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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각각 법으로 자신의 언행을 바르게 하다

글/ 뉴욕 미드타운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뉴욕 미드타운 학교 무용과 학생입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저의 심득체험을 교류하려 합니다.

예전에 저는 엄마나 외할머니와 모순이 생겼을 때 늘 수련인의 표준으로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엄마나 외할머니가 저의 생각에 맞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할 때면 바로 받아쳤습니다. 당시에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면 심성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헐뜯고 싸울 때, 마음을 다스리기가 가장 어렵다.”[1]와 같았습니다. 마음에 충격을 받았을 당시 저는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늘 속인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좋은 결과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줄곧 이 방면에서 제고를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휴가 때 저는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이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먼저 엄마와 모순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한 가지 일을 토론하다가 마지막에 모두 기분이 나빠졌지만 저는 여전히 그 문제를 논쟁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말을 마치고 막 내가 말하려는 그 순간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높은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스승님께서 알려주시기를 우리 연공인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아야 하며 높은 자태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는 그 두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흔히 모순이 생길 때, 사람의 심령(心靈)을 자극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쓸모없으며 제고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못하면, 마음이 번거로워질 것인데,”[1] 이 단락의 법은 아주 확실하게 저의 머리에 들어왔습니다. 좀 전에는 엄마의 말에 어떻게 반박할 것인가를 생각했지만 법이 떠오르자 나쁜 생각을 억제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저는 즉시 논쟁을 멈추었습니다. 이번에는 드디어 참아냈습니다.

또 한 번은 외할머니가 제 이모(중국에 사시는 속인)와 통화를 했습니다. 설 기간이라 이모부도 문안 인사를 올리자 외할머니는 고맙다고 하면서 이모부가 아주 좋다는 등의 말을 했습니다. 당시 저는 방안에서 그 말들을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에 외할아버지가 엄중한 병업관을 넘을 때 외할머니만 옆에서 돌봐주셨습니다. 우리는 해외에 있어 중국으로 갈 수 없었는데 외할머니가 사부님의 설법을 틀어드릴 때마다 이모부는 엄하게 제지했고 경찰을 부르겠다면서 큰 소리로 좋지 않은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이모부 가족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외할머니가 통화할 때 처음에는 내 생각을 말하려 하지 않았지만, 이모부에게 고맙다고 하는 것을 듣고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할머니에게 이모부네 가족은 근본적으로 좋지 않다고 외쳤습니다. 할머니는 말을 멈추었다가 저에게 이모부가 그때 도와준 적이 있기에 고맙다고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반박하려 했는데 머릿속에 ‘수련인은 윗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당시 중국에 없었기에 내가 알고 있는 일로 그들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스로 업을 짓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나면서 또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습니다. “매 한 관(關), 매 한 난(難)에는 모두 수련하여 올라가는가 아니면 떨어져 내려가는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 본래 어려운데 또 인위적으로 이 난을 더한다면, 어떻게 넘을 것인가?”[1]

저는 그렇게 큰 소리로 외할머니에게 말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마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더는 논쟁하지 않고 수구(修口)해서 업을 쌓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왜냐하면, 사물의 인연관계, 바로 이 일이 도대체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 어떠한 인연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반 수련자는 그렇게 높은 층차에 있지 않아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표면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하기만 하면 나쁜 일일지도 몰라 염려한다. 그래서 그는 되도록 무위(無爲)를 말하며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이렇게 그가 업을 더 짓는 것을 피한다. 업을 지었으면 소업(消業)해야 하며 고생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1]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외할머니께서 저한테 화내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두 가지 일에서 저에게 변명하려는 마음과 자아와 사심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은 수련자의 행위와 사상에 영향을 주고 교란을 합니다. 그리고 틈을 타게 할 때면 자신의 행위가 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법이 머릿속에 있기만 하면 어떤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과 말할 때도 우선 자신의 행위가 법에 부합되는지 생각하게 되고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요구를 생각하게 됩니다. 절대로 거리낌 없이 말하거나 욕망과 집착을 방임하지 말아야 않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지옥에서 건져주셨고 생생세세의 각종 원한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천만년이 지나도 만나지 못할 기회를 주셔서 대법제자로 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수천만 년 동안 전생하면서 고생을 겪은 것은 바로 이번 대법홍전과 구도를 기다린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청년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언행을 바로 잡아야 하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른 대가를 알아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어떤 때 법공부를 많이 하면 좀 정진할 수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을러집니다. 저는 제가 이전에 잘하지 못한 것, 위사위아(爲私爲我)의 행동, 구세력의 안배를 쉽게 인정한 것을 몹시 후회합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저의 잘못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저는 반드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잘 걷겠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을 착실히 하고 주이스(主意識)를 강화하여 바르지 못한 행동과 사상을 바로 잡겠습니다.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하고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며 사부님의 요구를 원용(圓容)하여 확고하게 신사신법(信師信法)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법 중에서 우리에게 “왜냐하면 법은 기초이고 대법제자의 근본이며 일체의 보장이고 사람에서 신으로 걸어가는 탄탄대로(通途)이기 때문이다.”[2]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의 법을 함께 되새기면서 오늘 여러분들과의 교류를 마치겠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당신들이 명백해진 후에 재빨리 따라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이 가장 위대한 신의 길에서 굽은 길(彎路)을 적게 걷고,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며, 층차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와 당신들이나 당신들을 기대하는 중생들의 바람이다.”[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들이 자비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3-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정진요지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2021년 뉴욕 오렌지 카운티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표원고)

 

원문발표: 2021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1/42590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