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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수련해 사람 구함에 태만하지 않다

글/ 헤이룽장(黑龍江)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 나는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고 약을 달고 사니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이런 생활이 언제 끝이 보일지 정말 아득했다. 파룬따파를 만난 후,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 주셔서 내 모든 병이 치료하지 않고 치유됐다. 24년 동안 나는 다시는 약을 먹지 않아도 몸이 좋아졌고 길을 걸어도 빨랐으며 일을 하는 것도 젊은이들처럼 빨랐다.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 많이 걸어도 힘들지 않았다.

사부님께서는 나를 고난 속에서 구해주셨다. 나는 낙관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변했는데 친척, 친구들은 모두 내 거대한 변화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파룬따파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대법의 불은(佛恩) 속에 잠겨있었다. 나는 즐거운 생활을 하게 되면서 사부님에 대한 감사와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자 사존을 바짝 따라가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깡패집단은 중공 악당을 이용해 미친 듯이 파룬따파를 박해했고, 중국 대지는 적색 공포 속에 뒤덮이자 나는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남편은 나에게 애걸하면서 말했다. “중공은 뱀, 전갈보다 더 독해! 그것과 싸우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야! 이 집, 나와 아이의 앞날을 위해 포기해!” 나는 엄숙하게 남편을 보면서 “나보고 수련을 포기하라는 건가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라고 말하자 남편은 책상을 두드리면서 “파룬궁과 나 중에서 선택해”라고 말했다. 나는 “다 선택 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대법 책을 내놓으라고 나를 압박했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지만 나는 협조하지 않았다. 남편과 회사 측에서 동시에 압박하자 나는 궁지에 몰린 것처럼 몹시 고통스러웠고 숨이 막혔다. 마음속의 그런 고생은 나에게 많은 의문을 품게 했다. ‘이렇게 바른 사부님, 이렇게 좋은 대법을 중공이 왜 박해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갈대 같은 사람이 될 것인가 아니면 우주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내 답은 긍정적이었다. ‘대법은 내 생명의 뿌리인데 나보고 포기하라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반드시 사존을 바짝 따라갈 것이며 영원히 방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서약을 실천하고 태만하지 않고 사람을 구하다

“법 공부를 하면 당신 자신이 법을 얻는 것인데, 당신은 얻으려고만 하고 대법의 좋은 점만 얻으려고 하는가? 바꿔서 말한다면, 대법제자가 박해받고, 대법마저도 모욕당하고 있는데, 당신이 나서서 말을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법을 얻을 자격이 있는가?”[1] 10년 후, 사부님의 이 말씀을 보고 처음에 했던 것을 회상하면 위안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마음을 다스리고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반(反)박해 행렬에 들어갔다. 저녁에 나가서 진상 스티커를 붙이고 집집이 진상 소책자를 배포했다.

‘9평 공산당’이 발표된 후, 나와 수련생들은 낮에 집 밖으로 나와 ‘9평’을 배포했고 직접 대면해 진상을 알리면서 사람을 구했다. 시내에서 진상을 거의 마무리하자 나는 축전지 삼륜차를 구입해 4~5명 수련생들을 태우고 비바람을 무릅쓰고 시골로 가서 직접 대면해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시켰다. 험한 언덕을 만나면 우리는 삼륜차를 밀고 올라갔고, 강을 만나면 우리는 바지를 접고 건넜다.

날씨가 추워지자 충전지 삼륜차를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나는 또 압력을 무릅쓰고 자비로 차 한 대를 구매해 수련생들과 전체 현(縣) 20여 개 되는 향(鄕), 진(鎭), 재래시장, 몇백 개 마을을 다녔다. 어떤 마을은 2~3번 넘게 갔었다. 우리는 집집마다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면서 사람을 구했다. 매일 삼퇴시킨 사람은 몇십 명에서 몇백 명이 될 때도 있었다. 춘하추동, 추위와 더위를 막론하고 제일선에서 사람을 구했다.

매일 진상을 알리러 나가기 전에, 나는 먼저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사부님께 제자에게 많은 사람을 구하게 가지해주시고, 우리가 도착한 공간장과 주위 환경의 일체 사악을 제거해주시고 세인이 진상을 알고 구원되는 것을 교란하는 일체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해달라고 청을 올린다.

헤이룽장의 겨울은 매우 춥고 눈이 새하얗게 쌓여 있다. 언덕은 가파르고 길이 미끄러워 마치 거울 표면처럼 반들반들하다. 비록 미끄럼 방지 타이어를 사용했지만 도로에서 옆으로 돌아갈 때도 가끔 있어서 몇 번이나 길옆 깊은 골짜기로 떨어질 뻔했다.

거리가 먼 마을에 갈 때면, 우리는 매번 1천 개가 넘는 진상 책자와 밍후이 탁상용 달력을 지니고 왕복 200킬로가 넘는 거리를 달려야 했다. 기사 수련생은 가장 고생스러웠다. 그는 마을마다 거리마다 왔다 갔다 하면서 안전 ‘순찰’을 하고 수련생들과 소통하고 수련생들의 진상 자료를 보충해줬다.

무더운 삼복 날에, 진상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고 시원해지면 가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오이, 참외를 따줬지만 우리는 완곡히 사절했다. 날씨가 추운 한겨울에 수수한 마을 아줌마들은 친절하게 우리에게 뜨거운 구들에 앉았다가 몸이 녹으면 가라고 했다.

그 몇 해 동안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한 가지 예만 들겠다.

어느 한번, 나는 어떤 여성에게 많은 진상을 알려줬고 그녀도 진지하게 듣고 실명으로 탈당했다. 나는 또 말했다. “중공의 여러 번 정치 운동에서 박해당한 사람들은 모두 중국인의 엘리트였어요. W선생님을 보면, 그녀는 학생, 부모들이 공인하는 좋은 선생님이었는데 파룬궁 보도원이라는 이유로 1999년 ‘7.20’ 장쩌민 깡패집단이 미친 듯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에, 그녀를 ‘중요 인물’로 삼고 신념을 포기하게 압박했어요. 그녀는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하고 신념을 포기하지 않자 공직에서 해고됐어요. 또 여러 번 납치, 감금을 당하고 또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그녀의 남편은 한 번 또 한 번의 위협, 타격을 견디지 못해 비분해 세상을 떠났어요. 그녀는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을 하게 됐고 아이도 갈 곳이 없게 됐어요. 그녀가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는데 오히려 중공에 박해당하고 집과 가족을 잃게 됐어요.”

이 여성은 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분노했다. 그녀는 “중공은 정말 인성이 없어요! 좋은 사람을 박해하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자연의 이치로는 용납할 수 없어요! 저는 그녀를 도와줘야겠어요. 그녀에게 감사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상하게 생각했다. ‘지금은 누가 파룬궁을 위해 공평한 말을 해주는가? W가 납치당했을 때, 가족들은 인맥으로 공안 내부 사람에게 사정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살인범은 도와줄 수 있어도 파룬궁은 도울 수 없다’고 했는데 한 보통 직원으로서 권력도 없는데 당신이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나는 그녀가 큰소리치고 불의에 대해 의분을 느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나는 사람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보름 후, 학교 측은 W선생님의 공직을 회복시켰고 또 1999년 ‘7.20’부터 정지당했던 모든 임금을 보충해줬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서 계속 자비롭게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다

어느 한 번, 나는 진상 자료를 배낭에 가득 채우고 편의점에 들어갔는데 안에는 10여 명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잡담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작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에게 복을 가져왔어요”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나는 배낭 안의 진상 복(福)자, 세화, 대련, 밍후이 탁상달력을 꺼내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졌다.

이때 그중 한 중년 남자가 소리 지르면서 “모두 파룬궁을 선전하는 거네. 신분증을 줘봐요”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어요. 대법제자를 우대하면 복을 받아요. 당신은 장쩌민에게 속았어요. 이 진상자료를 보면 당신은 다 알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때 그와 나이 비슷한 남자가 큰 소리로 “파룬궁이 당신한테 어떻게 했어요? 이 할머니가 멀리서 우리에게 좋을 것을 주시는데 당신에게 돈을 달라고 했나요? 당신이 싫으면 관두세요. 비열한 짓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면서 내 배낭에다 자료들을 담아주면서 “누님, 빨리 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재빨리 집에서 나와 기사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다른 수련생 3명을 황급히 데려왔다.

우리 차가 막 마을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찰차가 앞에서 오더니 마을로 들어갔다. 우리는 이렇게 위험에서 벗어났고 사부님께서 늘 우리를 보호해 주셨다.

대역병 동안 사람을 구하느라 바쁘다

사부님께서는 “현재 가장 큰 한 가지 일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며 많이 구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큰일이다.”[2]라고 말씀하셨다.

경자년 연초, 중공 바이러스(우한폐렴)가 기승을 부리자 우리 아파트단지는 40일 넘게 봉쇄되고 출입증을 발급해 한 가구당 한 명이 이틀에 한 번씩 물건을 살 수 있게 했다.

나는 이것은 인류의 대도태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해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내 책임이고 사명이다. 이틀에 한 번씩 나가면 사람을 구하는데 차질이 생기는데 이렇게 하면 되겠는가!’ 나는 사부님께 매일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청을 올렸다.

이렇게 나는 매일 평소처럼 8시에 집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다. 나는 웃으면서 경비원에게 말했다. “우리 집은 단층집이라 남동생, 여동생, 친척, 친구의 백김치, 배추, 감자, 무를 저장했기 때문에 매일 한두 번 난로를 피워야 해요. 난로를 안 피우면 야채가 얼어요. 그러면 이 몇 가구 되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겠어요? 그럼 나는 할 말이 없어요!” 이렇게 나는 순조롭게 매일 한두 번씩 나가는 동시에 수련생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진상 자료를 전해주는 임무를 감당했다.

큰길과 작은 골목은 평소보다 사람이 많이 적어졌다. 하지만 사람이 적지만 매일 3~5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고 사람이 많으면 10여 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으며, 또 일부 진상 자료도 배포할 수 있었다.

이 몇 년간 나는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형형색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늘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추운 날씨에 나와 이런 일을 하다니, 당신에게 돈을 얼마나 주나요?” 또 어떤 사람은 “배불러서 할 일이 없지!”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당신은 당을 반대하고 있어요. 당신을 신고할지 모르는데 두렵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정황에 부딪혀도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선하게 대하고 포용하고 세인을 이해했다. 그들은 중공 악당에게 너무 심한 세뇌를 받아서 그렇지 그들의 명백한 일면은 우리가 구원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사람을 구할 때 자비가 있어야 하고 온화하고 선량해야 하며 지혜롭고 바른 생각을 해야 하고 사람들의 부정적인 것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내 진상을 받아들이고 ‘삼퇴’에 동의하면서 ‘감사하다’고 했다. 어느 한 번, 나는 중학생 4명을 탈퇴시켰는데 그중 한 남자아이는 기뻐하면서 “할머니, 만수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어떤 여자아이는 “할머니 매일 좋은 기분이 있길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아이도 축복하는 말을 했다. 또 어느 한번은 한 중년 여성이 진상을 알고 ‘삼퇴’한 후, 내 손을 잡고 “정말 귀인을 만났네요!”라고 말했다.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 비록 고생스럽지만 세인들이 구원받은 후의 기쁨을 보면 나는 우리에게 사람을 구하는 기연을 만들어주신 사부님께 한없이 감사드린다. 대법제자들은 대법과 사부님께서 사람을 구할 수 있고 일체는 사부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우리 매 한 대법제자는 단지 입을 많이 움직이고 많이 뛰어다니면서 인연 있는 사람을 찾는 것뿐이다!

컴퓨터를 배우다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 나는 많은 곤란을 극복하고 컴퓨터를 배웠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받고 진상자료를 인쇄, 제작하며 수련생을 도와 ‘삼퇴’ 명단을 전했으며 진상 화폐, 진상 탁상용 달력을 인쇄했다. 나는 매일 밍후이왕에서 수련생들의 수련교류 체험 문장을 읽으면서 전 세계 수련생들과 서로 도우며 함께 수련의 길을 걸었다.

이 몇 년간 나는 여러 번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당해 납치됐었다. 매번 우리는 모두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고 정념으로 마귀의 소굴에서 뛰쳐나왔으며 또 승용차도 되돌려 받았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리고 또 수련생들의 정념의 협조에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이라,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지나온 다음에는 명백해진다. 그러나 희망이 없는 적막 속에서 묵묵히 수련하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수련이든 모두 이러한 고험을 겪게 되며, 모두 이러한 길을 걷게 마련이다. 오랜 기간 꾸준히 견지해 오면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것이 비로소 진짜 정진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하자면 정말로 어렵다. 그러므로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정과를 얻는다고 한다.”[3] “이런 앞이 보이지 않는 수련환경, 길고 긴 적막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것으로서, 가장 쉽게 사람을 해이해지게 하는데, 이것이 수련 중에 존재하는 최대의 고험이다.”[3]

법공부를 통해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성취시키려고 우리에게 하늘로 가는 수련의 길을 배치해 주셨고, 또 우리는 반드시 하늘로 통하는 대도를 바르게 걷고 잘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과정 중에서 안일심, 고생을 두려워하는 마음, 시간을 집착하는 등 사람 마음을 닦아냈다.

최후의 길을 잘 걷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이미 10여 년이 되어 나는 혼자 생활하고 있어 조건은 아주 좋다. 매일 나는 시간을 빡빡하게 배치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연공,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운다. 오전에는 나가서 사람을 구하고 십몇 년을 하루처럼 이유 없이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오후에 법공부를 하고 법을 외웠다. 저녁에는 밍후이왕 수련생들이 교류 문장을 보고 어떨 때는 밍후이에 투고한다. 또 불법 감금당한 수련생을 구하기 위해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해 무죄 변호를 하게 했고 병업 중에 있는 수련생들을 도와 발정념하면서 모든 협조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수련생들과 잘 협조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하루 매일 두 끼만 먹고 밥을 하거나 먹을 때는 밍후이 라디오를 듣는다. 나는 온몸을 던져 법 중에서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았으며 되도록 사부님께서 마음을 푹 놓으실 수 있는 합격된 대법제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정진! 또 정진했다! 자신을 잘 닦는 것은 영원히 제일위이며 나는 정법 수련의 길에서 원만할 때까지 최후 한 걸음을 잘 걸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8―2007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9/4187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