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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짊어지다

글/ 대만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8년에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한 대만 대법제자다. 중국공산당(중공)이 박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진상 전화를 걸었다. 이 지역에서 나 혼자 전화를 걸던 데에서 지금은 많은 수련생이 참여하고 있고 자전거를 타고 다른 지역에 배우러 가던 데에서 지금은 기지 수련생을 거느리고 전화를 걸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남편이 이해하지 못했고 병업관, 실업의 고통과 수련생 사이의 모순을 겪었다. 돌이켜보면 그런 고통스러운 어려움이 지금은 한 가닥 연기로 변했고 내 수련 층차를 제고시켜줬다.

1. 기복 있는 수련의 길

이전에 나는 모 기관에서 컴퓨터 데이터 패킷을 관리했다. 근무 환경은 옥상의 함석판으로 만든 창고였는데 더럽고도 더웠으며 냉방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늘 점심에 혼자 안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1시간에 항상 7~8명을 탈퇴시켰다. 나중에 나도 모르게 동료에게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불평했다. 기관 예산이 부족해져 나는 이후 직장을 잃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고생을 겪고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그 환경을 배치하셨는데 나의 바르지 않은 생각으로 그런 좋은 환경을 잃은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봉급은 높지 않았다. 월급이 1만5000대만달러(한화 약 60만원)정도 였지만 내 모든 것을 법에 사용했고 홍콩행은 거의 다 참가했다. 내가 법을 얻지 않았다면 낭비라고 생각하고 돈을 들여 출국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법을 얻은 것을 행운으로 생각했고 대법이 필요하면 나는 갔다.

나중에 사존께서 또 괜찮은 일자리를 나에게 배치하셨다. 집에서 가깝고 시간이 길지 않아 안정적으로 법공부하고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봉급이 많지 않아 시간이 길어지자 이익지심이 생겨 보장이 있고 수입이 괜찮은 일자리를 찾고 싶어 다른 사람의 소개로 환경미화원 일을 찾았다. 아침에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와야 했기에 처음에는 법공부와 전화 진상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차츰 수련을 느슨히 했고 장기간 안으로 찾을 줄 몰라 많은 집착을 키워 몸에 소업 상태가 나타났다. 장기간 잠을 잘 잘 수 없었고 연공할 때 손을 들 수 없었으며 용모도 초췌해 수련생들이 보고 모두 놀라워했다. 고비를 넘을 때 정말 고달팠다. 그렇지만 손이 매우 아파도 매일 나가서 연공하고 세 가지 일을 견지했다.

병업 중에도 홍콩에 대한 알 수 없는 사명감에 나는 이런 몸을 이끌고 여전히 홍콩 진상 알리기 및 퍼레이드 활동에 참가했다. 수련생은 교류할 때 몸이 불편하면 제자를 위해 소업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나는 병업관을 넘을 때 생각한 것은 자신이었기에 격차가 매우 큰 것을 느꼈다. 어느 날 홍콩에서 제3장 공법 ‘꽌퉁량지파(貫通兩極法)’를 연마할 때 손이 매우 아팠는데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소업해주신다는 일념을 내보냈더니 갑자기 불편한 느낌이 없었고 즉시 사부님께서 관정해주신 것을 느꼈으며 매우 편안해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홍콩에서 진상 알리는 프로젝트는 “이 마을을 지나면 이 주막은 없다”는 말이 들어맞았다. 나는 비자를 받고 홍콩에 갈 수 있던 데에서 강제송환 블랙리스트에 등록됐다. 이후 동포증을 만드는 방법을 찾았지만 수년 후 동포증도 취소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념으로 난관을 넘으려 했지만 결국 또 송환됐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했기에 유감스럽지 않았다. 지금은 홍콩판 국안법을 시행해 홍콩에 가서 사람을 구할 기회는 점점 적어졌다. 우리는 사람을 구하는 다른 방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2. 전화팀에서의 수련

나는 전화팀의 창구다. 이전에 많은 수련생이 전화 걸기를 두려워했다. 나도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다른 항목에 참가했다. 매주 공항 진상 알리기를 2~3일 배치했고 전화 거는 것을 많이 느슨히 했는데 다른 수련생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추진하지 않아 수련생들에게 미안했다. 여러 번 다른 수련생에게 맡기려 했는데 그는 나의 조수라고 대답했다. 몇 년 전 수련생들은 점차 기지에 오지 않았고 일부 수련생은 플랫폼에 가서 전화 거는 것으로 전환했다. 그것은 주변 창구의 수련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A수련생이 수련생이 오지 않으면 우리도 나가자고 제안했다. 우리 둘은 자전거를 타고 편벽한 시골에 가 교류했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잇따라 한동안 포기하려 했는데 마침내 그 지역에서도 최근 기지를 세웠다. 또 일부 노년 수련생은 자전거가 없어 기지에 갈 수 없었다. 우리는 법공부 장소에 가서 수련생과 교류하고 법공부 장소를 전화 기지로 만들었다. 우리는 거점에 가서 협조했고 다른 한 노년 수련생을 태우고 함께 전화를 걸러 갔다. 이 기지도 설립된 지 몇 년이 됐다. 이 노년 수련생은 전화 진상 알리기를 배워 틈만 나면 본인 집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그는 많이 제고됐다.

3. 사명을 짊어지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집 근처에서 주방 도우미로 일했다. 그 사이에 2시간 휴식할 수 있었지만 사람 구할 수 있는 시간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2020년 설 전에 이 일도 끊겨 마음이 매우 울적했다. 나중에 우한폐렴이 발발해 대 도태가 다가온 것 같았다. 중국 관광객은 출국해 진상을 찾을 방법이 없어 집에서 대법제자의 진상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제자들은 다그쳐 구하고 빨리 알려야 한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이전에 잘하지 못한 것을 보완하도록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깨달았다. 내가 이 지역 전화 거는 수련생을 잘 이끌 사명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처음에 나는 매일(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기지를 지키고 수련생이 전화 걸러 오기를 기다렸다. 나중에 수련생의 협조와 기획으로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정오, 저녁 3개 반으로 나누어 수련생에게 고정적인 시간 배치를 했다. 그중 화요일과 금요일 저녁은 B수련생 집을 기지 거점으로 했고 토요일, 일요일은 시간을 정하지 않고 법공부하고 교류하며 전화를 걸면서 전력을 다해 수련생을 이끌고 정체(整體)를 이뤘다.

미국에 환경미화원으로 일할 기회가 있어 나는 추세에 따라 미국행을 신청했다. 이건 나의 소원이었다. 승인을 받은 후 나는 수련생에게 인수인계를 시작했다. 수련생은 나에게 “아주머니는 전화 창구입니다. 지금은 비상시기입니다. 청소는 아무나 할 줄 압니다. 아주머니가 앞장서서 싸워야 하는데 피하시면 이 싸움을 어떻게 할 수 있고 어떻게 사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교류했다. 듣고 나니 매우 부끄러웠다. 수련생을 잘 이끌겠다고 말하고는 결국 병목 현상이 발생하자 미국으로 도망치려 했다. 사실 우리 지역 수련생을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가버리면 무책임한 것이고 적합하지도 않다. 이 사명을 짊어져야 하고 삼십육계를 써서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4. 전염병 후 기지에서 착실히 수련하다

전염병이 시작된 후 나는 자신을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나에게 수련생을 잘 이끌어 함께 사람을 구하려는 소원이 있었다. 나 혼자 전화를 잘 거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되고 한 명씩 그들을 이끌어 성숙되게 해야 하기에 나는 출근할 때보다 더 바빴다. 매일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오면서 기지에서 수련생을 이끌었다. 우선 플랫폼에서 어떻게 수련생을 이끌 것인지 배우고 자주 새로운 원고를 갱신해 인쇄했고 그들을 도와 도구를 신청했으며 매일 집에 돌아오기 전에 각 방에 가서 노트를 수집하고 수련생이 삼퇴시킨 명단을 올리고 번호를 삭제했다. 수련생이 옆에서 지원병이 됐다. 수련생이 도움을 청할 때 나는 동작이 매우 컸고 목소리도 높았으며 급하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뛰어갔다. 다른 방에서 녹음하던 수련생이 나 때문에 걱정했다. 그는 “아주머니가 동작이 크고 급하며 목소리가 높은데 많은 수련생을 잘 이끄실 수 있나요? 잘 이끌지 않으면 책임이 매우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호의적으로 나에게 쪽지를 주어 벽에 붙이게 했고 말할 때 좀 천천히 느슨하게 둥글게 말해야 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켰고 사부님께서 나에게 지혜도 주셨다. 수련생이 나에게 전화를 걸라고 할 때 나도 평온하고 천천히 말할 수 있었다. 때로 수련생이 건네준 전화를 받으면 협력해 이어서 중생을 탈퇴시켰다.

나에게는 또 소원이 있었다.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이 세 가지 일을 잘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자 사부님께서 순서 있게 배치하셨다. 예를 들면 80대 C수련생은 장기간 침대에 누워있었다. 한번은 그녀를 보러 갔을 때 그녀에게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사부님께 빌라고 알려줬다. 다시 방문 갔을 때 그녀는 일어설 수 있었고 안색도 많이 좋아졌다. 그녀는 진상을 알리고 싶어 했다. 나는 다섯 번 방문 간 뒤 교란을 배제하고 수련생을 도와 시내전화를 즉시 설치해주고 그녀에게 사용법을 가르쳐 줬다. 현재 그녀는 매일 평균 3~4명을 탈퇴시킬 수 있다.

또 장기간 집에서 법을 배우면서 나오지 못한 D수련생도 전화를 걸러 나왔다. 그녀는 그녀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불러줘서 고맙다고 했다. E수련생도 평소 걸어 나오지 않았지만 전염병 이후 전화 거는 것을 배웠다. 그녀는 손녀를 등교시키고 노인을 돌봐줘야 했다. 그녀는 손녀를 등교시키는 시간을 이용해 전화를 걸었다. 친척이 노인을 돌보러 오면 그녀는 얼른 기지에 와서 전화를 걸면서 짬짬이 시간을 잘 활용했다. E수련생은 “진상전화를 거는 과정에서 때로 상대방이 탈퇴하지 않아도 수련의 길에서 매우 착실해졌다”고 교류했다.

F수련생은 평소 매우 내성적이었다. 이전에 그녀 집을 기지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중단했다. 현재 그녀는 기지 고정 멤버가 됐다. 본인이 걸어 나왔을 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을 이끌려고 했다. 그녀는 모든 수련생에게 중생을 구할 사명이 있다고 여겼기에 어느 수련생이 오지 않으면 전화를 걸어 수련생의 명백한 일면을 일깨워줬다. 수련생이 초청을 받고 나오면 그녀는 매우 기뻐하며 전화를 걸어 사람을 구할 수련생이 또 한 명 늘어났다고 말했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중 정진하지 않는 사람, 극단으로 가는 사람은, 즉시 자신을 바로잡고, 진심으로 법공부하고 수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가장 위험한 중에 있기 때문이다.”[1] 아직도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이 있어 나오지 않은 수련생이 걱정됐다. 한 수련생이 협조해 매달 지역에서 중국에 진상을 알린 교류회를 계획했다. 법공부와 심득 교류 이외에 수련생을 청해 현장에서 시연하게 하고 조를 나누어 전화를 걸었으며 오래 전화를 건 수련생을 안배해 새로운 수련생을 이끌게 했다. 전화를 걸어본 적이 없는 많은 수련생이 현장에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새로 배우러 온 수련생은 처음에는 잘 말할 줄 몰랐는데 그들은 큰 사업을 하는 것처럼 열심히 배워 전화 원고를 익숙하게 외웠고 결국 자신감이 생겼다. 정념과 정기 높게 큰 소리로 말했다. 수련생은 점점 자신감이 생겼고 점점 과감히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전화 기지에서 오전, 정오, 저녁 법공부 및 전화 걸기 배정표를 만들어 수련생이 배우러 오는 데 편리하게 했다. 수련생들은 점차 단련돼 성숙됐고 거의 모두 한 몫을 맡을 수 있었다.

기지는 수련생에게 편리한 시간과 환경을 많이 제공해 다그쳐 사람을 구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나는 기지에서 좋지 않은 마음을 많이 닦아버렸고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웠다. 이제는 모순이 발생하면 마음을 안정시키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았다. 이전에 전화를 걸 때는 매우 조급하고, 말을 빨리하며, 목소리가 컸는데 지금은 느슨하고 둥글게 할 수 있으며 중생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중생을 탈퇴시켰고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는 것을 닦아버렸다. 관념이 장애를 조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이 탈퇴시키기 쉽고 어떤 사람이 탈퇴하려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관념을 내려놓으니 자연스럽게 탈퇴시켰다. 대부분 수련생이 사람을 구하는 긴박함을 알고 중생이 기다리고 있고 대법제자가 전화를 걸어 구해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끝으로 사존의 ‘홍음2’ 중의 ‘빨리 알려라’로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하려 한다. “대법제자 진상을 알리려고 입속의 예리한 검 일제히 뿜어내네 썩은귀신의 거짓말을 폭로하나니 다그쳐 구도하고 빨리 알리세”[2]

부족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이성’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빨리 알려라’

 

원문발표: 2021년 2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6/4195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