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미국 청년 제자, 매체에서 일하며 안으로 찾다

글/ 미국 청년 제자

[밍후이왕] 내가 마난(魔難)에서 벗어나 다시 정진실수(精進實修)의 길로 돌아온 지 3년 됐다. 그동안 나는 적잖은 변화를 느꼈는데 원래 수련인과 속인의 차이란 일념(一念)의 차이일 뿐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내가 정말 착실하게 수련한 시간은 매우 짧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수련에 정진해야 하고, 더 많은 긍정적 교훈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대법에서 유래한다

사람을 구하는 항목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대법의 끝없는 법력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완성하도록 항상 도와주고 있음을 깊이 느꼈다. 자신이 순정한 마음가짐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일은 대체로 적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 속에는 사부님의 고심안배(苦心安排)가 녹아 있어 진정으로 승화하고 제고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글쓰기가 서툴고 영어도 서툴렀으며 중국어 문법도 정통하지 못했다. 그러나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는 이런 능력을 고기가 물 만난 듯이 운용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일부 영어 문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단락과 중국어 문법까지 다듬을 수 있어서 나는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문장을 편집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의 이런 능력은 전적으로 대법에서 오는 것임을 더욱 깨닫게 됐다.

끊임없이 자신을 바르게 하자 나의 문장 편집 능력도 빠르게 정상 궤도에 다다랐다. 겉으로는 별로 노력하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는데 이것은 으레 있는 결과가 아니며 몇 년 전 션윈(神韻) 프로그램에서 한 선인(仙子)이 대법제자를 배후에서 도와주는 것과 같이 대법의 지혜가 내 능력의 원천이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시기를 “내가 늘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했다. 당신들이 비록 부동한 경지에 있지만 모두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이 얻은 그것에는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속에 용해되어 들어있는지를?”[1]이라고 하셨다.

나는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며 사부님께서 얼마나 고심해 안배하셨는지 모른다. 하지만 법의 힘이 부패한 우주를 신기하게 변화시키며 다시 더 나은 일체가 시작됐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어떤 때는 사람 이 층의 난관에 빠져 마음속으로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지만 교란에서 벗어나 그 속에 있지 않게 되면 정말 다른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작은 일에 대한 기억

나는 뉴스센터에서 편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일요일 회의에서, 내가 소속된 뉴스부 총 고문이 웹 사이트 머리기사를 이제 10개로 늘린다고 통지했다. 이 소식이 나는 마음에 걸렸는데 그전에는 편집 과정에서 하루만 근무하면 됐고 근무 일수가 적더라도 헤드라인을 게시할 권한이 없었기에 그 영역에서 자주 곤란에 부딪혔기 때문이었다. 곤란에 부딪힐 때마다 일부 글이 제 위치에 있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돼 속으로 아주 괴로웠다. 이런 생각은 점점 강해졌고 근무할 때마다 나는 짜증이 났다. 현재의 헤드라인 칼럼이 추가되었으므로 또 늘리면 더 지체될 게 분명했다. 나는 책임자가 기술부서에 통지해 내 편집 계정에 웹 사이트 머리기사를 발표할 권한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나는 먼저 고문에게 소식을 보냈다. 소프트웨어와 전화를 이용해 세 번이나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나는 짜증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다른 책임자 수련생이 접속해왔기에 그에게 상황을 소개했는데 그녀의 말은 나를 좀 의아하게 했다. 그녀는 전에도 이미 유사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세 번이나 반영했지만, 그때마다 “생각해 봅시다”라는 응답이었고 이후 소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전에 유사한 상황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여겼으며 그녀가 세 번이나 이 문제를 언급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그날 나와 소통한 후 그녀는 헤드라인 뉴스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나 역시 그녀로부터 확실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권한을 얻는 일에 관해 답을 듣지 못한 문제는 외재적 정황의 출현이 아니라 분명 내가 수련해야 할 부분이었다. 나는 이 과정을 정리해 봤다. 사실상 헤드라인 권한을 맡는 것은 어떤 좋은 점이 없지만, 마음속으로 나는 그것을 자기 일 가운데 일종의 좋은 점으로 간주한 것이 아닌가? 답은 분명했다. 그것이 내 일에 편리함을 주게 되고 심지어 명을 구하는 집착에 만족을 주기 때문이었다. 이런 것이 내가 여기저기 책임자를 찾아 사정을 이야기하는 동력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대법(大法)은 명예가 없고 이익이 없으며 벼슬할 것이 없는바, 바로 수련이다.”[2]라고 하신 사부님의 경문 한 단락이 생각났다. 원고 심사를 맡고 헤드라인 뉴스를 발표할 수 있는 것을 좋은 일로 여긴 게 아닌가? 이러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만약 내가 속인 중에 있다면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꾀하기 좋아하는 ‘약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법제자에게 이런 집착은 ‘어리석음’의 표현이다.

겉보기엔 내가 마치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고려하는 관점에서 말하며 그 시간에 해내기는 사람이 부족함을 지적한 것 같지만 나는 시간이 적당했고 다른 팀의 헤드라인 기사도 함께 고려할 수 있었다. 사정이 그럴듯해서 책임자 수련생도 수긍했으나 이전에 그녀가 세 번이나 고문에게 제기했어도 반영되지 않았었다. 내게 인상 깊었던 것은 책임자 수련생이 “모두를 위해 책임져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 것이었는데 이 말은 나를 깊이 생각해 보게 했다. 보기엔 내가 마치 항목을 더 잘해보려는 입장인 것 같지만 자신은 이 문제에서 순정하지 못했으며 사적인 마음과 자아를 뒤섞었지 결코 전적으로 위타(爲他)의 입장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관점을 받아들이게 하고 남에게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는 당(黨) 문화의 작법과 고집을 강요했지 법을 실증하는 기점은 아니었으며 자신의 집착을 실증하려는 것을 뒤섞었다.

사부님께서는 “창세주가 생명 우주 천당을 만들었나니 층층 뭇 신(神)들의 능력과 권세(權杖)도 그가 부여한 거라네”[3]라고 하셨다. 일하는 과정에서 어떤 때 나는 사부님께서 수련하라고 주신 능력을 자신의 것인 양 잘못 알고 비교하는 마음, 명을 구하는 마음, 조급증, 쟁투와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내가 이 일에 짜증을 낸 것은 집착심과 ‘가짜 나’를 자신으로 잘못 알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착각하며 안을 향해 찾지 않은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른바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방법이 없는’ 원인은 수련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 데 있었다. 겉보기에는 내가 근무하는 날 낮에 아무도 머리기사를 올리지 않은 게 문제인 것 같지만 실은 이 일에 대해 권한을 쟁취하려는 집착심이 생겨 목표를 이루고자 집착하기 시작했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회의에 참석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일을 맡게 된 것 역시 전적으로 사부님의 가지이며 대법의 힘이다. 그런데도 나는 대법의 법력으로 사람 표면의 어떤 것을 추구했다. 보기에는 하나의 항목 같지만, 그 속에는 나의 집착심이 폭로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젊은 사람은 자신을 파악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당신이 보라. 그는 평소 아주 좋으며, 속인사회 중에서 무슨 능력이 없을 때, 그의 명리심은 아주 담담하다. 일단 사람이 두각을 나타낼 때면, 흔히 명리적인 교란을 받기 쉬운데, 그는 남은 생애에 아직 먼 길이 있다고 느껴, 더욱 보람차게 해보려 하며, 한번 분투하여 속인의 어떤 목표에 도달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일단 공능이 나오고 능력이 있게 되면, 그는 그것을 흔히 속인사회 중에서 개인목표를 추구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면 안 되며 이렇게 사용하는 것 역시 허용하지 않는데, 쓸수록 이 공은 더욱 적어져서 최후에는 역시 아무것도 없다.”[4]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사부님께서 ‘전법륜’ 중에서 질투심 문제를 말씀하실 때 예를 드신 사례가 생각났다. “이 사람, 그는 직장에서 다른 사람이 모두 자신보다 못하다고 느끼는데, 자신은 무엇을 하든 다 잘하며 확실히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는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공장장・사장을 시켜도 나는 다 할 수 있고, 나에게 더욱 높은 벼슬을 주어도 나는 역시 할 수 있으며, 총리가 된다 해도 내가 보기에는 될 것 같다.’ 상사도 이 사람은 정말 괜찮고 무엇이든 다 잘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동료들까지도 모두 이 사람은 정말로 괜찮고 솜씨가 보통이 아니며 재능이 있다고 할 것이다.”[4]라고 하셨다. 되돌아보니 이미 자신을 ‘웹 사이트 헤드라인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위치에 둔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책임자 수련생 두 명을 향해 적극적으로 쟁취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이 문제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원인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선 “내가 여러분에게 이런 이치를 말해 주겠는데, 속인이 인식할 수 없는 이치다. ‘당신이 보기에는 당신이 무엇을 해도 다 잘하지만 당신의 명(命) 중에는 없으며, 그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지만, 그의 명 중에는 있기에 그는 간부가 되었다.’ 속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속인의 생각이다. 더욱 고급적인 생명이 볼 때, 인류사회의 발전은 다만 특정한 발전법칙에 따라 발전함에 불과하므로, 사람의 일생 중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은 그가 당신의 능력에 따라 당신에게 안배해주는 것이 아니다.”[4]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나는 만약 이런 사명이 없었다면 대법 항목에서 이런 역할을 맡지 않았을 것이고 적극적으로 글을 올리는 권한을 얻으려고 한 것은 이 방면에서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전날 나는 뉴욕 수련생의 교류를 들었는데 그가 ‘해체 공산당 차량 퍼레이드’ 중에 어떤 수련생이 자기가 차량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것도 자신의 서약에 포함된 것임을 느낀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 항목 중에는 꼭 그가 해야 할 것이 있고 그가 구도해야 하는 중생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이것은 성스러운 인연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정법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어떻게 사람의 고만한 집착에 좌우될 수 있는가? 매체 항목의 일을 하지만 그 속에는 나의 수련이 포함된 것이다. 어찌 잘 수련하지 않고 속인의 것과 유사한 것을 추구할 수 있는가? 무슨 항목에 참여하든 같지 않은가? 만약 수련생이 스스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건 자신의 문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전적으로 위대하신 사부님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본래 한 덩이 강철(鋼)인데 당신을 철(鐵)로 배치한다면 그건 안 된다. 당신이 보살과위로 수련할 수 있는데 당신을 나한과위에 배치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 매우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조금도 잘못 보지 않는다.”[5]라고 하셨다.

나는 또 그날 일찍 수련생 아주머니가 전화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녀의 남편도 수련생인데 이전에 국내에서 불법 수감당했을 때 그는 아주 견정했으나 석방된 후 주거 문제로 곤란에 부딪혔다. 벌써 여러 번 경찰에게 쫓겨났는데 이번에도 집주인이 다른 집을 찾아보라고 했다. 경찰의 의중에 따라 그를 또 쫓아내려는 것 같았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전화 플랫폼 사람을 찾아 집주인에게 전화를 좀 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탁받은 몇몇 플랫폼 수련생 모두 이 일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매우 괴로워했으며 말투에도 감정이 배어 있었다. 나의 어머니(수련생임)가 말씀하시길 문자로 집주인의 전화번호를 받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주머니 수련생의 아들에게 집주인 전화번호를 내 전화로 보내게 하셨다.

이때 나는 회피하려는 마음, 귀찮을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말을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생기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또 내 일이 너무 바쁘다고 말하며 회피하고, 교활한 마음도 있었는데 수련인 같지 않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짜증스러운 말투로 아주머니가 우리 어머니 전화로 직접 문자를 보내게 하든가 전화를 걸게 하든가 하지 나를 거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실 속인에게 전화로 진상을 말하거나 글을 보내는 것도 법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헤드라인 뉴스를 올리는 권한은 추구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친 수련생의 집주인에게 문자 보내는 것은 배척하며 더군다나 자신이 관여하는 것이 아니고 가족에게 관여하게 하다니. 왜 머리기사 권한은 마치 무슨 혜택이나 있는 것 같이 애써 쟁취하려 하면서 어려움에 부닥친 사정은 듣고도 발뺌하는가? 나는 왜 속인에게 전화 걸고 문자 보내기는 하려 하지 않고 헤드라인 뉴스 권한만 얻으려고 하는가? 또 편집 업무를 속인의 일로 여기고 하는데 모두 더 좋은 직무를 쟁취하려고 하는 속인의 직장 같다. 대법제자 항목을 벼슬을 얻는 것처럼 여기는데 명을 구하는 마음, ‘가짜 나’,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런 것들을 반드시 닦아버려야 한다.

여기까지 쓰면서 나는 수련의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보게 됐음을 느꼈다.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함께 법을 외우고 나서 속인 중에서 얻는 것은 진정한 얻음이 아니며 무엇을 얻든지 우주 대법을 얻은 행운과는 비교할 수 없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다음 날 아침 항목팀 고문 수련생이 모두에게 헤드라인 뉴스 권한 문제에 관해 스스로 언급했다. 어제 그가 일이 있어 저녁에야 내가 보낸 소식을 보았다고 하며 이후엔 부족한 곳을 나에게 보완하도록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사실이 증명하듯 이 일을 나는 쓸데없이 걱정했음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복잡해 보이는 사상은 ‘진짜 나’ 자신이 아니었고 또 진실한 상황도 아니며 ‘가짜 나’가 만들어낸 가상일 뿐이었다. 진정한 장애 요소는 처음부터 나 자신에게서 비롯한 것이었다.

이 일로 자세하게 안을 향해 찾아봄으로써 나는 자신이 정말로 승화되었음을 느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스위스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 요지 – 맹격일장(猛擊一掌)’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5 – 解天機(천기를 풀다)’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파룬따파의해 – 창춘(長春)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원문발표: 2021년 4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14/4233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