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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진상을 알린 두세 가지 일

글/ 산둥(山東) 대법제자

[밍후이왕] 제 고향은 시골입니다. 퇴직 후 도시에 가서 딸의 아이를 돌봐주었습니다. 예전에 가족 60여 명에게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켰습니다. 그중 9명은 대법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하게 진상을 깨닫게 하려고 명절이나 결혼식 또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함께 모이곤 했습니다.

밍후이주간, CD 등 다양한 대법자료를 만들었고 큰 조카딸(오래전 제가 데리고 들어온 수련생)과 함께 시골 전체를 다니면서 배포했습니다. 동네 어르신과 마을 사람들, 그리고 본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먼 곳에서 온 진상을 보고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불법(佛法)을 듣게 했습니다. 동시에 친척 집에도 한 부씩 나눠줬습니다. 이 과정에서 물질적인 지출이 많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오빠 얼굴의 환한 미소

형님(올케)은 최근 몇 년 법을 들으면서 법공부를 해왔습니다. 오빠는 비록 삼퇴에 동의했지만 오빠 앞에서 대법 이야기를 하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적 없습니다. 한 번은 가족들이 형님이 밤에 진상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오빠에게 알려줬다고 말했습니다. 오빠는 또 우리 여동생이 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서 식사할 때 저는 손아랫사람들 앞에서 이 일을 언급할 때 오빠에게 “무슨 일이든 모두 사람들 앞에서 말하네요. 굳이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하나요? 제가 한 일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면서요. 더구나 이런 전화를 받았다는 건 얼마나 큰 복이에요”라면서 책망했습니다. 오빠는 난처해서 얼버무리며 “나……나도 대법이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았잖아”라고 말했습니다.

돌아와서 수련생과 이 일을 말하면서 한 사람을 구하는 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하자 수련생은 제 태도가 너무 강했다고 지적해줬습니다. 이 한마디 말은 저를 갑자기 깨닫게 했습니다. 안으로 찾아보니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강했던 저는 이미 습관이 형성돼 스스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도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는 법리를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오빠가 제 친오빠라고 해서 제가 오빠에게 무엇을 말하면 마땅히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저는 사람의 마음과 강요로 자비를 대체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타인의 잘못을 원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난날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1947년 아버지가 옌저우(兗州) 전투에서 돌아가셨을 때, 스물일곱 살의 어머니는 세 살 난 오빠와 한 살배기인 저를 데리고 매우 간고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오빠는 중학교까지만 졸업하고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은 어머니는 오빠를 생산 팀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우리 집 조상들은 학자 가문으로 오빠는 비록 지식수준이 높지 못했지만 글을 지을 수 있었고 셈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붓글씨를 쓸 수 있어 마을위원회에 초대받아 연말 계산을 해주고 마을 전체에 대련(對聯)을 써주곤 했습니다.

딸(수련생)은 외삼촌을 진정으로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몇 년 동안의 서예와 그림 작품 및 조롱박에 조각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공예품을 보여줌으로써 이 방면에서의 특기가 외삼촌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라고 알려주어 외삼촌의 불성을 불러 일깨우려 했습니다. 오빠는 작품을 보고 나서 연신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즐겁게 조롱박을 거실 중앙에 있는 큰 거울 위에 걸어뒀습니다.

올해 오빠는 몸이 불편해 제가 사는 도시의 병원에서 작은 수술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저와 딸은 오빠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진정으로 외면 만겁(萬劫)이 즉시 바뀌네”[1]라는 법리와 주변에서 일어났던 신기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병원 입원실 자리가 부족한 관계로 오빠는 수술한 지 이틀 만에 퇴원했습니다. 돌아온 후, 오빠는 매우 기뻐하며 우리에게 “수술 전에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어.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를 한 번씩 염했거든. 그 과정에서 그리고 수술 후 조금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았어. 유난히 홀가분하고 편안했어”라고 알려줬습니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과묵했던 오빠였지만 이때 얼굴에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건강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이야기했는데 막 수술을 마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들으면서 기쁨과 은혜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사존의 자비로우신 제도에 감사드렸습니다!

2. 조카딸이 살아 있는 매체의 역할을 하다

가족들과 여러 차례 접촉하면서 저는 조카딸이 어른에 대한 존중과 체면 때문에 삼퇴에 동의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조카딸의 눈빛과 표정을 관찰해보면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같아서 저는 각종 기회를 이용해 접촉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에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한 번은 조카딸의 시골에 사시는 시부모님이 그녀 집에 와서 잠시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친구가 제게 준 귀중한 선물을 들고 직접 그녀의 시부모님께 갖다 드리면서 진상을 알려 삼퇴를 시켜드렸습니다. 그녀의 시부모님은 아들 며느리의 고모가 자신들을 보러 왔다며 더없이 감격했습니다. 나중에 조카딸은 기뻐하며 제게 한 가지 일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학기 시험에서 그녀 아들의 성적이 대폭 향상됐고 선생님이 공산주의청년단 가입을 하게 하려 했으나 가입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어머니인 조카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조카딸은 “우리는 가입하지 않을게요. 아이가 좋은 학생이 되도록 가르치면 그걸로 된 거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카딸이 진정으로 바뀐 모습에 저는 매우 기쁘고 위안이 됐습니다.

재작년에 조카딸은 매우 슬퍼하며 제게 자신의 친한 친구가 유방암에 걸렸다고 알려줬습니다. 저는 조카딸에게 ‘죽을 고비에서 다시 살아나다(絕處逢生)’ 등의 밍후이 간행물과 호신부를 친한 친구에게 가져다주게 했고 삼퇴를 시켰습니다. 나중에 조카딸은 제게 친한 친구의 수술이 매우 성공적이었고 회복도 빨랐다며 남편과 함께 산림을 맡아 재배와 양식업을 했는데 수입이 좋다고 알려줬습니다. 올해 조카딸이 형님 생일잔치에 왔다가 저를 만났습니다. 조카딸은 눈물을 머금고 저를 꼭 끌어안으며 잇달아 고맙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대법과 인연이 있어 사부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복을 주신 것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나중에 책임자는 조카딸을 작업장에서 사무실로 발탁해 근무하게 했습니다. 조카딸은 제가 줬던 ‘9평 공산당’ 등 진상자료를 사무실 서랍에 넣어두어 동료나 친구들이 방문할 때면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대법 진상을 홍보하는 살아있는 매체가 됐습니다.

3. 단단한 얼음이 녹다

남편(수련생)의 여동생과 시매부는 유전에서 일합니다. 시매부는 회사의 기율검사 서기로 경제적인 여건이 매우 좋습니다. 현지의 공기와 수질이 나쁘다는 소문이 돌면서 우리 고향 해변에 집을 사서 해마다 몇 개월씩 살곤 합니다. 처음에 그들을 만나러 가서 진상을 알렸을 때 그들은 매우 거부했습니다. 시누이는 “올케 언니, 제가 보기에 언니는 배불러서 할 일이 없으신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저는 듣고 기분이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기껏해야 1년에 한 번 정도 만났고 서로 매우 존중했던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녀가 저도 모르게 뱉은 이 말이 제 심성을 단련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듬해 저는 남편에게 그래도 우리가 가서 그들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매우 난처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산이 무너져 내려 시누이가 깔렸다면 가서 끌어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일이 있어서 떠날 수 없어 남편 혼자 기차를 타고 다녀왔습니다. 돌아온 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들이 남편을 내쫓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얼음이 석 자나 언 것은 하루 추위에 다 언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공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다음 해에 우리는 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회사 동료가 해변에서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동료는 선물을 앞다투어 사주었습니다. 가는 김에 시누이와 시매부 집에 들렀고 모두 거실에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며 수박을 먹었습니다. 저는 손가락으로 시매부의 어깨를 살짝 눌렀고 그는 알아차리고 방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시매부님의 지위가 높아서 시누이가 매우 기뻐하네요. 지금은 총리이고 국가주석급이시니 시누이가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어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매부님의 생명에 대해 책임지는 거예요. 그 때문에 제가 거듭 찾아오는 거고요. 전 세계에서 파룬따파가 훌륭하고 삼퇴하면 평안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아요. 이것은 하늘의 뜻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시매부는 난처해하며 자신이 회사에서 이 일(파룬궁 탄압)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것은 직업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되면 이 방면에서 이런 선량한 수련하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보호해줄 권한이 있고 총구도 1cm 높게 들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머리 삼척 위에 신령이 있으니 그것은 공덕이 무량한 일이라고 알려줬습니다. 마지막에 그는 숨을 내쉬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저는 알게 됐어요. 저를 탈퇴시켜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단단했던 얼음이 마침내 녹았습니다. 떠날 무렵 남편은 우리 두 사람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결과를 알아차리고 제게 엄지손가락을 몰래 치켜세웠습니다.

올해 방역으로 봉쇄가 해제된 후 우리는 또 그들을 보러 갔습니다. 시매부는 두 손으로 우리가 가져간 방역 진상 간행물과 딸아이가 ‘파룬따파하오’를 조각한 조롱박 걸이를 받아들면서 온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연신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시누이는 시매부 손에서 조롱박을 빼앗아 들고 자신에게 달라고 말했습니다! 모두들 깨닫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4-대련(對聯)’

 

원문발표: 2021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4/414881.html