등등을 알게 되었다. 말겁 시기에 정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깊이 느꼈다.

그러나 다른 한 면에서 보자면, 내가 수련할 수 있을지 몰랐다. 논문을 쓰고 난 후에 종일 게임을 했고, 이따금 야한 사이트를 봤다. 법을 얻고 여자 친구도 생겼지만, 게임과 색정물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것들은 두 마리 독사처럼 나를 휘감고 내가 좋게 변하지 못하게 했으며, 수련하지도 못하게 했다.

졸업하기 보름 전 어느 날 저녁, 빈 강의실에서 게임을 끝내고 컴퓨터를 정리한 후 떠나려 할 때, 갑자기 오른쪽 폐에 통증이 왔는데, 쇠줄로 조이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은 과거에 기흉이 재발한 것보다 더 심각했다. 복도에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벽을 짚고 허리를 굽혀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즉시 내가 법을 얻고도 진귀하게 여기지 않고 허송세월하며 좋은 일을 하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부님 구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수련에 정진하겠습니다!’ 1초도 안 돼 증상이 사라졌다. 목숨을 앗아가려는 것이었는데, 사존의 자비로우신 구도가 없었다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나쁜 습관과 작별하고 진수(眞修)하다

귀국하기 전에 나는 5세트 공법을 독학했고,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영상을 한 번 보았으며, 사부님의 설법 전부를 다운로드했다. 그러나 귀국하고 일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지 않고 연공하지 않았으며, 체계적으로 법공부하지도 않고, 군데군데 읽었다. 혼자서 지내니 수련하기 좋은 환경이었지만, 오히려 소중히 하지 않고 ‘수련에 정진하겠다’고 사부님께 드렸던 맹세를 잊어버렸다. 게임과 색욕이 나를 꽉 잡고 있어 맥이 없었다. 가끔 감기로 머리가 어지러우면 병가를 내고 약을 먹고는 종일 누워 있었다. 업무상 술도 마셨고, 월급을 적게 주면 시시콜콜 따졌으며, 다른 사람을 못마땅해하고, 뒤에서 험담하는 등등, 총체적으로 수련인의 표준과 동떨어진 행동을 했다.

작년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가 폭발했을 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컴퓨터를 가지고 가지 않아 봉쇄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처음에는 TV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고, 핸드폰 게임을 했다. 나중에는 전염병이 갈수록 심해졌고, 웨이보에 올라온 도움 요청 글을 중공이 지우는 것을 보면서 중공이 가릴수록 이것이 중공이 만들어낸 거대한 인재라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는다’라는 말이 떠올랐고, 전에 간간이 읽었던 사존의 중생구도 관련 설법이 떠올랐다. 그 순간, 마치 사존께서 나를 밀어주신 것 같았는데, 모든 오락성이 있는 것들이 다 재미없어졌고, 얼른 봉쇄가 풀려 직장으로 돌아가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싶어졌다. 당시 아버지는 진상을 모르셨기에 집에서 수련하지 못하게 하셨다.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나는 10여 년 동안 나를 얽맸던 게임 중독과 색욕을 철저히 끊었다. 내가 착실히 수련하는지를 고험하기 위해서인지 한동안 시간이 지나면 매번 다른 친구가 돌아가며 이 게임, 저 게임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차례 색욕을 겨냥한 고험이 있었다. 가장 흉악한 두 번은 사존께 맹세를 해서야 관을 넘었다. 가장 첫 번째는 내가 막 야한 사이트를 열기 직전에 ‘제가 다시 야한 사이트를 접속하면 사존께서 제 파룬을 거두어주십시오.’라고 맹세했다. 얼마 안 돼 또 하마터면 마(魔)가 여자 친구 사진으로 틈을 탈 뻔했다. 나는 두 번째 맹세했다. 만약 제가 또 음란한 짓을 한다면, 사존께서 제 파룬을 거두어주십시오.

내 수련의 길에 가로놓여 있던 이 완고한 바위 두 개가 마침내 무너졌다. 그 기간, 나는 제고가 아주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법공부를 해도 마음에 들어오게 할 수 있었고,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다 보았으며, ‘전법륜’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전에 수련에 대해 오해를 해서 책만 보고 연공은 안 했다.

법공부를 하면서 동작은 번티(本體)를 전화하는 데 쓰는 것임을 명확히 알게 되어 연공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일했기에 아침 연공에 참가했다. 4시 50분에 일어나 앞 네 가지 공법을 연마하다가 나중에는 3시 50분에 일어나 5세트 공법을 연마하기까지 알람시간을 조금씩 조금씩 앞당겼다. 나와 여자 친구는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더는 데이트나 먹고 마시고 노는 데 집착하지 않았다. 한가한 시간에는 각자 세 가지 일을 했다.

서툴지만 진상을 알리다

법공부를 하면서 대법제자는 개인의 심신 건강을 얻고 득도하여 원만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큰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말겁 시기에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었다. 자비로우신 사존께서 나를 지옥에서 건져주시고, 우주대법을 전해주신 것은 나더러 속인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라는 것이 아니라 서약을 이행하고 반본귀진 하라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1]고 하셨다. 나는 중공바이러스(우한폐렴)가 빠르게 세상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보고는 직장으로 돌아온 뒤에 각종 방식으로 친구, 동료에게 ‘삼퇴’와 대법진상을 알렸다. 처음에는 인터넷을 통해 친구에게 알렸는데, 단번에 받아들이는 이도 있었고, 감히 듣지 못하는 이도 있었으며, 비웃는 이도 있었다.

나중에는 중공이 인터넷을 엄밀하게 감시 통제하는 것을 알고는 인터넷으로 알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항상 면전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기회가 생겼다. 때로는 친구가 나에게 함께 외지에 가자고 했고, 때로는 수년간 보지 못했던 친구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오기도 했으며, 때로는 동료가 관련 화제를 꺼내는 등등의 일이 있었는데, 나는 곧바로 기회를 잡아채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갓 진상을 알릴 때는 효과가 좋지 않았는데, 상대방에 이끌려 편향된 화제로 빠지거나 겁을 내거나 쟁투심이 강해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심지어 반작용이 일어나 다른 사람은 삼퇴도 하지 않고, 사당에 충성하는 말을 하곤 했다. 때로는 마음속으로 ‘당신에게 이렇게 많이 말했는데, 아직도 모르다니, 탈퇴 안 하려거든 관둬라.’라고 생각했다. 자비심이 조금도 없었는데, 정말로 송구스럽다.

한동안 밍후이왕에서 어떤 수련생이 몇만 명을 삼퇴시켰다는 것을 보고는 조바심과 질투심이 나왔다. 나는 퇴근길에 반드시 최소한 1명에게라도 진상을 알리기로 했다. 결과는 바라는 바와 반대로 됐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이렇게 억지로 하는 방식으로는 한 명도 삼퇴시키지 못했다.

나는 진지하게 ‘9평공산당’, ‘해체당문화’, ‘공산주의의 최종목적’을 읽고서 공산악당이 폭력과 거짓말로 성장해 온 과정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는 또 ‘우리는 미래에 알린다’, ‘풍우천지행(風雨天地行)’, ‘전기시대(傳奇時代)’ 등 기록영상을 보면서, 사존의 홍대한 자비, 수련생의 정념정행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사람을 구함에 극단으로 나아가면 안 되고, 대법에 먹칠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만을 구하거나 공덕을 구하는 어떤 사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 나는 더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급급하지 않았으며, 최대한 선량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유지했다.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때, 마음속으로 ‘당신은 탈퇴하지 않았지만 나 역시 헛되이 말하지 않았다. 최소한도로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았으니 앞으로 다른 수련생이 당신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반년 남짓 내에 한 좋은 친구에게 여러 차례 진상을 알렸는데, 그가 탈퇴하지 않았지만 나도 의기소침하지 않았다. 얼마 안 돼 그가 내게 주동적으로 중공악당이 소위 ‘국안법’으로 홍콩인을 진압하는 일에 대해 말했고, 그 김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삼퇴 하고 싶지 않아?” 당시 나는 그가 동의할 거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가 “탈퇴할래.”라고 했다.

대법이 온 가족에게 은혜를 베풀다

가족에게 진상을 알림으로써 오래 묵은 관 하나를 넘었다. 나는 법을 얻고 얼마 안 돼 부모님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 말을 듣고는 예전에 대법 진상자료를 보신 적이 있다고 알려주셨다. 어머니는 진상을 받아들이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9자 진언을 외우는 것은 좋아하셨지만 감히 ‘삼퇴’는 하지 못하고 내가 박해를 받을까 봐 걱정하셨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당의 공청단 조직에서 일하셨고, 몇십 년간 사당의 각종 세뇌 선전을 거의 믿고 받아들이셨다. ‘문화대혁명’을 직접 경험하셨고, 아버지의 동년배는 ‘6.4’로 죽을 뻔했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중공사당을 따르셨다. 내가 막 처음 아버지께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씀을 드리자 길길이 날뛰셨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해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어머니께만 ‘삼퇴’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진상자료를 보여드리고, 아버지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예전에 빈혈, 현기증이 있으셨는데, 여러 차례 9자 진언을 외워 다행히 쓰러지지 않으셨다. 이로써 9자 진언의 신기함이 증명되었고, 이 때문에 작년에 ‘삼퇴’에 동의하셨다. 그리고 사당에 대해서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게 되셨다. 어머니는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전법륜’을 한 번 보신 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수련하는 것에 대해 아버지께서 달가워하시지 않아 어머니는 집안 갈등이 심해질까 봐 수련에 들어서지는 않으셨다.

한 번은 아버지께서 술에 취하신 채로 내게 아직도 연공하는지를 물으셨다. 나는 연마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또 빈정거리는 말을 하셨다. 아버지의 태도에 내 마음은 오랫동안 갈등상태에 빠졌는데, 하늘이 중공을 멸망시키는 순간에 아버지가 사당의 순장품이 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으면서도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과거에 내가 아버지께 두 마디도 하기 전에 아버지께서 노여워하시며 말을 끊으셨을 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이나 대법에서 얻은 혜택은 말하지 않고 중공의 사악함만을 말씀드렸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버지는 몸을 건강히 하고 병을 제거하는 가짜기공을 몇 가지 연마하신 적이 있는데, 이는 최소한도로 아버지가 기공을 배척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찾아 이 각도에서부터 말씀드리기로 했다.

올해 설 전에 아버지는 노인에게 흔한 병에 걸리셨는데,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고, 약을 먹으면서 악화를 늦출 뿐이었다. 섣달그믐날 오후, 아버지는 모 드라마 에필로그를 보고 계셨다. 나는 관구이민(關貴敏)을 아시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그때 수많은 드라마의 주제곡을 불렀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알았던 유명 가수 몇 명을 언급하셨고, 몇십 년간 관구이민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내게 “어떻게 관구이민은 아는 게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아버지께 동영상을 하나 보여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리고는 미리 준비해뒀던 관구이민을 소개하는 영상을 가져왔는데, 관구이민이 간 경화로 음악계에서 은퇴했다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 건강을 회복하고 미국에 이민갔고, 70여 세에 아직도 션윈예술단에 참여해 각국 순회공연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일부 진상 동영상도 보여드렸다. 이어서 나는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에 병 없이 온몸이 가벼워지고, 게임 등도 완전히 끊게 된 변화도 말씀드렸다. 이번에 아버지는 아주 진지하게 들으셨다.

그날은 예전과는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내가 중공 악당의 죄악을 언급하기만 하면 내게 큰소리로 야단을 치셨는데, 이번에는 내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언급하자 잘 받아들이시며 어떻게 연마하는 것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표면이 사당에 깊이 독해되긴 했지만, 동시에 명백한 그 일면은 또 대법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우선 삼퇴는 언급하지 않고 직접 법공부, 연공하도록 했다.

이튿날 연공 영상을 보시면서 제1장 공법을 배우셨다. 그리고 ‘전법륜’을 읽기 시작하셨고, 사존의 광저우 설법녹음도 들으셨다. 며칠 후에 광저우 설법을 다 보셨다.

아버지는 과거 20여 년간 매일 사당의 뉴스를 보셨는데, 때로 방송을 놓치면 재방송도 보셨다. 그런데 며칠간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보시더니 뉴스 방송 시간이 되었는데도 보지 않으셨다. 이날부터 아버지는 매일 연공하셨고, 이틀 동안 잦은 설사를 하셨는데, 아버지는 사존께서 신체를 청리해 해주신 것임을 깨달으셨다. 아버지는 병이 없는데, 무슨 약을 먹냐며 더는 약을 드시지 않았다. 대법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가 완전히 변하면서 어머니도 수련의 환경을 갖게 되셨다.

파룬따파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제자는 사존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설날을 보내고 나는 직장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아직 ‘삼퇴’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고, 일부 진상간행물과 동영상만 남겨 놓고 왔다. 아버지는 며칠 만에 건강을 기본적으로 회복하셨는데, 이는 세계 어느 의료수단으로도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다리만 아직 그리 민첩하지 못하셨는데, 나는 ‘퇴(腿, 다리)’와 ‘퇴(退)’가 동음인데, 아버지가 아직 ‘삼퇴’하지 않아 여전히 공산사령의 수인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나는 다음번에 집으로 돌아갈 때 아버지께 명확하게 말씀드릴 준비를 했고, 아버지께서 정확한 선택을 하시리라 믿었다.

맺음말

최근 반년, 나는 수련의 엄숙함을 더욱 느꼈다. 나는 법을 늦게 얻었기에 더욱 착실하게 수련해야 하지만 늘 자신을 신수련생이라고 여겨 그렇게 높이 요구하지 않고 여지를 두었다. 때로는 관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사람의 관념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 더러운 마음을 없애길 원치 않았다. 늘 자신이 수련하기 전보다 좀 좋으면 된다고 여겼는데, 근본적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하지 않았다. 사존께서 “그들은 늘 사람과 비교하며, 늘 그들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법의 각 층차의 요구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합니다.”[2]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하루는 사부님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을 배웠다. “내가 태어날 때, 많은 신들이 따라서 내려왔다. 그 후부터 해마다 모두 있었고, 신들은 줄곧 아래로 내려왔다. 내가 법을 전할 때가 되어서는, 그 신들이 마치 눈꽃처럼 내려왔다. 바로 그렇게 많았다. 내가 이 나이를 계산해 보니, 내가 법을 전할 때부터 현재까지, 25세 전후의 이런 젊은이들인데, 정말 아직도 많은 사람이 구도 받지 못했다. 모두 신이 온 것이며, 그들은 지상에 내려와, 전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있다.”[3]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진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친구, 또래, 심지어 친한 친구가 생각났다. 그들은 장차 중공사령을 따라 함께 도태될 운명에 직면했기에 나는 너무 슬펐다. 고귀한 중국인, 고귀한 ‘주링허우(90년대 출생자)’의 이 생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오히려 중공사령과 급속도로 파괴되는 세상 기풍에 의해 끌려 내려갔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조금 전에 세간의 사람과 대법제자를 비교하면 현재 대법제자의 인원수는 몹시 적지만 당신들은 오히려 그렇게 큰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였다고 말했다. 대법제자는 어느 지역이든 기본적으로 당신들이 바로 그 지역 중생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희망이며, 아울러 유일한 희망이다.”[4]

여기에서 나는 사존께 말씀드리고 싶다. “사부님, 제자는 늘 사부님의 보살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오직 수련해 정진하고, 법공부를 많이 하며, 사람을 많이 구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사존께 구도받은 성연(聖緣)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존께 머리 숙여 감사를 올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불성무루(佛性無漏)’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시간과의 대화(和時間的對話)’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5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4/4260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